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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가,
"너는 왜 태어난 것 같으냐."
라고 물어본다면.
나의 대답은…….
"누군가를 연모하기 위해서입니다."
일 것이다.
하지만 나의 단말마적인 고초는,
내 심장이 그 누군가가 누구인지 모른다는 것.
내 머리는 알지만, 내 심장이 모른다는 것이다.
환 향 녀 (還 鄕 女)
<017>
"뭐라 하였느냐."
"………그, 그것이………."
"내 아무리 청나라 말을 못한다 한들, 천월 태자가 단지 아름다워 부럽다는 말만
하지 않은 것 쯤은 알고 있다. 무어라 하였느냐."
"…………."
"……짐이 하문하질 않느냐!"
액정서에서 주로 보관했던 벼루와 상소문 다섯이 날라갔다.
우지끈, 폭삭 찌부러진 봉장(鳳欌)의 굉음에 축소됀 통역관의 코가 저면에 닿았다.
"주, 주상 전하!"
"대답하여라!"
"그, 그, 그……. 그, 그, 그것이………."
통역관의 충혼의백(忠魂義魄)을 알리가 만무한 인조 눈에 핏발이 섰다.
"네 이놈! 연상도 던져야 대답을 하겠느냐!"
"……흐윽………전하………전하……………-"
통역관의 앞머리가 대경실색 해진 얼굴을 뒤덮고
그의 눈에선 안타까움의 눈물이 흘렀다.
어쩌다가 저렇게 돼셨는지. 어쩌다가….
인조의 폭력는 청잣빛의 하늘의 청명한 날씨에도 예외는 없었다.
"대답해! 네 이놈! 대답하라고! 대답하지 못하겠느냐!!"
삼배구고두(三拜九叩頭)을 올린 그 치욕 이후로,
청렴결백했던 성품이 저리 극악스러워졌다.
소소한 일에까지도 엄청난 짜증이 따랐다.
모든 역정이 눈과 손으로 폭주병진(輻輳幷臻)하자,
통역관은 불가부득, 자신이 듣기에도 오만한 천월 태자의 말을 고해야 했다.
"그, 그것이……. 천월 태자께서………."
"천월 태자가?!"
…교태전에도 없다던 지붕 위의 용마루가 특징인 근정전에서의 절규.
"…………비록………비록………아바마마의 신하이시지만……….
한 나라의 국왕이시옵고………. ……자신과 동등하니……………-
황공무지하단 말을 삼가하라고………………-"
…미동이 뚝 멈췄다.
인조의 입가에 경련이 일어났고,
통역관은 죽을 죄를 졌다며, 자신의 살지무석의 용서를 빌 뿐이었다.
─결국-.
[우당탕탕-]
"전하! 전하!"
"카아아악! 천월 태자 네 놈을! 네 놈이! 네 놈이! 기껏 어여쁘게 봐줬더니- 네 놈이!!"
급기야 연상까지 벽과 충돌하며 산산조각이 나버리고,
지축을 울리는 악에 통역관은 문론, 상궁들과 나인들까지 포함해
자신에게 불똥이 튈까 소마소마했다.
"내가 생각했던 대로군.
……내가 알아보란 건 알아보얐느냐."
"예, 주인님."
그리고 나무 위에서 정황을 지켜보고 있던 그의 물음에,
알아내자마자 소만왕림(掃萬枉臨)한 이훈(異暈)이 아사라외하게 목례를 했다.
초록색의 파릇파릇한 나뭇잎을 바닥에 뿌리고만 있는 그에게
이훈이 본부대로 자신이 알아낸 것을 보고했다.
"답응의 본명은 유화영(柳花影).
영의정의 외동딸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자는 답응의 호위무사였더군요."
"………어디에 있는지는?"
"그 무희년이 가지고 있던 서찰이 많은 도움이 돼었습니다.
알아보니, 답응과 함께 병자호란 도중 실종돼 생사가 불명하다 합니다.
또한, 그 서찰에 씌어있는 대로, 그 가문의 모든 하인과 무사들은
우쪽 팔뚝에 충(忠)자 문신을 새겨야 한다고 합니다."
그의 눈이 날카로워졌다.
이훈을 곁눈질로 노려보며 그가 저음으로 말했다.
"무희년은 답응의 부탁으로 찾고 있는 게 분명해.
답응은 그 자를 찾으면, 분명히 무슨 일이 있어도 보호하려 들거다.
그 전에 반드시 그 자를 찾아야 한다.
알았느냐?"
"예."
"……그리고, 그 초애란 년. 그 년에 대해서도 알아봐.
누굴 통해서 정보를 얻고 있는지. …영원히 입막음 시킬 수 있는 것도."
"예."
"………가봐라."
"…그럼 소인은 이만."
바람처럼 그가 사라진 곳엔
떨어진 나뭇잎 몇개만이 뒹굴고 있을 뿐이었다.
