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향한 나의 작은 선물
By Zero
너를 향한 나의 작은 선물
“My Best Present"
추운 바람이 불어왔다.
뼛속 깊숙하게 스며드는 찬바람에 무의식적으로 옷깃을 여몄다. 수많은 사람들이 오고가는 길의 한가운데서 나는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
그 사람은 나에게 너무도 소중하다.
그렇기에 너무도 조심스럽게 신중히 대하고 있는 사람.
그 사람은 나의 마음에 너무도 깊숙하게 자리 잡아 있다. 나는 그 사람을 기다리고 있다. 안 올지도 모르지만 혹시라도 올지도 모를 그 사람을 위해 준비한 나의 조그만 선물.
혹시라도 겨울의 차가운 바람에 차갑게 될까봐 쉽게 꺼내보지도 못한 체 나의 따뜻한 품속의 깊은 곳에 감춰 함부로 밖으로 내보이지 않았다.
오직 그 사람만을 위한 나의 선물.
온 세상을 바꿔도 절대로 하나 얻을 수 없는 그 사람을 위한 나의 최고의 선물. 어서 오기를 학수고대하며 나는 길의 끝을 바라본다.
기다림에 지쳐 서서히 초조하게 표정이 변해가는 나를 스쳐지나가는 사람들, 그리고 또 사람들. 지금 나를 지나치는 사람들에게는 세상을 모든 것과 바꿔도 얻지 못할 소중한 이가 있을까? 찬바람을 맞으며 나는 생각한다.
조금 쓸쓸하게 잿빛의 하늘이 다가온다.
혹시라도 안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너무도 마음이 초조하게 다가온다. 자꾸만 시선은 손목의 시계바늘을 향했고, 발을 제자리에 가만히 있지 못하고 동동 구르기만 한다. 느껴지는 찬바람은 더욱 싸늘하게 다가오고, 지나치는 사람들의 행복한 표정에서 나는 우울함을 느낀다. 그리고 슬며시 화가 난다.
왜 이 추위에 고생하며 나는 그 사람을 기다려야 했던 것일까?
가끔 생각하면 그 누구도 알아주지 못할 조그만 나의 마음.
어쩌면 바보같이 치부할지도 모를 젊은 날의 나의 소중한 마음.
나는 생각하고, 또 생각하지만 해답을 얻어내지 못한 체 허탈한 웃음을 지을 뿐이었다. 그저 좋았다. 그저 바라만 봐도 좋고, 그 사람이 나에게 공기와 같이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사람으로 다가왔다.
그대가 이 세상에 존재해서 내가 존재하는 거야.
그렇게 말하고 싶을 정도로 소중한 사람.
나의 모든 것을 내어줘도 아깝지 않기에, 나는 슬며시 치미는 화가 자연스럽게 겨울의 찬바람에 식어가는 것을 느낀다.
그리고 허탈하게 웃으며 하늘을 바라봤다.
서서히 거무스름하게 변해가는 하늘은 회색의 구름이 꿈틀거리며 잿빛의 우울을 끊임없이 만들어낸다.
눈은 오지 않고, 춥기만 하는 회색의 세계에서 나는 홀로 그 사람을 기다린다.
그대가 어서 나에게 오기를 기다리며, 또 그대가 나에게 보일 그 맑고 투명한 미소를 떠올리며 나는 겨울의 추위를 견딘다.
그리고 길의 저 편을 바라본다.
언제 나를 향해 뛰어올지도 몰라.
온다고 나에게 약속을 했으니, 꼭 올 거야.
스스로에게 그렇게 자위하며 나는 끊임없이 몰아치는 겨울의 한풍에 견디어 기다린다. 우투거니 서서 비바람에도 꼼작하지 않고 꼿꼿하게 서 있는 장승과 같은 모습으로 나는 길의 한 가운데 서서 그 사람을 기다린다.
얼어 죽을지도 몰라.
얼어 죽으라지.
그 사람이 오지 않을지도 몰라.
그럼 올 때까지 기다리지.
끊임없이 머릿속 가장 밑바닥에서 치밀어 오르며 자극하는 마이너스 사념의 말에 그렇게 대꾸하며 자신을 다스린다.
안 올지도 몰라.
솔직히 나도 그 사람이 이 추운 날씨에 이런 곳으로 손수 나를 맞이하러 올 것이라는 커다란 기대는 하지 않는다.
