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역에 관한 자료를 미국 도서관에서 찾다가 위도와 경도가 세계 최초로 그려진 청나라 때 지도를 보았는데 중국 중심에 평양이 뚜렷하게 표기 되어 있었다. 볕양자 平陽이지만 중국에 의해 우리 역사가 왜곡 된 것이 분명하기에 平陽이 平壤으로 축소되었을 것이다. 고조선의 평양이 그곳이라면 중국인들은 당연히 쫓겨 간 한반도 평양과 이름을 달리했을 것이다. 완전히 다른 이름으로 지명을 바꾸면 그곳 사람들에 혼란이 오니까 비슷한 한자를 썼을 것이다. 세종대왕 때 같은 소리의 한글 표기가 지금의 한글 표기와 다르듯이 같은 지명의 한자가 달리 표기되는 것은 비일비재 하다. 내가 한의사로서 고서에서 같은 한약도 한자가 다른 것을 너무 많이 보아왔기 때문에 평양의 한자가 다름에도 200여 년 전 중국 중심에 평양이 있음에 소스라치게 놀랐다.
왜 중국 공산당은 건국 후 그 지명을 평양에서 平遼(핑야오)로 바꾸었을까? 그 때부터 내 관심이 그리로 쏠리기 시작했다. 평양에는 평양성이 아주 잘 보존되어 있다. 이 성에는 성문 주위에 ㄷ자로 돌출된 치가 있어 북한과 만주에 있는 평양성들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 지금은 平遼古城이라 하는데 그 평양성이 청나라 때는 중국 최초의 은행이 있었던 곳이다. 아주 활발한 상업 중심지였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평양성이 거의 최근까지 주목을 받지 못했었다. 아마 이름이 평양성이라 의도적으로 소외당했을 것이다. 일본에 신라신을 모시는 신라신사가 아직도 50여개가 남아 있는데 건립 당시는 가장 번화한 거리에 위치해 있었는데 그 거슬리는 이름 때문에 그 곳이 소외된 벽지로 변한 것을 많이 보았다. 그러다 일본 NHK에서 평요고성이 중국에서 유래를 찾기 힘들게 잘 보존된 고성임을 주목하고 촬영을 해갔다. 그 후 일본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것을 보고 중국 당국은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등재시키고 관광지로 개발했다.
내가 5년 전에 갔을 때는 썰렁했는데 지금은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사람들에 떠밀려 다녀야했다. 요즘 뜨는 중국 패키지 관광명소가 되어 한국 사람들도 많은데 평요고성이 평양성이었다는 사실은 현지 가이드들도 모른다.
한국에서 개성 상인을 알아주듯이 중국에서는 이 지역 상인들을 晉商이라 하여 장사 잘하기로 알아준다. 이 지역이 원래 晋나라의 상업 중심지였다. 이곳이 예로부터 부자가 많기로 유명하다. 이 곳 패키지 관광에서 평요고성과 함께 들르는 곳이 王家大院 인데 왕씨 성을 가진 부자의 저택으로 서태후가 부러워서 이 부자를 죽이려 했단다. 규모만 좀 작지 일 개인의 집이 평요고성과 비슷하다.
진나라는 후에 韓, 趙, 威나라로 갈라져 이 세 나라를 3진이라 하는데 모두 수도 이름이 平陽이다. 여기서 한국과 같은 한자를 쓰는 한나라에 주목해야 한다. 한은 하나라는 뜻을 한자로 쓴 말이다.
요즘은 DNA 연구가 활발하여 DNA를 통하여 세계 인류의 한 조상을 찾는 연구가 유행이다. 분명 유라시아 대륙에 한 조상이 있다. 이 한 조상이 한 민족을 만들었고 이 할아버지를 우리 한민족은 하나의 수컷이라는 의미로 한 雄이라 부른다. 이 한 할아버지 후손을 우리는 한민족이라 부르고 이 한민족을 한자 하나로 韓이라 썼다.
중국과 로마를 쳐서 조공을 받던 상국이 유라시아 대륙 북방의 대국 흉노인데 스스로를 한이라 불렀다고 한다. 그래서 영국인들은 흉노를 한이라 발음한다. KHAN, KUN, HAN, HANS가 아직 유럽에 남아 있는 흉노 왕가의 성이다. 중국 사서에서도 한나라가 고조선을 멸망시킨 것을 흉노의 오른 팔을 잘랐다고 쓰고 있다. 사서가 아니라 날조되지 않은 문무왕 비석은 그들의 조상을 흉노에서 찾고 있다. 우리 한민족은 스스로를 한민족이라 부르고 흉노도 스스로를 한이라 부르니 우리는 유라시아 최고의 대국 흉노의 후손이고 흉노도 韓國이라 그들의 국가를 불렀을 것이다.
일본서기에 삼국이나 이전의 대륙을 韓國이라 기술한 것으로 보아 흉노가 지배한 대륙은 모두 한국이었던 것 같다. 3晉은 그 한국을 이어받기 위해 수도를 평양이라 했고 그 중에서 정통성을 이은 것이 韓나라 인 것 같다.
