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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닙니다. 그날 내가 실수로..”
“야! 희선아, 우리 뭐 먹을까?.....국현씨가 추천좀 해주세요”
국현의 말을 다급하게 가로 막으며 혜진이 말을 꺼낸다.
“어?... 응!.... 그래”
둘 사이에 묘한 기운을 눈치 챈듯 두사람을 번갈아 본다. 잠시 생각하던 희선이 좋은
생각이 났는지 손뼉을 치며 말한다.
“그러지 말고, 국현씨 우리랑 오늘 같이 놀아요, 설마 여기까지 찾아온 아름다운 여자
두명을 그냥 보내려는 건 아니죠!”
희선은 국현에게 팔짱을 끼며 애교 있는 목소리로 말을 한다.
“왜 그래, 바쁘실 텐데.. 오늘은 저번 일 사과드리려고 찾아 왔잖아...”
혜진은 희선의 제안이 싫지는 않았으나 왠지 국현에게 부담을 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서 말을 꺼낸다.
그날의 사건이후 혜진은 국현의 당당한 모습과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결코 비굴하거나
나약하지 않은 당당한 모습에서 처음에는 그저 연민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계속
머릿속에서 맴도는 국현의 잔상이 점점 남자로 느끼고 있는 자신을 보게 되었다.
“잠시만!”
희선은 주저하는 국현을 보고, 밖으로 나간다. 얼마후 지배인과 같이 들어오면서
“오케이, 지배인아저씨가 국현씨 오늘 외출 허락 했으니까, 이제는 나가요!”
“그래, 오늘은 그만 들어가고 두 숙녀분들 잘 모셔, 오늘 네가 할 일은 그거야!”
지배인이 국현을 보며 말을 하곤 희선과 가벼운 웃음을 주고 받는다.
“자자 이러지들 말고 나가자, 시간이 아깝잖아!”
희선이 혜진과 국현을 재촉하며 밖으로 끌고 나간다.
밖으로 나온 희선이 어디엔가 전화를 하더니, 혜진과 국현을 보며 미안하다는 듯
“미안해서 어쩌지, 엄마가 급한 일이 있다고 집에 빨리 들어오라고 하시네, 오늘은
나는 빠져야겠는데.... 국현씨가 혜진이 맛있는 거 사주고 재미있게 해주세요!
혜진아! 저녁에 전화 할 께”
혜진에게 윙크를 하고는 자신의 비틀차를 몰고 급하게 사라진다.
“야, 희선아 희선아...희..선.....”
혜진은 차를 몰고 급하게 사라지는 희선에게 손짓을 하며 큰소리로 불러본다.
국현과 혜진은 서로를 보지 못하고 어색한 시간이 흐른다.
“저기...식사는 하셨나요?”
“아니요, 죄송해요, 저번에도 저희들 때문에 곤란하셨는데. 그럼 저는 이만 들어
가볼께요”
혜진이 국현에게 인사를 하고 자리를 뜨려고 하자, 국현이 잠시 머뭇거리다가
용기내서 말을 한다.
“저기, 식사 안하셨으면 식사라도 같이 하시겠어요?, 제가 대접할수 있는게..
고작 시장통에서 파는 국밥인데...”
“아니예요, 저..”
“네.. 국밥이..좀..!”
“아니예요, 저 국밥 잘 먹어요,..그럼 국밥 사주세요!”
『어떻게 이런 용기가 내게서 나온 걸까 』
혜진은 자신의 행동에 자신도 모르게 놀라고 있었다.
“네, 그럼 가시죠. 조금만 걸으시면 있어요”
웃음을 띤 국현은 앞장을 서며 걸어가고, 뒤따르는 혜진의 모습이 행복해 보인다.
<허름한 재래시장 국밥집>
혜진과 국현은 국밥을 앞에 두고 말없이 국밥만 먹는다.
“애인인가보네, 색시가 참하게 생겼어!”
짓궂은 국밥집 할머니가 혜진을 보며 말을 한다.
“아니예요, 그냥 아는 사람이에요”
국현이 당황하여 할머니께 손을 가로저으며 말을 한다.
“이놈아, 니 이마빡에 「애인입니다.」 라고 써 있는데 능청은.., 안그래 색시!
이놈을 좀 내가 아는데, 진국이야, 아가씨는 횡재한 거야 잘 사귀어서 결혼해!”
“아, 그게......”
혜진은 할머니의 얘기에 얼굴이 붉게 달아올라 어찌 할 바를 모른다. 그런데 왠지
할머니의 말이 싫지만은 않았다.
“할머니, 아니예요, 왜 자꾸 아니라니깐.....”
“저는 괜찮아요”
“네 죄송해요, 다른데로 나가 실래요?”
“아니요, 여기 국밥이 맛있는데요!”
혜진은 해맑게 웃으며 국밥을 먹는다.
국현은 혜진의 국밥 먹는 모습을 보며 묘한 기분이 들었다. 생머리에 가녀린 몸매,
붉게 물든 얼굴 빛, 다소곳한 모습, 국밥을 처음 먹어 보는 듯 하지만 국현을 배려
하며 맛있게 먹어 주는 혜진의 모습에서 어느 누구에게서도 못 느껴본 이상한 감정
이 밀려왔다. 왠지 가만히 있으려 해도 손이 떨리고, 빨라지고 있는 자신의 심장소리
가 점점 커지면서 앞에 있는 혜진에게 자신의 속마음이 들킬까봐, 국현은 혜진을 처다
보지도 못한다. 그저 앞에 놓인 국밥을 말없이 계속 입속으로 가져갔다.
