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부른 더위와 가뭄
박 민 순
올 여름은 내 생애에 있어 가장 무더웠던 해였던 것 같다.
7월 초부터 쏟아지는 폭염은 연일 수은주를 40°C 가까이 끌어올렸고 이마에서는 연달아 땀방울이 비 오듯 쏟아졌다.
우리 국민들은 올여름 내내 인간 인내의 한계를 넘어선 가공할 위력을 지닌 무더위와 가뭄에는 속수무책, 그야말로 하늘만 쳐다볼 뿐이었다.
더위를 참다못해 건물 옥상, 강턱(고수부지), 나무 그늘, 텐트 속에서 하늘을 이불삼아 잠을 청한 사람은 또 얼마나 많았던가.
유난히도 무덥고 가물고 지루했던 여름, 우리나라에서 기상 관측이 시작된 1907년 이래 최악의 무더위와 가뭄으로 기록된 여름.
기상 관련 기록을 한꺼번에 갈아치운 몇 십 년만의 더위.
굳이 표현한다면 한증막 내지는 찜질방, 아니 살인 더위라 해야 썩 어울릴 것 같다. 거기다가 극심한 가뭄까지 겹쳐 온 국민을 더욱 짜증나게 했다.
모두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만을 쳐다보며 일기예보에 귀 기울이며 비 오기만을 기다렸고 예년에 없던 기우제(祈雨祭)까지 지내기도 했다.
오죽 목이 탔으면 태풍이 몰고 올 엄청난 피해도 좋으니 비만 오게 해 달라고 기도하고 또 기원했겠는가.
영남과 호남지방 일부에서는 수돗물조차 모자라 제한 급수, 격일제 급수가 시행되고 피땀 흘려 애써 가꾼 농작물이 땡볕에 타들어가고, 생계수단으로 키운 돼지나 닭들이 고온에 못 견뎌 죽어갔으니 얼마나 애가 탔겠는가.
“하느님! 제발 비를 내려주십시오.”
정말 우리 국민 모두의 바람은 비였다.
언제나 어느 곳에서나 명암은 있게 마련이어서 가뭄과 더위에 울은 사람은 농민, 축산업자 등 물을 많이 쓰는 업자들이었지만 한편에서는 웃는 사람도 많았다.
덥다 보니까 자연히 아이스크림이나 음료수는 수요가 급증했고 선풍기나 에어컨은 품절되어 웃돈을 주고도 못 사는 형편이었다.
더욱이 더위를 피해 산과 강, 수영장, 바닷가로 모두들 떠났으니 피서지 상혼은 또 어떠했겠는가.
무더위와 가뭄으로 인한 피해는 온 국민 모두에게 돌아왔다.
폭염에 열대야 현상까지 겹치면서 밤잠을 설쳐 생활리듬이 깨지고, 생활리듬이 깨지니 각 직장마다 작업에 능률이 떨어지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거기다가 당장 먹어야 사는 채소와 과일의 출하량이 급격히 떨어져 김치 아닌 금치(배추 및 양념류가 비싸니까)를 먹어야만 했고 ‘채소 조금씩 먹자’는 이야기까지 등장했다.
수박 한 통에 1만 7~8천 원(쌀 한 말 값은 12,500원)까지 올라가기도 했으니 서민들은 수박 한 통 사먹기도 어려운 실정이었다.
한의학에서 분류하는 소음인에 속하는 나는 몸이 찬 체질이라서 땀도 별로 없고 더위도 타지 않아 여름이 되어도 선풍기(에어컨은 싫어할 정도)를 가까이 하지 않았었는데 올여름만큼은 선풍기 없이는 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였다.
더위는 안타는 대신 추위에는 약해서 추운 것만이 고통인 줄 알았는데 더위도 보통 고통이 아니라는 것을 올해서야 깨달았다.
프랑스에서는 바캉스철만 되면 피서지로 모두들 떠나서 상가는 완전히 철시(撤市)하고 도시가 텅 빈 굴처럼 텅텅 빈다고 하는데 충분히 이해가 가고도 남는다.
기뻤던 일이었거나 슬펐던 일이었거나 어린 시절의 추억은 누구에게나 소중하게 간직되어 있다.
나의 어린 날, 여름의 앨범을 펼치면 매미 쓰르라미가 자지러지듯 울어대던 뜨거운 땡볕, 발가벗고 멱 감던 툼벙, 목마름을 해결해주던 산골짜기 옹달샘, 그리고 다 떨어진 헤진 고무신짝이나 빈 병, 쇠붙이를 주고 사먹던 아이스케키가 잊히지 않는다.
산업문명의 발달로 편리를 더해주는 가전제품과 각종 공장이 들어서 엉거주춤하게 도시화된 시골, 한 폭의 풍경화처럼 아름답던 고향산천은 개발이라는 아름다운(?) 이름 아래 황폐화 되어 가고, 어느 곳을 가던 공해는 그림자처럼 우리를 쫓아다닌다.
그래서 공해와 밥 비벼 먹고 산다 하여도 지나친 말이 아닌 것 같다.
오염된 물, 오염된 공기, 소음 공해, 농약 공해, 쓰레기 공해….
