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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연화세계 원문보기 글쓴이: 자광
도솔천보다 서방 정토가 확실한 선택
일곱 번째 의문
미륵보살님께서는 일생보처에 계시면서 바로 다음 생에 성불 하실 분입니다. 우리 중생이 열 가지 착한 일을 닦아 상품 수행이 되면, 미륵보살님께서 계시는 도솔천에 생겨날 수 있습니다.
거기서 미륵보살님을 친견하고 수행하다가, 미륵보살님께서 사바세계에 내려오실 때 함께 따라 내려오면, 세 차례의 법회 교화를 받아 저절로 성인의 과위를 얻을 것입니다. 그런데 어찌 꼭 서방 정토에 왕생하길 구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답변
도솔천에 생겨나길 구하는 것도 또한 도를 듣고 부처님을 뵙는 것이라고 말들 하니, 외형상 얼핏 보기에는 서방 정토에 왕생하는 것과 비슷하게 여겨질 듯하오. 하지만 좀더 세밀히 비교하자면, 우열의 차이가 아주 크게 벌어진다오. 그 논거로 두 가지만 들어보겠소.
첫째, 설령 열 가지 선행을 닦아 지난다 해도, 꼭 도솔천에 생겨난다는 보장은 없는 것 같소. 왜 그런가 하면, 『미륵상생경』에 뭇 삼매를 수행하여 올바른 선정에 깊이 들어야만 바야흐로 (도솔천)에 생겨날 수 있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이오. 이걸 보면 미륵보살님께서는 그밖에 달리 특별히 중생을 이끌어 맞아들이는 방편법문을 갖지는 않으신 것이오.
이와는 달리, 아미타부처님께서는 본래 서원의 힘과 광명의 위신력을 바탕으로, 단지 부처님을 생각하고 명호를 염송하는 중생이 있기만 하면,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거두어 받아들이신다오. 게다가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는 구품연화의 방편법문으로 중생들을 교화하시면서, 서방 정토에 왕생하도록 은근하게 이끄시고 간곡하게 당부하셨소.
그래서 단지 중생들이 아미타부처님을 생각하면서 그 명호를 염송하기만 하면, 근기와 정성이 두 부처님의 자비 원력 및 가르침에 서로 감응하여 반드시 서방 정토에 왕생할 수 있소.
마치 우리 세간에서 어떤 사람이 누군가를 사모할 때, 그 상대방이 사모하는 사람을 받아들일 마음만 내면, 서로 의기가 투합하여 틀림없이 그 인연이 이루어지는 것과 똑같은 이치라오.
둘째, 도솔천도 기껏해야 욕계에 속하기 때문에, 수행의 경지에서 후퇴하는 자가 많다오. 그리고 극락세계처럼 중생들이 듣고서 항상 부처님을 생각하고 번뇌를 여의며 보리심을 낼 수 있도록 일깨워 주는 물소리.새소리. 나무 소리.바람 소리 같은 미묘한 교향 음악도 있지 않소. 또 거기에는 여인이 존재하여, 못 천상 인간들한테 다섯 가지 욕망에 애착하는 마음을 불러일으킨다오. 게다가 도솔천의 여인들은 매우 미묘하고 아름다워서, 뭇 천상 인간들이 그들과 어울려 놀고 즐기기에 정신 팔려, 스스로 수행에 힘쓸 수가 없을 정도라오.
그러니 아미타부처님의 극락정토와 같겠소? 극락세계에는 물 소리. 새 소리. 나무 소리. 바람 소리 등의 교향 음악이 울려 퍼지는데, 중생들이 이 소리들을 들으면 모두 한결같이 부처님을 생각하고 보리심을 내기 때문에, 번뇌가 일어날 수도 없다오.
또 여인도 없고 성문이나 벽지불 같은 이승의 마음이 전혀 없어, 오로지 순수한 대승보살들만이 청정하고 선량한 도반으로 계신다오. 이러한 까닭에 번뇌망상에 죄악업장이 언제까지라도 조금도 일어나지 않고, 마침내 무생법인의 경지에 이르게 된다오.
이것만 비교해도 그 우열이 현저히 판가름 나거늘, 어찌 다시 의심할 나위가 있겠소?
예컨데, 석가모니부처님께서 세상에 계시면서 몸소 교화하실 때에도, 부처님을 직접 뵙고 가르침대로 수행했으면서 성인의 과위(아라한)을 얻지 못한 이들이 갠지스 강 모래알만큼이나 많았소. 앞으로 미륵부처님께서 세상에 내려오실 때에도 또한 마찬가지로, 친견하고 가르침을 받으면서도 성인의 경지에 이르지 못한 이들이 수없이 많을 것이오. 그러니 어찌 아미타부처님의 서방 정토에 견줄 수 있겠소?
극락세계에는 단지 왕생하기만 하면, 모두 무생법인을 얻게 되고, 어느 한 사람도 다시 삼계에 떨어져 나와 생사 윤회의 업장에 묶이는 법이 없다오.
또 『서국전』에서 이런 얘기를 들었소. 세 보살이 계셨는데, 한 분은 무착이고, 다른 한 분은 세친이며, 또 다른 한 분은 사자각이셨소. 이 세분은 서로 마음과 뜻이 맞아, 다 함께 도솔천에 생겨나 미륵보살님을 친견하기로 결의하고서, 누구든지 먼저 죽어 미륵보살님을 친견하는 자가 남아 있는 이한테 그 소식을 알려 주기로 서약하였소.
그러다가 사자각이 먼저 죽었는데, 한번 가더니만 몇 년이 지나도록 도무지 캄캄 무소식이었소. 그 뒤에 세친이 가게 되었는데. 임종 때 무착이 "만약 자네가 미륵보살님을 친견하거든, 곧장 되돌아와서 알려 주게나." 라고 신신당부를 했다오. 그런데 세친이 간 뒤로 3년이 지나서야 비로소 찾아왔길래, 무착이 이렇게 물었다오. "도대체 무슨 꿍꿍이로 이렇게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비로소 찾아온단 말인가?" 그러자 세친이 이렇게 대답했다오. "거기 도솔천에 올라가 미륵보살님 설법을 한 바탕 듣고서, 곧장 되돌아 내려와 소식 전하는 것일세. 거기 도솔천은 하루가 매우 길어, (거기서 잠깐 머물렀는데도) 여기서는 벌써 3년의 세월이 흐른 것이라네."
그래서 무착이 "그러면 사자각은 지금 어디에 있단 말인가?" 라고 묻자, 세친의 대답이 참으로 가관이었소. "사자각은 도솔천의 즐거움을 누리고 다섯 욕망을 즐기느라, 이미 바깥 권속이 되어 버렸네. 한번 도솔천에 올라간 뒤로, 여태껏 미륵보살님을 뵌 적도 없다네."
보살들도 경지가 낮으면 거기 도솔천에 생겨나서 이처럼 천상의 미묘한 오욕에 빠지기 십상이거늘, 하물며 보통 범부 중생이야 말할 나위가 있겠소? 이러한 까닭에, 서방 극락정토에 왕생해서 틀림없이 불퇴전의 경지에 이르겠다고 발원해야 하며, 도솔천에 올라가서 미륵보살님 뵙기를 구해서는 안 된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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