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국지[列國誌]170
■ 1부 황하의 영웅 (170)
제2권 내일을 향해 달려라
제 23장 영광과 교만 (10)
다행히 관중(管仲)은 아직 침상에 들지 않았다.앉아서 책을 보고 있었다.
그는 늦은 밤 태재 공(孔)의 방문을 받고 어리둥절하였다."태재께서 여기까지 웬일이십니까?
태재 공(孔)은 단도직입으로 찾아온 목적을 꺼냈다.
"아까 저녁 무렵에 제환공께서 제게 봉선(封禪)에 관한 일을 물으셨습니다.
경도 아시다시피 봉선이란 천자가 하는 것이지 제후가 입에 담을 말은 아닙니다.
도가 지나치면 덕을 잃게 마련,제환공(齊桓公)께서 혹 다른 마음을 품지 않도록
경께서 간언해주십사, 부탁하기 위해 결례를 무릅쓰고 이렇듯 찾아온 것입니다."
"그런 일이 있었습니까?본래 우리 주공께서는 이따금 엉뚱한 말씀을 하시는 병이 있습니다.
또 그 병이 도진 모양이군요.태재께서는 너무 심려하지 마십시오.
제가 우리 주공께 잘 말씀드려보겠습니다.“"고맙습니다.“다음날이었다.
관중(管仲)은 부리나케 일어나 이른 아침에 제환공의 방을 찾아갔다.
"어제 주공께서 봉선의 대전(大典)을 올리겠다고 말씀하셨다는데, 그것이 사실입니까?“
"사실이오. 그런데 중보(仲父)께서는 어째서 그 일을 묻는 것이오?“
"옛날부터 지금까지 태산 일대에서 봉선(封禪)을 치른 천자는 모두 72명입니다만,
그 중에 신이 기억하고 있는 천자는 12명뿐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모두 하늘의 명을 받은 천자들입니다.
봉선은 공(功)이 하늘에 닿지 않으면 행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주왕실에서도 주성왕이래 봉선(封禪)의 대전을 올린 왕은 한 명도 없습니다.
주공께서는 이 점을 아시고 계십니까?제환공(齊桓公)은 비로소 관중이 찾아온 뜻을 알고
안색이 변했다.그는 언성을 높여 말했다.
"과인은 일찍이 북(北)으로는 산융(山戎)을 정벌하여 영지(令支)와 고죽(孤竹)을 평정하였고,
서(西)로는 유사(流砂)를 건너 태항산에 이르렀고,남(南)으로는 초(楚)를 치기 위해
소릉(召陵)까지 정벌하여 웅이산에 올라 장강과 한수를 바라보았소."
"또한 세번의 군사회의를 소집하고, 아홉 번의 평화 회담을 소집하여 천하를 하나로 규합하였소.
이러한 중에 나를 거역한 제후는 하나도 없었소.
이것이 어찌 하, 은, 주 3대의 공(功)에 미치지 못한단 말이오?
나는 다만 태산(泰山)에 봉선(封禪)하여 나의 이 공(功)을 후손들에게 알려주고자 하는 것뿐이오."
지금까지 한 번도 관중(管仲)에게 언성을 높인 적이 없는 제환공이었다.
그러나 이때만큼은 정말로 기분이 상했던 모양이다.하지만 관중은 한결 차분한 목소리로
제환공에게 거듭 간했다."공(功)이 하늘에 미친다 함은 하늘을 감복시켜야 한다는 뜻입니다.
어찌 영토를 넓히는 것으로써 하늘을 감복시킬 수 있겠습니까?
하늘은 감복하면 상서로운 일을 내려 그 징조를 보이게 마련입니다.
옛날의 일을 예로 들면 호상과 북리(北里)에서는 한 대의 벼에 수많은 이삭이 생겨 황금물결을
이루었고,장강과 회수가에선 한 띠에 세 줄기가 생겨난 포모(苞茅)가 자라난 바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를 영모(靈茅)라 부르기도 했습니다.
또 동해 바다에선 비목어(比目漁)가 몰려왔고, 서쪽에선 비익조(比翼鳥)가 날아 들어왔습니다."
비목어(比目漁)는 넙치이고, 비익조란 숭오산에 산다는 전설상의 새이다.
다리도 하나이고 날개도 하나며 눈도 하나로서, 두 마리가 합쳐져야 비로소 하늘을
날 수 있기 때문에 비익조(比翼鳥)라는 이름이 붙었다.
"...................“
"이러한 징조는 결코 사람의 힘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하늘이 감복해야 하는 일입니다.
그런데 오늘날은 어떻습니까?봉황과 기린 대신 소리개와 올빼미만 날아들 뿐이고,
들판에는 풍성한 이삭 대신 잡초와 쑥대만 번식하고 있질 않습니까?
이런 암흑 세상에 주공께서 태산에 올라 봉선(封禪)을 행하신다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반드시 주공을 비웃고 말 것입니다."
관중(管仲) 또한 제환공에게 이처럼 직설적이고 지독스런 간언을 올린 적이 없었다.
