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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학교 제도의 문제점 -
예수님 당시에 유대교에서는 종교지도자들을 양성하기 위한 랍비들의 학교가 있었다. 당시 유대 랍비 가운데 가장 뛰어난 인물 가운데 한사람은 가말리엘이었는데 그는 바울의 스승이기도 했다. 초기 교회시대가 지나가고 2세기 말경에 최초로 알렉산드리아와 안디옥에서 신학교가 생겨나 클레멘트와 오리겐 등이 학생들을 가르쳤다. 4세기 이후에는 콘스탄틴 황제가 기독교를 공인하여 신자가 불어나면서 가톨릭교회는 이에 사제를 양성하기 위한 목적으로 주교성당학교 및 수도원학교를 많이 건립했다. 16세기 종교개혁 이후에는 신학연구와 함께 설교를 전담할 성직자인 목사를 배출하기 위해 많은 신학교가 생겨나게 되었다
오늘날 전세계에는 수많은 신학교가 산재해 있는데, 미국과 캐나다에는 400개가 넘는 신학교가 있다. 우리나라에도 정규신학교 약 50개와 무인가 신학교 300여개를 합해 350여 개 정도의 신학교가 있으며, 해외에도 수십개의 신학교가 있어 해외 유학생까지 합치면 매년 여러 곳에서 수만 명의 졸업생이 배출되고 있다. 이러한 신학교 제도는 예나 지금이나 성직자인 목사를 배출하기 위한 목적으로 생겨났지만 이러한 것은 비성경적이다. 왜냐하면 성경에는 성직자와 평신도의 구별이 따로 없는 소위 ‘만인 제사장’의 진리를 알려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각 교파나 교단에서는 자기네들이 인정하는 신학교를 나온 사람에게만 목사자격증을 주어 성직자로 세우고 있다.
성경 어디에도 하나님은 신학교와 같은 교육기관을 세운 일이 없다. 하나님은 사람들을 쓰실 때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부르신 후 영적으로나 도덕적으로 필요한 것을 갖추게 하셨다. 예수님 당시에도 부르심을 받은 12사도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생활 현장에서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부르심을 받았다. 그들 가운데 단 한명도 랍비들의 학교에서 교육을 받은 자는 없었다. 그들 가운데 절반은 어부였는데 그 당시 어부는 아주 평범한 직업에 불과했다. 그리고 유대인들에게 천대받는 직업을 가진 세리도 있었다. 나머지 제자들도 모두 보통사람들에 불과했다. 이와 같이 그들은 세상적인 관점에서 보아도 무엇하나 제대로 내세울 만한 것이 없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이었으며 뛰어난 인재는 없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러한 평범한 사람들을 훈련시켜 훌륭한 하나님의 일꾼으로 만드셨다.
이방인을 위한 사도로 특별히 부르심을 받은 바울의 경우는 12제자와는 달리 학문적인 지식이나 명성 등 여러 면에서 특출하고 뛰어난 면이 많았다. 그는 당대에 유명한 가말리엘 문하에서 교육을 받은 출중한 인물이었다. 그러나 그는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나 극적으로 회심한 이후 나중에 고백하기를, 지난날의 가문이나 신분이나 학벌이나 명예 등 모든 것을 배설물, 곧 똥(원어에는 똥으로 되어 있다. 성경에 똥이란 단어가 다섯 번 나오는데 예컨대, 자기의 똥처럼 영원히 망할 것이라, 욥기 20:7, 그러므로 똥은 성경적인 용어임) 으로 여긴다고 말했다 (빌 3:8). 그러나 오늘날 가짜 목사들은 과거의 학벌이나 간판이나 명예를 바울처럼 똥으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금메달처럼 자랑하며 내세우고 있으니 이러한 자들이 바로 거짓목자요 삯꾼들인 것이다.
