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가을이야기
유옹 송창재
지금 귀하신 손님을 맞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가을에 대하여
추억에 대하여
사랑에 대하여..
지난 여름의 더위에 대하여 그리고 이별에 대하여.....
비가 내리고 있다. 그것도 많이~~
무덥던 가뭄을 보상이라도 해 주실 듯
저녁부터 주룩주룩 줄기차게 내리고 있다.
비를 기다리고 있었다.
태풍마저도 기다릴 정도로 간절했던 마음에
장마를 몰아 온 것처럼 한없이 내린다.
이 비 멎으면 가을되어
살랑거리며 지는 낙엽에
스산할텐데
이제 시작인데 벌써 외로움이라니!
아직 멀었는데
빈 밤에 비까지 이리 내리니
건너 보이는 빈 방이 보기 싫어
문 닫아 두고
빗소리 자장가로
겨우 잠 들었는데.
청하지 않은 귀한 손님이 나를 깨웠다.
잠결에 들리는
귀뚜라미 소리
머리맡에 그녀의 나직한 목소리가 있었다.
반가워 화들짝 불을 켜니!
내 머리맡에
귀뚜라미 한 마리가 나를 바라보고 있다.
긴 수염을 이리저리 흔들며 많이보고 싶었다는 듯이
내려다 보고 있다.
얘가 어디에서 왔지?
어젯밤에 들어와 있었나?
닫혀져 있는 창문으로는 들어올 없는데!
왜 나를 찾아 왔을까?
혹시 그녀에게 뭔일 이라도?
얘도 나만큼 힘이 드나?
눈을 맞추고 물어봐도
대답없이
밝은 불이 싫어
책장 밑 어둔 구석으로 숨으러 간다.
느릿느릿 뒤돌아 보며.
외로워 친구가 그리워 찾아 왔으면 숨지 말고
얘기나 더하면 좋으련만.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갈 것 인지,
무얼하며 살았고 얼마나 힘이 드는지!
귀뚜라미는
나만 깨워두고 저 혼자
어느 어둠속으로 숨어 들어간다.
얘기라도 하자고 조를 새도 없게.
제 얘기도 없이.
숨어 아무 소리도 없는 귀뚜라미 대신
주룩 거리는 빗소리에 섞여
우리 장닭이 벌써 홰를 치며 깜깜한 새벽을 알린다.
귀뚜라미 각시를 오늘밤에 또 볼지.
찾아 밖에 내놓아야 할까 아니면 함께 살까!
뭘 먹이지?
비가 와서 나를 찾아온 걸까?
고맙다 얘야!
아직도 어둡게 숨어있다
이건
이른 가을을 알리러 온 것 만은 아닐 것이다.
가을 이야기를 하자고 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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