“컥,.컥..”
“괜찮으세요,,여기..”
혜진이 사리에 걸려 기침하는 국현에게 자신의 손수건을 내민다.
“아닙니다..”
“아니예요, 어서 닦으세요”
혜진이 건내준 손수건을 집어 들고 입을 닦으려다가 머뭇거리자, 혜진이 국현의 손에
들려있는 손수건을 빼앗아 국현의 입을 닦아 준다.
‘아..괜찮습니다..죄송해서..”
“괜찮으세요?”
“네”
둘의 눈이 마주친다. 짧은 시간이지만 어느 때 보다도 긴 듯 느껴졌고, 한순간 한순간이
너무나 소중하다는 생각이 이 짧은 순간에 국현과 혜진의 머리를 스친다.
국현과 혜진은 밥을 먹고, 시장 안을 서성거렸다. 아직은 날씨가 제법 추울 때지만,
시장 안은 사람의 체온과 열기로 그나마 견딜만 했다. 혜진은 시장안의 풍경이 신기한듯
상점 이곳 저것을 살펴본다.
“커피한잔 하실례요?”
“아...네!”
국현은 시장 골목안 자판기 있는 곳으로 걸어간다. 가는 동안 몇 대의 자판기가 있었는데,
무시하고 시장 골목 끝에 있는 자판기에서 커피 두잔을 뽑아 쑥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혜진
에게 커피를 내민다.
“죄송해요,, 좋은 곳으로 가야 하는데...”
“아니에요, 밖에서는 이렇게 뽑아 먹는 커피가 제 맛 이예요!”
“네, 이곳에서는 여기 자판기 맛이 제일 좋아요, 제가 이곳에서 알바를 할 때 시장 안에
있는 자판기들 커피는 다 마셔봤는데 여기께 커피 맛이 제일 좋아요!”
국현은 웃음을 지으며 아까보다는 혜진이 가깝게 느껴진다. 혜진은 국현이 건네준 커피를
마시며 맛있다는 표정을 지어 보인다. 그런 모습이 아까 국밥집에서의 혜진과 자꾸 겹쳐
보이면서 왠지 그녀의 이런 행동이 사랑스럽게 다가온다. 가난한 고학생인 자신의 형편
을 이해하고 국밥과 자판기커피를 맛있게 먹어준 배려 깊은 그녀가 엉켜있던 국현의 마음
에 단비와도 같이 다가왔고, 자신도 처음 느끼는 이런 감정이 행여 사랑이 아닐까? 잠시
생각해본다. 그러나 이런 생각을 갖는 자신이 너무나 큰 죄를 짓는 다는 느낌이 든다.
엷은 미소가 헛 웃음이 되어 입 밖으로 세어 나온다.
“허....,허....”
“왜요? 제 얼굴에 뭐가 묻었나요?”
“아,,아닙니다. 오늘 같이 기분 좋게 밥 먹은 적이 없어서요”
“제가 그럼 밥값은 한샘이네요..호호”
“하하하”
“근데 어떻게 알바도 하시면서 그렇게 공부를 잘하세요, 장학금을 받는다고 얘기
들었거든요, 저는..어.,휴..FM장학금만 받아 봐서,,,”
“FM장학금이요?”
“호호, father, mother 이 주시는 학비예요..호호.. 너무...썰렁했죠?”
“하하, 아닙니다. 하하..FM장학금..하하”
혜진의 말에 크게 웃는 국현, 그런 국현을 보며 혜진도 따라 웃는다.
한참을 즐겁게 웃던 국현이 혜진을 보며 말을 꺼낸다.
“근데, 저는 FM장학금을 받는 혜진씨가 부럽습니다.”
“네?....”
“저는 부모님이 두분다 안계십니다. 아니 부모님뿐 아니라 친척, 형제도 없습니다.
어려서부터 고아원에서 자라서 그곳 아이들이 형제이고 가족이었습니다. 매번 전교
1등을 했을 때도 칭찬해줄 부모님이 없었어요. 학교에서도 저보다는 항상 2등을 하던
재단이사장 아들이 저 때문에 1등을 못했다고 제가 1등하는 것을 그리 탐탁지 않게
생각했습니다. 그때마다 저는 더욱더 공부에 매달렸습니다. 그때는 그들에게 맞서는
유일한 방법이 공부밖에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성적표를 받는 날은 학교 뒷산에
올라 세상에 대고 외쳤습니다.
『야, 세상아! 나는 지금 혼자지만 외롭지 않다. 너희들이 아무리 나를 괴롭히고 짓밟
아도 절대고 굽히지 않는다. 자 봐라! 오늘도 내가 또 이겼다!』
라고 말하곤 했습니다.”
국현의 얘기에 말을 잃어버린 혜진이 그저 바라만 본다. 그러다 국현의 눈가가 충혈
되고, 건들기만 해도 왈콱 눈물을 쏟아낼 듯한 모습에 가만히 국현의 손을 잡는다.
그런 혜진의 손을 꽉잡는 국현, 말없이 그들은 오랜시간을 시간이 멈춘듯 그렇게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