사도행전 2장의 오순절 이후 처음 교회가 생겨나면서, 사도들은 이제 새로운 신자들을 가르쳐야 했다. 이 때 그들은 학교나 훈련원을 세워 그들을 가르친 것이 아니라 지역교회에서 가르친 것을 알 수 있다. 그 후 몇 십년 사이에 소아시아와 마케도니아 등 여러 지역에도 교회가 생겨났다. 그 때에도 하나님의 학교는 신학교나 훈련원이 아니라 성경적인 교사나 장로들이 있는 지역교회가 하나님의 학교였던 것이다. 성경에서도 신학교가 아닌, 지역교회가 ‘진리의 기둥과 터’라고 말하고 있다(딤전 3:15). 그래서 사도바울은 디모데에게 “내게 들은 바를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 저희가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으리라(딤후2:2)”고 말했다. 여기에 나오는 가르침이란 신학교에서가 아니라 ‘지역교회에서’ 임을 알 수 있다. 실제로 우리는 사도행전 11장에서 바울과 바나바는 교사로서 1년간 안디옥교회에 머물면서 신자들을 가르친 것을 알 수 있다(행11:26).
과거 세계적인 복음전도자였던 디엘 무디는 19세기 마지막 4반기 동안 미국과 유럽을 복음으로 뒤흔들어 놓은 하나님의 사람이었다. 그는 신학교를 졸업한 안수받은 목사가 아니었다. 그는 초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한, 학교 교육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어느 교회 역사가는 말하기를 “무디가 세상에 태어난 것은 하나님이 자신에게 온전히 몸을 바친 사람을 사용하여 어떻게 역사하시는가를 보여주기 위함이었으며, 또한 오늘날 우리가 처해 있는 세상은 재능이 있는 사람보다도 하나님께 헌신한 평범한 사람을 더 많이 요구한다는 것을 실제로 보여주기 위함이었다”고 했다. 그리고 미국 기독교계의 유명한 설교자였던 A.W.토저는 ‘이 시대의 선지자’라 불리기도 했는데, 그는 학력도 변변치 않았을 뿐만 아니라 신학교에서 신학을 배운 적도 없었다. 그러나 그는 어떤 신학자와도 비길 수 없는 높은 경지를 이룬 당대 복음주의의 양심으로 정평이 났던 뛰어난 인물이었다. 그 외에도 교회사에서 신학교와는 무관한 훌륭한 그리스도인들이 수없이 많았던 것을 살펴 볼 수가 있다.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은 목회를 위해 목사 자격증을 따려고 신학교에 들어가고 있다. 하지만 이런 사람들은 그것이 비성경적인 사실이라는 것을 전혀 알지 못하고 있다. 그러한 비성경적인 방법과 행위는 하나님이 원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반드시 좋지 않은 모습을 드러내게 마련이다. 해마다 수백개의 신학교에서 수만명의 목사 후보생들이 대량으로 배출되고 있다. 그 가운데에는 상당수가 국내의 무인가 신학교나 외국의 유령 신학교에서 수백에서 수천만원의 돈을 주고 가짜 석박사 학위를 받은 사례도 드러났다.
한국 목사들은 외국 목사들에 비해 ‘박사’소리를 듣기 좋아한다. 그래서 ‘박사’라는 타이틀을 거머쥐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목사들이 적지 않다. 몇 년 전에 한국기독교총연합회에 가입되어 있는 예장합동중앙 총회장을 비롯하여 총무 등 교단 주요 인사를 포함한 140여명이 가짜 신학박사 학위를 가지고 교회목회와 교단활동을 해온 것으로 밝혀져 기독교계를 경악시켰다. 예장합동중앙 총회는 이들에게 미국 풀가스펠 국제성서총회 신학대학교의 명의로 학위를 수여했는데, 조사결과 그 신학대학은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유령신학대학으로 밝혀졌다.
이 사건에서 서울지방법원은 미국에서도 공인받지 않은 신학대학교를 한국에 있는 것 처럼, 교단의 이름으로 신학대학원을 만들고 가짜 박사학위를 수여한 강용식 목사에게 징역 8개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예장합동중앙 총회는 이 사건에 앞서, 자체진상조사위원회를 구성했으나 교단의 주요 인사뿐만 아니라, 교단 대부분의 인사들이 이 사건에 연계되어 있어 사실상 조사가 불가능하여 이 사건을 은폐하려고 했던 사실도 밝혀졌다. 이 같은 사례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며 이와 유사한 크고 작은 사례들이 한국 기독교계에 비일비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신학교는 목사 후보생들을 배출하는 교육기관으로서 대부분의 신학교는 자기네 교단에 종속되어 있다. 교인이 뜻한 바가 있어 자기네 교단의 신학교에 입학하려면, 먼저 자기가 다니는 교회의 담임목사의 추천을 받아야 하고, 대학원의 경우에는 지방회나 노회의 절차를 거쳐야 한다. 또한 신학교 교수들도 대개 교인시절부터 해당 교단의 출신들이 대부분이다. 따라서 그들은 자기네 교단 총회에서 제정한 교리를 헌법에 따라 학생들에게 가르쳐야 한다. 설혹 교단의 헌법에서 비성경적인 것을 발견하여 올바로 가르치고 싶어도 그렇게 하기가 쉽지 않다. 왜냐하면 교단에서 만든 교리와 헌법의 범위를 벗어나 가르치면 알게모르게 옷벗을 각오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 대부분은 진리를 따르기 보다는 생존을 위해 입을 다물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결국 자기네 교단에 종속되어 살아가는 직업 종교인에 불과하다.