그저 오늘은 만날 수 없다는 전화만 주어도 감격해서 그녀의 사정을 이해해줄 용의도 충분히 있다. 그저 겁나는 것은, 아무런 연락도 없이 그 사람이 오지 않는다는 고독의 느낌, 그것은 나를 숨 막히게 만드는 감정.
나는 덜컥 겁이 나서 품속에 든 선물 상자를 강하게 움켜잡는다.
너무 움켜줘서 혹시라도 선물 상자가 구겨지지 않을까 걱정하는 마음이 생길 정도로 나는 무의식적인 행위로 선물 상자를 움켜잡았다.
제발 오기를.
그 사람이 나에게 오기를.
그 미소를.
그 사람이 나에게 미소를.
얼마나 시간이 지나고, 얼마나 추워 고생을 한다고 해도 만남과 함께 그 미소를 볼 수만 있다면 나는 아무렇지도 않아.
늘 하염없이 바라만 봤던 그 사람.
늘 기다리기 만 했던 그 사람.
그 사람이 나와 같은 공간에 있어서 행복했어, 그 사람이 나와 같은 세계에 있어서 행복했어, 그 사람이 나와 같은 우주에 있어서 나는 행복했어.
행복감은 점점 부풀어 올라 조그만 나를 집어삼킨다.
그리고 주체할 수 없는 행복감에 홀로 취해 이성조차 마비되어 버렸다.
그 사람을 좋아해.
내 조그만 마음의 본질, 그 사람과 같이 영원히 있고 싶어. 나는 그 사람의 얼굴이 떠오를 때마다 격하게 두근거리는 가슴을 움켜잡는다.
그리고 터질 듯 부푸는 가슴을, 이 마음을 억누르며 내 자신을 진정시킨다.
주위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보든, 내가 그들에게 어떤 식으로 비춰지든 나는 상관하지 않아. 오직 나의 머릿속에는 그 사람의 생각만으로 가득 차서 아무 것도 들어오지 않는다.
그때 찬바람이 휭 하니 불어왔다.
머리카락이 날리고, 찬바람이 쏘인 눈이 따갑게 느껴진다. 쏘인 눈을 감았다. 눈물이 난다. 그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 겨울의 한기에 살짝 얼었다.
그것은 찬 얼음의 눈물.
나는 거침없이 부풀어 오르는 행복감에서 벗어나 제 정신을 잡고 길의 저편을 바라본다. 수많은 사람이 오고가는 길, 그리고 행복한 얼굴, 슬픈 얼굴, 화난 얼굴들이 뒤섞인 인파들 사이에서 그 사람을 찾는다.
혹시라도 그 사람이 그 수많은 인파에 섞여 나를 볼지도 모른다는 노파심에 그랬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그 사람을 기다리는 초조감을 억누르기 위해 그저 무의적으로 취한 행동일지도 모른다.
다시금 하늘을 바라본다.
잿빛의 우울한 하늘은 검게 변해 밤하늘에는 별이 하나, 둘씩 떠오른다. 밝고 깨끗한 별, 저 별은 대체 언제 적 별일까?
언제 아는 사람에게 들은 적 있다.
우리가 보는 별들의 모습은 몇 천 년, 몇 만 년 전 모습의 별이라고 했다. 먼 과거의 별빛이 긴 우주를 지나 수많은 시간이 흘러서야 우리의 눈에 도달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저 별에는 과거의 많은 시간들이 담겨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저 별을 보며 추억한다.
그리고 나는 저 별을 보며 생각한다.
저 별에 나의 애틋한 마음도 실려 몇 천 년, 그리고 몇 만 년의 시간이 흘러 다시 다른 누군가의 눈에 도달할까?
그리고 그 사람은 나와 같은 생각을 할까? 순간 너무도 감상적으로 기분이 젖어들어 나는 그만 고개를 숙여버리고 말았다.
이제는 완전히 어두워져 버려 화려한 네온사인과 전광판, 그리고 오색의 전구들로 장식된 길의 한가운데 나 혼자만이 잿빛으로 물들어 있다.
갖은 표정으로 장식된 길을 지나는 수많은 인파들 한 가운데서 나만이 홀로 무정의 가면을 얼굴에 쓰고 있다.
어서 오기를.
기다림에 지쳐 죽을지도 몰라.
제발 오기를.
오지 않는다면 슬퍼서 죽을지도 몰라.
