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3학년 때 성령세례를 받은 이후로 수십 년을 신앙생활하면서 기억될만한 영적 꿈과 환상을 경험한 것이 열 손가락이 아니라, 한 손의 다섯 손가락도 다 꼽지 못할 정도인 서너 번이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그리고 목회자로 또 신학교에서 오랫동안 강의하면서도 성령의 감동을 받은 적은 종종 있었던 것같았으나,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경험은 거의 없다시피 하였다. 그것은 아주 드문 꿈과 환상속에서도 어떤 장면들만 보였지, 음성이 들려온 경험은 전무하였기 때문이었다. 지금 돌이켜보니 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1985년 네팔에 선교를 위하여 머물고 있을 때, 나의 삶의 앞날에 대한 어떤 세미한 음성이 불현듯이 머리 속에 들어왔던 그 경험이 지금은 너무나도 익숙하게 된 들리는 하나님의 음성에 가장 가까운 단 한번의 경험이었다고 생각된다.
그러면서도 내 마음, 아니 내 영 깊은 곳에서는 오랫동안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자 하는 갈망이 자리잡고 있었음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그것은 그렇게 기도하면서도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는 것이 아무래도 성경적이지 않고 무엇인가 잘못되었기 때문일 것이라는 의문이 떠나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늘날 신학자들과 수많은 목회자들까지도 성경이 기록되고 난 후에는 하나님께서 더 이상 말씀하시지 않는다고 믿고 있으며, 그냥 성경을 열심히 읽고 연구함으로, 그리고 설교를 통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고 말하고 그것이 정상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면 말씀하시지도 않으시는 하나님께 기도는 왜 하는가? 그리고 왜 기도를 하라고 하는가? 지금도 들으시는 하나님이심을 믿기에 열심히 기도하고, 또 기도하라고 하면서 말씀은 하시지 않으신다는 말이 도무지 성립될 수가 있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성도들과 목회자들까지 그것이 지극히 정상인 줄 알고 열심히 각종 성경공부와 제자훈련에 몰두하면서도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고 하면, 무조건 잘못된 것으로 치부하는 경향이 현실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히 13:8)라고 하셨다. 하나님은 오늘도 말씀하신다. 단지 그것이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바꾸거나 그것에 더하는 계시가 아니라, 성령께서 가르치시고 진리로 인도하시고 장래 일을 알게 하시는, 다시 말하면 목자이신 주님께서 양을 인도하시는 음성이라는 것을 알 필요가 있을 뿐인 것이다.
이와같이 하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로고스(기록된) 음성과 레마(들리는) 음성으로 그의 백성과 교통하기를 원하신다. 로고스 음성을 기록된 성경을 읽거나 암송하거나 설교를 듣는 방법으로 듣는다면, 레마 음성은 들리는 음성으로 성령의 음성이다.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14:26에서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라고 말씀하셨다. 또한 16:13에서는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리니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라고 하셨다. 이와같이 레마 음성은 그것이 비록 기록된 성경말씀의 구절이라도 성령께서 적절한 시간과 당사자의 형편에 아주 맞게 들려 주시는 개인을 위한 격려와 인도와 가르침의 음성이다. 그리고 이 들리는 성령의 레마 음성은 항상 ‘지금의 말씀’(Now Word)이다.
사도들은 그들의 복음 전하는 방향을 성령으로 인도받았다. 사도행전 16:6-10에 보면 성령이 바울사도에게 아시아에서 복음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고 유럽지역인 마게도냐로 가게 하셨다. 사도행전 27장에 보면 바울이 탄 배가 유라굴로 광풍을 만나 죽게 되었을 때에 하나님의 사자가 밤에 나타나서 그와 함께 배에 탄 모든 사람들이 죽지 않으리라고 한 말을 전하였다. 이처럼 위기 가운데 ‘지금의 말씀’인 성령의 음성이 들려오면, 두려움을 이기고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성령의 내적음성과 지식의 말씀, 그리고 꿈, 환상, 천사의 음성, 귀에 들리는 음성 등의 레마 음성은 성경이 기록된 후인 오늘날에도 계속되고 있다. 그리고 이는 주님과의 깊은 친밀감을 통한 교통을 전제로 한다. 모세는 왕궁과 광야에서 듣지 못했던 음성을 호렙산에서 처음 듣게 되었다. 산은 성경에서 거룩한 곳을 상징하고 있다. 시편 24:3은 “여호와의 산에 오를 자 누구며 그 거룩한 곳에 설 자가 누군고”라고 말하고 있다. 이는 정결함과 거룩함을 추구하는 친밀함이 레마 음성을 듣는 첩경임을 보여 준다. 시편 25:14은 이러한 진리를 “여호와의 친밀함이 경외하는 자에게 있음이여 그 언약을 저희에게 보이시리로다”라고 말하고 있다.
또한 이 하나님의 들리는 레마 음성은 높은 삶으로의 부르심에 대한 것이다. 하박국 3:19은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로 나의 높은 곳에 다니게 하시리로다”라고 말한다. 높은 삶으로의 부르심에 응답하고자 하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육체의 법을 거부하는 것이 단지 소극적인 자세라면, 거룩함을 추구하는 것은 보다 적극적인 자세이다.
이 책은 성령세례를 받은 지, 33년 만에 임한 정결케하는 하나님의 불세례와(마 3:11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실 것이요”) 하나님의 영광을(사 35:2 “여호와의 영광 곧 우리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보리로다”) 체험한 후부터, 초창기에는 4년반 동안 매일 3번씩, 그리고 지난 10여년 동안 5,000번도 넘게 꿈과 환상들, 그리고 각종 다양한 방법으로 들려온 하나님의 음성들과 그것을 실천함으로 터득한 철저히 개인적인 믿음의 결정체를 기록한 영적일기이다. 이와함께 이미 하나님의 음성에 친숙하고 예언적 단계에서 오랫동안 계시적으로 인도받아 온 이름을 다 열거할 수 없는 여러 외국 영적지도자들의 글들에서도 좋은 교훈을 얻게 되었음을 밝힌다.
끝으로 개인적인 경험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나의 생각에서 나온 것이 아닌, 주님과의 영적 친밀함을 추구하는 가운데서 들려진 하나님의 음성임을 독자들이 알아주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한편 성경적인 근거를 최대한 제공함으로서 이미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있으면서도 확신을 갖지 못하는 자들과, 또한 듣기를 사모하는 자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하는 마음을 담았다. 주님은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저희를 알며 저희는 나를 따르느니라”(요 10:27)라고 말씀하셨다. 들리는 하나님의 음성, 곧 그것은 주님을 따르게 하며, 그의 거룩함과 그의 영광의 높은 영역으로 인도하는 영적 이정표이다.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이 목자이신 주님의 음성을 듣고 그를 따르며 높은 곳에 다니는 하나님의 영광, 곧 그의 아름다움을 날마다 체험할 수 있기를 소망하며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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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습니다. 목자이신 주님의 음성을 들음은 그의 양인 우리를 푸른 초장과 맑은 물가로 인도하심입니다. 양으로 풍성케 하시는 주님의 은총을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