난 한국 시인들을 좋아한다. 아니, 정확히는 일제 치하의 그 굴욕적인 '조선'의 시인들을 사랑한다. 그 치욕과 민족적 한에 뿌리한 그들의 오열과 피같은 작품들을 나는 사랑한다. 그네들이 겪어야 했을 그 아픔과 고뇌마저 나는 사랑한다. 그 아픔과 고뇌로 인해 그들의 작품은 끝내 빛났으며, 빛나고 있기에.
그 중 일번을 꼽으라고 한다면, 역시 난 그래도 한동안 고민을 할 것이다. 그 중에는 가히 주옥이라 부를 이들이 너무나도 많다. 내 나라의 문학이 이토록 눈물나게 융숭했던 적은 없었다. 그 모두들이 그 한과 아픔을 담아 한 글 한 글 정기를 쏟아냈다. 그네들 모두를 사랑하기에, 나는 고민할 것이다.
만약 나에게 한동안의 시간을 할애하여 준다면, 아마도 난 한참 후에야 개중 김소월이 제일이라 말할 것이다. (아니, 아무래도 말할지도 모른다라고 해두어야 할 듯하다. 이상, 서정주, 윤동주 등 그 천재시인들이 번뜩 일어나 나에게 호통을 칠지는 모르는 법에, 김소월이라 못 박아 호언하는 것은 무섭지 아니한가.) 김소월, 그의 시적 재능은 그에 비할 이가 고금을 통틀어 몇 이 되지 않을 만큼 시에서 나타나는 기풍과 미구가 돋보인다. 그의 시는 질리도록 화사치도 않고, 뻗뻗하게 권위적이지도 않다. 그의 시를 보노라면, 마치 까까머리 동자하나가 우물 가에 앉아 나에게 조용히 읊어주는 듯한 착각 속에 빠지곤 한다. 그의 이야기는 담담하다. 그의 이야기는 우리 네들만큼이나 소박하다.
여기서 꼭 나를 난처하게 만드는 질문이 하나 더 있다. 김소월이 제일의 시인이라면, 그 김소월의 제일의 시는 무엇이냐고. 이 또한 대답키 매우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오색 주옥 가운데 그 제일을 꼽으라 한다면 그 온갖 색에 현혹되어 진실한 보석을 꼽아내기 힘들듯이, 나 또한 김소월의 그 여럿되는 아름다운 시 중에서 최고의 그 하나만을 꼽는 것은 어렵기만 할 뿐이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답해주리라 생각한다.
'내 제일 어렸을 적 처음 읽었던 시가 김소월의 진달래꽃이오.'하고 말이다.
진달래꽃을 이 지면 상에 구구연연히 적어 풀이하자는 것은 아니다. 다만 내가 중학교시절 국어 책을 뒤적거리다 우연히 마주치게 된 이 한 편의 시가 나를 시, 그리고 문학이라는 낯설기만 했던 분야에 이끌어온 것만은 사실이다. 진달래 꽃을 읽어본 이들은 알리라. 그 시는 시를 처음읽는 이에게도 입에서 그 시가 봉긋이 떠오르게 하는 심연의 운율이 담겨 있다. 그 시는 처음읽는 이에게도 마음 구석 가슴 저려오는 그런 감정을 준다. (내 차마 그 감정마저 글로 풀어쓰지는 못하겠다.) 특히나, 3연의 '즈려 밟고'를 읽으려는 찰나에는 마치 임의 그 발길이 내 심장을 무참히 밟고 지나가는 그 심정에 순간 머뭇하게 되고 마는 것이다. 4연의 '아니 눈물 흘리우리다'에선 눈물 한방울이 옆눈가로 핑하게 되고 마는 것이다.
진달래꽃과 상종한지도 이제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그 시만큼이나 다시 봐도 가슴이 울컹 흔들거리는 시는 보지 못하였다. 물론 그러한 이유만으로 한국 제일의 시를 '진달래꽃'이라고 하는 것은 아니다. '진달래꽃'에는 한(恨)의 민족 정서가 그 다른 어떤 작품에서보다 아련히 묻어난다. 그래서 김소월은 이렇게 불렸던가, 민족 시인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