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통교리와 신학이 왜 필요한가? (출처: 네이버 무엇이든지물어보세요)
인터넷 상에서 한국교회를 전체적으로 "교리주의"라고 비난하는 사람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이 글에 대해서 동조를 보내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들은 대부분 이단들이다.
그들은 교리가 성경적인가 아닌가를 토론하지 못한다. 그들의 교리가 비성경적인 것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어느 이단들도 공개적으로 공식 공청회를 요청하면 모두 꽁무니를 빼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교회사에 대한 거짓말 조작을 하며, 기독교를 비난하기 위한 목적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교회사에 대한 조작은 교회사의 책을 읽기만 하면 그대로 밝혀진다. 이단들은 거짓조작과 왜곡, 과장을 즐겨한다.
이단들의 교리는 오히려 더욱 획일화되고 더욱 정형화된 교리를 주장하고 있다. 그들은 교주나 목사의 주장에 모두 맹목적으로 따를 뿐이다. 대부분의 이단교회는 초신자들까지 그들의 교리를 그대로 외우다시피 하고 있다.
그들 나름대로 자신들의 교리의 정당성을 위하여, 성경구절까지 예를 들면서 자신들의 교리가 성경적이라고 주장하고 있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교리를 뒷받침하여 주는 듯한 몇몇 성경구절만을 선택적으로 외우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초신자들에게 기초교리라고 하는 이름으로 이것을 가르친다. 즉 이들은 분명히 교리가 있는 것이다. 그들은 정말로 백인일색의 동일하고 획일적인 교리주의이다.
이들에게 이들의 교리와 정면으로 부딪히는 반대적인 의미의 성경구절을 예로 들어주면, 이들은 당황하여 전혀 답변조차 하지 못한다. 그러한 생소한 것에 대해서는 배운 적이 없기 때문이다.
이단들은 성경보다 더 교리에 중점을 갖고 있는 교리주의자들이다.
100명이면 100명 모두 그들의 믿는 교리가 동일한데, 이들은 자신들은 교리적 분열이 없다면서 이것을 자랑하고 있는 것이다.
선택이 허용되지 않는 오직 한가지만의 교리가 있는 곳이 교리에서 자유로운가? 아니면 성경이라는 주제 안에서 다양한 교리가 허용되어지는 곳이 교리에서 자유로운 곳인가를 묻고 싶다.
오히려 정통교리는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그 다양성을 인정하고 있지 않은가?(예를 들면 장로교와 감리교의 차이)
또 기장과 예장이 갈라질 때에 교리적인 차이가 문제가 되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 분열의 실제적인 이유는 솔직히 교리적 차이가 아니라, 개인적인 교권욕이었던 것이다.
교리란 무엇인가? 그리고 정통교리란 무엇인가?
"교리(도그마)"란 헬라어 "디다케. 디다스칼리아"에서 유래된 것으로, 라틴어 "독트리아"이며 "도체오"(가르치다)에서 유래된 용어로써 "가르침"을 의미한다.
즉 성도들을 가르치기 위한 논리적인 이론을 말한다.
이 용어의 본래적인 의미, 역시 가르치는 행위를 말한다.
막4:2 이에 예수께서..... 그 가르치시는 중에 (엔 디다케)
정통교리란 무엇인가?
교리(doctrine)란 "종교적 체험의 이론적인 부분을 총칭하는 용어로써 이성적으로 이해된 믿음을 옹호하는 교리가 그들의 신앙에 대한 중요한 통찰을 개념화하는 과정"이라고 정의한다.
특히 "정통교리"(sound doctrine)는 건전한 교리를 말하며, "orthodox"라고 하는데, 딤전1;10(휘기아이노 디다스칼리아) 딛1;9(디다케 피스토스) 딤후4;3(휘기아이노 디다스칼리아)의 "바른 교훈, 건전한 가르침"을 말한다.
교회사를 보면, 언제나 이단교리가 먼저 있어왔고 정통교리는 이단교리에 대항하기 위한 방어책으로 만들어진 것임을 알게 된다.
정경옥교수는 "정통교리란 구원을 가르치는 손가락"이라고 말한다.
구원의 안내자로써 길을 가르키는 손가락이라는 뜻이다.
예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마28: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켜 지키게 하라.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 성경대로의 가르침을 정통교리(Ortho-dox, 건전한 교리)라고 부른다.