어쨌든 이러한 신학교에서 해마다 목사후보생들이 수만명씩 쏟아져 나오지만, 경쟁이 치열해서 기존교회에 들어갈 자리가 없는데다, 개척하기도 쉽지 않아, 목회지를 찾지 못하고 방황하는 졸업생들이 부지기수다. 하는 수 없이 그들 중에는 생계를 위해 학원강사나 택시기사를 하는 사람들도 있고 예비 실업자들도 많은 실정이다. 교수들도 신학생들의 이러한 상황을 잘 알고 있지만 그들도 다른 대책이나 대안이 없고, 이러한 문제해결을 촉구하기 위해 교단에 강력히 건의하는 교수는 거의 없다. 왜냐하면 그렇게 했다간 신변 안전에 부담이 되고 그들 역시 신학생들이 있어야 생존해 갈 수 밖에 없는 처지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들은 교단 총회나 학교이사회의 눈치나 살피면서 자기의 입지나 다지는 교단의 하수인에 불과하다고 볼 수 있다.
한편, 이전에 신학교가 아닌 지역교회에서 제자훈련을 시키는 교회들도 더러 있어 왔다. 사랑의 교회 담임 목사였던 옥한흠 목사가 특히 제자훈련을 강조하며 ‘평신도를 깨운다’라는 책을 통해서도 소개된 바가 있다. 그래서 적지 않은 교회들이 이러한 제자훈련을 모델로 삼아 실행하기도 했다. 신학교가 아닌 지역교회에서 성경에 나타나 있는 자격을 갖춘 교사나 장로들이 신자들을 가르치는 것은 성경적이다. 따라서 신자들은 성경의 올바른 교리와 교회에 관한 진리를 그들을 통해 배우고 지켜나가야 한다. 그러나 옥한흠목사가 주장하는 제자훈련은 성경적이라 볼 수 않다. 왜냐하면 그는 성경적인 교사와 장로에 대해 제대로 인식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비성경적인 ‘평신도의 존재’를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장로교 출신으로 칼빈의 성직자제도를 인정하고 있다. 그의 책 ‘평신도를 깨운다(p51)’ 에서도 칼빈이 주장한 내용을 인용하면서 “성직 자체를 반대하는 행위는 용납할 수 없다, 지상의 교회를 보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목사직이 필요하다는 등”의 내용을 강조하고 있다. 그 자신 스스로도 ‘목사직은 예수님이 그의 교회에 허락하신 직분이다’라고 말하면서, 에베소서 4장의 ‘목사’를 성직자의 직분으로 여기고 있다.
하지만 에베소서 4장에 나오는 “사도, 선지자, 복음전하는 자, 목자, 교사”는 주님이 우주적인 몸된교회를 세우기 위하여 주신 은사를 가리키는 것이지 지역교회의 직분이 아니다. 교회의 직분은 오직 ‘집사와 장로’뿐이다. 이것은 이제 성경학자들에게는 상식이다. 그러나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은사와 직분을 구분하지 못하고 있다. 심지어 ‘목자라는 단어’는 과거 개신교 지도자들이 의도적으로 ‘목사’로 변개시켜 번역하여, ‘성직자인 목사만들기’를 위한 술책이었다는 사실조차도 옥한흠은 모르고 있다. 이런 사람이 제자훈련이니 뭐니하며 평신도 교육을 근 30년간 해왔으니 한심스럽기 짝이 없다. 그는 성경에 없는 평신도를 인정하고 널리 보급함으로써 크나큰 과오를 저질렀다. 지금이라도 참회하고 ‘평신도 단어’를 철회하고 ‘만인제사장’을 인정하고 외쳐야 할 것이다.
