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비메탈은 노동계층의 음악이다.’
미국과 영국의 음악계에선 널리 통용되는 말이다. 메탈리카 등 대중적인 인기를 끄는 일부 밴드들을 제외하고는 헤비메탈 공연장은 주로 공장 노동자들과 식당 종업원들이 채우는 것이 사실이다. 월스트리트에서 일하는 고소득 직장인들과는 차림새도 다르고 말투도 다른 계층이다.
도대체 음악과 계층이 무슨 상관이 있겠나 싶겠지만, 헤비메탈의 탄생 과정을 살펴보면 왜 노동계층의 음악이 됐는지 어느정도 고개가 끄덕여진다.
1950년대 이후 경제적 풍요로움의 산물과도 같은 록은 기본적으로 ‘즐기는’ 음악이었다. 젊은이들은 흥겨운 리듬에 몸을 흔들었고, 이들의 자유로운 삶은 종종 술과 마약, 섹스를 수반했다. 그러나 모두가 그런 삶을 살 수 있는 건 아니었다.
빠른 속도의 경제 성장은 양극화를 불러왔다. 돈을 버는 사람들은 더 많은 돈을 벌었지만, 하층민의 삶은 상대적으로 피폐해졌다. 영국 경제학자 피터 타운젠드와 브라이언 아벨-스미스의 1965년 논문에 따르면, 당시 영국인의 14%에 달하는 750만명이 빈곤층이었다. 특히 전체 빈곤층에서 15세 미만 어린이가 차지하는 비중은 29%에 달했다.
영국 버밍엄과 같은 공장 지대에 사는 청소년들의 삶에는 희망이 없었다. 비틀즈에 열광하는 런던 시민들의 삶과는 괴리가 점점 커져갔다. 이들은 여전히 즐거움이 아닌 생존을 위한 삶을 살고 있었다.
당시 상황은 1948년 버밍엄에서 태어난 헤비메탈 뮤지션 오지 오스본의 회고에도 드러난다. 그는 2010년에 발표한 자서전 ‘I Am Ozzy’에서 “전쟁 이후의 삶은 그렇게 쉽진 않았다. 아버지가 GEC 공장에서 야간근무를 마치고 아침에 돌아오면, 어머니가 루카스 공장에서 근무를 시작했다. 이것은 무척이나 단조로운 고역이었다”라고 썼다.
물론 오지 오스본도 당시 청소년들과 마찬가지로 비틀즈의 팬이었다. 그는 비틀즈의 1963년 곡 ‘She Loves You’를 듣고 뮤지션의 꿈을 키웠다고 한다. 다만 가난과 범죄에 노출됐던 그가 만드는 음악이 비틀즈의 음악처럼 밝고 아름다울 수는 없었다. 어린 시절부터 형성된 어두운 정서는 그가 버밍엄에서 결성한 밴드 블랙 사바스의 음악에 그대로 녹아들었다.
앤드루 L. 코프는 저서 ‘블랙 사바스와 헤비메탈의 출현’에서 “블랙 사바스의 초기 작품에 분명하게 드러나는 어둡고, 분노에 찬, 심각한 음악은 중부 산업화 지역의 막다른 노동계층의 공장 인생과 연관이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오지 오스본과 함께 1968년 블랙 사바스를 결성한 기타리스트 토니 아이오미는 공장 노동자였다. 그는 공장 일을 하다가 손가락을 잃은 것으로도 유명하다. 기존 음악에서 들을 수 없었던 블랙 사바스의 무겁고 시끄러운 사운드는 토니 아이오미가 매일같이 경험한 공장의 기계 소음에서 비롯됐다고 해석하는 사람들도 있다.
블랙 사바스와 비슷한 시기에 레드 제플린과 딥 퍼플도 활동을 시작했다. 블랙 사바스와 마찬가지로 멤버들의 생활 형편은 썩 좋지 못했다. 레드 제플린의 리더이자 기타리스트인 지미 페이지의 아버지는 공장 근로자들을 관리하는 매니저였고, 딥 퍼플의 보컬리스트 이언 길런의 아버지는 공장 창고지기였다. 이들은 런던에 사는 부유한 대학생들과 똑같은 정서를 공유할 리 없었다.
자연스럽게 이들이 만든 음악은 일반 대중이 즐기는 록 음악보다 빨랐고, 시끄러웠으며, 무엇보다 어두웠다. 헤비메탈의 탄생이었다.
데뷔 초기의 블랙 사바스
피용익 기자 / 이데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