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 기도)
주님,
수요일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오늘 밤 12시면 성장로의 격리가 끝납니다.
집에서는 식사 외에는 따로 격리랄 것도 없이 지냈지만
저와 아들이 무사히 지나가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지체들로부터 받은 사랑도 넘칩니다.
어려움을 겪어야 낮아진 마음이 되는 것을 이번에도 경험하며
저희를 다루시는 주님의 손길에 감사를 드립니다.
말씀 앞에 나아갑니다.
십자가 보혈을 의지합니다.
저의 부정성을 덮어 주옵소서.
밤새 오염된 영혼을 정결케 하여 주옵소서.
성령님 의지하여 나아가오니
오늘도 주님 주신 기쁨으로 충만케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본문)
1. 죽은 파리들이 향기름을 악취가 나게 만드는 것 같이 적은 우매가 지혜와 존귀를 난처하게 만드느니라
2. 지혜자의 마음은 오른쪽에 있고 우매자의 마음은 왼쪽에 있느니라
3. 우매한 자는 길을 갈 때에도 지혜가 부족하여 각 사람에게 자기가 우매함을 말하느니라
4. 주권자가 네게 분을 일으키거든 너는 네 자리를 떠나지 말라 공손함이 큰 허물을 용서 받게 하느니라
5. 내가 해 아래에서 한 가지 재난을 보았노니 곧 주권자에게서 나오는 허물이라
6. 우매한 자가 크게 높은 지위들을 얻고 부자들이 낮은 지위에 앉는도다
7. 또 내가 보았노니 종들은 말을 타고 고관들은 종들처럼 땅에 걸어 다니는도다
8. 함정을 파는 자는 거기에 빠질 것이요 담을 허는 자는 뱀에게 물리리라
9. 돌들을 떠내는 자는 그로 말미암아 상할 것이요 나무들을 쪼개는 자는 그로 말미암아 위험을 당하리라
10. 철 연장이 무디어졌는데도 날을 갈지 아니하면 힘이 더 드느니라 오직 지혜는 성공하기에 유익하니라
11. 주술을 베풀기 전에 뱀에게 물렸으면 술객은 소용이 없느니라
(본문 주해)
1절 : “파리 한 마리가 빠져 죽으면 향수 한 병을 버리게 된다. 그렇듯 하찮은 어리석은 행동 때문에 지혜로 얻은 영광을 물거품으로 돌려버리는 수가 있다.”(공동번역)
지혜에, 작은 것이라도 어리석은 것들을 섞으면 지혜가 지혜 되지 못함을 말씀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은 하나님께 향기로운 제물이 되셨다. 우리가 하나님께 받아지는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받아지는 것이다. 그리스도 밖에서는 악취일 뿐이다.
그러므로 복음에 다른 것을 섞으면 안 된다. 다른 복음, 다른 예수, 다른 영이 섞이면 악취가 될 뿐이다.
2~3절 : 새 번역은 오른 편을 옳은 일로, 왼 편을 그릇된 일로 번역을 한다. 공동번역은 지혜로운 생각을 따르는 것과 어리석은 생각을 따르는 것으로 번역한다.
이 두 번역을 보면 오른쪽이나 왼쪽은 위치의 개념이 아니라 ‘옳은 편과 그른 편’의 의미이다.그러므로 지혜로운 자는 옳은 길로 가는 것이며, 어리석은 자는 그른 길로 가는 것이다.
그런데 어리석은 자는 어리석은 길을 가면서도 자기가 옳다고 하는 것이다.
따라서 사람의 생각으로 만들어낸 어떤 진영도 옳은 편이 아니라, 오직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것만이 옳은 편이다.
4~7절 : 주권자에 대한 말씀이다.
4절은 신하가 한 잘못으로 왕이 분노할 때에 잘못했다고 용서를 구하여야 하는데 자기가 잘했다고 자리를 박차고 떠나면 죽임을 당한다는 사실을 말한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주권자의 잘못을 본다는 것이다. 이것을 재난이라고 표현한다.
왕의 어리석음으로 말미암아 세상이 공의롭지 못하다는 것이다.
“어리석은 자를 높이 올려 앉히고 유력한 자격자를 내려 앉히는 일이다.
내가 보니 종은 말을 타고 가는데 상전은 종처럼 터벅터벅 걸어가는 일도 있더라.”(6~7절, 새번역)
세상의 참된 주권자는 예수님이시다.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이 사람이 되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다 이루었다’고 하시는 예수님이다. 그러므로 그 십자가 앞에서 자신의 주인 됨을 추구한 것이 죄인 줄 알고 회개하고, 참된 주권자이신 예수님을 주님으로 믿어야 하는 것이다.
8~11절 : ‘함정을 판다, 담을 헌다, 돌을 떠낸다, 나무들을 쪼갠다’는 것은 다 같은 것을 가리키는데, 한마디로 말하면 어리석고, 우매한 자가 성급하게 행동하고 말한다는 것을 지적한다.(8~9절)
철 연장이 무디어졌는데도 날을 갈지 않는 것도 우매한 행동이다. 무딘 날로서는 힘만 들지 능률이 오르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지혜는 성공하기에 유익하다고 한다.(10절)
“뱀을 홀리지 못하고 물린다면 땅꾼이라도 별 수가 없다.”(11절, 공동번역)
맹독의 코브라를 피리를 불어서 춤추게 하면서 장사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그 뱀을 다루기 전에 물려버렸다면 주술도 소용이 없는 것이다. 이 또한 우매한 자의 행동인 것이다.