중국 대륙에 나라는 韓國 한 나라 밖에 없었고 그 중 이념을 달리 하는 일 파가 한국에서 갈라진 것이 유방이 세운 漢이며 이때부터 漢족과 韓민족이 갈라지는 것 같다.
진시황이 춘추전국시대를 통일했을 때 가장 활발히 독립운동을 벌인 나라가 韓나라이다.
그만큼 韓信을 대표로 하는 한나라 왕족 韓氏들이 유라시아 대륙의 주인의식이 있었던 것 같다. 이들이 한인(하나의 첫 인간) 한웅(하나의 첫 수컷)에서 시작되는 한씨들이었을 것이다. 장량은 한나라에서 대대로 재상을 하던 집안의 후손인데 이들이 주축이 된 독립운동에 왜 배신자 유방을 끼워주었는지 의문이다. 한신의 제나라가 유방보다 세력이 강했는데 왜 유방을 도우다 토사구팽을 당했는지 더더욱 의문이다. 이렇게 漢이 韓나라에서 갈라져 漢族이 韓민족에서 갈리게 된다. 이때부터 중국 대륙의 주인이 漢族이 되고 한신의 齊나라 유민들은 산서에서 산동으로 다시 한반도로 쫓겨나게 된다. 韓이 漢으로 되는 것은 平陽이 平壤으로 되는 이치와 같다.
산서성 평양은 요순의 도읍지로
유명하다. 순임금이 동이족인 것은 맹자에 나와 잘 알려져 있다. 요임금이 한족인데 동이족인 순임금에게 왕위를 물려줄리 없다.
산서성에는 汾河가 남북으로 흐른다. 산서성 수도인 太原에서 모인 물은 晉中, 평양을 지나 한식의 유래가 된 진나라 충신 개자추와 이세민이 도를 닦던 綿山을 지나 남으로 汾陽을 지나고 남서쪽으로 달려 韓城시에서 황하에 합류된다. 중국 한복판에는 韓城이 있고 한반도 한복판에는 漢城이 있으니 참 아이러니 하다. 백제 왕 중에 汾西王이 있다. 낙랑의 서쪽을 공격하여 차지했다가 낙랑군수가 보낸 자객에 살해되었다고 삼국사기에 기록되어 있다. 아마도 平陽 서쪽 분서 지역을 차지한 것 같다.
평양성에는 양조기술이 발달하여 汾酒와 黑醋가 유명하다. 진상들의 주력 품목이니 얼마나 잘 빚었겠는가. 분주는 중국의 8대 명주의 하나인데 52도라도 목넘김이 부드럽고 뒤끝에 오묘한 향이 난다. 무슨 향인가 궁금했는데 내가 사온 분주를 마셔보고 친구가 문배주 향이라 해서 내가 무릎을 쳤다. 문배주가 원래 평양 술로 대대로 왕에게 진상하던 술이다.조와 수수로 만들었는데 발효과정에서 돌배의 향이 난다고 문배주라는 이름이 붙었다. 산서성 평양의 분주가 한반도 평양으로 왔고 문배주란 이름으로 바뀐 것을 유추해볼 수 있다. 분주 몇 잔을 마시니 이 글이 술술 나온다.
평양성 전경
평양성 중심 누각에 수탉 장식
평양성의 치
왕가대원 서태후가 묵은 방
왕가대원 고려왕씨들 집성촌 개자추도 왕씨
왕가대원 서당의 온돌과 책상
평양성 굴렁쇠 중국에 흔하지 않음
평양성 뚝배기 설렁탕면
첫댓글 흥미롭고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중국 역사의 95%가 허구라고 합니다.
한때 중국이 외화유치 목적으로 외국 기업 유치와 관광객 유치를
위해 각 성이 옛 역사를 관광사업으로 활용 성의 역사를
소개했는데 우리역사와 관련된 내용이 많이 소개되었고,
중앙정부가 나서 지방정부의 역사를 소재로한
관광유치사업은 폐지가 됩니다.
외화보다 역사의 진실이 밝혀지는 것이 훨 두려웠던 모양입니다.
치우천자의 릉이 이런 연유로 알려지고 복원이 되었지요.
@태허루 현중국 고등이상졸업자중 역사에대한 진실을 묻는자체가 바보취급받는다고 합니다. 80%이상 엉터리역사인것을 알고있다고 합니다. 한국인이 대만유학시절 본토대륙학생과 대만학생이 역사애기 나오자 한국인의 지식으로 중국역사 애기를하니 두 중국인이 배를잡고 웃으다고 하더군요 ..
그쪽엔 온돌문화가있나요?
바로 보셨습니다.
올린 취지이기도 하구요.
우리민족만 온돌을 활용을 했습니다.^^*
중요한 내용이 하나 더 남았습니다.^^*
중국과 한국의 지명은 왜 이렇게 비슷할까요.
