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일 바람이었다
까치밥 하나 남기지 않은 감나무
잠시 앉았다 일어서는
바람의 무게만으로도
흔들리고 휘어지던 빈 가지들이 먼저
우드득거리며
허기진 몸을 곧추세우는 시간
간드락 삼거리 골목길
집집마다 촉수 낮은 온기를
나누어 줄 전선들이
나지막이 웅웅거렸다
바람도
이 저녁엔
귀가를 서두르고 싶었던 것일까
아직 가로등이 켜지지 않은 골목길들이
조금씩 밝아지며
풍경들이 따스해지기 시작했다
순간
아주 가벼운 것들이
서두르지 않고
지상으로 가만가만 내려앉았다
허기에 흔들리던 감나무
빈 가지 위에도
어린 싹들이 하나씩
돋아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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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대설주의보/ 이종형
시너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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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1.23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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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대설주의보/ 이종형
사흘 눈이 내리고
나흘 갇혀 지냈다.
발을 버리고 바퀴에 의지한 지 오래라
굵은 쇠사슬 없이는 꼼짝하지 못했다.
해가 바뀌었다지만
마스크 낀 얼굴들을 분간할 수 없는
바깥세계는 여전히 그대로일 것이므로
궁금한 것이 하나도 없어서
마음이 놓였다.
폭설을 핑계 삼아
모든 약속은 뒤로 미루기만 하면
충분했으므로
그것도 안심이 되었다.
저 눈길을 헤치고
점집에 다녀온다던 애인은
어떤 점괘를 받고 돌아왔을까
궁금한 것은 그것 하나뿐이었다.
사흘 눈이 내리고
나흘을 기쁘게 갇혀 있는 동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