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회
원제 : Detour
1945년 미국영화
감독 : 에드가 G 울머
출연 : 톰 닐, 앤 새비지, 클라우디아 드레이크
에드먼드 맥도날드
1945년 작품인 '우회'는 1시간 10분 남짓한 짧은 영화지만 굉장히 흥미진진한 내용입니다. 영화 끝나고 '한 30분 더했으면' 싶을 정도로 오히려 짧은 상영시간이 아쉽게 느껴집니다. 1940년대 메인 장르였던 필름 느와르 영화이고, '검은 고양이' '카네기 홀' '몬테크리스토 백작부인' 등을 연출한 에드가 G 울머 연출작이고, 국내에는 개봉된 기록이 없습니다. 매우 생소한 배우들만 출연하는 저예산 영화지만 흑백 필름 느와르가 주는 긴박함이 넘칩니다. 2018년에 리마스터링 되면서 훨씬 좋은 화질로 감상할 기회가 제공되고 있습니다.
한순간의 선택이 큰 화를 불러온 내용입니다. 사악한 여자에게 재수없이 얽힌 남자가 그녀에게 벗어날 수 없는, 빼도박도 못한 상황에서 애를 먹는 내용이지요. 뉴욕의 어느 클럽에서 피아노 연주를 하는 앨(톰 닐)은 그 클럽에서 가수로 노래하는 수(클라우디아 드레이크)와 연인관계입니다. 둘은 가난한 연인인데 가난때문에 계속 결혼을 미루던 수는 아예 LA의 할리우드로 가서 성공하려고 합니다. 할리우드에서 성공하는게 만만치 않다는 걸 아는 앨은 말리지만 수의 생각을 꺾을 수 없습니다. 수가 떠난 뒤 공허한 나날을 보내던 앨은 그녀와 통화하고 수가 아직 자리를 못잡고 고생하고 있다는 걸 알고 그녀를 만나러 가기로 결심합니다. 버스비를 아끼기 위해서 히치하이크를 하여 조금씩 서부로 이동하던 앨, 커다란 미국 대륙의 끝에서 끝으로의 이동은 길고 험난합니다. 그런 와중에 운좋게도(물론 다가올 앞날을 예측할 수 없었기에) LA로 가는 호탕한 인물 해스켈(에드먼드 맥도날드)이라는 신사의 고급차에 얻어타게 됩니다. 이제 그대로 LA로 가면 되는 일이죠.
이 잔뜩 찌푸린 남자의 얼굴만 봐도
뭔가 안좋은 일이 있음이 짐작된다.
클럽 피아니스트와 가수
둘은 가난한 연인이다.
성공하겠다고 LA로 떠난 연인을 찾아
버스비를 아끼려고 히치하이크로 뉴욕에서 LA까지
긴 여정을 하는 남자
운좋게 LA까지 바로 가는 차를 얻어탔는데
그게 큰 화근이 될 줄이야....
인생을 살면서 뜻밖에 운이 좋았다 라고 생각되는 경우가 가끔 생기죠.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렇게 운이 좋았다고 느껴지는 순간이 오히려 악몽의 순간이 되기도 합니다. 사람 팔자는 끝가지 가봐야 알죠. LA로 가는 도중 해스켈은 팔목의 다친 상처를 보여주며 어떤 여자를 태웠다가 손톱에 다친 상처라고 하며 그 여자 이야기를 합니다. 앨은 무심히 그 이야기를 듣지만 그게 결국 자신의 운명이 될 줄이야.... 긴 여정으로 둘은 번갈아 운전하는데 앨이 운전하던 밤길에 비가 쏟아지기 시작하고 앨은 오픈카의 지붕을 덮기 위해서 자고 있는 해스켈을 깨우지만 그는 움직이지 않습니다. 그를 깨우려고 차 옆문을 여는데 밖으로 떨어진 해스켈은 돌에 머리를 부딫치고 움직이지 않습니다. 돌연한 해스켈의 사망. 앨이 죽인건 아니지만 그 상황에서는 누가 봐도 차와 돈을 훔치기 위해서 살해한 것으로 누명을 쓸 정황입니다. 정말 난감한 상황, 앨은 할 수 없이 해스켈의 시체를 숨기고 그의 돈과 신분증을 가지고 스스로 해스켈로 위장한 채 검문을 통과하고 거의 LA근처에 옵니다.
불의의 사고가 있었지만 그대로 수를 만나러 갔다면 아무 문제 없었을 것을....가는 도중 어떤 젊은 여성이 히치하이크를 했고 앨은 그녀를 태우게 됩니다. 그런데 베라(앤 새비지)라는 이름의 그녀는 단번에 앨이 그 차의 주인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차주인 해스켈을 죽인것 아니냐고 다그칩니다. 베라는 바로 해스켈이 이야기했던 그 여자, 손톱으로 팔목에 상처는 냈던 그녀였습니다. 정말 우연스럽게도 베라는 다시 이 차를 타게 된 것이죠. 베라는 사악한 악녀였습니다. 그녀는 앨을 협박하고 해스켈에게 훔친 돈과 차를 팔아서 생긴 돈 모두를 자신이 갖겠다고 합니다. 돈보다는 빨리 베라를 만나는게 절실한 앨은 베라가 시키는 대로 하지만 차를 팔아서 돈을 건네줄때까지는 베라에게 벗어날 수 없는 현실이 괴롭습니다. 그래도 상황이 어쩔 수 없는지라 인내심을 가지고 베라를 대하면서 빨리 차를 처분하려고 합니다. 그때 예기치 못한 상황이 벌어지는데.....