역사찾아 삼만리가 될 것같습니다.
대륙에서 반도로 축소되면서 옛 영광의 지명을 옮겨옵니다.^^*
고조선과 북부여 고구려를 구성한 부여계와 흉노계는 인골자체가 차이가 납니다...
좀도 상세한 연구가 필요하리라 생각됩니다...
정확한 지적입니다.
기사내용중 참고할 것이 있어 기사의 사실 확인과 무관하게
올렸으니 양지바랍니다.
훈은 단군조선의 위성국이지 단군조선이 훈의 오른팔로
표현을 한 것은 우리역사의 폄훼지요.
중국역사가 우리역사로 밝혀질 날이 곧 오겠지요.^^*
진나라는 후에 韓, 趙, 威나라로 갈라져 이 세 나라를 3진이라 하는데,
晉나라를 3국으로 나눈것이. 韓.趙.魏.
~늘 범상치 않은 입담의 매력에 푸욱~빠진 독자입니다^^
헌데 요즘 재야 역사학계의 폭넓은 인식에 비하면 조금은~약하다 시픈^^
~뭐 어떤분들에겐 이정도도 환타지니 뭐니 하겠지만요?
얼마전 어떤분이 댓글에 박용숙님의 샤먼제국인가를 얘기하신 기억이 나는데~
그런 인식에는 어떤 생각을 갖고계신지요?
~물론 박용숙님은 소설가이신 모양이드라구요^^
반갑습니다.
아직 확하지 못했습니다.
역사의 흐름은 크게 차이가 없을 것으로 추정만 합니다.^^*
치는 우리 특히 고구려성의
특징이죠!
2천년의 역사를 가진
한반도의 건축물들이
넘 초라하고 보잘 것
없습니다.
님의 글이 다 맞다 생각합니다.
방갑습니다.
알고 계셨군요.
아래에 대략적인 내용을 남겼기에 댓글은 줄입니다.
제가 인식할수 있는 범위는 온돌문화와 성입니다.
우리민족의 성은 관측이 쉬운 곳에 치라는 것을 두어
적의 침략을 조기에 발견 공격이 쉽도록 합니다.
그런데 우리 성은 석축이 기본입니다.
위 그림에 보이는 성은 치가 존재하고 전돌구조입니다.
치의 형태로 보면 우리 성 구조이나 축성 재료면에서 보면
중국 성 형태를 띕니다.
개인적 판단으로 석축의 구조를 감추기 위해 전돌로 외곽을
다시 한번 쌓지 않았나 싶어요.
확인해 볼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자금성을 미 해군 대위가 청말에 확인한 내용으로는
석축구조에 치가 존재했답니다.
그런데 지금은 치를 깍아내고 시멘트로 축성을 발라 원형을
감춘 것으로 보입니다.
자금성 또한 옛 고구려의 또 다른 평양이 아니었을까
추정합니다.
우리는 기본적으로 성씨의 본이 있습니다.
중국은 거의 다 사라지고 본은 없고 성만 살아있어요.
아마도 본향이 살아있으면 민족구분이 쉬워지고 민족 정체성에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으니 정책적으로 본을 없애버린 것으로
보입니다.
본이 살아있다면 한반도와 연결고리가 쉽게 밝혀질텐데
아쉬운 부분입니다.
온돌도 마찬가지고요....
중국은 뿌리가 없지요.
[천하제번식공도(天下諸番識貢圖). 1418년 제작]
2006년 1월과 3월에 개빈 멘지스는 계속하여 두 번이나 중공변호사 류강의 협조를 얻어
1763년에 모사한 것으로 알려진 1418년 세계지도와
그 지도 견본의 탄소연대 측정자료 결과가 맞다고 발표하였다.
류강이 소장하고 있는 이 「천하제번식공도(天下諸番識貢圖)」는
영국의 이코노미스트와 BBC 등 주류 영문매체에 보도된 후 세계를 떠들썩하게 하였다.
1763년 제작된 천하전여총도(天下全與總圖)에,
1418년에 제작된 천하제번식공도(天下諸番識貢圖)란 원본지도를 필사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고구려성이 저렀게 생겼군요..형태만 알았지 실물은 처음봄...
지나족이 쓴 삼국지에도 흉노족이 슬쩍 언급되어 있는데 어느 때부터인가 없어져 버렸지요.
지나족 장수들을 파리정도로 뭉개버린 여포"라는 장수인데요. 어려서 한족에게 부모형제들이 몰살당하고 천애의고아로 자란 흉노족이지요. 지나족이 그를 정략적으로 이용합니다.영리한 그가 모를리가 없었겠지요. 동탁이건 나발이건 전부 베어어립니다. 그에겐 철천지 웬수이니..그러다가 같은 흉노족인 초선이를 죽도록 사랑하죠. 초선이도 그를 진심으로 사랑했을 겁니다. 이런 그를 천하의 파렴치로 묘사해논 삼국지, 지금 여포보다 더 무서운 장수가 등장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