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詩
서석지(瑞石池)
― 차영미
돌담을 지나 하나 둘 우산을 펼쳐 들고 모이기 시작했다 400년이 넘은 은행나무에서 뭉친 빗방울이 떨어지고 연잎 위로 몸을 말아 올린 물방울은 연못 속으로 내려앉았다 바닥에 가라앉기도 하고 승천하지도 못했던 용이기도 했던 서석 무리가 하얗게 손짓하고 대청마루 경정에서 신선이 사는 소우주를 그렸던 선비의 목소리를 들었던가,
흩날리는 징검다리를 지나 못 속에 웅크린 용을 바라보며 문드러진 도끼자루를 따라 나비가 놀고 떨어진 별 사이를 따라 들어온 물이 자욱이 빠져나가는 소리를 들었을까, 스무 개의 서석 사이로 해설자의 목소리가 나지막하게 점을 찍고
머물다 간 사람들의 웅성임이 연꽃 가득한 연못 속으로 오래도록 떨어지고 있었다
‘서석지(瑞石池)’는 경북 영양군 입암면에 있는 민가의 연못으로 광해군(光海君) 5년(1613년)에 성리학자이자 시인인 석문 정영방(石門 鄭榮邦)이 본래 있던 돌들을 중심으로 연못을 만들고 그 앞에 경정(敬亭)이란 정자를 세웠는데 현재 국가민속문화재 제108호로 지정되어 있다. 흔히 소쇄원, 세연정과 더불어 3대 민가 정원으로 꼽히는데 특이한 것은 정원을 꾸미고 자연석을 옮겨온 것이 아니라 본디 있던 자연석을 그대로 살려 그곳에 연못을 만들었다는 점이다.
차영미의 시 <서석지(瑞石池)>를 보면 첫 행에 ‘돌담을 지나 하나 둘 우산을 펼쳐 들고 모이기 시작했다’로 보아 시인이 문학기행인지 단체관광인지는 확실하지 않으나 여행 중에 일행들과 서석지를 찾은 모양인데 마침 비가 뿌리는 날이다. ‘서석지’란 ‘상서로운 돌들이 있는 연못’이란 말로, 상서롭다는 것은 ‘경사(慶事)롭고 길(吉)한 징조(徵兆)’를 뜻한다. 이어지는 시행에서 시인은 관람 중에 본 서석지의 모습을 화자의 시선으로 그려낸다.
안내자 혹은 해설사를 따라 서석지로 들어선 화자의 눈에 ‘400년이 넘은 은행나무’에서 빗방울이 떨어지고 그 빗방울은 ‘연잎 위로 몸을 말아 올’려 ‘연못 속으로 내려앉’거나 ‘바닥에 가라앉기도’ 한다. 같은 빗방울인데 떨어진 곳이나 떨어진 다음의 행선지가 서로 다르다. 이를 알기라도 하듯이 ‘승천하지도 못했던 용’인 ‘서석 무리가 하얗게 손짓’한다. 물론 화자의 상상력이다. 그 속에 쓰인 비유나 의인 혹은 활유는 논외로 하자.
실제 서석지에 있는 돌들은 ‘서석’이란 말 그대로 상서로운 기운을 나타내듯 흰색이다. 어디서 옮겨온 것이 아니라 땅에서 솟은 듯 그 자리에 있던 돌들이다. 여기서 화자의 궁금증이 드러난다. 이렇게 상서로운 돌들을 품고 있는 연못을 바라보며 경정의 대청마루가 아니라 ‘대청마루 경정에서 신선이 사는 소우주를 그렸던 선비의 목소리를 들었던가’고 고개를 갸웃한다. 여기서 선비는 조정을 떠나 속세에 묻힌 정영방임은 두 말 할 필요가 없다.
