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지지구에서 온 메일 / 정지우
불 켜진 창문을 세어보듯 어둑어둑한 서신을 읽는다.
떨어진 포탄 속에서 무너진 건물 속에서 죽은 엄마의 품속에서 어린 난민들은 울먹이는 문장이다.
위로가 모른 척하면 슬픔은 어느 쪽을 바라봐야 할까.
창밖에 함박눈이 내리면 두 눈에 쌓이는 적설량.
녹아 사라진 눈과 코와 팔이 가자지구 장벽을 넘어 내게 도착했다.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고, 보이지 않는 우리를 찾아달라는 당부들
안으로 더 잘 보이도록 숨는다. 그게 전 세계에 알리는 최선의 방법이니까. 굴려온 눈덩이가 점점 사라지면서 사라지기 직전을 증명하는 최후의 발견이니까.
입안에 모은 말들은 소실점과 같아서 멀리 퍼져나갈수록 사라지고.
전쟁은 몇 사람의 말로 셀 수 없는 사람의 울음을 듣는 일. 고통을 속이고 죽음을 속이고, 속이는 일로 들키는 날카로운 초승달.
눈보라의 긴 비명을 읽는다. 그 속에서 눈사람이 태어나고 있다. - 웹진 『시인광장』 2024년 6월호 발표 * 정지우(鄭誌友) 시인 전남 구례 출생. 경희사이버대 문예창작과 졸업 2013년 《문화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 『정원사를 바로 아세요』 현재 웹진 『시인광장』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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