아마도 제환공(齊桓公)이 천자 자리를 넘보려는 마음을 철저하게 부서뜨리려고 작심했던 것 같다.
두 사람이 정치적 공조 체제를 이룬 이래 가장 큰 위기였다.
그러나 제환공(齊桓公)은 역시 범상한 사람은 아니었다.
중국 역사상 가장 큰 혼란기인 춘추시대를 맞아 첫번째 패업을 이룩한 패공(覇公)의 자리에 오를만한
그릇의 소유자였다.그는 지금까지의 모든 위업이 관중의 조력에 의한 것임을 망각하지는 않았다.
여느 사람 같았으면 관중의 결사적인 반대에 무척이나 화를 내고 그를 제거하려 들었겠으나,
제환공(齊桓公)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단 한마디 말로써 자신의 마음을 정했다.
"봉선(封禪)에 대해서는 없었던 일로 하겠소.“
관중의 도움 없이는 결코 천자의 위(位)에 오를 수 없다는 것을 직감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놀기 좋아하고, 술과 여자를 좋아하고, 사냥 나가기를 좋아하는 제환공(齊桓公)
-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려움과 즐거움을 함께 나눌 수 있는 그릇이었기에
관중이라는 사람을 얻어 패업을 달성하였고, 또 관중(管仲)이라는 사람을 끝까지 곁에 놓아두어
패업을 유지할 수 있지 않았을까.그 뒤로 제환공은 봉선(封禪)에 대해서는 깨끗이 잊었다.
그러나,- 나는 천하 제일이다.라는 자긍심마저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규구회맹(葵丘會盟)에서 돌아온 이후 제환공(齊桓公)은 더욱 교만해졌다.
예전에도 그러한 면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으나 그 정도가 지나쳤다.그는 궁실을 천자(天子)의
왕실처럼 대규모로 꾸몄고, 모든 예법도 천자에 준하는 예에 따라 행동하였다.
심지어는 타고 다니는 수레라든지 복장이라든지 시중드는 내관들의 제도까지
주왕실과 비교될 정도로 바꾸어버렸다.대부들 사이에 말이 없을 수가 없었다.
- 주공이 변하고 있다.
- 이것은 예(禮)에 어긋나는 일이다.여론이 이러한 중에 더욱 이상한 것은 관중(管仲)의 태도였다.
시종 침묵을 지키며 제환공의 행동을 일절 모르는 척하는 것이었다.
아니 오히려 관중(管仲)의 사치와 교만이 더한 지경에 이르렀다.
경대부로서는 가질 수 없는 저택을 세 채씩이나 지었고, 제후가 아니면 세울 수 없는
색문(塞門)을 세워 자신의 방을 가렸다.뿐만 아니라 제후만이 설치할 수 있는 반점을 설치하여
술잔을 올려놓고 열국의 사신들을 집안에서 맞이하였다.
- 관중(管仲)의 교만과 월권이 너무 심하다.
이제 세상 사람들의 비난은 모두 관중(管仲)에게로 쏟아졌다.
포숙(鮑叔) 또한 관중의 사치와 교만함이 날로 더해가자 기어이 찾아가 싫은 소리를 하였다.
"자네에게 실망했네.“"그것이 무슨 소리인가?“
"주공의 사치스런 생활과 예(禮)에 어긋나는 행동을 막아야 할 자네가 그에 편승하여
함께 사치와 무례를 자행하고 있으니,이 어찌 옳은 일이라 할 수 있겠는가?"
그러자 관중(管仲)이 웃으며 대답했다.
"주공께서는 지금까지 갖은 고난을 겪고 애써서 오늘의 공업(功業)을 이루셨네.
공을 이루면 그것을 누리려는 것은 모든 사람의 마음일세.
만일 내가 예법으로써 주공을 계속 구속하면 주공은 모든 것이 귀찮아지며 지금까지의 공업(功業)에
회의마저 느끼게 되네.그리되면 주공은 게을러질 것이요, 공실은 타락하고 마네.
그래서 나는 주공의 사치와 예(禮)에 어긋나는 행동을 막지 않는 것이네."
"그렇다면 자네가 사치하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인가?“비꼬는 듯한 반문에 관중(管仲)은 다시 대답했다.
"주공이 사치하고 예(禮)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면 당연히 세상 사람들은 주공을 비판하게 되네.
비판을 받으면 덕(德)을 잃고, 덕을 잃으면 따르지 않게 되겠지.그러나 내가 주공보다 더 사치하고
교만한 행동을 하게 되면 세상 사람들의 비판은 모두 관중(管仲) 하나의 몸으로 쏠리게 되네.
내가 사치하고 교만한 행동을 하는 것은 바로 그 비난을 내가 받음으로써 주공을 온전히
지켜드리기 위한 충심에서이네."
이 말을 들은 포숙(鮑叔)은 비로소 관중의 깊은 뜻을 알고 하늘을 우러르며 경탄했다.
"아아, 우리 주공은 정말 복이 많으시다.어찌 하늘 아래 관중(管仲) 같은 사람을 둘 수 있으리오!"
171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