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기도: 예수님, 오랜만에 나온 것 같습니다. 오늘도 주님께 못나올뻔 했는데, 나왔습니다. 주말엔 지체들과의 교제로 시간이 안나왔고, 오늘은 학당 부모모임과 아픈 막둥이 육아로 종일 시간이 없었습니다. 또 소화가 안되었는지 체해서, 지쳐서 자고 싶었는데, 오늘 주님의 말씀이 너무 궁금해서 앉았습니다. 뒤로는 밀린 설거지와 거실엔 아직 못 갠 빨래들, 집안 곳곳 정신이 없습니다. 답답한 마음도 올라오고, 불편한 속으로 부대끼고.. 그래도 참 감사한 것은, 주님께 나오고 싶은 마음을 주신 것입니다. 주님을 갈망하고자 하는 은혜, 주님이 주신 것이고, 기도해야할 것들이 참 많은데, 주님이 계셔서 감사한 마음입니다. 여기저기 들려오는 안타까운 지체들 소식도, 제가 주님께 바로 서는 일부터가 먼저인 것을 알려주시는 것 같습니다. 주님, 신명기 통해서, 반복해서 듣고 또 들어야할 것을 마음 열고 듣게 하여 주시고, 겸손함으로 듣고 순종할 수 있게 인도하여 주십시오.
@말씀주해:
(모세는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 풍요를 누릴 때 하나님을 잊지 말라고 경고하고, 하나님이 구원하고 복 주신 일을 자녀에게 가르치라고 명령한다.)
당신들의 하나님이, 조상들에게 맹세하여 주기로 약속하신 그 땅으로 이끌어주실 것인데, 거기엔 당신들이 세우지 않은 크고 아름다운 성읍이 있고, 온갖 좋은 것으로 가득 찬 집과 당신들이 하지 않은 이미 파놓은 우물과 이미 가꾸어 놓은 포도원과 올리브 밭이 있을 것이다. 거기에서 당신들은 실컷 먹을 것이다. 그때, 가장 중요한 것은 당신들이 애굽에서 종 되었을 때, 당신들을 이끌어 내신 주 하나님을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를 섬기며 그의 이름으로만 맹세해야 한다. 그 어떤 다른 신도 섬겨서는 안된다. 주님은 질투하시는 분이시다. 만일 하나님이 분노하신다면 당신들은 멸하실 것이다.
맛사에서 하나님을 시험했던 것을 기억할 것이다. 하나님을 시험하면 안된다. 철저히 하나님의 명령과 훈령과 규례를 지켜야 한다. 당신들은 주님께서 보시는 앞에서 올바르고 선한 일을 해야한다. 그러면 잘되고, 주님께서 맹세하신 저 좋은 땅에 들어가 그 곳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주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당신들앞에서 당신들의 모든 원수를 쫓아낼 수 있을 것이다.
만약 당신들의 자녀가, 하나님이 지키라는 훈령과 규례와 법도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이렇게 알려줘라. ‘옛날에 우리는 이집트의 바로의 노예였지만, 주님께서 강한 손으로 우릴 이끌어 내주셨단다. 그때, 우리가 보는 데서, 놀라운 기적과 기이한 일로 바로와 그의 집안을 치셨단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거기에서 이끌고, 조상에게 맹세하신대로 여기로 우리를 데려오셨고, 이 땅을 우리에게 주셨단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모든 규례를 명하여 지키게 하시고, 주 우리의 하나님을 경외하게 하셨다. 우리가 그렇게만 한다면, 오늘처럼 주님께서 언제나 우릴 지켜시고, 잘 살게 하여 주실 것이다. 우리가 주 우리의 하나님 앞에서, 그가 우리에게 명하신 대로, 이 모든 명령을 충실하게 지킨다면, 그것이 우리의 의로움이 될 것이다.’
-언약 백성 이스라엘에게 계명은 상벌이 따르는 도덕적 명령이 아니다. 그것은 애굽의 노예로 살았던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게 되는 은혜의 선물이다. 쉐마보다 선행하는 것은, 그들이 구원의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다(출 20:6; 신 5:10). 부모의 자식 사랑처럼, 누군가를 사랑하면 그가 기뻐하는 일을 자원하여서 하는 법이다.
-우리도 “사면에 있는 백성의 신들”을 따르지 말고 하나님만 섬길 것이다. 최악의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현존을 의심하지 않고 파레시아를 준행해야 한다. 히브리서 기자는 최악의 상황에서도 한 가지 버리지 말 것은 “파레시아”라고 하였다.
-언약 백성에게 쉐마는 죽고 사는 문제이며 목숨을 걸고 준행해야 한다. 이것은 사면에 있는 백성이 자기 신들을 섬기는 것과 전혀 다른 삶의 방식이다. 이스라엘이 쉐마하여 사는 것은 이방인처럼 단순히 생명을 부지하는 의미가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특별한 보화, 으뜸 되는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으로 사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이스라엘이 목숨 걸고 쉐마해야 하는 것은 하나님의 거룩한 의무이자 동시에 특권이다.
-언약 백성이 모든 명령을 지키는 “쉐마”는 그들의 “의”이다. “의”(쩨데크)의 히브리적 표현은 관계적 개념이다(헬라적 표현은 행위적 개념). 즉, 다른 사람들이나 다른 어떤 사람이 제기하는 요구에 대해 올바른 태도를 취했을 때 표시하는 단어이다(폰 라드). 언약 관계에서 “의”는 “관계에 대한 책임을 다하는 상태”이다(언약적 의). 언약 관계에서 “의”를 준수할 때 관계 사이에 화평이 주어진다. 곧 언약 관계에서 화평은 의의 결과로 주어지는 것이다.
