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꺼내보는 명품시조 84,「빈집」외
신웅순(시인․평론가․중부대명예교수)
자식들 내보내고 몸져누운 빈집 마당
딸네집 피접나간 할머니 부탁인지
사립에 나팔꽃들이 문빗장을 감는다
-백상봉의 「빈집」
자식들 시집 장가 다 보내고 영감마져 하늘나라로 보냈다. 빈 집 마당은 몸져 누웠다. 할머니는 딸네집으로 가 오랫동안 집을 비울 생각이다. 이웃에게 집 보아달라고 부탁했다. 그리고는 문빗장을 걸었다. 집 비운 것을 피접으로, 문빗장을 나팔꽃 덩굴로 비유했다.
이 시대 노인들의 현주소이다. 영감을 보내고 할머니 혼자 남았다. 그것을 마당이 몸져 누웠다고 했다. 마당은 할머니의 외로움이다. 그 외로움을 달랠 수 없어 딸네집으로 피접을 간 것이다. 생자필멸은 자연 법칙이다. 사람이기에 말년은 고독하다. 혼자 남은 할머니의 말년을 기막히게 콕 집어냈다.
시조는 단 한마디면 된다. 긴 것은 시에 물려주면 된다. 욕심 많은 시조시인들이 시의 영역을 침범하고 있다. 그게 문제이다. 그런 사람들은 자유시를 쓰면 된다. 말이 많으면 실수를 한다. 시조는 단 한마디면 족하다. 이것이 시조이다.
하느님이 밤새도록
카톡을 보내신다
세상이 궁금하신지
창문마다 토도독 톡톡
개나리 웃음소리 까르르…
젤 먼저 댓글단다
-장기숙의 「봄비 안부」
하느님은 세상이 궁금할 때면 눈이나 비를 내려 창가에 노크를 하나보다.
봄비가 밤새도록 토도독 톡톡 카톡을 보낸다. 하느님이 세상이 어지간히 궁금했던 모양이다. 노랗게 핀 개나리가 까르르 웃으면서 젤 먼저 하느님에게 댓글로 소식을 전하고 있다.
봄비, 톡톡, 댓글이 감동이라는 명품 정삼각형을 만들어냈다. 시조 삼장이 있으라고 있는 것이 아니다. 이것이 우리 민족의 호흡이다. 초장과 중장이 싸워 결국 종장이라는 화해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타툼 없이 평화를 만들어 낼 수 없다. 초장과 중장이 당기고 밀면서 어디가 적정선인지 최적점을 찾아내야한다.
시조는 종장 첫 소절에서 탁 쳐서 명품을 만들어낸다고 한다. 이것만으로 시조가 되는 것은 아니다. 흔히 중장이 전개하는 장이라고 생각하지만 중장이 좋아야 종장도 좋아지는 법이다. 이음새가 튼튼하지 못하면 종장도 튼튼하지 못한 것은 당연하다. “토도독 톡톡” 의성어가 바로 이음새 역할을 하고 있다.
초ㆍ중ㆍ종 무엇하나 중하지 않은 게 없다. 12개의 돌 중 하나가 삐끗해도 정자는 순간 무너진다. 중하지 않은 것은 세상에 어디에도 없다. 시조의 묘수는 무궁무진하다.
-주간 한국문학신문,2023.5.10
첫댓글 즐거운 마음으로 시작하여 인내 와 바램을 취득하여 여믈게 수확을 얻는것 같은
어느 하나라도 중요하지 않은 일이 없다라는 글 인듯 싶습니다.
봄비가 카톡 소식을 보낸다 는 글 이
재미있었습니다^^
세상에 중하지 않은 것은 없습니다.따뜻한 마음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