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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국지 [列國誌] 317
■1부 황하의 영웅 (317)
제 5권 해는 뜨고 해는 지고
제 38장 진문공의 복수 (8)
"북문 쪽에 불이 났습니다!"
성안의 경비와 치안을 담당하고 있는 호언(狐偃)과 서신(胥臣)은 잠자다 말고 화재 보고를 받았다.
"조군(曹軍)의 반란인가?""그런 것 같지는 않습니다. 실화(失火)인 듯싶습니다."
호언과 서신은 일단 안심하고 황급히 군사를 거느리고 불이 난 곳으로 달려갔다.
희부기(僖負羈)의 집이었다.호언은 진문공의 명을 떠올리고 질겁했다.
"서둘러 불을 꺼라!"그러나 반 이상이 불길에 휩싸인 뒤였다.
군사들은 불을 끄다가 복도에 쓰러져 있는 희부기(僖負羈)를 발견했다. 하지만 연기에 숨이 막혀
이미 숨이 끊어진 뒤였다.희부기(僖負羈)의 아내 여씨(呂氏)는 집안의 자손이 끊어져서는 안된다는
일념하에 다섯 살배기 아들 희록(僖祿)을 끌어안고 후원 연못 속으로 뛰어들어 겨우 죽음을 면했다.
불길은 새벽녘이 되어서야 사그라 들었다.피해가 컸다.
희씨 집 하인들만 해도 죽은 자가 10여 명이 넘었다. 인근 백성들의 집도 수십 채 타버렸다.
호언과 서신은 즉각 화재 원인의 조사에 착수했다.- 방화(放火)!
그것도 다른 사람이 아닌 망명 시절의 오랜 동지 위주(魏犨)와 전힐(顚頡)의 방화라는 사실을 알고
호언은 크게 놀랐다."그들이 무엇 때문에?"
호언(狐偃)은 궁금했으나 사건이 사건인만큼 자신의 선에서 처리할 사안이 아니었다.
그는 즉시 사람을 보내 진문공에게 희부기의 집 화재 사건을 보고했다.
예상했던 대로 진문공(晉文公)의 분노는 대단했다.
"위주와 전힐이 희부기를 불태워 죽였단 말이지?"
처음 한동안 진문공은 믿을 수 없다는 듯 입술을 부들부들 떨었다.
- 이놈들이 감히!그의 파들거리는 눈썹은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진문공(晉文公)의 가슴속에 망명파 공신들에 대해 하나의 결심이 선 것은 바로 이때라고 할 수 있었다.
진문공(晉文公)은 성안으로 들어오자마자 불타버린 희부기의 집부터 찾아갔다.
희부기의 시신은 불타다 만 별채에 뉘어져 있었고, 그 앞에 다섯 살 먹은 희록을 안은 희부기의 아내
여씨(呂氏)가 땅바닥에 쓰러져 통곡하고 있었다.
진문공(晉文公)은 희부기의 죽음을 애도하는 한편 그 아내 여씨를 향해 말했다.
"어진 부인이시여. 너무 슬퍼하지 마오. 내 그대들을 평생토록 돌보아 주리다!"
그러고는 품속에 안겨 있는 어린 희록(僖祿)에게 진나라 대부의 벼슬을 내리었다.
뒷수습이 끝나자 진문공(晉文公)은 위주와 전힐에 대한 재판을 열었다.
이미 호언은 모든 과정을 조사해두었다.- 주범 전힐(顚頡).- 공범 위주(魏犨).
호언의 보고가 끝나자마자 진문공은 서슬 퍼런 기세로 판결의 명을 내렸다.
"주범이고 공범이고 할 것 없이 두 사람 모두 참수형에 처하라!"
앗. 하는 소리가 조당 안을 울리는 듯했다. 위주(魏犨)와 전힐(顚頡)이 누구이던가.
오직 한 길- 진문공(晉文公)을 위해 평생을 바쳐온 사람들이 아니던가.그런 그들을 죽이라니.
아무리 희부기(僖負羈)가 진문공에게 은혜를 베풀었다 한들 위주와 전힐의 공보다 클 수는 없었다.
망명파 공신들로서는 아연하지 않을 수 없었다."처형하라!"