***
"여긴 어디지?"
그의 질문에 슬프면서도 환하게 웃어보이는 화영이었다.
여전히 학들의 보금자리인 이 들판도 아주 오래간만이었다.
"아까 보아하니 조선말을 할 줄 아시는 것 같던데…."
그는 스산한 바람에 자신을 힘없이 맡기며 동문서답하는 그녀를 온윤하게 바라보았다.
염연히 그녀에게 뻗던 가느다란 손가락들이 그물에 걸린듯,
나아가지 못한채 되돌아왔다.
"…간단한 것들은 왠만큼 다 안다.
예전부터 친목이 꽤 두터웠던 나라이니 만큼, 왕시(往時)
청나라말과 함께 터득했으니까."
"…………………."
아까 남사당 패거리의 사내의 질문에 답하며 값을 지불했던 것이
마냥 신기했던 모양이었다.
그는 두 손을 등 뒤로 첨첨 모으고서 아람답게 날아다니는 학들을 응시했다.
아아라하게 바라다보이는 삼삼한 상록수들의 삼림(森林) 위로 편연지를 풀은듯한 하늘이 고왔다.
"……백성들이 원하는 무릉도원이 뭔지 알아내셨습니까?"
묵묵히 언덕과 들판, 민둥산, 그리고 평원이 이룬 절경의 매력에 젖어있는 월운 옆에
털썩 앉아버리며 화영이 쓸쓸한 목소리로 말했다.
"백성들의 무릉도원은 권력으로 백성들을 박해하는 자들이 없는 세상입니다.
헌데 이 곳은─."
………나와 님이 처음으로 서로의 연모를 깨달았던 곳.
나에겐 없어져서는 절대로 안됄 그런 쉼터.
…나의.
"……제 무릉도원입니다."
월운은 가만히 애처롭게 달리는 잔디를 주시하는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괴인 눈물을 살짝 훔쳐낸 그녀가 이내 밝게 웃으며
월운을 올려다보았다.
………태양보다 더 밝고 순수한 그 미소가.
왜 내 눈엔 칠흑 보다 더 어두워 보이는 건지.
"왜 굳이 무희옷을 입고 오셨다고 물으셨지요."
그는 아무런 위로도 해주지 못한채,
울음을 삼키고 애써 웃음을 지속하려는 그녀에게 수긍의 뜻으로 끄덕일 뿐이었다.
일어선 그녀가 그를 서글프게 응시했다.
"저기. 저 언덕 바로 위에 서계십시오.
바로 옆에서 추면 쑥수러워 그럽니다."
"………추다니?"
의심쩍은 그의 목소리에 뒷통수를 긁적였다.
"제가 잘하는 게 춤 밖에 없어서 그럽니다.
대신 최선을 다해 출 것이니, 보답으로 섭섭치 않으실 것입니다."
"………아…………."
그제야 이해가 간 월운은 잠자코 그녀가 가르킨
언덕으로 올라갔고, 호흡을 가다듬으며 화영은 태세를 교정했다.
…저를 맨 처음 만나셨을때가…. 황후 마마의 생신 연회였으니….
꽤 멀리 떨어져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을 터인데….
보셨다는 것은…. 오랫동안, 자세히 보셨다는 것…….
자세히 보셨다면……. 아마………춤이 마음에 드셔…그러하신 것이겠지….
그렇게 무도곡(舞蹈曲)도 없이, 그녀는 천천히.
절로 감흥이 나도록, 유연성있게 돌기 시작했다.
"………………화………영……."
…활짝 펴지는 산홋빛의 치맛결과 접촉하는 탐나는 흑빛 머리카락.
호수의 여신의 물결을 연상케 하는 극치로 닫는 미백인 그녀의 팔들.
햇빛으로 꼬까옷처럼 오채로 물들여진 들판과 하나가 돼는 그녀의 농염한 몸짓.
그녀를 가꾸듯이 뇌쇄한 절색위로 떠있는 꽃구름들.
"…………위태로워 보이는 구나………-"
적어도 월운의 눈엔, 그녀는 너무나 위태로워 보였다.
그녀는 누란지세(累卵之勢)였다.
홍안박명이란 말처럼, 그녀는 당장이라도 사라질 것만 같았다.
…당장이라도 쓰러져 영영 자신을 떠나갈 것만 같았다.
"………너를 잡아두려는 건. 내 사리사욕일 뿐이겠지?"
계속하여 그녀에게 이것과 비슷한 질문을
혼잣말로 물어보게 됀다.
그만큼, 그녀의 속마음을 알고 싶었다.
……그 비랑이란 자를 연모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자신을 향한 아주 조각만큼의 마음도 없는지.
…………몹시 알고 싶었다.
…그때.
"맘에 들어?"
"응! 너무 예뻐."
