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2월 10일(주)
* 시작 기도
주님...
이 새벽, 주를 바라봅니다.
잠자는 나의 영혼을 깨우사 주님으로 가득 채워주소서.
세상 만물 안의 것들로 채우기 원하는 나의 육신은 십자가에 못 박고 오직 예수님 한 분만으로 만족하게 하소서.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선교사 훈련을 받으며 감사함으로 학업에 임하는 젊은 훈련생들을 긍휼히 여기사 저들에게 주님의 마음으로 가득 채우도록 인도하소서.
신앙의 자유가 억압된 나라에서 예수를 믿고 그것도 불신 가정에서 나와 선교사 훈련을 받아 예수를 증거하고자 하는 그 열정이 너무도 귀합니다.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을 성령으로 붙들어 주시고 어떠한 환경의 파도에도 포기하지 않고 꿋꿋하게 일어설 수 있는 주의 종들이 되게 하옵소서.
그들은 이미 삶 자체가 무덤이오니 그 무덤의 자리에서 예수의 십자가 보혈을 의지하여 서게 하옵소서.
새 영과 새 마음으로 빚어주시고 주의 영 곧 진리의 영으로 조명하사 말씀의 빛을 비추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성경본문 / 골 4:10-18
제목 : 마가와 바울의 관계, 나와 그리스도와의 관계.
10 나와 함께 갇힌 아리스다고와 바나바의 생질 마가와 (이 마가에 대하여 너희가 명을 받았으매 그가 이르거든 영접하라).
11 유스도라 하는 예수도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그들은 할례파이나 이들만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함께 역사하는 자들이니 이런 사람들이 나의 위로가 되었느니라.
12 그리스도 예수의 종인 너희에게서 온 에바브라가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그가 항상 너희를 위하여 애써 기도하여 너희로 하나님의 모든 뜻 가운데서 완전하고 확신 있게 서기를 구하나니
13 그가 너희와 라오디게아에 있는 자들과 히에라볼리에 있는 자들을 위하여 많이 수고하는 것을 내가 증언하노라.
14 사랑을 받는 의사 누가와 또 데마가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15 라오디게아에 있는 형제들과 눔바와 그 여자의 집에 있는 교회에 문안하고
16 이 편지를 너희에게서 읽은 후에 라오디게아인의 교회에서도 읽게 하고 또 라오디게아로부터 오는 편지를 너희도 읽으라.
17 아킵보에게 이르기를 주 안에서 받은 직분을 삼가 이루라고 하라.
18 나 바울은 친필로 문안하노니 내가 매인 것을 생각하라. 은혜가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 나의 묵상
사도 바울은 편지를 마무리 하면서 7절 이하에서 마지막 문안 인사를 한다.
먼저 이 편지를 전달하는 두기고에 대해서 언급을 하며 그를 칭찬하고 신실한 일꾼으로서 나와 함께 종이 된 자라고 추천한다.
두기고를 보내는 목적은 골로새 교인들에게 자신의 사정을 알리고 그들의 마음을 위로하게 하려는 것이다.
또한 골로새에서 온 오네시모를 신실하고 사랑받는 형제라고 칭찬하면서 그를 두기고와 함께 돌려보내므로 그가 가서 너희에게 이곳의 사정을 다 말할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바울 자신과 함께 옥에 갇힌 아리스다고, 바나바의 조카이자 바울과 바나바와 함께 1차 전도여행 때 일행으로 함께 떠났었다.
그러나 밤빌리아에 있는 버가에서 마가의 연약함으로 인하여 일행에서 떨어지고 말았다(행 13:13).
그 후에 2차 전도여행 때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가자고 하였다.
하지만 바울은 1차 여행 때 자기 마음대로 일행을 벗어난 자를 함께 데리고 갈 수 없다고 하여 바나바와 심하게 다투었다.
그러고 나서 바나바는 마가 요한을, 바울은 실라를 데리고 각자 전도여행을 떠난다.
그런데 후에 마가가 변하였다는 소식과 함께 그를 아들로 맞아들이며 그를 부른다(딤후 4:11).
이 마가를 또한 골로새 교회에 소개하며 그를 영접할 것을 권한다.
마가의 이름은 원래 요한이다.
유대식으로 요한이라는 이름이 있었지만 이방인과의 교제를 위해서 로마식 이름인 마가를 함께 사용한 것이다.
마가의 어머니는 예루살렘에 있었고 그녀의 이름은 마리아이다.
믿음이 깊었던 그들은 자신의 집을 예수님과 제자들의 예배 장소로 제공하기도 했으며 그 장소가 바로 최후의 만찬이 있었던 곳으로 추정되는 오순절 사건이 일어난 다락방이다.
게다가 후에 베드로가 옥고를 치를 때에도 제자들은 마가의 집에 모여 기도했다.
즉 마가와 그의 어머니 마리아는 어려운 시기에 자신의 집을 제자들에게 제공한 믿음의 소유자였던 것이다.
마가 요한은 베드로의 영향을 많이 받았으며 베드로 또한 마가를 아들처럼 여겼다.
(벧전 5:13) 택하심을 함께 받은 바벨론에 있는 교회가 너희에게 문안하고 내 아들 마가도 그리하느니라.
이런 마가가 바울과 바나바가 전도여행을 떠날 때 같이 떠났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그는 밤빌리아에 있는 버가에서 일행을 떠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고 말았다.
이로 인하여 바울은 마음이 많이 상한 것 같다.
그래서 2차 여행을 출발할 때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가자고 하였으나 마음이 상한 바울은 그를 데리고 갈 수 없다고 하여 결국 바나바와 바울이 다투고 서로 따로 여행을 떠나게 된 것이다(행 15:37-38).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이런 마가에 대해 완전히 다른 태도를 취한다.
