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의 선물은 지식입니다
지식의 선물은 의견의 선물이 그런 것처럼 신덕(信德)과 결속된 또 다른 선물입니다. 더불어 이 세상의 힘겨운 상황들 안에서 믿음을 가지고 살도록, 자유롭고 기쁘고 민첩하게 믿음을 고백하도록 우리를 도와줍니다.
오늘날 특히 학문의 지식(scienza)는 존중해야 할 말이며, 그래서 '학문의 판단'이라고 말할 때 우리는 그것을 더 이상 상소(上訴) 할 수 없는 최종적인 판단, 확정적인 그 무엇을 말하는 것으로 알아듣습니다.
학자는 얼핏 우리 시대의 예언자와 같아서, 수많은 의학적, 경제적, 사회적 문제들 때문에 우리는 학문에서 얻은 지식을 마치 구제 수단으로 여깁니다.
그런데 성경에서 말하는 '지식'의 의미는 다릅니다. 이사야서 11장 2절에 나오는 "그 위에 주님의 영이 머무르리니 지혜와 슬기의 영 경륜과 용맹의 영 지식의 영과 주님을 경외함이다." 에 나오는 '지식의 영과 주님의 영'은 무엇보다하느님에 대한 앎(conoscenza)과 관련이 있습니다.
미래의 메시아는 성경에서 자주 언급하는 바와 같이, 주님을 알아봅니다.
너희는 알아라, 주님께서 하느님이심을(시편100,3).
바다를 덮는 물처럼 땅이 주님을 앎으로 가득할 것이기 때문이다(이사11,9).
정녕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신의다. 번제물이 아니라 하느님을 아는 예지다(호세6,6).
영의 선물인 지식은 하느님에 대한 앎이요, 하느님과의 관계 안에서 창조된 만물을 아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모든 피조물이 창조주이신 하느님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를 이해하게 해주는 것입니다.
지식의 선물 덕분에 역사와 믿음의 위대한 신학적 체계가 태어났고,그리스도교 사상은 더욱 다양한 문화적 윤리적 문제와 도전에 맞서 궁극적 의미와시급한 차선책의 연구에 이바지할 수 있습니다. 지식 덕분에 특정 공동체의 구체적인 필요들을 이해하고 이를 충족시킬 적절한 사목 계획을 수립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것을 학자에게 유보된 선물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아무리 이 선물이 그들에게 필요한 것이라 할지라도 그렇습니다 그것은 모든 신자들이 세례 때 받은 선물이요, 종종 보다 겸손한 사람에게서 발견됩니다.
아르스의 성 요한 마리아 비안네 신부는 학식이 뛰어나지도 않았고 지적이지도 않았지만 프랑스 전역을 매료시켰고, 하느님의 신비를 지극히 단순하고 심오하게 설명할 줄 알았습니다. 사람들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를 속속들이 알았고 사람들의 마음을 잘 읽고 헤아렸습니다. 지식의 선물에 관해 그가 남긴 문장 하나를 인용해보겠습니다.
성령께서 이끄시는 그리스도인은 어려운 일을 행할 줄 압니다. 세상의 눈은 성당 문이 닫혔을 때 내가 더 이상 이 벽 너머를 보지 못하는 것처럼 생명을 보지 못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의 눈은 영원의 심연까지 바라봅니다.
아기 예수의 성녀 데레사는 이렇게 탄성을 지릅니다.
사랑의 지식, 아! 그렇습니다. 이 말씀이 제 영혼에 감미롭게 울려 퍼지니, 저는 오로지 이 지식만을 애타게 갈망합니다. 이 지식을 위해서라면, 저는 제 모든 재화를 다 바치고서도 마치 아가서에 나오는 신부와 같이 아무것도 바친 게 없는 것처럼 여겨집니다.( 자서전, 241항)
나는 인간의 참된 지식에서, 복음에 나와 있는 지식에서 가야할 길을 제시받고 있습니까? 나는 원수를 위해 기도하고,얻기 위해 잃을 줄 알고 벌어들이기보다 내주고, 눈앞의 이익보다 무욕(無慾)을 원하는 것과 같은 태도에 정당한 가치를 부여하고 거기에서 가야 할 길을 제시받고 있습니까? 성령께서 우리 믿는 이들을 영 안에서, 신적 부자 관계 안에서 살며, 믿음과 희망으로 미래를 바라보는 가운데 영원의 확신 안에서 사는 새 사람, 새 피조물로 거듭나게 하시고자 우리에게 통교하시는 것이 곧 복음이란 지식의 모든 것입니다.
영의 모든 선물에 깃든 풍요로움이 우리 위에 내리도록 함께 기도합시다.
카롤로 마리아 마르티니 <영은 어디에서 불타 오르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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