진문공(晉文公)의 차가운 음성이 다시 한 번 조당 안에 울려퍼졌다.
그때였다. 대사마 조쇠(趙衰)가 자리에서 조용히 일어나 진문공을 향해 말했다.
"주공의 명을 어긴 위주와 전힐은 죽어 마땅합니다.하지만 두 사람은 지난날 주공을 모시고
19년 동안이나 유랑 생활을 하면서 온갖 고생을 다한 동지들 입니다.
또 이번 조성(曹城) 함락에도 큰 공을 세운 장수들입니다."
목소리는 작았지만 말 한마디 한마디는 너무나 또렸했다.이 어찌 조쇠(趙衰) 한 사람만의 마음이겠는가
그랬다. 그들은 지난 무수한 세월을 함께 한 동지였다. 호언도, 호모도, 선진도 모두 같은 마음이었다.
그것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것이었다. 세상의 어떤 것이 19년 세월 동안 쌓아온
그들만의 의리와 정을 대신 할 수 있을 것인가.
이번 일은 위주(魏犨)나 전힐(顚頡)에게만 해당하는 일이 아니라 그들 전체의 일이기도 했다.
그러므로 위주와 전힐을 죽게 내버려둘 수는 없었다."한 번만 용서해주심이 어떠실는지?"
조쇠(趙衰)의 이 말은, 좀더 확대 해석하면,
망명파 공신들의 앞으로의 공실내 지위와 관련한 진문공에 대한 첫 요구이자 저항의 몸짓이기도 했다.
조당 안은 더욱더 깊은 침묵과 어색함 속으로 빠져들었다.
진문공(晉文公)은 눈을 들어 조쇠를 바라보았다.아니, 지난 19년 세월의 흔적을 돌이켜보고 있었다.
그것의 소중함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진문공이 아닌가.그러나 진문공(晉文公)은 이미 결심이 섰다.
강물이 언제나 그 강물일 수 없듯이, 시간도 언제나 그 시간일 수 없었다.
시간은 흐른다. 한시도 머물지 않고 흐른다.언제까지 지난 19년의 세월에 얽매어 있을 것인가.
이제 그는 유랑하는 진공자 중이(重耳)가 아니라 패업을 향해 달리는 진(晉)나라 임금 진문공인 것이다.
"참으로 가슴 아픈 일이오."진문공(晉文公)은 조당에 나열해 있는 신하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하지만.......오늘의 우리는 어제의 우리가 아니오. 우리에게는 해야 할 일이 있소.
그것은 그대들이 나보다 더 잘 알고 있을 것이오. 지금 우리는 그 첫 출발의 선상에 서 있소.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야 할 책임을 짊어지고 있소."
그것의 실천을 위해서 한 가지 무너져서는 안 될 기본 원칙이 있다.
그것은 바로 법령(法令)의 엄중함과 공평함이다.임금이 백성을 다스리는 힘의 원천은 법령이다.
그것을 어기는 자는 신하가 아니요, 신하에게 그것을 실천하도록 하지 못하는 자는 임금이 아니다.
임금이 임금 노릇을 못 하고 신하가 신하의 도리를 다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나라를 다스릴 수 있겠는가.
"나를 위해 수고한 신하들은 헤아릴 수 없이 많소.그들이 모두 임금의 명령을 어기고
제 마음대로 행한다면 나는 이후부터 아무런 명령을 내릴 수가 없지 않은가?"
지난 세월에 얽매어 이 일을 피하고 그냥 넘어가면 앞으로 망명파들의 전횡을 무엇으로 막을 것인가.
새로운 시대를 열기 위해서는 언젠가는 짚고 넘어가야 할 일이었다.변해야 한다.
- 정리할 것은 정리해야 한다.호소인 것처럼 들리는 진문공(晉文公)의 이 말은,
이를테면 공신들을 상대로한 또하나의 물러설 수 없는 승부수라고 할 수 있었다.
진문공(晉文公)의 이러한 강경적인 태도에 조쇠는 기가 한 풀 꺾였다.
그는 반보 뒤로 물러서며 타협안을 내었다.
"주공의 말씀은 지당하십니다. 그러나 위주(魏犨)는 진나라 제일의 용사입니다.
