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국지 [列國誌] 523
■ 2부 장강의 영웅들 (179)
제8권 불타는 중원
제 23장 작은 거인 (6)
최저(崔杼)가 제장공(齊莊公)을 죽인 일은 BC 548년(제장공 6년) 5월 17일에 일어났다.
최저(崔杼)는 이미 한 번 군주를 죽인 바 있었다. 7년 전, 제영공을 죽이고 세자 광(光)을
군위에 올렸었다. 지금 뜰의 차가운 땅바닥에 누워 있는 제장공이 바로 그 세자 광(光)이다.
제영공이 죽었을 때는 직접 죽이지 않았고 죽음을 유도했을 뿐이다.
최저(崔杼)는 중병에 걸려 있는 제영공의 병실로 쳐들어가 그가 보는 앞에서 애첩 융자(戎子)를
처참하게 주살했다. 이로 인해 제영공(齊靈公)은 피를 토하고 죽음에 이르렀다.
조정은 제영공의 죽음을 병사(病死)로 처리했다.그러나 이번에는 달랐다.
화살에 맞고 떨어진 제장공(齊莊公)을 수십 명의 가병들이 달려들어 칼로 난자했다.
엄연한 시해(弑害)다.최저(崔杼)는 조금도 양심에 거리낌을 느끼지 않았다. 오히려 증오심에 불탔다.
군주였던 사람이 아니던가. 깨끗이 염하여 당상에 올려놓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 라고 지시할 만도 하건만,
최저는 땅바닥에 아무렇게나 놓여진 시체를 경멸하는 눈길로 내려다보았을 뿐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죽어도 싸다.'그의 눈빛은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그 날, 대부분의 조정 신료들은 대문을 닫아걸고 각자의 집에 특어박혀 있었다.
정변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도, 제장공(齊莊公)이 살해되었다는 전갈을 받았을 때도
그들은 집에서 나오지 않았다. 사태가 어떻게 결말이 날지 몰랐기 때문이었다.
아니, 공연히 현장에 모습을 드러냈다가 최저로부터 무슨 변을 당할지 몰라서였기 때문이었다.
다만, 오직 한 사람 - 파직된 대부 안영(晏嬰)만이 제장공의 살해 소식을 듣고 최저의 집으로 달려왔다.
대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안영(晏嬰)은 대문을 뚫어질 듯 쏘아보았다. 수행한 가재(家宰)가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직감하고 물었다."죽을 생각이십니까?"
제장공을 따라 죽을 결심이냐고 확인하는 것이었다.
안영이라면 능히 그럴 수 있는 일이다. 주인께서 죽으면 나도 따라 죽겠다. 가재의 물음은 이런 각오였다.
그러나 안영(晏嬰)은 고개를 저었다."나 혼자만의 군주가 아니다. 나는 죽을 생각이 없다."
가재가 다시 물었다."그렇다면 나라 밖으로 떠나려는 것입니까?"
망명하기 전 제장공에게 마지막 인사를 올리는 것이라 생각했다.
"나는 아무런 죄도 짓지 않았다. 내가 망명할 까닭이 무엇이 있겠는가?"
"그러하오면 이제 그만 집으로 돌아 가시렵니까?"이도저도 아니라면 제장공의 죽음에 대한
최소한의 인사를 올리기 위해 여기까지 달려온 것이리라 생각했다. 이제 그 인사는 끝났다.
볼일을 봤으니 그만 돌아갑시다, 라고 말하며 가재(家宰)는 먼저 몸을 돌렸다.
그러나 안영(晏嬰)은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별안간 안영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군주가 죽었는데, 어찌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단 말이냐?"가재(家宰)에게 하는 말이 아니었다.
하늘에 대고 외치고 있었다."군주(君主)란 무엇인가? 백성을 괴롭히는 존재인가?
아니다. 군주란 사직(社稷)을 지키는 존재다. 그러므로 군주가 사직을 위해 죽으면 신하도
따라 죽어야 한다. 군주가 사직을 위해 도망치면 신하도 따라 도망쳐야 한다."
"그러나 군주가 자신의 일신을 위해 죽고 자신의 일신을 위해 도망치면, 사사로이 관계를
맺은 사람 외에 누가 과연 함께 죽고 누가 함께 도망칠 것인가? 그렇다면 지금처럼 신하 된 자가
군주를 죽였을 때는 어찌해야 할 것인가? 내 어찌 따라 죽을 것이며, 어찌 도망갈 수 있으며,
어찌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인가?"이때의 이 말은 안영이 남긴 명언 중의 하나다.
그의 평생 신조이기도 하고 철리(哲理) 이기도 하다. 또 이 말은 후일 모든 정치가들에게
귀감이 되었다. 요체는 이러하다.- 사직(社稷)을 주인으로 삼는다.
사직은 나라의 수호신이다.사(社)는 토지의 신이요, 직(稷)은 곡물의 신이다.