다갈색의 눈동자가 참으로 다정한 남자와,
그가 선물한 것으로 추정돼는 머리장식을 들고 기뻐하는
평범한 외모의 여자가 월운 옆을 지나가고 있었다.
월운은 화영에게서 잠시 눈을 떼고 그들을 바라보았다.
…그는 놀랐다.
그들은 조선말이 아닌, 유창한 청나라말로 얘기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인상과 발음을 보아선,
여자 쪽만이 만주인인 것 같았다.
남자는 누가봐도 조선인의 인상을 하고 있었다.
"가장 듣고 싶은 말 아직 않하셨어요, 나희(娜熙) 낭자."
"무슨 말? 아, 그 말!"
더없이 행복한 그들의 대화에 그들에게 그가 부러움을 느낄 무렵,
월운의 심장을 멎게 하는 단 하나의 단어.
"고마워, 비랑!"
수전증에 걸린 것도 아닌데, 손이 갑자기 떨려왔다.
동명이인일거라고 열심히 부정을 하면서도,
월운은 이미 그 자의 우쪽팔을 거칠게 잡아챈 뒤였다.
"어?"
보행이 멈추고, 당황해하는 두 남녀.
"………이름이 비랑이십니까."
그들은 월운이 청나라 말을 쓰자 역시 놀란 눈치였다.
비랑의 팔뚝을 문득 내려다본 월운은, 선명하게 새겨진
충(忠)자 문신을 보고 특이하단 생각을 했다.
비랑이란 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제가 비랑입니다. 헌데 왜?"
월운의 두 눈이 흔들렸다.
지긋이 입술을 깨물며, 그가 물었다.
………안다 한다면.
안다고 한다면. 난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안다고 한다면……!!
"………조선인이십니까?"
"아, 네. 제 부인이 만주인인지라, 청나라말을 씁니다."
부인?
…………부인이 있다라…….
…부인이 있다라……………….
"………………그럼 혹시……."
안다고 한다면.
………………………………난………난…………-
"……화영이란 처자를 아십니까?"
제발……….
…………내가 그녀를 놔주지 않아도 돼게.
제발 모른다고 해주길.
………모른다고…………모른다고………!!………-
…하지만.
월운의 심장에 잔인하게 박혀버린 그의 말과 어두워진 눈초리.
"………네가 화영 아가씨를 어떻게 아는 거냐."
철렁 내려앉아버린 그의 심장을 아는지 모르는지.
화영은 여전히 그 자세로, 그 아름다움으로.
저 언덕 너머에서 돌고. 돌고. …또 돌고 있었다.
***
<눈물과의 다과 타임>
네네ㅠ 비랑이, 그 화영의 비랑이. 부인이 있습니다ㅠ
그 부인과 어떻게 만났는지는 번외 1에서 읽으셨죠?
칼에 맞은 비랑을 부축해 급히 데려가 살린 여자가 바로 나희입니다.
아아……. 화영에게 너무 미안해요. 화영이 알면 너무 아파할탠데ㅠ
가슴 저미게 하고 스토리가 이어가게 하려면 꼭 나희도 있어야 하고 해서.
아무튼, 이번엔 그의 계획을 조금 더 알려주는 편이었습니다-ㅅ-
그리고 맨 위에 월운이 그런 말을 해버려 인조가 매우 화를 내는 것.
이것 또한 아주 중요합니다. 온 소설이 거기에 걸려있거든요-_-;
아 최대한 슬프고 애절하게 쓰려 했는데 죄송합니다(__)
역시 눈물냥의 실력은 어쩔 수 없는 걸까요ㅠㅠ
아 그리고 배경!! 너무 이쁘지 않습니까!!!
이 환상적인 배경을 만들어주신 [포샵·순수] 님께 또다시 너무나 감사를 드립니다.
정말 마음에 쏘옥 들어요>_<!
저번편에 꼬릿말을 달아주신 티어-Tear, 도중이, hyelee, ㅎr늘빛 인생, 한성깔하는소녀 님들. 정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__)
그럼 눈물냥은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첫댓글 오...1빠의 이 따끈따끈한 맛...히히...다음편도 기대...^^
꼬릿말 정말 고마워, 언니!^^
배경이 넘 이뽀~!!화영 불쌍해서 어떻게해...
꼬릿말 감사해요ㅠ 네.. 제가 쓰는 것이지만 화영이가 너무 불쌍해서ㅠㅠ
천월이하고 화영이 행복할까요?
그건 완결에서 결단이 나겠죠?^^; 하지만 전체적으로 100% 새드 소설이에요^^;; 꼬릿말 감사합니다!
화영 불쌍해서 어떻게해ㅜㅡㅠ
ㅠㅠ 소설에서 화영, 월운, 은유 등.. 다 불쌍하게 나올거에요ㅠㅠ 꼬릿말 감사합니다ㅠ
담편원츄예용.>0<
다음편 최대한 빨리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꼬릿말 감사드려요!
어뜨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