줄글(산문)로 된 시는 쉼표 다음에 연이 나뉘는데 이는 형식적으로 나뉠 뿐 내용은 이어진다는 의미이다. 이제 화자의 눈에 서석들은 그냥 용이다. 징검다리로 놓인 돌들을 시인은 ‘흩날리는’ 돌들로 인식한다. 그 징검다리를 지나며 못 속에 있는 서석들을 ‘웅크린 용’으로 보며 ‘떨어진 별 사이를 따라 들어온 물이 자욱이 빠져나가는 소리를 들었을까’ 생각해 본다. 앞 연에서 서술한 ‘선비의 목소리’와 함께 ‘물길이 빠져나가는 소리’는 서로 대비가 된다. 바로 이상과 현실의 거리이다. 가 본 사람은 알겠지만 물길이 들어오고 빠져나가 서석지의 수면은 늘 일정하다. 그렇다면 물길이 빠져나가는 것은 현실이 강조된 모습이다. 화자가 이런 생각을 할 때에 해설자가 설명하는 목소리가 ‘스무 개의 서석 사이로’ 점을 찍듯이 점점 작아진다. 계속된 설명에 관광객들이 심드렁했던 모양이다.
다시 나뉜 연은 한 행뿐이다. 바로 앞 연에서 내용은 그대로 이어지지만 ‘머물다 간 사람들’ 즉 관광객들의 ‘웅성임이 연꽃 가득한 연못 속으로 오래도록 떨어지고 있었다’는데 바로 화자의 서석지에 대한 느낌이 그대로 드러난다. 화자는 서석지가 얼마나 상서로운 곳인지, 정자를 짓고 연못을 꾸민 정영방의 뜻을 나름대로 이해하고 연못을 본다. 그러나 관광객들의 인식 수준은 화자와는 다르다. 아무리 아름답고 상서로운 뜻을 담은 연못이라 해도 일반인들에게는 그냥 정원이요 연못일 뿐이다. 그런 수런거림이 ‘웅성임’으로 연못 속에 떨어지는 것이 화자로서는 안타까울 뿐이다.
분명 시인은 ‘서석지’의 이력 그리고 서석지 여러 부분(건물과 돌, 꽃과 나무 등)의 의미를 알고 있고 그 의미대로 정영방의 눈으로 서석지를 바라보고 있다. 그러면서도 광해군 때 조정을 떠나 낙향했다가 병자호란의 어지러운 정세에 더 깊이 이 곳에 들어온, 속세를 떠난 그의 세계관 혹은 인생관까지 이해의 폭을 넓혀 그 뜻을 같이 하고자 한다. 그러나 선비의 뜻이 담긴 정원은 일개 관광상품이고 해설사의 설명은 고리타분한 양반이나 선비타령일 뿐이다. 따라서 서석지는 방문객에게는 한낱 관광지에 불과하다. 그러니 서석지가 그들의 수근거림 대상으로 전락한 것이 화자는 안타까웠으리라.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다. 서석지의 이력과 그 의미를 알고 있는 시인의 눈은 일반 관광객들과는 달리 예리하다. 사물 하나하나는 물론 소소한 풍광에서도 그 의미를 읽어낸다. 바로 경정의 대청마루, 연못 속 연꽃 그리고 들어오고 나가는 물길, 연못 속 서석들은 물론 담 넘어 솟은 400년이 넘은 은행나무에서까지 시인의 눈은 단순한 풍광이 아니라 조선 광해군 때 선비 정영방의 세계관을 읽어내는 것이다. 그러니 시인이 아니겠는가.
차영미의 <서석지>는 단순히 ‘언어로 그린’ 그림 – 그냥 연못 묘사가 아니다. 행간에 숨어 있는 화자의 눈 그리고 시인의 손끝을 따라가다 보면 옛 선비의 뜻을 조금이나마 접하게 된다. 그렇게 시인의 손끝 묘사를 느낄 수 있으면 묘사 사이사이에 담겨 있는 시인의 상상력과 서석지에 대한 시인의 인식 수준에 근접할 수 있으리라. ♣
△ 문인모임에서 차영미 시인과 함께.
첫댓글 현대시의 형태인 듯 합니다(잘 모르지만)
'대청마루 경정에서 신선이 사는 소우주를 그렸던 선비의 목소리를 들었던가'... 지금 50대인 시인이 저런 글을 쓰기까지 얼마나 사유를 많이 했을까 생각합니다. (시인에 대해 검색해 본 결과입니다)
차영미 시인은 문인들 모임에서 종종 만나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