오늘날 전국에 약 300여개의 무인가 신학교가 난립해 있는 가운데 그곳에서 온갖 불법이 자행되고 있고, 해마다 수만명의 목사 후보생들이 쏟아져 나온다. 그 가운데는 부적격자들이 부지기수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한 자들이 버젓이 자기네 교단에서 전도사, 부목사 등으로 교역자 행세를 하고 있고, 선배격인 담임목사도 오랫동안 그렇게 해왔으니, 적지 않은 개신교파가 온갖 비리와 부패가 난무할 수 밖에 없고 해마다 크고 작은 사건이 거기에서 터져나오는 것이다.
오늘날 국내외를 막론하고 신학교 출신 목사들 가운데 도덕적으로나 영적으로 자격을 갖춘 목사들도 적지 않다. 그러한 목사들은 신학교와 목사제도가 비성경적이라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고 성경적인 장로위치로 돌아와, 성경에 나오지 않는 직분인 ‘목사’라는 호칭으로 불리기를 원치 않으며, 모든 신자의 제사장직을 인정하며 복수장로제의 통치체제로 교회를 이끌어 가는 목회자들도 없지는 않다. 그러나 대부분의 목사들이 비성경적인 일인목회체제로 교회에서 우두머리가 되어 교인들 위에 군림하면서 전권을 행사하며 일인 독재로 운영하는 자들이 문제인 것이다. 그들은 스스로를 성직자로 생각하고 교인들을 평신도로 여기면서 왕노릇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오늘날에도 신학교나 목사자격증이 아니라 베드로와 요한 같은 학문없는 범인도 유능한 일꾼으로 사용하신다. 하나님은 교회의 일꾼들에 대한 조건으로 신학교 졸업장이나 석박사 학위 등을 요구하신 적이 없다. 이런 학위는 교육기관인 학원이나 기업체 같은 곳에서 요구하지 하나님의 교회에서 요구되는 것이 아니다. 종교개혁 이후 인간들이 고안해 낸 비성경적인 신학교 제도는 교회 목사를 공식적으로 직업화시키면서 목사를 일반 신자와 분리시켜 성직자와 평신도를 낳게하고 말았다. 이 처럼 ‘신학교를 통한 성직자 만들기’ 제도는 일반 신자와 성직자를 이등분으로 갈라 놓은 근본원인이요 주범인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비성경적인 신학교 제도는 지상에서 사라져야 할 뿐만 아니라, 모든 신자들은 이런 비성경적인 신학교 출신자들을 교회에서 용납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첫댓글 그럼 어떻게 우리가 말씀을 선포하는 목사(통칭)를 뽑아야할까요? 뭔가 검증하는 기관이나 과정이 필요할텐데요... 음... 그리고 참고로 목사도 교사라고 담임목사님이 말씀하셨어요. 목사만 중요한 직분이 아니라면서요..
같은 게시판 상단의 제목 '국내 주요교파의 장로직분'을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래서 신학이 필요합니다. 헛소리 분별
그러게요. 성경에 [예수]라는 말이 나온답니까? 지저스라고 나오지.... ;; [그리스도인]이라는 말이 나온답니까? 크르스챤이라고 나오지.. 이런 글들은 다 본질을 모르는 소리로밖에 안들립니다.
창세 이후 사탄이 크게 성공한 것,세가지,1)아담과 하와를 유혹해서 선악과를 먹게 한것,2)주후 3세기에 로마의 콘스탄틴황제를 속여 기독교를 국교화한 것,3)신학교와 목사제도를 기독교에 도입한 것,신학과 목사제도로 인하여 기독교는 말할 수 없이 저급한 종교로 전락하였습니다.누구든지 원하기만 하면 신학을 할수 있고 신학을 하면 목사가 되고 교회를 세울수 있는 이런한 관행이 철폐되지 않으면 기독교의 부패를 막을 길이 없고 개혁이 될 수 없습니다.어중이 떠중이들이 다 목사가 되어 하나님과 예수 이름을 팔아 자기의 왕국을 만들고 있습니다.
교회를 인도하는 장로와 사역자들은 정상적인 교회안에서 성령께서 많은 고난과 연단을 주셔서 온전케 된자들로 세워지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