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의 창시자 예수 그리스도.(3)
종말에 하나님께서는 아들을 보내신다.
이는 율법 아래에서의 일을 온전케 하기 위함이다.
율법을 온전케 함이란 하늘의 질서로 완성한다는 말이다.
하늘의 질서로 완성한다는 것은
삼위 하나님 안의 교제의 질서,
삼위 하나님 간의 아무런 가리움이 없는 교제의 질서,
곧 성령 안에서 아버지와 아들 간의 교제 관계에 참여케 하신다는 말이다.
이러한 관계에 참여케 됨을 가리켜서 요한은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 안에 거한다.
내가 아버지로 인하여 사는 것같이 나를 먹는 사람도 나로 인하여 산다.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우리는 하나님 안에 거한다.”
라고 말한다.(요6:56-57)
이러한 하나님과의 교제에 참여하는 권리가 자녀(아들)된 권세이다.(요1:12, 갈4:4-5)
이는 옛 언약이 하늘의 질서로 완성된 결과이다.
옛 언약의 내용은
여호와께서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의 하나님이 되시고 그들은 여호와의 백성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종말에 하나님께서는 믿는 자들의 아버지가 되시고
그의 백성은 하나님의 아들로 세워진다.
율법 아래에 있는 자,
곧 휘장 밖에 세워진 종된 백성을 구원하셔서 하늘에 앉은 아들로 세우시는 것이다.(엡2:6)
성경이 말하는 아들은 아무런 가리움이 없이 하나님과 가장 친밀하며 하나된 존재이다.
이러한 관계에서 하나님을 아버지로 아는 것이 영생이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아는 것이 참으로 하나님을 아는 것이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율법 아래에 있는 자를 구원하여 아들로 세우신다.
이는 삼위 하나님의 교제에 참여케 하신다는 뜻이다.
이것이 아들의 명분을 주신다는 의미이다.(갈4:4-5)
하나님의 아들이 된 자는 삼위 하나님 간의 온전한 교제의 질서,
성령 안에서 아버지와 아들 간의 교제에 참여한다.
그들은 하나님을 아버지로 알고 섬긴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아는 것이 영원한 생명이다.
이것은 이스라엘이 누렸던 생명의 완성이다.
모세율법은 옛 경륜의 완성체이다.
이스라엘은 율법 아래에 세워진 종된 백성이다.
율법 아래에 세워졌다는 것은 죄와 사망 아래에 매여있다는 말이다.
따라서 아무리 율법을 온전히 지키더라도 죄와 사망의 굴레를 벗겨내지 못한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종말에 아들을 율법 아래에 보내신다.
이는 율법 아래에 있는 자,
율법의 통치 아래에 거하는 경건한 백성들,
모세율법에 부착하여 하나님만을 바라는 남은 자들,
모세율법과 제도를 따라 하나님과 교제하던 제자들을 구원하기 위함이다.
따라서 예수의 가르침은 율법의 연장선이 아니다.
율법의 정신까지 구현하여 나타낸 일도 아니다.
이는 율법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일이다.
율법이 휘장 밖 땅에 대한 일이라면 예수의 가르침은 휘장 안 하늘에 대한 일이다.
율법이 휘장 밖 죄 아래에서 시행된 경륜이라면 예수의 가르침은 휘장 안 하늘의 질서이다.
왜 하나님께서는 종말에서야 하늘의 경륜을 나타내시는가?
하나님의 때, 곧 하나님께서 직접 나설 때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하늘의 문을 여시고 아들을 보내신다.
이는 율법과는 다르게 휘장의 장벽이 없는 시대를 여셨다는 말이다.
이는 하나님께서 직접 자기 백성을 대하시기 위함이다.
율법 아래에 있는 백성을 친히 대면하고 교제하기 위함이다.
따라서 예수의 공생애 사역은 모세가 명한 율법과는 전혀 다른 내용이다.
구약에서 하나님을 직접 대면할 수가 있던가?
예수께서는 율법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일을 시행하신다.
예수의 가르침이 모세의 율법과 다른 것이라는 사실은
산헤드린 공회의의 판결에서 잘 드러난다.
예수께서는 산헤드린 공회의 석상에서
“내가 하나님의 아들이다.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고 말씀하신다.(마26:61-65, 요2:19)
이러한 예수의 증거는 모세율법, 곧 구약성경과 배치되는 주장이다.
따라서 산헤드린 공회의는
예수께서 율법과 다른 가르침을 전파하는 이단의 괴수라고 생각하게 된다.(행24:5)
이처럼 그리스도의 복음과 모세의 율법(구약성경)은 그 내용이 다르다.
신구약 교회의 본질이 무엇인가?
하나님과의 교제에 참여하는 백성이다.
그런데 신구약에서의 하나님과의 교제 방식과 내용이 다르다.
율법 아래에서 하나님과의 교제는 어떻게 이루어졌는가?
이는 모세가 제시한 성전제도가 잘 보여준다.
모세율법과 성전제도는 죄 아래에서 시행된 경륜이다.
따라서 율법 아래의 하나님과의 교제는 죄의 장벽이 가로막고 있다.
제사장이 화목제를 드리면 하나님께서는 기쁘게 흠향하신다.
이는 하나님께서 화목제물을 드셨다는 말이다.
하나님께서 흠향하신 후에 내어온 제물은 제사장의 양식이 된다.
제사장은 하루에 두 번씩 하나님의 상에 열두 덩이의 떡을 진설한다.
하나님의 상에서 물려 내온 응식은 제사장의 양식이 된다.
이것이 율법 아래에서의 하나님과의 교제의 방식이다.
제사장의 먹고 마심은 성전 밖에 있는 백성들의 먹고 마심이다.
