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 기도)
주님,
금요일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오늘의 모든 일정을 주관하여 주옵소서.
사람이 계획을 세울지라도 이루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니
비록 더디 갈지라도 잠잠히 기다립니다.
말씀 앞에 나아갑니다.
시기심과 부정성을 십자가에 못 박습니다.
주님의 보혈을 의지합니다.
정결한 마음 주시옵소서.
성령님, 말씀을 조명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본문)
38. 엘리사가 다시 길갈에 이르니 그 땅에 흉년이 들었는데 선지자의 제자들이 엘리사의 앞에 앉은지라 엘리사가 자기 사환에게 이르되 큰 솥을 걸고 선지자의 제자들을 위하여 국을 끓이라 하매
39. 한 사람이 채소를 캐러 들에 나가 들포도덩굴을 만나 그것에서 들호박을 따서 옷자락에 채워가지고 돌아와 썰어 국 끓이는 솥에 넣되 그들은 무엇인지 알지 못한지라
40. 이에 퍼다가 무리에게 주어 먹게 하였더니 무리가 국을 먹다가 그들이 외쳐 이르되 하나님의 사람이여 솥에 죽음의 독이 있나이다 하고 능히 먹지 못하는지라
41. 엘리사가 이르되 그러면 가루를 가져오라 하여 솥에 던지고 이르되 퍼다가 무리에게 주어 먹게 하라 하매 이에 솥 가운데 독이 없어지니라
42. 한 사람이 바알 살리사에서부터 와서 처음 만든 떡 곧 보리떡 이십 개와 또 자루에 담은 채소를 하나님의 사람에게 드린지라 그가 이르되 무리에게 주어 먹게 하라
43. 그 사환이 이르되 내가 어찌 이것을 백 명에게 주겠나이까 하나 엘리사는 또 이르되 무리에게 주어 먹게 하라 여호와의 말씀이 그들이 먹고 남으리라 하셨느니라
44. 그가 그들 앞에 주었더니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먹고 남았더라
(본문 주해)
본문은 엘리사를 통해 나타난 두 가지 급식 기적이다.
38~41절 : 첫 번 기적은 먹을 수 없는 양식을 먹게 만든 기적이다.
흉년에 엘리사가 길갈에 오자 선지자의 제자들 백 명이 엘리사 앞에 앉는다.
엘리사가 사환에게 큰 솥을 걸고 국을 끓이라고 한다. 여기서 국은 걸쭉한 죽처럼 먹는 주식을 말한다.
흉년에 먹을 것이 없으니 들에 나가서 야생 열매를 가져다 죽을 끓여 나누어 먹게 하는데 그 솥에 죽음의 독이 있다고 하는 것이다.
이것은 그들이 먹은 양식에 실제로 죽음을 불러오는 독이 들어있다기보다는 평소에 먹는 음식을 곁들이지 않고 들포도 덩굴을 지나치게 많이 먹어 탈이 난 것이다.
엘리사가 밀가루를 가져오라고 하여 그 밀가루를 솥에 뿌리니 음식의 균형을 복원된다. 즉 그 음식은 탈이 나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
42~44절 : 두 번째 기적은 부족한 양식을 풍성하게 채우는 기적이다.
바알살리사에서 온 사람이 처음 익은 보리로 만든 보리빵 20개와 자루에 가득 담은 햇곡식을 하나님의 사람에게 가지고 왔다.
북이스라엘은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는 세상이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않은 칠천 명을 남겨 두셨던 것이다. 이들은 처음 익은 곡식을 바알의 제단에 바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지자에게 가져온 것이다.
여호와께 바친 그 맏물을 엘리사가 받아 제자들을 먹이게 한다.
그런데 그 양이 너무 적아서 백 명이 먹을 수 없다는 말을 하는 사환에게 ‘무리에게 주어 먹게 하라’고 거듭 말한다.
그 사환이 그것을 백 명이나 되는 사람들 앞에 내놓자, 여호와의 말씀대로 무리가 배불리 먹고 남는다.
엘리사를 통해 나타난 두 가지 기적-가루를 독이 든 솥에 넣음으로 독이 제거되는 것과 보리떡 20개와 채소 한 자루로 백 명의 사람이 먹고도 남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으로 자기 백성을 살리시는 처음 익은 곡식을 보여주시는 것이다.
