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 기도)
주님,
일상의 새날을 맞이합니다.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하는 새벽 시간입니다.
저와 가족과 주님께서 맡기신 모든 일과 일상의 모든 관계가 그러합니다.
주님께서 허락하신 생을 사는 동안 죽도록 충성하되 무익한 종의 고백을 하게 하옵소서
말씀 앞에 나아갑니다.
자기의를 십자가에 못박습니다.
주님의 보혈로 덮어 주옵소서.
정결한 마음으로 진리의 영의 인도를 받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본문)
1. 그 때에 여로보암의 아들 아비야가 병든지라
2. 여로보암이 자기 아내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일어나 변장하여 사람들이 그대가 여로보암의 아내임을 알지 못하게 하고 실로로 가라 거기 선지자 아히야가 있나니 그는 이전에 내가 이 백성의 왕이 될 것을 내게 말한 사람이니라
3. 그대의 손에 떡 열 개와 과자와 꿀 한 병을 가지고 그에게로 가라 그가 그대에게 이 아이가 어떻게 될지를 알게 하리라
4. 여로보암의 아내가 그대로 하여 일어나 실로로 가서 아히야의 집에 이르니 아히야는 나이가 많아 눈이 어두워 보지 못하더라
5. 여호와께서 아히야에게 이르시되 여로보암의 아내가 자기 아들이 병 들었으므로 네게 물으러 오나니 너는 이러이러하게 대답하라 그가 들어올 때에 다른 사람인 체함이니라
6. 그가 문으로 들어올 때에 아히야가 그 발소리를 듣고 말하되 여로보암의 아내여 들어오라 네가 어찌하여 다른 사람인 체하느냐 내가 명령을 받아 흉한 일을 네게 전하리니
7. 가서 여로보암에게 말하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너를 백성 중에서 들어 내 백성 이스라엘의 주권자가 되게 하고
8. 나라를 다윗의 집에서 찢어내어 네게 주었거늘 너는 내 종 다윗이 내 명령을 지켜 전심으로 나를 따르며 나 보기에 정직한 일만 행하였음과 같지 아니하고
9. 네 이전 사람들보다도 더 악을 행하고 가서 너를 위하여 다른 신을 만들며 우상을 부어 만들어 나를 노엽게 하고 나를 네 등 뒤에 버렸도다
10. 그러므로 내가 여로보암의 집에 재앙을 내려 여로보암에게 속한 사내는 이스라엘 가운데 매인 자나 놓인 자나 다 끊어 버리되 거름 더미를 쓸어 버림 같이 여로보암의 집을 말갛게 쓸어 버릴지라
11. 여로보암에게 속한 자가 성읍에서 죽은즉 개가 먹고 들에서 죽은즉 공중의 새가 먹으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말씀하셨음이니라 하셨나니
12. 너는 일어나 네 집으로 가라 네 발이 성읍에 들어갈 때에 그 아이가 죽을지라
13. 온 이스라엘이 그를 위하여 슬퍼하며 장사하려니와 여로보암에게 속한 자는 오직 이 아이만 묘실에 들어가리니 이는 여로보암의 집 가운데에서 그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향하여 선한 뜻을 품었음이니라
14.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위에 한 왕을 일으키신즉 그가 그 날에 여로보암의 집을 끊어 버리리라 언제냐 하니 곧 이제라
15.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쳐서 물에서 흔들리는 갈대 같이 되게 하시고 이스라엘을 그의 조상들에게 주신 이 좋은 땅에서 뽑아 그들을 강 너머로 흩으시리니 그들이 아세라 상을 만들어 여호와를 진노하게 하였음이니라
16. 여호와께서 여로보암의 죄로 말미암아 이스라엘을 버리시리니 이는 그도 범죄하고 이스라엘로 범죄하게 하였음이니라 하니라
17. 여로보암의 아내가 일어나 디르사로 돌아가서 집 문지방에 이를 때에 그 아이가 죽은지라
18. 온 이스라엘이 그를 장사하고 그를 위하여 슬퍼하니 여호와께서 그의 종 선지자 아히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과 같이 되었더라
19. 여로보암의 그 남은 행적 곧 그가 어떻게 싸웠는지와 어떻게 다스렸는지는 이스라엘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니라
20. 여로보암이 왕이 된 지 이십이 년이라 그가 그의 조상들과 함께 자매 그의 아들 나답이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본문 주해)
1~3절 : ‘그때’는 여로보암이 유다에서 온 선지자의 예언을 듣고도 여전히 그 악한 길에서 돌이키지 않은 ‘그때’라는 뜻이다.
여로보암이 자기 아들 아비야가 병이 들자 아내로 하여금 변장을 하고 아히야 선지자를 찾아가게 한다. 아히야는 자신이 왕이 될 것을 말한 선지자이다.
여로보암은 벧엘과 단에 산당을 세우고 금송아지를 만들고 제사장을 세웠지만 그것이 가짜임을 아는 것이다. 그래서 자기 아들이 병이 들자 아히야 선지자에게 아내를 보낸 것이다.
‘떡 열 개와 과자와 꿀 한 병’은 평민으로 변장하였으니 그에 합당한 예물로 준비한 것이다.
4~11절 : 아히야 선지자는 늙어서 눈이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먼저 하나님께서 아히야에게 누가 올 것과 어떠한 문제를 물으러 올 것인가 그리고 그에 대한 답변까지 말씀해 주신다.
먼저 여로보암의 잘못들이 열거된다.
여로보암이 다윗의 길을 따르지 않고 우상 숭배에 빠졌던 여로보암의 이전 사람들보다 더 악을 행했다는 것이다.
