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연중 제13주간 화요일
아모스 3,1-8; 4,11-12 마태오 8,23-27
“왜 겁을 내느냐? 이 믿음이 약한 자들아!”(마태오 8,26).
<앞 장면>에서 “호수 건너편으로 가라”고 명령하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만을 보내신 것이 아니라,
당신께서도 그 배에 오르시어 동행하십니다.
사실, 배는 항구에 메여 있을 때 안전하고 평화롭습니다. 그러나 배는 그렇게 항구에 가만히
정박해 있으라고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항해하라고 만들어졌습니다.
항해하면 당연히 풍랑을 만나고 표류하기도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면서도 항해하라고 배는 만들어졌습니다.
우리는 “교회”라는 배, “가정”이라는 배를 타고 항해하고 있고,
예수님께서는 우리와 함께 동행 하십니다. 그런데 배 안에 그분이 함께 계시는데도,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곤 합니다. 세시풍랑에 배가 흔들릴 때도 있고,
방향을 잃을 때도 있습니다. 몰리는 바람에 휘청거릴 때도 있고, 기울어 져 위험할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도 그분은 우리와 함께 계시면서도 주무시고 계십니다. 그분은 바람과 호수를 복종시킬 수
있으면서도 그 풍랑 속에서도 잠들어 계십니다. 그러니 그분은 우리가 고통 중에 있을 때도
곁에 함께 계십니다. 곧 우리가 눈을 떠야할 때가 바로 이때 인 것입니다.
사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함께 계심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신뢰하지도 의탁하지
못한 까닭에 그만 겁에 질려버렸습니다.
베드로가 물 위를 걷다가 의혹에 빠지는 순간 겁에 질려 물에 빠졌듯이 말입니다.
사실, 그분은 암과 치매 온갖 질병을 고치실 수 있으면서도 그 고통과 수난을 몸소 지시는 분이시고,
부서진 뼈와 마음의 상처를 새롭게 하고 죽은 이마저 살리면서도
못에 박히고 창에 찔리어 죽으시는 분이십니다.
하늘의 유황불로 도시를 휩쓸어버리고 하늘 군대로 평화롭게 하실 수 있으면서도 무능하게
십자가에 매달리시는 분이시고, 모든 것을 하실 수 있는 전능한 힘을 지니고도
결코 우리의 응답이 없이는 이루시지 않으시는 무능하신 분이십니다.
그러니, 이 모든 것을 통하여 우리에게 바라시는 것은 순수한 의탁과 신뢰입니다.
그래서 당신께서는 “주님의 기도”에서도 유혹이나 악을 제거해 달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유혹에 빠지지 말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라고, 아버지께 의탁하고 신뢰를 두도록
가르치십니다. 곧 그 속에서 함께 하시는 그분께 의탁하고 신뢰를 두는 일입니다.
실상, 지금도 당신께서는 배에 오르시어 우리와 함께 풍랑에 휩싸이시고 흔들리면서 항해를
동행하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막상, 마치 물고기들이 맘껏 물속을 헤험쳐 다니면서도
물 밖에 나와 숨을 깔딱거리면서야 비로소 자신이 헤험칠 수 있었음은 물이 있는 까닭이었음을
알게 되듯이, 또 새들이 맘껏 하늘을 날다가도 새장에 갗치고 나서야 하늘이 있어서 날 수
있었음을 알게 되듯이, 그렇게 우리는 풍랑을 맞고 가라앉으면서야
비로소 내가 키잡이가 아님을 깨닫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주님께서는 물결이 들이치고 배가 흔들려도 분명,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사실, 잠들어 있는 이는 그분이 아니라나 자신일 뿐, 주무셔도 주님이시오 깨어 계셔도
주님이신 그분을 보지 못하고 있는 이는 바로 나 자신입니다.
그러니 깨어나야 할 이는그분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입니다. 그분이 함께 계시건만 두려워하고
있는 이는 바로 나 자신일 분입니다.
이처럼, 우리는 배가 가라앉으면서야 풍랑 속에서 잠들어 계셔도 바람과 호수를 복종시키시는
그분이 우리의 주님이심을 봅니다. 그렇습니다. 그분이 우리의 키잡이 이십니다.
그러니, 이제 결코 겁낼 일이 없습니다. 두려워 할 일이 없습니다.
오늘도 그분께서는 배가 하늘 항구에 닿기까지 우리를 이끄시고 동반하십니다.
단지 동반하실 뿐만 아니라 배를 인도하십니다.
그렇습니다. 그분은 주무셔도, 깨어 계셔도 우리의 키잡이시며 하느님이십니다.
그분은 죽으면서도 인류를 구원하신 하느님이십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이를 믿으라고
하십니다. 당신이 구원자이심을 믿으라 하십니다.
“왜 겁을 내느냐? 이 믿음이 약한 자들아!”(마태 8,26). 아멘.
<오늘 말씀에서 샘 솟은 기도>
주님!
당신은 풍랑 속에서 잠들어 계시지만,
바람과 호수를 복종시키시는 분
고통과 수난을 몸소 겪으시지만,
온갖 질병을 고치시는 분
못에 박히고 창에 찔려 죽임당하지만,
부서진 뼈와 마음의 상처를 새롭게 하고
죽은 이마저 살리시는 분
잠들어 계서도 깨어 계서도
저의 키잡이이신 당신이
진정 저의 주님이십니다. 아멘.
양주 올리베따노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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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동림 레오 신부
연중 제13주간 화요일
아모스 3,1-8; 4,11-12 마태오 8,23-27
바람에 흔들리는 것이 어디 꽃뿐이더냐!