이러한 율법 아래의 먹고 마심은 휘장 밖 죄 아래에서의 먹고 마심이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내가 곧 생명의 떡이로라.
너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어도 죽었거니와 나는 하늘로서 내려오는 떡이다.
이는 사람으로 하여금 먹고 죽지 아니하게 한다.”
고 말씀하신다.(요6:48-50)
그렇다면 신약교회의 본질이 무엇인가?
삼위 하나님의 교제에 참여하는 새 인류이다.
복음에로의 초대는 생명의 교제에로의 초대이다.
생명에로의 초대는 하나님 앞에서의 먹고 마심이 핵심이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에 앉았다.(엡2:6)
따라서 우리의 먹고 마심은 하늘의 성소에서의 먹고 마심이다.
믿음 안에서 행하는 일상의 먹고 마심은 하나님 앞에서의 먹고 마심이다.
이는 삼위 하나님과의 교제에 참여하는 먹고 마심이기도 하다.
구약교회는 모세의 교회이다.
모세에게 속하여 여호와의 백성이 된 교회이다.
이는 휘장 밖 세상에 세워진 교회이다.
이는 아래로부터 나서 할례를 행하여 하나님의 언약에 참여한 땅에 속한 교회이다.
따라서 구약교회는 종과 어린아이의 교회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리스도의 교회이다.
그리스도에게 속하여 하나님의 아들이 된 교회이다.
이는 휘장 안 하늘에 세워진 교회이다.(엡2:6)
이는 위로부터 나서 영에 속한 사람으로 구성된 하늘에 속한 교회이다.
따라서 신약교회는 장성한 아들들로 구성된 교회이다.(롬8:15-17, 갈4:1-7, 계21:7)
구약교회는 중보자 모세의 영광에 참여하지만
우리는 하나님 보좌에 계시는 그리스도의 영광에 참여한다.
이는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신의 소유된 교회로 창조하셨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에게는 휘장의 장막으로 인한 날과 땅, 사람 사이의 등급이나 간격이 없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구속으로 휘장의 장벽이 사라졌기 때문이다.(엡2:11-22)
우리는 하나님의 교회이다.
그러나 더 탁월하게 말하자면 그리스도의 교회이다.
모세 언약은 아브라함 언약의 열매이다.
그리고 모세 언약의 내용이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율법이다.
그런데 모세율법 아래에서 주어진 구원과 은혜는 온전한 것이 아니다.
모세율법은 하나님을 아버지로 아는 영원한 생명을 주지 못한다.
이제 하나님께서 아들을 보내셔서 율법 아래에서의 일들은 하늘의 질서로 온전케 된다.
이는 옛 경륜의 완성체가 신약교회라는 말이다.
구약교회는 모세의 교회이다.
따라서 이스라엘은 모세율법에 부착하여 휘장으로 가리우신 여호와를 섬긴다.
그러나 우리는 그리스도의 교회이다.
따라서 우리는 믿음으로 하나님을 아버지로 섬긴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복음이 시행되는 그리스도의 교회인 것이다.
따라서 신약교회는 하나님의 아들된 자들로 구성된다.
신약교회는 사도들의 가르침 위에 서 있다.
제자들은 모세율법에 부착하였던 남은 자들이다.(요1:43-51)
예수께서는 자신의 나라 기초로 세우기 위하여 가장 먼저 제자들을 부르신다.
그들은 예수의 부르심에 즉시 반응한다.
이는 모세율법에 의거한 삶을 버리고 예수께 나아와서 함께 거하는 일이다.
예수께 나아옴은 율법 통치에서 하나님의 새로운 통치에로 옮겨감이다.
따라서 사도들은 율법과 복음의 두 시대를 경험한 자들이다.
이는 하나님의 두 경륜인 율법의 통치와 그리스도의 통치를 경험한 자들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할 때에 항상 모세의 율법과 대비한다.
이는 율법 아래에서의 삶을 버리고 그리스도 복음 안에 거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구약 성경을 따라 하나님을 섬기지 말고
그리스도의 복음을 따라 하나님을 아버지로 섬기도록 하기 위함이다.
율법 아래에서 종처럼 살지 않고 하나님의 아들로 행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사도들이 사용하는 언어와 개념은 모세가 사용하던 언어와 개념이다.
따라서 사도들의 복음은 모세적이다.
신약교회는 옛 경륜의 종착점이다.
이는 하나님께서 임재하신 하늘의 성소이다.
구약에서 하나님께서는 휘장으로 가리우시고 임재하셨지만
신약에서는 휘장의 가리움이 없이 그의 백성과 하나가 되셔서 사신다.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 안에 그들은 하나님 안에 거하는 온전히 하나를 이루셔서 사신다.
따라서 사도들은 교회를 가리켜서 그리스도의 몸이며 지체라고 말한다.
이스라엘은 땅에 속한 양식, 곧 가나안땅의 소산물을 먹고 마셨다.
그러나 우리는 하늘로서 내려온 하늘의 양식,
예수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신다.
이는 땅에 속한 성전에서의 교제,
하나님과 제사장 사이의 이루어진 교제가 완성되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삼위 하나님의 교제에 참여한다.
이는 구원역사의 종점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기 때문이다.
모세는 하나님의 온 집에 충성한 종이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집을 맡은 아들이다.
이스라엘은 모세에게 속한 종된 백성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리스도에게 속한 아들된 자들이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아무런 가리움이 없이 친히 대면하여 우리와 교제하신다.
이처럼 아무런 간격이나 장벽이 없이 하나님과 온전히 하나가 된 관계를 가리켜서
사도들은 ‘그리스도의 몸’ 또는 ‘성령의 전’이라고 말한다.
하늘에 속한 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