다른 장수가 많다고는 하지만 위주를 따를 자는 없습니다. 그를 죽이는 것은 아까운 일입니다.
이번에 방화를 선동한 사람은 전힐(顚頡)입니다. 주범 하나만 죽여도 법령의 엄중함은 설 수 있습니다.
위주(魏犨)만이라도 용서해주십시오."어찌 되었든 조쇠(趙衰)로서는 여기서 완전히 밀리면
망명파 공신들의 미래는 없다. 라고 생각한 것이 틀림없다.
그러나 진문공(晉文公) 또한 좀처럼 양보의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들으니 위주는 가슴을 다쳐서 일어나지 못한다고 하오.
언제 죽을지 모르는 폐인을 무엇이 아깝다고 법령까지 손상시켜가며 살려둘 것인가?"
"그렇다면 이렇게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주공께서는 사람을 보내어 위주(魏犨)의 병세를 살펴보십시오,
그리하여 그가 살아날 가망이 없으면 주공 말씀대로 참수형에 처하고,만일 그의 부상이 경미하여
다시 싸움터에 나갈 수 있을 것 같으면 일단 살려두었다가 유사시에 쓰도록 하십시오."
이쯤되면 진문공(晉文公)으로서도 조쇠의 타협안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렇게 합시다. 다른 사람이 갈 것 없이 그대가 위주(魏犨)의 병세를 살펴보고 오시오."
그 길로 조쇠(趙衰)는 수레를 타고 위주(魏犨)의 군막으로 향했다.
318편에 계속
열국지 [列國誌] 318
■ 1부 황하의 영웅 (318)
제 5권 해는 뜨고 해는 지고
제 38장 진문공의 복수 (9)
위주(魏犨)는 화상을 입은 몸으로 침상에 누워 있었다.그는 자신이 저지른 죄가 큰 것을 알고 있었다.
'공연한 짓을 했구나.‘이렇게 후회하고 있을 때, 심부름을 하는 시자(侍者)가 들어왔다.
"문병오신 분이 있습니다.“"누구인가?“"사마 조쇠(趙衰) 어르신입니다.“
"그 밖에 또 누가 왔느냐?“"사마께선 혼자 수레를 타고 오셨습니다."위주(魏犨)는 상황을 짐작했다.
그는 몸을 반쯤 일으키며 시자에게 말했다."이는 필시 내 몸 상태를 살피러 온 것이다.
내가 죽고 사는 것은 오로지 이 순간에 달렸구나.너는 어서 가서 비단을 가져와 불에 탄 내 가슴을 친친 감아라.
내 직접 나가 조(趙) 사마를 만나보리라!"시자(侍者)가 놀라서 만류했다.
"장군의 병세는 이만저만 중한 것이 아닙니다. 경솔히 몸을 움직이지 마십시오.“
위주(魏犨)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시끄럽다! 너는 잔말 말고 내가 시키는대로 하여라!“
마침내 위주(魏犨)는 비단으로 가슴을 조여 감고 밖으로 나갔다.
조쇠(趙衰)가 군막 밖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위주(魏犨)의 몸을 살피며 물었다.
"그대의 병이 위중하다는 말을 들었는데, 이렇게 일어나 있을줄은 몰랐소이다.
주공께서는 이번 일을 심히 유감으로 여기고 계십니다."위주(魏犨)는 주저함 없이 대답한다.
"사마(司馬)께서 예까지 찾아오셨는데 어찌 누워서 맞이할 수 있겠습니까?
가슴에 상처를 입긴 했지만, 그다지 심하지는 않습니다.
내가 이번에 저지른 죄는 만 번 죽어도 마땅합니다.
만일 주공께서 한 번만 용서해주신다면 얼마 남지 않은 이 목숨을 오로지 주공을 위해 바치겠습니다.
사마께서는 주공께 잘 말씀드려주시오."
말을 마치자마자 위주(魏犨)는 보란 듯이 두 발을 굴러 세 번을 높이 뛰어오르고,
또 몸을 뒤틀며 춤추듯 세 번을 달렸다.
조쇠(趙衰)는 위주(魏犨)의 그러한 몸놀림을 보고 고개를 끄덕이고 말했다.