상상속의 성공장면
사고는 예기치 않게 발생한다
악녀에게 꼼짝없이 걸린 남자
인생 포기한 듯한 만사가 귀찮아 보이는 초췌한 남자가 바에서 커피를 마시며 회상하는 형식으로 이야기가 전달됩니다. 남자는 관객을 대상으로 나레이션과 함께 자신이 겪어온 엄청난 일을 담담히 이야기를 합니다. 빠져나갈 출구가 없는 상황에 몰린 남자입니다. 제목이 우회라는 뜻의 detour 지만 제 생각에는 'A Dead End(막다른 골목)' 라는 제목이 더 어울려 보입니다. (그 제목은 윌리암 와일러 감독의 1937년 작품에서 쓰였습니다.) 악하지 않고 선량한 남자가 연인을 만나러 가면서 우연스럽게 겪은, 정말 의도치 않게 사건에 휘말리는 이야기입니다. 가엾은 남자지요. 결국 모든 일은 순리대로 풀어야 하는 법, 그렇지 않고 당장의 상황을 모면하려고 했다가는 더욱 일이 꼬일 수 있다는 나름의 교훈을 남겨준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남자는 '순간의 선택'을 후회하고 그때 그러지만 많았더라면 하고 회상하는데 이런 한순간의 선택의 문제로 볼 수도 있지만 제가 보기에는 오히려 일어날 수 밖에 없는 '운명'으로 바라보게도 됩니다. 남자가 베라를 태우지 않았더라면.... 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베라를 태운 건 애초에 해스켈의 타를 얻어타서 생긴 일이죠. 그럼 해스켈의 차에 타지 않았더라면... 이렇게 생각할 수 있지만 그것도 결국 연인인 수가 할리우드에 가지 않았더라면 발생하지 않았을 일입니다. 그렇다고 수를 원망해야 하는가? 그것도 결국 그 남자가 수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생기지 않았을 일입니다. 그럼 수를 만나지 않았으려면 그 클럽에서 일하지 않았으면 되는 것이고, 결국 피아노를 배우지 않았다면 그 클럽에 나갈 일도 없었겠죠. 애초에 피아노를 배운게 모든 문제의 근원? 그런식으로 따지고 보면 결국 '태어나지 않았다면 모든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는게 답이 되죠. 결국 살면서 마치 한 순간의 잘못된 선택에 의해서 모든 비극이 벌어진 것처럼 생각하는 일들이, 사실은 태어나면서 겪을 운명의 실타래였을지도 모르는 것입니다. 그 실타래를 따라 한발한발 필연적으로 나아간 것일 수 있는거죠. 그래서 삶에서 누구를 원망하고 탓할 수 없는 문제입니다. 모든 건 자신에게 필연적으로 닥칠 팔자일수도 있는 것.
악녀 베라가 쳐놓은 올가미의 덫은
너무 단단했다.
빨리 이 상황을 벗어나고 싶어하지만....
의도적으로 범죄를 계획하거나 죄를 지으려는 목적이 없었던, 그저 열심히 살아왔던 한 젊은 남자가 난감한 사건에 휘말리며 결국 막다른 코너에 몰리게 되는 안타까운 내용입니다. 1시간 10분이 채 안되는 시간동안 영화는 빠르게 사건이 진행되면서 흥미진진한 내용으로 다가옵니다. 저예산 필름 느와르 영화이고 유명 스타가 등장하지 않지만 무척 재미난 작품입니다. 아이다 루피노 감독의 수작 '히치 하이커'가 언뜻 연상되기도 하는 내용인데 '히치 하이커'는 두 남자가 매우 난감한 상황을 겪다가 결국 천신만고끝에 벗어나는 결말이지만 '우회'는 점점 수렁에 빠져들어가는 남자주인공의 안타까움이 많이 드리운 내용입니다. 짧고 어렵지 않은 내용이라 40년대 흑백 고전이지만 누구나 흥미롭게 볼 수 있는 영화지요.
ps1 : 빠져들면 헤어나지 못하게 흥미로운 장르가 1940-50년대 할리우드 흑백 필름느와르 입니다.
ps2 : 주인공 앨 역의 톰 닐은 매우 생소한 배우지만 거의 주연을 많이 한 인물입니다. 출연작이 대부분 러닝타임이 매우 짧은, 저예산 영화 전문 배우라고 할 수 있지요.
ps3 : 스털링 헤이든과 글로리아 그레이엄을 캐스팅하면 딱 어울렸을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ps4 : 1992년이 리메이크 된 기록이 있는데 45년작 주인공 톰 닐의 아들인 톰 닐 주니어가 주연한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톰 닐 주니어는 딱 이 영화 한편만 출연한 것으로 되어 있는, 그래서 아버지보다도 훨씬 '듣보잡' 입니다.
[출처] 우회(Detour, 45년) 흥미진진한 저예산 필름느와르|작성자 이규웅
첫댓글 오래 전 낙원동 허리우드극장 4층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울머회고전을 상영함.
'우회를 비롯 몇몇 필름을 스크린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