모세 오경에서 처음 익은 곡식이나 열매가 하나님께 드려지는 것이나 처음 태어난 장자나 처음 태어난 짐승의 수컷이 하나님께 바쳐지는 것이 다 그리스도의 희생을 보여준다.
이러한 내용을 그리스도의 영이 임한 선지자들을 통하여 보여주시는 것이다.
또한 엘리사의 두 가지 기적은 예수님의 오병이어의 기적을 예시한다.
예수님은 오병이어의 기적에서 썩을 양식을 구하는 자들에게 썩지 아니할 양식을 제시하셨고, 결핍의 실존인 인생에게 풍성한 생명의 떡을 주신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썩을 양식을 구하는 무리에게 썩지 아니할 양식을 주신다. 인간은 이생의 필요로 인하여 저마다 신을 찾는다. 그리스도인이라도 처음에는 썩을 양식, 곧 이생의 필요를 위해 예수를 찾는다.
그러나 그에게 영생으로 인도하는 복음이 들려지면, 생명의 떡으로 생명을 얻고 또 풍성히 누리게 되는 것이다.
(나의 묵상)
오늘도 성령께서 구약의 복음을 듣게 하신다.
엘리사를 통하여 보여주시는 두 가지 급식 기적은 모두 예수 그리스도를 예시하기 때문이다.
나는 예수님을 알지 못하였을 때 썩을 양식만을 구하던 자였다.
그런데 내가 구한 그것들이 썩을 양식이란 것을 알지 못했다. 그저 세상 물질에 너무 과욕을 부리지 말라는 훈계를 하기 위해 썩을 양식이란 표현을 썼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쨌거나 당시 그 썩을 양식이 내게는 빛난 보배처럼 보였다.)
동시에 생명의 양식에 대해서도 전혀 알지 못했다.
물론 생명의 양식이란 표현을 듣기는 했을 것이지만, 그런 양식이 정말 있다는 것은 알지 못했다. 썩을 양식을 오해했듯이 생명의 양식 역시 우리의 필요를 좀 고상하게 표현한 것으로 생각했었다.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점점 알아가게 되니 이젠 썩을 양식과 생명의 양식에 대한 구분이 확연하다.
썩을 양식은 그저 아무 소용없는 것이라는 차원을 넘어선다.
그것은 내 영혼까지 썩게 만들어 생사를 구분 못하고 영멸의 길로 달려가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오병이어의 기적 후 예수님께서 생명의 양식에 대해 자세히 말씀하셨지만, 많은 이들이 알아듣지 못하고 주님을 떠난다.(요6:66)
그들처럼 썩을 양식 속에 파묻혀 살면서도 그것을 더 움켜쥐지 못해 안달이 난 삶을 살던 내가 느닷없이 생명의 양식에 귀를 기울이게 되고, 그것을 구하는 자가 된 것은 전적으로 성령님의 역사요, 하나님의 은혜인 것이다.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요10:10b)
생명의 양식을 모르니 나는 이 말씀도 오해했었다.
예수님을 통해 구원받은 자가 되었으니, 더 이상 옛사람의 생명으로 사는 자가 아니라, 아들의 생명으로,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 속에 더 풍성한 삶을 사는 것임을 몰랐던 것이다.
참으로 자기식으로 해석하고 이해하였다.
‘예수님께서 나를 구원하여 주셨으니. 이제 세상 것을 더 풍성히 얻어, 예수 믿으면 이렇게 잘된다는 것을 세상에 보여주자’ 라고......
이제 내게 생명의 양식을 주실 뿐만 아니라, 풍성하고도 넘치게 하셔서, 또 다른 영혼들에게로 흘러가고 나누게 하시니 감사 또 감사뿐이다.
(묵상 기도)
주님,
제게 생명의 양식을 주시니
썩을 양식 구하던 것을 그칩니다.
제게 풍성한 생명의 양식을 주셔서 지체들과 나눠 먹고 마시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날마다 이 양식을 공급해 주시는 성령님을 더욱 의지합니다.
일본에서 복음을 전하는 복음생명 선교팀의 건강을 주장하여 주옵소서.
오늘 마지막 시간까지 주의 복음이 힘 있게 선포되게 하옵소서.
기도로 함께 하는 저희들의 간절한 마음도 받아 주셔서
승리의 전보를 듣게 하옵소서.
성령님, 붙들어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