"그대는 몸을 잘 조리하시오. 내가 주공께 가서 본 대로 말씀드리리라."
- 위주(魏犨)는 비록 화상을 입었지만 능히 높이 뛰고 멀리 달리기도 했습니다.
그는 신하로서 예의를 잃지 않고 주공에 대한 충성도 넘쳐 흐르고 있었습니다.
이번에 주공께서 용서하시면 그는 장차 주공을 위해 신명을 바칠 것입니다.
조쇠(趙衰)로부터 위주(魏犨)의 상태를 보고 받은 진문공(晉文公)은 속으로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그 역시 위주(魏犨)의 죽음을 원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법의 존엄을 알리고자 했을 뿐이오.과인인들 어찌 그를 죽이고 싶었겠소."
그러고는 순림보(旬林父)에게 전힐을 잡아오라고 명했다.전힐(顚頡)이 결박당한채 끌려 나왔다.
진문공은 전힐을 보자 날카로운 어조로 물었다."너는 무슨 마음으로 희부기의 집에 불을 질렀느냐?“
전힐은 이미 죽음을 각오한 듯 또렷하게 대답했다.
"저희들은 목숨을 걸고 싸워 조성(曹城)을 함락시켰습니다.
그러나 돌아온 것은 고작 식은 술 한 잔뿐이었습니다.
반면 희부기는 지난날 주공께 음식 대접을 한 번 한 것으로 집을 하사받았습니다.
대관절 그것이 뭐 그리 대단하다고 주공께서는 싸움에 공이 큰 신하들을 홀대하시고,
희부기(僖負羈)에게만 특별한 대접을 하시는 것입니까?신은 그것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너는 참으로 어리석구나.지금 우리들이 벌이고 있는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반면, 조(曹)나라에 대한 은원(恩怨) 관계는 조성(曹城) 함락과 동시에 끝났다.
희부기(僖負羈)에게 집을 내린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너는 한 번의 상을 받고 나와의 인연을 끝내고 싶은게냐?"진문공의 말에 전힐(顚頡)은 고개를 떨구었다.
그러나 때는 이미 늦었다.진문공은 호언을 향해 묻고 있었다.
"이번에 방화한 주모자는 전힐(顚頡)이다.임금의 명을 어긴 자는 어떤 처벌을 받아야 마땅한가?“
호언(狐偃)이 대답한다."참수형입니다.“"전힐(顚頡)을 끌어내어 목을 참하라!"
진문공(晉文公)의 명에 도부수들은 전힐(顚頡)을 끌고 나갔다.
그날 전힐은 북문 밖에서 한칼에 목을 잃고 저세상으로 떠났다.
진문공(晉文公)은 장수들과 함께 직접 희부기의 집으로 가서 전힐의 목을 바치고
희부기를 위해 제사를 지냈다.이어 전힐(顚頡)의 목을 북쪽 문루 위에 높이 내걸었다.
그 아래엔 다음과 같은 방이 나붙었다.- 이후 과인의 명을 어기는 자는 이처럼 되리라!
진문공(晉文公)은 호언에게 다시 물었다.
"위주(魏犨)는 전힐을 만류하지 않고 함께 따라갔으니, 그 죄가 무엇에 합당한가?“
"그 직위를 깎으시고 앞으로 공을 세워 속죄케 하십시오.“위주(魏犨)는 차우(車右)직에서 쫓겨났다.
대부 주지교(舟之僑)가 위주 대신 차우의 직에 올랐다.이로써 희부기(僖負羈)의 집 화재사건은 종결되었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모든 진(晉)나라 장수와 병사들은 한결같이 몸을 떨었다.
"전힐(顚頡)과 위주(魏犨)는 19년 동안이나 주공을 모시고 망명 생활을 한 공신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 한번 명령을 어겼다 하여 하나는 죽임을 당하고, 다른 하나는 삭탈 관직되었다.
핏줄 같은 공신들에게도 그러하거늘, 다른 사람들은 일러 무엇하리오.
우리 주공은 법을 시행함에 추호의 사정도 봐주질 않으니, 조심하는게 상책이다."
이후로 진(晉)나라 3군의 기강은 더욱 바로 섰다.
319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