언젠가 우리나라가 정치적으로 혼란스러울 때,
서울의 한 도심을 지나다가 이런 글귀를 본적이 있습니다.
‘바람에 흔들리는 것이 어디 꽃뿐이더냐! 꽃은 바람에 흔들리면서 피어난다.’
제게 그 글귀는 당시 시대 상황과 어우러져 인상 깊게 다가왔습니다.
시간이 흐른 지금도 현수막 내용처럼 바람에 흔들리는 것은 꽃뿐이 아닌 듯합니다.
신앙인들도 고통 앞에서, 죽음 앞에서, 유혹 앞에서 흔들릴 수 있습니다.
삶이 흔들리고, 하느님에 대한 사랑과 믿음도 흔들릴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예상치 못한 큰 풍랑이 일어 배가 파도에 뒤덮이는 상황에서
죽음에 대한 두려움으로 마음이 흔들리는 제자들을 보게 됩니다.
겁에 질린 제자들은 풍랑 속에서도 곤히 주무시는 예수님을 깨우며
“주님, 구해 주십시오. 저희가 죽게 되었습니다.” 하고 간청합니다.
특별히 오늘 복음을 묵상하면서 다가오는 사실은
우리가 주님과 함께 있어도 폭풍이 닥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갑자기 예고 없이 몰아칠 수 있다는 겁니다. 나아가 우리의 한계 상황,
위기 상황에서도 주님은 주무시는 것처럼 느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내 인생에 무서운 폭풍이 휘몰아쳐 하느님께 매달렸지만
아무런 응답도 받지 못할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우선적으로 필요한 것은 예수님을 신뢰하는 믿음입니다.
믿음이 부족했기에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제자들은 예수님께
“왜 겁을 내느냐? 이 믿음이 약한 자들아!”라는 말씀을 듣습니다.
특히 예수님께서 바람과 호수를 잠재우기 전에 먼저 믿음이 없는 제자들부터
꾸짖으셨다는 사실을 주목해야겠습니다.
예수님의 관심은 바람이나 호수나 풍랑이 아니었습니다. 제자들의 믿음이었습니다.
제자들의 마음과 그들 삶의 중심에 믿음이 없음을 꾸짖으셨던 것입니다.
배와 물의 관계를 생각해 봅니다. 배는 물 위에 떠 있습니다.
그런데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물이 들어오면 배는 가라앉게 됩니다.
신앙인의 마음에도 믿음이 아닌 의심이 그 중심을 차지하거나
세상의 그릇된 풍조가 물밀 듯이 밀려들면 위험한 상황에 빠지고 맙니다.
반면 아무리 험한 세상 한가운데서도 믿음이 있고, 그 믿음의 정도가 깊을수록
세상 풍파를 잘 견뎌내고 덜 흔들릴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것은 바다의 풍랑이나 세상의 폭풍과 같은
외적 환경이 아니라 영적으로 깊게 뿌리내리지 못해 쉬이 흔들리는 믿음입니다.
제주교구 송동림 레오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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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영 예레미야 신부
연중 제13주간 화요일
아모스 3,1-8; 4,11-12 마태오 8,23-27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호수에서 풍랑을 가라앉히신 이야기입니다. 예수님께서 배에 오르시고
제자들도 그분을 따라 함께 배에 올랐는데, 호수에 큰 풍랑이 일어 배가 파도에 뒤덮일
지경에 이릅니다. 그야말로 생사의 갈림길에 놓인 제자들의 혼란과 공포를 쉽게 떠올릴 수
있습니다. 배가 뒤집힐지도 모를 참으로 급박한 위기 상황에서 놀랍게도
예수님께서는 태연히 주무시고 계십니다.
이에 제자들이 예수님께 다가가 그분을 흔들어 깨우며 말합니다.
“주님, 구해 주십시오. 저희가 죽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오히려 제자들에게
“왜 겁을 내느냐? 이 믿음이 약한 자들아!” 하시며 그들의 ‘부족한 믿음’을 지적하십니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시어 바람과 호수를 꾸짖으시니, 풍랑이 멎고 호수가 잠잠해집니다.
제자들이 몹시 놀라워하며 말합니다. “이 분이 어떤 분이시기에 바람과 호수까지 복종하는가?”
제자들은 아직 예수님께서 누구이신지 완전히 깨닫지 못하였지만,
이 사건을 통해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정체를 보여 주십니다.
전통적으로 성경에서 배는 교회를, 바다는 세상을 상징하는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래서 교회는 세상을 항해하는 배로 자주 묘사됩니다. 또한 바다의 거친 바람과 파도는
세상을 항해하는 교회가 겪는 갖은 어려움과 곤경을 나타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겪는
그 어떤 어려움도 당신의 권능과 말씀만으로 다스리실 수 있는 주님이십니다.
따라서 우리가 지녀야 할 것은, 주님이시며 우리의 구원자이시고 하느님의 아드님이신
그분에 대한 ‘믿음’입니다. ‘부족한 믿음’이 아닌 ‘온전한 믿음’으로, 우리와 함께 계시는
예수님께 우리의 모든 어려움을 맡겨 드리며 도우심을 간절히 청한다면,
그분께서는 기꺼이 도와주실 것입니다.
“일어나셔서 바람과 호수를 꾸짖으셨다. 그러자 아주 고요해졌다.”
대구대교구 이민영 예레미야 신부
- '오요안 신부의 가톨릭'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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