지구상에서 인류가 저지른 만행 가운데 가장 심각한 것은 아마도 마구잡이로 파괴(개발한답시고)하고 환경을 오염시킨 일인 듯싶다.
이 지구상에는 각기 다른 수만 종의 생명체들이 살고 있건만 오직 인간만이 주인이라는 오만과 야욕으로 자연을 파괴하고 환경을 오염시켜 멀지 않은 미래에 우리들 스스로 우리의 무덤을 파게 될 처지에 놓여있는 상황이다.
올여름의 찜통더위와 극심한 가뭄, 기상학적으로 북태평양 고기압이 주범이라지만 자연 파괴와 환경오염이 몰고 온 인재(人災)라고 나는 믿는다.
영원히 이어갈 인류의 생명과 아름다운 자연!
이것을 지키기 위하여 오늘 이 시점에서 우리는 스스로 반성해야 한다.
무분별한 자연 파괴는 삼가야하고,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인구를 막기 위해 노력해야 하고, 환경오염을 방지하는데 모든 힘을 다하여야 한다.
<1994. 10. 10, 오산화성신문>
첫댓글 30년 전, 여름도 엄청 더웠네요.
요즘의 더위 만큼은 아니었겠지만 어쨌든 1994년 여름은 더위에 가뭄까지 겹쳐서 우리 국민들이
고통 받던 해였습니다.
지구 온난화로 인하여 앞으로 지구 온도는 계속 상승하여 더위는 계속될 것으로 전망됩니다.
맞습니다.
다 우리가 부른 더위와 가뭄
다 환경이 파괴되여서
그런거지요.
환경을 마구잡이로 훼손한 죄로
사람들이 고통 받고 있십니다.
개발이란 이름으로
우리는 지구를 마구 괴롭혔지요.
문명의 이기에 익숙해져 온 인간들,
되돌아 오는 불이익에
얼마만큼 견딜 수 있을까요.
자연은 말 그대로 스스로 그러한 것입니다.
감히 인간의 욕망은 어디까지 일까요.
자연은 말이 없습니다.
그런데, 재앙으로 돌아오는 것에는
인간은 어찌해야 할까요.
자연은 훼손한 만큼 사람들에게 되돌려줍니다.
앞으로 지구 생태계가 어떻게 변하여 사람들에게 어던 고통을 줄지
아무도 모릅니다만 기상이변으로 인한 고통은 갈수록 커진다는 전망입니다.
밍돌이
길을 잘못 간 거 같아
그 당시
그 정도의 필력이 있다면
그쪽으로 고했으면
대박인데
통장 하긴 아까워
나도 좀 알거든
난
술이 좋아
술독에 빠져
지금까지 헤매고
있지만
나도 건강만 했다면 '홑샘' 형님처럼 술독에 빠져 살았을 낍니다.
홑샘 형님!
합덕의 이쁜 과부들 관리 잘 하슈.
내 올가을 오토 바이크 타고 달려갈 테니......
모두 나에게 패스하슈. 내가 채금질 테니깐!
저도 94년은 못 잊어요. 그해 여름 제가 아이를 낳았으니까.
그때만 해도 신혼 집에 에어컨있는 집 많지 않았어요.
저희 집도 당연히 없었고. 만삭의 배에서 나는 열을 안고
종일 더위에 지치다가 새벽 해 뜨기 전의 한 줄기 서늘한 바람을 기대 했었는데
달궈진 땅은 밤에도 식지 않고 새벽 바람은 후텁지근.
울고 말았지요..ㅎ.8월말에 출산 했으니 그해 저의 고통은 남들 보다 좀 더 기억에 남습니다.
제가 위와 같은 글(신문에 칼럼)을 쓸 정도면 엄청 더웠던 해였었지요.
거기에 가뭄까지 겹쳐......
우리 둘째를 94년 5월에 출산하고
그 해 여름 나기가 너무 힘들었었는데
94년도에 기고 하셨던 글이군요.
맞아요 그 해에 진짜 더웠어요.
갈수록 뜨거워지는 지구
어찌하면 좋을까요.
지금도 에어컨 켜고 있으니
저도 지구 달구는데 일조하게 됩니다.ㅜ
갈수록 뜨거워지는 지구인데
지구의 허파 노릇을 하는 아마존 산림은 파괴 속도에 가속도가 붙었다니
인류멸망이 올까 걱정입니다.
아..1994년 여름..정말 살인적인 더위였죠.
그해 선풍기가 동이나 구할 수 없었습니다.
저야 회사에서 에어콘 바람에 의지하며 일했지만
서울 집에 있는 처와 어린 자식 둘은 매일매일 선풍기 한대에 부채로 진땀 흘리고 있어서
할 수 없이 제가 회사 소모품 구입담당에게 압력(?)을 행사해 선풍기 한대 겨우 구입할 수 있었지요.
그해
정말 더웠는데..밤에 잠을 못이룰 정도로...
박민순님이 악몽같던 그때의 기억 살려 주시네요..ㅎㅎ
가뭄과 살인적인 더위.
사람들이 고통 받는 환경이죠.
갈수록 뜨거워지는 지구인데
지구의 허파 노릇을 하는 아마존 산림은 파괴 속도에 가속도가 붙었다니
인류멸망이 올까 걱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