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덩이처럼 불어난 치료비를 감당하지 못해
반식물인간으로 살아가는
딸의 인공호흡기를 떼어내 살인죄를 적용받은
어느 가난한 가장의 이야기가 슬프게 들려옵니다.
부도난 이후 건강보험료를 내지 못해
몸이 아파도 병원갈 엄두를 내지 못하는
가난한 이웃의 이야기도 예외는 아니지요.
해결되지 않는 인간의 질병..
그나마 발달된 의학의 도움을 받는 사람들과는 달리
여전히 가난한 이들에게는 그림의 떡입니다.
시민단체들은 정부의 의료정책과 관심이
저들의 아픔을 메워야한다고 하지만
그 목소리는 너무 작아 보이고
모든 사람들이 마음껏 치료받는 시대는 멀어만 보입니다.
경우가 조금 다르긴 하지만
예수님께서 한동네에 오셔서
병자들을 고쳐주시는 자리에
여러 명의 사람들이
한명의 중풍병자를 데려온 적이 있었습니다.
“한 중풍병자를 사람들이 침상에 메고 와서
예수 앞에 들여놓고자 하였으나
무리 때문에 들어갈 길을 얻지 못한지라
지붕에 올라가 기와를 벗기고
병자를 무리 가운데로 예수 앞에 달아내리니“(누가5:18-19)
주님의 저들의 믿음을 보시고
병자를 치료하여 주셨지요.
혼자서의 힘으로 올 수 없는 자리에
여러 명의 도움으로 가능했던 것입니다.
아침에는 정말 오랜만에
가슴 뭉클한 뉴스를 보았습니다.
가난한 목사들이 모여서
수재를 당한 사람들을 위해 집을 짓는다는
훈훈한 이야기였습니다.
어려움에 처한 이웃을 돕는 일에
가진 자들이 거액을 쾌척한다면
훨씬 쉽고 간단하다고 생각하겠지요.
하지만 세상은 그리 간단하지가 않습니다.
오히려 중풍병자의 침상 한 귀퉁이를 잡았던
이름모를 한 사람의 도움이나
가난하지만 함께 마음과 힘을 모으는
선한 이웃들이 훨씬 빠르고 좋을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아픔 때문에
눈물짓는 이가 없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