다시 말해서 "건전한 교리"는 반드시 획일적인 한가지일 수는 없으며, 성경적인 근거를 갖고 있는 조건 하에서 어느 정도 다양할 수도 있다.
다만 예수님이 그 제자들에게 분부한 것, 즉 기록된 성경을 가르쳐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와 반대로 비성경적인 교리에 대해서는 우리는 이단적 교리라고 부른다.
대부분 그들의 지도자나 교주들에 의하여 달리 설정된 가르침을 말한다.
교리란 성경 안에서는 다양할 수는 있지만, 성경 밖으로 벗어날 때에는 이단교리가 되어지는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단일수록 다양한 견해가 용납되어지지 않으며, 그들의 지도자나 교주의 개인적인 견해가 확일적인 공식교리가 되어진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에게는 왜 교리가 필요할까?
첫째 교리를 알아야 하는 이유는 이단과 다른 사상에 대처하고 막기 위해서 이다.
말하자면 교리랑 울타리같은 것이기 때문에 외부로부터의 칩입과 외부로 향해 나가려는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함이다. 오늘날 우리의 교회는 너무나 교리를 가르키지 않는다.
이러한 문제 때문에 많은 교인들이 이단과 사이비 사상에 미혹되고 빠져가고 있다.
몇년전 종말론 교회들이 문제를 일으켰을 때에, 성경적으로 보면 "누구든지 종말의 날짜는 알 수가 없다"는 기본적인 교리만 알았더라도 이단에 미혹되지 않았을 것이다.
둘째 교리를 알아야 하는 것은 신앙의 성숙을 위해서이다.
참된 신앙인은 어느 누구도 교리를 신앙의 대상으로 삼거나 교리를 신앙의 조건으로 삼는 사람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단들과 다른 사상을 가진 단체들은 이러한 교리를 비난하고 있다. 그 이유는 교리가 없어져야만 자신들이 자유롭게 자신들의 사상을 전하기 용이하기 때문이다. 이단들이 비난하는 "교리"란 바로 "정통교리"이며, 그들 나름대로의 교리도 불필요하다는 뜻이 아닌 것이다.
교리란 성경을 쉽고 간편하게 줄여서 정리한 것으로 교회에서 가르치는 논리를 말한다.
물론 교리란 반드시 성경적이어야 한다.
셋째 교리를 알아야 하는 이유는 교회의 표준을 위해서 이다.
세상에는 우리의 교회를 대항하고 우리 교회를 비난하는 많은 무리들이 있다.
어떻게 믿어야 하며 무엇을 믿어야 올바른 신앙인지 그 표준이 있어야 한다. 그것이 혼란을 없게 할수 있는 방법이 된다..
넷째 교리를 알아야 전도를 할수 있다.
초신자를 전도할 때 어떠한 질문을 받거나 의심점을 물어 올때가 있다.
또 타종교인을 전도할 때 대답조차 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이상하여 진다.
우리는 최소한 원칙과 주요핵심은 알고 있어야 한다.
또한 그것이 자신에게도 확신과 확증이 될 수 있다.
즉 무조건 믿으라가 아닌 왜 어떻게 믿느냐를 설명해 줄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정통교리의 기능은 무엇일까?
1) 신자들을 교육하기 위한 것으로 경건해석. 신자의 책임과 의무를 이해시키는 것이다.
2) 교리를 규범화하는 것으로서 교리에 대한 해석을 고정화시키고 보존시키는 역할을 한다.
3) 교회를 수호하는 측면으로 종교적 전통의 안팎에서의 오류에 대해서 신앙을 방어하는 역할을 한다.
웨슬레 목사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만일 이단이라면 그것은 성서를 그렇게 읽었기 때문"이라고 말이다.
성경은 신앙의 모든 규범과 설정의 표준이고 시금석이 되어져야만 한다.
교리는 성경을 떠나게 되면 교리가 아니듯이, 신학은 교회를 떠나게 되면 신학이 아니다.
다시 말하자면, 우리의 교리는 성경을 근거로 할 때 정통교리라고 불리워지는 것이고, 우리의 신학은 교회를 교회되게 할 때 정통신학이라고 불리워지는 것이다
바꾸어 말하자면, 정통교리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성경을 비평하게 되며, 정통신학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우리의 교회를 비판하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다.
"처음 믿음을 저버리면 심판을 받느니라"(딤전 5;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