주왕조로 들어서면서 부터 사직은 나라의 제 1신(神)이 되었다. 주왕실에 속한 모든 제후들의
제1의 목표는 사직 보존이다. 이때부터 사직(社稷)은 국가를 가리키는 말이 되었다.
안영(晏嬰)은 군주의 역할을 하늘에 대고 물었다. 그리고 스스로 그 답을 내었다.
- 군주는 백성 위에 있지만 백성을 깔보아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군주란 통치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직을 보존하기 위해 존재하기 때문이다.
또 안영(晏嬰)은 신하의 역할에 대해서도 역설했다.
- 신하는 군주 그 자체를 섬기는 것이 아니라 사직을 위해 애쓰는 군주를 보좌하는 존재다.
신하 된 자들이여. 들어라. 사직(社稷)을 아끼는 군주를 섬기는 것이 진정한 신하요,
그렇지 않은 자는 군주 개인을 섬기는 것뿐이다.그런데 현실은 어떠한가.
- 보라. 우리 주공은 음탕무도한 짓을 하다가 신하 된 자의 손에 살해되었다. 이는 사직을 위하다
죽음을 당한 게 아니다. 그러므로 함께 따라 죽을 필요도 없고, 다른 나라로 도망갈 필요도 없다.
- 아, 어쩌다가 나에게 따라 죽고 싶어도 따라 죽을 수 없는, 도망치고 싶어도 도망칠 명분이 없는,
가장 참담하고 비통한 현실이 눈앞에 닥쳐왔단 말인가.
아, 나는 과연 어디로 갈 것인가. 집으로 돌아가 두 다리 펴고 누울 수 있을 것인가.
나는 갈 곳을 잃었도다!안영(晏嬰)은 이렇게 피를 토하며 절규하고 있는 것이었다.
안영(晏嬰)이 대문 밖에 서서 무엇인가를 열심히 외쳐대고 있다는 보고에 접하는 순간,
최저(崔杼)는 눈살을 찌푸렸다.'귀찮은 자가 왔군.'그는 누구보다도 안영을 잘 알았다.
자신을 힐난하러 왔음을 직감했다. 그의 인품으로 보아서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일이었다.
"안으로 모셔라."대문이 열렸다. 6척의 작은 몸집이 뜰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안영, 어서 오시오."".................."
안영(晏嬰)은 잠시 서서 뜰 안을 둘러보다가 계단 밑에 처참한 형상으로 누워 있는
제장공의 시신에 눈길을 고정시켰다. 걷기 시작했다.
경봉의 긴장된 눈빛에 좌우 병사들이 안영에게로 창칼을 겨누었다. 하지만 안영은 아무런 동요없이
계속 걸음을 옮겼다.뜰은 어느새 어둠이 깔리고 잔광(殘光)만이 발악하듯 마지막 빛을 토해내고 있었다.
안영(晏嬰)은 난자당한 제장공의 시체 앞에 이르러서야 걸음을 멈췄다.
그때까지도 그는 최저에게 눈길 한 번 던지지 않았다.안영은 무릎을 꿇었다.
손을 뻗어 시체를 감싸안았다. 정이 느껴지는 손길이었다. 그는 시신을 들어안아 층계 위에 올려놓았다.
안영(晏嬰)은 통곡하기 시작했다. 울고 또 울었다. 곡을 마치자 몸을 세우더니 세 번 뛰어올랐다.
삼용(三踊)이라고 한다. 최상의 슬픔을 표하는 예절이다.
안영(晏嬰)은 마지막으로 제장공의 시신에게 절을 올리고 나서 몸을 돌렸다.
창칼을 꼬나든 병사들이 계속 그를 겨누고 있었다. 그는 다시 걷기 시작했다. 여전히 최저와 경봉에게는
눈길 한 번 던지지 않았다.안영(晏嬰)은 계속 대문을 향해 걸었다.
이제 몇 걸음만 더 나가면 그의 모습은 문 밖으로 사라질 판이다.
그때까지 입을 다문 채 안영의 행동을 지켜보던 경봉(慶封)이 눈가에 살기를 담으며 최저를 돌아보았다.
최저의 침묵이 불만이라는 표정이었다."그대로 돌려보낼 작정이십니까?"
안영의 입에서 무슨 말이 터져나올지 몰라 내심 긴장하고 있던 최저(崔杼)는 속으로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안영의 저 행동은 나의 행위를 용납하겠다는 뜻인가?'
최저는 안영이 들을세라 낮은 음성으로 경봉에게 속삭였다."저 사람은 백성들에게 신망을 받고 있소.
저 사람을 가만 놔두면 백성들의 신망을 얻을 수 있소."
밖으로 나온 안영(晏嬰)은 수레에 오르며 가재에게 말했다.
"주공께 작별 인사를 하고 왔네. 자, 이제 집으로 가세."
524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