‘나를 네 등 뒤에 버렸다’는 것은 하나님을 경멸하고 무시했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여로보암의 후손들을 마치 길에 굴러다니는 똥을 치우는 것과 같이 조금의 미련도 없이 쓸어버리겠다는 말씀을 주신다. 그리고 그들의 시신조차도 온전하게 보존되지 못하고 아무렇게나 버려져 들개들에게 먹힐 것이라는 말씀이다.
12~13, 17~18절 : 하나님께서 여로보암의 가문을 쓸어버리시는 중에 한 아이를 먼저 취하여 가시는 것이다. 오직 이 아이만 묘실에 묻히고 그를 위하여 슬퍼하며 장사할 것이라고 한다.
그 이유는 그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향하여 선한 뜻을 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런데 여로보암의 자식이 어떻게 이런 선한 뜻을 품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으니 은혜라고 할 수밖에 없다.
한편, 학자들은 아비야가 아버지의 종교정책을 반대하고 남 유다에 망명하는 레위인들을 많이 도와준 청년이었다고 한다. 그것을 여호와를 향한 선한 뜻이라고 표현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선한 뜻으로 인해서 그는 먼저 죽음을 맞이하는 복(?)을 누리게 된다.
여로보암의 아내가 집에 이를 때 아히야 선지자의 말대로 아이가 죽는다.
어쨌든 그는 험한 꼴을 당하지 않고 열조의 묘실에 매장될 수 있었고, 온 백성의 애도를 받으며 죽는다.
14~16절 : 여로보암은 산당과 금송아지만 아니라 아세라를 만들어 여호와를 진노하게 하였다. 그러므로 여로보암의 죄로 인하여 이스라엘을 버리시는데 이는 왕 자신도 범죄하고 이스라엘로 범죄 하게 한 것 때문이다.
이스라엘은 왕 한 사람이 잘하면 백성들이 다 구원을 받고 왕 한 사람이 잘못하여 나라가 망한다. 이런 것을 대표원리라고 한다.
“그런즉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 같이 한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
한 사람이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 같이 한 사람이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롬5:18~19)
19~20절 : 여로보암은 22년간 다스리면서, 전쟁도 치르고 왕으로서 나라도 다스렸다. 그러나 열왕기서의 저자에게 그런 것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여로보암의 신앙적인 면이다.
그는 유사 신앙을 제정함으로써 대대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길로 행하여 죄를 범했다’라는 악한 왕의 기원으로 불린다.
(나의 묵상)
여로보암의 죄를 나열하고 그 가문의 멸망을 예언하는 긴 본문 중에 반짝이는 한 구절이 있다.
바로 13절이다.
“온 이스라엘이 그를 위하여 슬퍼하며 장사하려니와 여로보암에게 속한 자는 오직 이 아이만 묘실에 들어가리니 이는 여로보암의 집 가운데에서 그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향하여 선한 뜻을 품었음이니라”
하나님을 향한 선한 뜻을 품은 아비야이다.
성경에는 그를 ‘아이’라고 하는데, 학자들 간에는 ‘청년’이라고도 한다. 그가 아버지의 종교정책을 반대하고 남 유다에 망명하는 레위인들을 많이 도와준 청년이었다고 하는 해석이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그는 아버지를 이어 왕이 되지도 못하고 일찍 죽었다.
그런데 그 요절(夭折)이 그에게는 복이 된 것이다.
아히야 선지자를 통해 선포된 여로보암 가문의 멸문지화는 끔찍하다. 그러나 그는 그것을 당하지 않고 하나님께로 갔다.
“그의 경건한 자들의 죽음은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귀중한 것이로다”(시116:15)
사람들은 오래 산다고 복 있는 인생이 절대 아니라는 것을 말하지만, 건강하고 돈만 있다면 다들 오래 살기를 바란다.
그러나 주 안에 있는 자들은 또 다른 생각이다.
하루를 더 살면 더 많이 죄 짓는 존재라는 것을 알기에 한시라도 빨리 주님 곁으로 가는 것이 최고다.
그러나 몸으로 이 땅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여러 가지 미련 때문에, 입으로는 ‘천국, 천국’ 하지만, ‘지금은 아닙니다’를 외치지 않는가 말이다.
나는 예수님이 사신 세월의 배나 살았다.
그러나 복음을 알고 생명의 삶을 산 지는 10년이다.
이 10년 동안의 세월이 그 앞 56년의 세월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귀한 무게가 있다.
물론 그 앞의 세월이 무가치한 것은 아니다. 그 세월도 주님께서 허락하신 것이니 소중하다.
그러나 복음을 알고 말씀으로 주님과 교제하며 산 10년의 세월의 기쁨은, 그 전 56년 세월을 다 합친 것보다 크다.
오늘 아비야의 요절(夭折)이 주님 안에서 죽는 죽음임을 본다.
주님께서 소중히 여기시는 죽음이니 얼마나 오래 살았는가 하는 것이 복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것임을 생각한다.
주님께서 나를 언제 부르시든지 이미 나는 충분한 삶을 누린 것이다.
이미 영생을 누리는 자요, 이미 하늘에 앉히운 자가 되었으니 아쉬울 것이 없다.
(묵상 기도)
주님,
여로보암의 가문에 아비야가 있음이 얼마나 반가운지요?
왕이 되기 전에 일찍 데려가신 것이 그의 복입니다.
남의 일이라 함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마음임을 주님이 아십니다.
저로 하여금 오늘에 이르기까지 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복음을 알고 영생의 교제를 하는 삶을 살게 하셨으니 저의 지복입니다.
남은 세월 주님의 기쁨의 무게를 더하는 삶을 살다가 천국 가게 하옵소서.
성령님,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