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창현 모세 신부
티 없이 깨끗하신 성모 성심 기념일
이사야 61,9-11 루카 2,41-51
성모님은 모든 그리스도인의 스승입니다.
성모님은 모든 그리스도인의 스승입니다.
곧 예수님을 충실히 따라야 하는 우리들의 스승입니다.
그분은 가장 철저하게 주님의 길을 걸어가신 분입니다.
오늘은 티 없이 깨끗하신 성모님의 성심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성무일도 독서의 기도 제2독서의 내용, 성 라우렌시오 유스티니아노 주교의 강론을 언급해 봅니다.
성모님의 거룩한 마음은 하느님이신 분이 인간으로 오시는 천상의 신비를 받아들였기에
성령으로 풍요해 진 것입니다.
때문에 그분은 티 없이 깨끗하신 마음을 지닐 수 있도록 보호를 받았습니다.
이것은 성모님을 가장 낮은데서 가장 높은 데로 들어 높이고
빛나는 모습에서 더욱 빛나는 모습으로 바꾸어 주는 하느님의 은총이었습니다.
성모님의 마음은 성령이 내재하시어 알고 듣고 본 것들을 모두 마음속에 간직함으로써
하느님 말씀에 순종하였기에 성모님의 마음은 참으로 복되었습니다.
성모님은 당신 자신의 뜻에 따라 멋대로 행동하지 않고
오직 내적으로 믿음을 위한 지혜가 지시하는 대로 외적으로도 육신의 봉사를 다하였습니다.
하느님의 지혜는 몸소 거처하실 교회의 집을 지으시면서 계명을 지키고 마음을 깨끗이 하며
겸손의 규범과 영신적 봉헌의 모범을 지극히 거룩한 성모님 안에서 발견하도록 섭리하셨습니다.
세상의 모든 것은 그 뜻하는 바가 다 있습니다.
내가 즉시 아는 경우도 있지만 반대로 내가 알 수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알 수 없다하더라도 하느님의 말씀과 그분의 뜻을 곰곰이 생각하고 받아들이고
간직하는 마음은 바로 성모님의 마음입니다.
오늘은 그러한 성모님의 마음을 닮아보는 하루이고 싶습니다.
대구대교구 한창현 모세 신부
***********
한재호 루카 신부
티 없이 깨끗하신 성모 성심 기념일
루카 2,41-51
사제품을 받고 나니 제 어머니의 귀가 세 배는 커지신 것 같고, 아버지의 시력도 두 배는 좋아지신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제가 본당에서 어떤 강론을 하였으며 요즘에는 무슨 일로 바쁜지,
실수를 저지르지는 않았는지 속속들이 알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또 아들 신부에게 누가 될까 봐 행동과 말도 늘 조심하십니다. 한번은 수도자나 성직자들이
주로 바치는 성무일도를 어떻게 바치는지를 물어보기도 하셨습니다. 제가 부르심을 받아 사제가
된 것이지만 부모님도 덩달아 그 삶의 일부를 떠안고 계시는 듯합니다.
사제의 부모가 살아가야 하는 이러한 숙명과도 같은 삶을 생각해 보면, 왜 교회가 예수 성심 대축일
다음날 성모님을 기억하는지 이해할 수 있습니다. 성모님 역시 예수님의 구원 사업에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늘 마음가짐을 새롭게 하시고 예수님의 길에 함께하셨습니다.
오늘 복음은 바로 이런 성모님의 생애를 상징적으로 잘 드러냅니다.
성모님께서 예수님을 잃어버리십니다. 성모님께서 세상 사람들의 길을 따라 걸으시는 동안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현존 안에 머물러 계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아들을 잃었다고 생각하는 순간, 성모님께서는 예수님을 찾아나서십니다.
예수님과 함께 있을 때만이 삶의 의미가 있다고 여기신 것입니다.
그리하여 성모님께서는 예수님께서 머무르셔야 할 자리에 함께 머무시려고 예루살렘으로 가십니다.
마치 사제의 부모가 사제가 머물러야 할 하느님의 현존에 함께하듯이 말입니다.
성모님께서 그렇게 자식을 사랑하시어 자식을 바라보며 사셨기에 예수님의 길을 함께 걷게 되셨습니다.
그리하여 그분께서는 그 누구보다도 예수님을 닮은 분이 되셨습니다.
제주교구 한재호 루카 신부
***********
이정주 아우구스티노 신부
티 없이 깨끗하신 성모 성심 기념일
루카 2,41-51
가톨릭 신앙에서 성모님은 모든 신심의 중심에 서 계십니다.
하지만 천주교 신자라면 한번쯤은 성모님을 무시하려는 개신교 신자들을 만나
당혹감을 느껴 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왜 우리가 성모님을 공경하는지를 그들에게 납득시키기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의외로 답은 간단합니다.
복음서를 통틀어서 예수님의 인격을 가장 가깝게 느끼고 사신 분이 누구였는지 물으면 됩니다.
성모님은 인간이 하느님의 신비 앞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가장 분명하게 보여
주신 분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성모님은 잃은 아들 예수를 예루살렘 성전에서 찾고,
다소 퉁명스러운 예수님의 대답을 듣습니다. 이럴 때 보통의 우리라면 적지 않게 당혹했을 겁니다.
하지만 성모님은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일을 겪으면서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셨습니다.
예측하지 못했거나, 받아들일 수 없는 상황에 부딪히면 당혹감을 견디지 못하는
우리와는 달랐습니다. 성모님은 하느님의 신비를 깨달으려면 우리가 분주하게 앞만 보고 달리는
것이 아니라, 가끔은 멈추어 돌아보는 묵상과 관상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가장 잘 보여 주신 분입니다.
복음서는 성모님에 대해 아주 짧은 이야기만 남겨 두었지만,
사실 성모님의 모습 속에는 하느님의 섭리를 들여다볼 수 있는 티 없이 맑은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드러나지 않으면서도 존재감을 잃지 않는 모습, 하느님의 뜻을 찾아 평생을 기다리며 사신 분.
그런 분을 공경한다는 것은 우리가 따라야 할 가장 큰 신앙의 모범이심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광주대교구 이정주 아우구스티노 신부
오요안 신부의 가톨릭 참조
가톨릭사랑방 catholics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