마가가 돌이켜 신실한 주의 일꾼이 되자 바울은 마가를 동역자로서 기쁘게 골로새 교인들에게 추천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마가가 골로새 교회를 방문하게 되면 너희는 기쁘고 즐겁게 환대해주라는 말이다.
마가는 후에 초대교회 역사에 크게 기여한 인물이 되었다.
그는 베드로로부터 예수님의 생애와 언행을 듣고 마가복음을 기록한 인물이다.
전승에 따르면 그는 에베소에서 죽을 때까지 복음 사역을 감당하다가 죽었다고 한다.
한편 마가는 그의 스승인 베드로와 너무도 비슷한 모습을 가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이나 부인하고 저주까지 했던 인물이었던 것처럼, 마가 역시 바울과의 전도 여행에서 낙오하는 실수를 범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들이 이러한 실수에서 돌이키자 다시금 하나님의 일꾼으로 세워주셨고 생의 마지막까지 주의 일꾼으로서 아름다운 인생을 살게 하셨다.
한 때 바울은 자신을 배신하고 떠난 마가를 불신했었지만 이제는 마가의 변한 모습을 확인하고 골로새 교회에 이전에 명했던 대로 그를 영접하라고 특별히 부탁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아마도 골로새 교회에는 과거 마가의 과오를 기억하고 그를 배척하는 자들이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바울은 그런 이들에게 마가를 따뜻하게 영접하고 대하라고 이미 명한 바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런 바울의 당부가 언제 있었는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오늘 본문에서 이를 다시 반복하여 전달하고 있는 것을 보면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여기서 바울은 자신에게 깊은 상처를 주었던 마가조차 다른 동역자들과 동일하게 기쁨으로 골로새 교인들에게 추천하는 아름다운 사랑과 관용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 모습은 감히 비교할 수 없는 예수님의 모습을 보여준다.
바울은 3차에 걸친 전도 여행을 통하여 얼마나 많이 인간적인 아픔과 상처를 받았겠는가?
교통수단, 입을 것과 먹을 것 그리고 잠을 자는 일 등 지극히 일상의 삶조차 온전하지 못한 상태에서 복음을 전한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받았을 아픔과 상처는 두고두고 그의 가슴에 새겨질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런 상처를 주었던 마가를 자신의 영적 아들로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면 그 안에 예수님의 사랑이 있기 때문임을 알 수 있다.
나 또한 복음을 전하러 베트남에 나와 있다.
아무리 조건과 상황이 잘 갖추어져 있다 할지라도 모든 것이 다 갖추어진 한국 땅 그리고 고향과 같을 리 있겠는가?
소소한 것들의 부족함으로 인하여 불편함이 이루 말로 다할 수 없지만 그럼에도 감사함으로 살아간다.
순간순간 내 안에 차오르는 불평과 원망도 있지만 그 옛날 내 맘속에 차오른 원망과 불평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
그래서 능히 견디며 지낼 수 있다.
어찌 나라고 해서 내적 갈등이 없겠는가?
그래도 필리핀이나 몽골에서 생활했던 선교사의 삶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안정된 삶을 사는 것은 사실이다.
물론 바울 당시 빛이 들어오지 않는 토굴 감옥에 갇힌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이 부요하고 평안하지만, 내 안에서 누리는 감사의 마음이 가득하다.
아무리 평안하고 안정된 삶이라 해도 타국의 삶 그것도 혼자 생활하는 삶은 극복하기가 쉽지 않은 것도 맞다.
하지만 날 용납하시고 구원해주신 예수님을 생각하며 인내하고 잘 지내고 있다.
나는 내가 누구이며 어떤 존재인지 잘 알고 있다.
바울의 마음을 상하게 했던 마가와는 비교할 수도 없는 괴악하고 죄 많은 죄인이다.
마가의 약함은 그나마 귀엽게 봐줄 수 있는 수준이다.
나의 죄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죄요, 하나님께서 당신의 아들을 십자가에 걸게 하신 그런 죄인 중에 괴수이다.
그런데 이런 나를 용납하시고 기꺼이 하나님 아버지와 분리되는 그 고통을 감내 하시면서 까지 나를 받으시고 또한 당신의 아들로 삼아주셨다.
나를 용납하신 주님 앞에서 여전히 나는 나의 죄를 보고, 슬퍼하며 안타까운 감정에 사로잡혀 있는 것도 사실이다.
나를 용납하시고 불러주셨으며 아들 삼아주신 아버지의 사랑 앞에 이제 나도 나를 용납하며 주님을 내 안에 받아들인다.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를 힘입어 담대히 아버지께 나아가는 파레시아의 믿음이기 때문이다.
오늘도 주님과 함께 살아가는 귀한 주의 날이 되기를 소망한다.
동녘에 떠오르는 태양 빛이 주님의 영광의 빛이 되어 내 마음을 가득 채운다.
* 묵상 후 기도
주님...
내 영혼이 주를 찬양하나이다.
어둠에서 빛으로, 흑암의 권세에서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신 주님의 은혜 앞에 무릎 꿇고 주를 경배합니다.
내 마음이 주의 사하심과 은혜로 춤을 추나이다.
나를 받으소서.
지금도 여전히 죄인이오나 주께서 십자가에서 용납하신 그 은혜로 의인되었음을 아오니 주여, 찬양을 받으소서.
의인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순간순간 죄를 먹고 마시는 이 죄인을 불쌍히 여기시며 늘 주의 십자가가 나의 놀이터가 되게 하시어 그 보혈의 강에서 나의 죄를 씻으소서.
오늘도 주님의 날임을 아오니 영광을 받으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