오색의 사람들이 있어, 오직 나만이 우울한 잿빛. 화사한 세계에 나 혼자만이 우울한 회색을 띄고 존재한다. 짙은 이질감을 풍기며, 절대로 섞여들어 갈 수 없는 색깔로 자신을 칠하고 세상을 한 가운데 놓여져 있다.
밀려오는 슬픔에 눈물이 흐를 뻔 했다.
밀려오는 고독감에 눈물이 흐를 뻔 했다.
기다림에 지쳐 이제는 포기할까, 나는 오랜 시간 기다려도 오지 않은 그 사람을 떠올리며 살짝 신발의 뒤꿈치를 뗀다. 그리고 살짝 몸을 돌려 그 많은 인파들 사이로 나라는 이질적인 색을 뒤섞으려 했다.
그때 눈이 내렸다.
어둔 밤하늘에서 하염없이 눈이 내렸다. 흰 눈이 내려 오색의 세상을 하나하나 덮어간다. 홀로 섞일 수 없는 잿빛의 나조차도 덮어간다.
온 세상이 순수의 흰색으로 물들어간다.
길의 한 가운데서 나는 밤하늘을 아름답게 수놓은 별과 세상을 조용히 덮어가는 흰 눈을 바라보며 그렇게 서 있었다.
문득, 겨울의 바람과 다른 너무도 향긋한 향기를 머금은 산뜻한 바람이 코를 간질였다. 무의식적으로 바람이 부는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아…….”
저 멀리서 숨을 헐떡거리며 달려오는 그 사람이 보여.
두터운 외투로 몸을 감싸고, 귀여운 벙어리장갑이 앙증맞아 보이는 조그만 체구의 그 사람이 나를 향해 뛰어오고 있다.
주체할 수 없는 격렬한 심장의 고동, 차갑게 식어있던 나의 몸이 뜨겁게 달구어진다.
“오래.......기다렸어요?”
귓가를 간질이는 조그만 목소리.
미안함, 그 하나의 감정으로 물들어있는 그 사람의 목소리가 귓가를 울린다.
나는 포근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오래 기다렸지만, 상관없다.
그런 것을 내색하면 그녀는 더욱 미안해 할 것이다. 그렇다면 애써 오래 기다렸다는 둥, 기다리다 지쳐서 돌아가려 했다는 둥 분위기를 망칠 소리는 하지 않은 편이 좋다.
나는 웃으며 말한다.
“사정이 있었나 보네?”
“예, 조금이요.”
살짝 혀를 빼물며 귀엽게 말하는 그 사람에게 나는 품속에 든 선물을 꺼내든다. 조금 묶여진 리본이 삐뚤어지고 포장이 구겨졌기에 건네주기 전에 살짝 손을 봤다.
삐뚤어진 리본을 바로하고, 구겨진 포장을 바르게 편다.
그리고 그 작고 소중한 마음이 담긴 선물을 그 사람의 손에 쥐어준다. 나의 체온이 듬뿍 담겨 따뜻함이 남아있는 선물.
나의 최고의 선물.
“이것은?”
“생일 축하해.”
그 사람에게 말했다.
내 마음 속의 비밀스런 감정을 모두 담아 그 짧은 말에 축약하여 전한다. 아마 그 사람은 이 말에 담긴 함축적인 나의 마음을 전부 알지 못할 것이다.
그렇지만 상관하지 않아.
지금 이 순간, 그 사람과 단 둘이 오색과 흰 색으로 아름답게 장식된 이 길의 한 가운데 있는 것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행복하니깐.
그러니깐 이것으로 지금은 만족하자.
“My Best Present."
웃었다.
더 이상 우울한 잿빛은 아냐.
이미 회색은 흰색에 덮여 보이질 않으니깐.
나의 선물, 나의 선물, 나의 최고의 선물.
지금 이 선물을 받아줘.
My Best Present.
이것은 아는 곳의 동생-여동생-이 생일을 맞이했기에
써버린 축전 형식의 단편입니다.
그렇기에 평소에 쓰던 단편의 분량보다 훨씬
적은 감이 드는군요.
워낙에 제가 귀여워하는 녀석에다, 제 말도 잘 들어줘서
관계를 가지는데 있어서 인터넷으로 사귄 사람들과는
다르게 진지하게 하고 있습니다.
아무튼, 이렇게 남에게 글을 써서 보내는 것이 이번이
딱 2번째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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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에게 나의 최고의 선물을 선사할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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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와아, 멋있어요. 독백 형식의 글이 두 번째로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