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규 요한 보스코 신부
부활 제7주간 수요일
사도행전 20,28-38 요한 17,11ㄷ-19
‘하나’가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에서 우리 사회의 애잔한 갈라짐을
묵상합니다. 굳이 사회를 언급하지 않더라도 우리 가족과 이웃 안의 갈라짐도 가슴 한편에
쓰라린 상처로 남아 있음을 고백합니다. 상처를 헤집는 또 다른 갈라짐으로 오늘도, 내일도
우리는 힘겹게 살아갈 테지요. 언제 상처가 아물까 늘 기다리고 매달리고 기도하지만
아물기 전에 짓물러 터져 버리는 상처로 오늘 또 울먹거리기도 합니다.
예수님과 하나 되는 길은 십자가의 길입니다. 고되고 쓰린 일상을 십자가에 빗대어 생각해
봅니다. 세상 속에 살면서 세상에 속하지 않는 듯 살아가는 것이 십자가의 삶입니다.
서로 힘들어 마음에 생채기를 내는 삶의 고통 가운데 살아가면서
그 고통이 전부가 아님을 알고 견디는 것이 십자가의 삶입니다.
십자가의 이러한 가르침은 흔히 스스로 깨달았다고 가르치는 대중 설교가의 무책임한 현실
도피적 가르침과는 다릅니다. 지금의 고통을 긍정적인 마음으로 다시 살펴보고 희망을
가지라는 터무니없는 가르침도 아닙니다. 현실의 고통과 처절히 ‘하나’가 되는 것이
십자가이고, 십자가의 고통을 기꺼이 짊어지는 것이 십자가의 가르침입니다.
고통을 긍정으로 바꾸어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고통을 고통 자체로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역설적이게도 힘든 세상에 살면서도 세상에 속하지 않고 예수님을 통하여
아버지의 나라에서 살아가는 일입니다.
사는 것이 고통스러우신가요? 아니면 힘겨우신가요? 고통스럽고 힘들면 그렇다고 크게
외치고 도와 달라 손을 내밀어 보세요. 그 외침을 듣고 그 손을 잡아 줄 수 있는 이가
바로 옆에서 살아가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입니다. 저 혼자 고통을 이겨 내겠다고,
마음의 생채기를 치료하겠다고 허둥대지 말고, 조용히 용기를 내어 손을 내미세요.
부족하지만 함께 맞잡은 손에서 하느님과 예수님, 그리고 우리는 ‘하나’가 됩니다.
대구대교구 박병규 요한 보스코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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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영 예레미야 신부
부활 제7주간 수요일
사도행전 20,28-38 요한 17,11ㄷ-19
제1독서는 바오로 사도가 에페소 교회의 원로들에게 전하는 고별 담화입니다.
예루살렘으로 떠나기 전, 바오로는 그들이 자신과 양 떼를 잘 돌보고 늘 깨어 하느님과 그분
은총의 말씀 안에 굳건히 서 있기를 염원하며 마지막 당부를 남깁니다.
이렇게 말하고 나서 서로 무릎을 꿇고 함께 기도하며 흐느껴 울고 포옹한 다음,
그들은 바오로를 배웅하며 떠나 보냅니다. 예수님 안에서 한 형제가 되어 서로서로 참으로 아끼고
사랑하였음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이 장면은 큰 감동을 줍니다.
한편 복음 말씀은 예수님께서 당신의 수난과 죽음을 앞두고 아버지 하느님께 바치신
‘대사제의 기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과 거룩하신 아버지의 일치된 관계처럼,
당신을 따르는 제자들이 모두 하나가 되기를 간절히 기도하십니다.
아버지께로 떠나시기 전에 예수님께서 바치시는 이 기도는 기쁨에 차 있습니다.
이 기쁨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로 실현되는 하느님의 구원, 영원한 생명이 주는
완전한 기쁨입니다. 수난과 십자가, 죽음의 마지막 여정 앞에서 예수님께서는 아버지와 함께
이 기쁨을 누리며, 성령 안에서 제자들도 이를 충만히 누리기를 기도하십니다.
그리고 세상에 살지만 이제는 더 이상 세상에 속하지 않는 당신 제자들을 악에서 지켜 주십사
아버지께 간구하십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 아버지와 일치하며 바치신 이 기도에는
제자들을 향한 주님의 사랑과 축복이 가득합니다.
언제 어디서나 우리를 위하시는 하느님의 시선과 예수님의 마음을 떠올리면, 마땅히 주님께
감사와 찬미를 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좋으신 하느님 아버지께, 또 우리를 참으로 아끼고
사랑하시는 예수님께 우리는 어떻게 기도하고 있나요?
우리를 향한 주님의 보살핌에 응답하는 오늘이 되기를 바랍니다.
대구대교구 이민영 예레미야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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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부활 제7주간 수요일
사도행전 20,28-38 요한 17,11ㄷ-19
시련이 와도
예수님! 오늘도 제가 가는 길에서
험한 산이 옮겨지기를 기도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저에게 그 험한 고갯길을
올라갈 수 있도록 힘을 주소서.
예수님! 오늘도 제가 가는 길에서
부딪치는 돌이 저절로 굴러가기 원치않아요.
그 넘어지게 하는 돌을 오히려
발판으로 만들어 가게 하소서.
예수님! 오늘도 제가 가는 길에서
넓고 평편한 그런 길들을 바라지 않습니다.
다만 좁고 좁은 험한 길이라도
주와 함께 가도록 믿음 주소서.
최 민순 신부님의 “기도”라는 시입니다.
오늘 예수님의 고별 기도를 묵상하면서 자연스레 이 기도가 떠올라 옮겨봤습니다.
지난 주간 우리는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하신 고별사를 들었는데 이번 주는 제자들과 이별을 하면서
제자들을 위해 하신 기도를 듣습니다.
이 기도 중에서 주님은 "제가 세상에 속하지 않은 것처럼 이들도 세상에 속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들을 세상에서 데려가시라고 비는 것이 아니라 이들을 악에서 지켜 주십사고 빕니다."
고 기도하십니다.
고기를 잡아주는 것보다는 고기 잡는 법을 알려주는 것이 더 좋은 교육이듯이
여전히 허약한 채 장애물이 없기를 빌어주는 것보다 어떤 장애물도 넘을 수 있는 힘을
빌어주는 것이 더 좋은 기도이겠지요.
저는 종종 갈등을 일으킬 때가 있습니다. 말은 이렇게 하지만 환자들을 방문하게 되면,
특히 고통이 너무 심한 환자들을 방문하게 되면 그 고통을 이겨내게 해달라고 기도하기 보다는
그에게서 고통을 없애달라고 기도하게 됩니다.
저도 이러하니 부모의 자식에 대한 기도는 어떠하겠습니까?
자식에게 시련이 닥치면 생각으로는 '주님 시련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시련을 이겨낼 힘을
주소서'하고 기도할 것 같지만 마음은 아무 시련도 없기를 바라고 그런 기도가 나옵니다.
너무 탓할 수는 없고, 다만 주님처럼 기도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작은 형제회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오요안 신부의 가톨릭 참조
가톨릭사랑방 catholics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