(나의 묵상)
오늘 본문에는 우매한 자들의 우매한 행동이 열거된다.
우매자들은 향수를 다 망쳐버림으로 결국 버려지게 한 죽은 파리와 같은 존재들이다.
그들은 다 자기 유익을 따라 행동함으로 자기가 가는 길을 옳다고 주장하는 자들이다.
또 신하가 되어 자신의 잘못에 화를 내는 왕을 참지 못하여 자리를 뜨는 자처럼 어리석은 자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 해 아래 세상의 주권자인 왕의 처사가 잘못되어 세상에 공의가 바로 서지 못하는 것을 보는 일처럼 숨통 막히는 일도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 외 우매한 자들의 행동도 본문은 계속 나열하고 있다.
이 모든 것의 결론은, 우매한 자는 스스로의 함정에 빠져서 자신의 상황에 자신이 희생물이 되어버린다는 것이다.
본문 주해를 정리하면서 이 우매자들 가운데 한 사람이 나 자신인 것을 발견한다.
죽은 파리처럼 주변을 악취 나게 한 자가 절대 아니라고 부인하고 싶지만, 복음을 몰랐을 때 나는, 다니는 곳곳에 악취를 풍겼던 자가 분명한다.
‘내가 정말 함정을 파고, 담을 허물었나?’ 고개를 갸웃거려 보지만 철저히 나 자신이 이익과 만족을 위해 취사선택을 하고, 또 나의 선택을 정의라고 여겼으니 그것이 우매자의 행동이 아니고 무엇이었겠는가?
또한 내 인생의 주인이 나라고 생각하며 스스로 인생의 주권자가 되어 살아왔으니 내 삶의 공의는 땅에 떨어졌으나 스스로는 절대 깨닫지 못한 세월을 살았던 것이다.
복음을 알고 생명의 삶을 살게 되니 그제야 나의 진짜 모습을 보게 된다.
참 지혜자이신 주님과 매일 교제하니 우매자의 비참한 모습이 바로 내 모습인 것을 알게 되었다.
지혜도 없는 것이 지혜 있는 체한 것부터 시작해서 철저한 이기적 생각과 행동이 그것이다.
이 세상에서 내게 유익을 주는 것이면 남들이야 어떻게 되든 말든 그것이 곧 정의라고 생각한 것이었다. 인간이 얼마나 자기중심적인지,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자연스러운 것인지, 에덴에서의 타락이 그것을 증명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매자의 견고한 껍질 안에서 철저히 자기중심적으로 살아가던 나, 그것을 정의라고 굳게 믿으며 살아오던 나에게 주님이 복음의 빛을 비춰주시니 그 껍질이 맥도 없이 부서져 내린다.
껍질 밖으로 나온 나의 모습은 그렇게 성경에서 자주 말씀하시던 죄인의 모습, 그것이었다.
정말이었다.
그것도 이 세상에서 그 무엇으로도 손을 쓸 수도 없는 가장 절망적이고 비참한 자라는 것......그런데 그 절망의 암흑 속에서 나를 건져주신 주님의 십자가를 보게 하셨다!
그리하여 내 인생의 주인이 내가 아니라, 주님이신 것을 알게 될 뿐만 아니라, 이 세상의 주권자도 주님이신 것을 말씀을 통해 확인해 나가게 되었다.
하지만 내게 여전히 지혜가 없고, 하는 짓이라고는 우매한 행동뿐이다.
그러나 이제는 걱정하지 않는다.
왜냐 하면 참 지혜자이시며, 하늘과 땅의 주권자이신 예수님 안에 거하는 자가 되었기 때문이다.
세상의 우편, 좌편이 내게는 의미가 없다. 인간들이 만들어낸 그 어리석은 길에 동참하지 않는다. 오직 예수님께서 내신 길만을 갈 뿐이요, 이 땅에서 편을 갈라 자기가 옳다고 주장하는 자들에게 ‘예수님만이 참된 옳은 길’임을 선포할 뿐이다.
이 세상의 것을 확보하기 위해 더 이상 함정을 팔 일도 없고, 담을 허물 필요가 없다. 주님께서 이 세상의 것을 탐하지 말라고 하셨기에 그 헛된 짓을 그친다.
또한 무딘 연장을 갈아 이 세상에서 성공하려고도 하지 않는다. 진정한 성공의 길은 예수님께로 가는 것뿐이기 때문이다.
오늘 본문에서 모든 우매자의 우매한 행동 속에 과거의 나를 보지만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는 것은 주님께서 나를 구원하여 주셨기 때문이다.
향수에 빠진 죽은 파리와 같은 인생이 되지 않게 하신 주님께 무한 감사를 드리는 아침이다.
(묵상 기도)
주님,
그저 하는 짓이라고는 우매한 짓뿐이었습니다.
그러면 지금은 지혜로우냐?
그것도 아닙니다.
다만 주님 안에 거하길 원하오니
불쌍히 여기셔서 품어 주옵소서.
오직 아버지 품속에 거하며
주님께서 이루시는 것을 보며 기뻐하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혹 주님께서 시키신 일이 있으면
주님의 지혜로 하게 하시고
무익한 종임을 고백하게 하옵소서.
제게 필요한 것은 주님이 주시는 기쁨이오니
무슨 일을 하든 주인의 기쁨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성령님,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