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이 많았으면 좋겠지 / 고선경
담배는 끊었으면 좋겠고
카페에서 아이스커피를 사 먹고 싶지 가끔은
친구들에게 꽃이나 향수를 선물하고 싶어
오늘은 재료 소진으로 일찍 마감합니다
팻말을 본 사람들이 아쉬워할 때
나는 그 가게의 주인이 되고 싶지
매일이 소진의 나날인데
나를 찾아오는 발길은 드물지
돈을 많이 벌고 싶지
사랑도 하고 싶은데 잘하고 싶은 거지
나를 구성하는 재료의 빛깔과 질감
누가 좀 만져줬으면 좋겠어
옷장 속에서 남몰래 축축해질 때도
누가 나를 꺼내 좀 털어줬으면
모처럼 단잠에 빠졌다가 영원히 깨어나지 않는
그런 걸 소망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내 주변엔 많다
어제나 오늘로 충분한 게 아니고
내일이 과분해서
그런데 사랑은 해야겠지
얼마나 정직할 수 있을까 돈과 노동과 사랑 앞에서
정직한가 돈과 노동과 사랑은
만져지지 않는 부위가 만져지기를 바라는
그런 걸 소망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바로 나인 것
슈퍼에 가면 불빛 반지라고 적힌 사탕을
오래도록 바라보는 한 아이가 있다
손가락 위에서 달콤하게 빛나는
내일이라는 약속이 필요한 거지 우리는
― 시집 『샤워젤과 소다수』 (문학동네, 202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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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선경 시인
1997년 경기도 안양 출생. 한양여자대학 문예창작과 졸업.
2022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시집 『샤워젤과 소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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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친구는 일주일에 한 번씩 꼬박꼬박 복권을 산다.
다른 한 친구는 “만약 내가 복권에 당첨되잖아?”로 시작되는 이야기를 즐긴다.
‘돈이 많았으면 좋겠지.’ 우리는 자주 상상한다.
우리의 상상을 하나하나 끄집어내 보자면 실상 너무도 소박한 나머지 씁쓸한 기분이 될 때가 많다.
이웃 나라로 여행을 떠난다거나 직장을 그만두고 못다 한 공부를 한다거나….
우리가 꿈꾸는 사치란 기껏 이런 것이다.
돈을 많이 벌고 싶다는 말은 결국 좀 제대로 살고 싶다는 말과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사랑도 하고 싶은데 잘하고 싶다”는 말. “옷장 속에서 남몰래 축축해”지는 ‘나’를 꺼내 말리고 싶다는 말.
실은 돈이 아니라 좀처럼 잡히지 않는 “내일이라는 약속”을 우리는 소망하는 것이다.
- 박소란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