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부는 일 / 장현숙
가을볕에 쪼그려 앉아
들깨를 까부는 엄마
키질의 낙차에서 안과 밖을 나눠주고 있다
한 되가 솟구쳐 공중을 빌릴 때
키의 안쪽으로 들어오는 알맹이들과
재빠르게 밀려나는 쭉정이들의 분류법,
그런 키질이 내게도 있었던가
까부는 일
바람 부는 날 꽃들도 키질을 한다
무거운 색은 꽃잎에 처지게 하고
가벼운 향기는 주위로 날려 버린다
무수한 낙차에서 키의 안쪽으로
나를 끌어당긴 엄마, 이제 알맹이만 남아
속 찬 마음에 기웃거리다보니
어느새 까부는 일이 잦아졌다
그럼에도 분간 없이 까불고 싶은 날,
지나가는 바람을 잡아놓고
한 번쯤은 쭉정이가 되고 싶다가도
모른 척 흩날리고 싶다가도
엄마를 생각하면 멈추게 된다
거느리는 일만으로도 힘든 무게였을
키질 속에서, 늦가을 쪽으로만
기울고 싶은 것이다
ㅡ 계간 《열린시학》 2023년 가을호
--------------------------
* 장현숙 시인
1964년 경기도 김포 출생.
한국방송통신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중앙대 예술대학원 문예창작 전문가 과정 수료
2023년 《한라일보》 신춘문예 등단.
카페 게시글
좋은 시
까부는 일 / 장현숙
군불
추천 0
조회 37
23.10.15 16:31
댓글 0
다음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