-언약의 유지 여부는 불의의 가능성이 있는 이스라엘에 달려있다. 그들이 말씀에 순종하면 그들은 의로우며, 하나님과 바른 관계 안에 거한다. 이것이 그들이 사는 길이며, 언약 백성으로서 생명을 유지하는 길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은 믿는 자에게 “의”를 선사하였다(롬 4:25-5:1). 죄인은 스스로 하나님의 요구를 이루지 못하며, 그리스도께서 대신 이루셨다. 이제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믿으면 “의롭게” 된다. 믿는 자는 의의 결과 하나님과 화평한 관계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의롭게 된 자는 이스라엘에 가나안에 들어가듯, 은혜의 보좌로 들어가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롬 5:1-2).
-성도 된 우리가 생명의 길로 나아가는 파레시아는 목숨 걸고 지켜야 할 신앙 규례이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리는 최악의 상황에서도 파레시아를 버리지 말라고 촉구하였다(히 10:35). 우리가 날마다, 심지어 최악의 상황에서도 말씀 앞에 나아가 파레시아를 준행하면, 우리의 후손이 언젠가 물을 것이다. “웬 것이냐?”라고. 그때 우리는 다음 세대에게 하나님이 이루신 구원의 역사를 증거한다. 곧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구원, 곧 복음을 통해 생명으로 나아가는 길을 증거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도 살기 위해서는 목숨 걸고 파레시아를 준행해야 함을 알려준다.
@나의묵상 및 기도: 사춘기 자녀를 두면서 여러가지 생각들이 많았다. 나름 신앙교육을 중심으로 하고 싶어서, 8살때부터 쉐마학당을 보냈고, 보내면서도 당연히 불안과 두려움이 있었다. 그래도 기대하는 것은 아이가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나서, 예수님을 생명으로 여기며 살아가길 원했다. 아직 다 결정된 것은 아니지만, 요즘 중고등부 수련회 기도를 하면서 내 자녀에 대한 답답함이 있었다. 다른 것 다 재쳐두고 쉐마학당 보냈는데, 이 녀석은 언제 주님을 사랑할까? 언제 주님을 만날까? 언제 주님을 주인으로 삼을까? 예배할 때, 너무 너무 좋아서 예배할까?
그런데 주님이 오늘 본문을 통해 내게 말씀하시는 것 같다. ‘얘야, 너는 나와의 약속(언약)을 기억하여, 언제 언약적 의에 대한 책임을 다할래? 너는 날 언제 어느 누구보다 제일 사랑할래? 너는 언제 내가 너무 좋아서 예배할래?’ 라고 하는 것 같았다.
다음세대를 염려했지만, 사실 내가 주님에게 올인해서 살지 않고, 주님을 생명으로 여기지 않는데, 안그래도 이젠 더욱 세속화된 이 땅에서, 어떻게 하나님을 잘 믿는 친구들을 만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주님이 너무 좋아서, 주님과의 만남이 너무 좋아서, 생명의 교제가 너무 즐거운 엄마가, 시간과 물질을 이상한 곳에 사용하고, 여전히 세속화되어 하나님도 좋고 물질도 좋은 가치관을 가질 수 있을까? 스마트폰 보는 시간이 길 수 있을까? 영혼없는 말과 행동, 사랑없는 말과 행동, 사망의 말과 행동이 나올 수 있을까?
우리 아들들이 ‘엄마, 왜 주님 말씀을 지켜야해요?’ 라고 할때, 나는 당당히, 주님이 우리 가정을 이끄신 것을, 주님이 아니면 살 수 없음을, 주님이 언제나 지키실 것임을, 주 우리의 하나님은 하나님 뿐임을 내 입으로 당당하게 말하고 싶다. 그러기 위해 오늘도 파레시아를 힘입어 주님께 나아온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주님께 나아가며, 예수님을 통해 아버지께 나아간다. 아버지께 모든 것이 있는데, 다른 곳을 볼 필요가 있을까? 이런 은혜를 부어주심에 감사를 드린다.
주님, 사실 배가 계속 아프고 답답한 마음입니다. 그런데 말씀이 마음을 찌르고 좀전에도 마음과 달리 사망의 말을 쏘아대던 제 모습을 직면하니, 저는 그저 주님을 의지하는 일밖에 없음을 봅니다. 내 자녀와 다음세대의 실체가 바로 제 모습입니다. 언약 안에 있는데도 성실하게 언약적 책임을 다하지 못한 자 때문입니다. 주님, 저에게 매일 파레시아를 준행할 수 있는 용기와 힘을 주십시오. 죄의 세력이 뭐라해도, 어떤 것으로 유혹해도, 매일 꾸준하게, 담대하게, 파레시아를 준행할 수 있길 원합니다.
#중고등부 수련회가 다음주입니다. 다음세대가 다른세대가 아닌, 주님이 부르신 군대요, 주님이 사랑하는 양입니다. 주님의 양들을 불러주시니 감사드리고, 그들이 양이니, 주님의 음성에 민감하여 쉐마할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십시오.
#청년부를 주님께서 세워주시고, 올해 청년부가 된 승빈이와 소민이를 생명으로 인도하여 주십시오. 청년부 공동체가 주님의 은혜로 세워주시고, 주님이 기뻐하는 공동체가 되어질 수 있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