던컨은 사생활을 매우 중시하는 사람이며, 그런 그가 우리에게 자신의 삶에 대해 자세한 설명을 해준다는 건 그다지 있을 법 하지 않은 일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건, 대개의 경우 NBA 선수들에게 동기를 부여하는 것들(돈, 명예, 안티팬들 등)이 던컨에게는 적용되지 않는 것 같다는 점이다. 포포비치의 의견에 따르면, 던컨과 코비 브라이언트의 동기는 "모두가 그들의 마음 속에, 열정 안에 있지. (그들은) 철두철미한 프로페셔널들이고, 높은 수준으로 동기부여가 되어 있어. 달리 어떤 종류든 간에 외부에서 동기부여를 해줄 필요가 없지. 그런 점에서 볼 때 매우 특별한 선수들이야. 그들은 스스로 동기부여를 해. 코트 위에 머물기 위해서 필요한 거라면 뭐든지 해내고. 스스로를 관리하고, 농구를 사랑하지."
최근 블리처 리포트에 올라온 인터뷰에서, R.C. 뷰포드는 단지 농구에 대한 사랑 외에 다른 무언가 던컨으로 하여금 계속 플레이하게 하는 것에 대해 말한 바 있다.
"...내 생각엔 던컨이 현재를 즐기는 것 같아요. 포포비치는 팀이 가장 던컨을 필요로 할 때 던컨이 최고의 기량을 발휘할 수 있게끔 정규시즌을 운용하고 있죠. 나는 이게 정말로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던컨은 현재를 즐기고 있고, 드레이븐과 시드니(던컨의 아이들)는 그에게 커다란 힘이 돼주고 있어요. 그는 이 긴 여정을 아이들과 공유하는데 성공하고 있습니다. 난 그가 그걸 좋아한단 걸 잘 알고 있어요. 분명히 언젠가는 던컨이 집에 머무르며 가능한 많은 시간을 아이들과 함께 보내려 할 날이 오겠죠. 현재는 그들이 던컨의 여정을 함께 하면서 즐기고 있습니다. 나는 그들이 가족으로서 함께 멋진 시간을 나누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던컨이 가지고 있는 다른 많은 장점들과 마찬가지로, 그의 삶에서 가족의 중요성은 던컨의 어린 시절 어머니와의 관계에서부터 비롯된 것이다.
던컨이 NBA에 도달하기까지의 과정은 그 특이성으로 인해 일찍부터 잘 알려져 있다. 수영선수로서 올림픽에 출전하겠다는 꿈을 박살내버린 태풍이 오기 전까지는 던컨은 단 1분조차도 농구를 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비교적 덜 알려진 사실은, 던컨이 수영을 그만두겠다는 결정을 내리는데 그의 어머니가 미친 영향이다. 1997년 샌 안토니오 익스프레스 뉴스지에 실린 기사에서 케빈 오키프는 이렇게 썼다.
던컨이 정말로 수영을 그만 둔 이유가 생긴 것은 그 다음해 봄, 1990년 4월 던컨의 14번째 생일 하루 전이었다.
그는 자신을 격려해 줄 사람을 잃어버렸다.
델리샤 던컨이 유방암을 앓다 사망한 것이다.
그녀의 죽음이 던컨에게 막대한 영향을 끼친 것은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을 것이다. 그는 어머니가 병으로 고통을 겪는 모습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보았다.
델리샤 던컨의 죽음은 던컨이 빠르게 성숙하도록 만들었다.
거의 말이 없고 미디어의 관심을 가능한 피하려 하지만 협동을 잘하는 성격. 던컨은 웨이크 포레스트 대학에서의 첫 3년 동안 어머니의 죽음에 관해서 가능한 언급하지 않으려 했다. 그러다 올해 드디어 그 주제에 관해 입을 열었다...
"어머니의 죽음은 그에게 깊은 상처를 남겼습니다," 웨이크 포레스트대 심리학과 학과장이자 던컨의 지도 교수인 드보라 베스트의 말이다.
"그는 제게 어머니의 죽음을 지켜본 과정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베스트가 USA TODAY지에 한 말이다. "제가 볼 때 현재 던컨이 가진 강한 자립심은 그토록 일찌기 어머니를 잃어버렸다는 사실에서부터 나왔습니다."
던컨은 어머니가 자신의 가장 열렬한 팬이었으며 그에게 나아길 길을 가르쳐 줬다고 말했다. 또한 어머니의 죽음 이후 대부분의 사람들을 피해왔다고도 했다.
"그 누구도 어머니의 자리를 대신할 수는 없습니다." 던컨의 말이다.
팀의 가장 열렬한 팬이 그가 농구를 하는 걸 단 한순간도 본 적이 없다는 것은 정말 얄궂은 일이다. 만약 2013-14 시즌이 우리에게 뭔가 가르쳐주는게 있다면, 던컨과 그의 아이들간의 관계가 정말로 가깝다는 사실일 것이다.
2014 플레이오프에서 스퍼스가 보여준 경기력은 역대급으로 뛰어났으나, 그 시즌에서 가장 기억에 남을 순간은 모든 경기 시간이 종료된 후에 일어났다. 던컨은 자신의 감정을 밖으로 분출시키는 일이 거의 없기에 이런 순간의 아름다움은 더욱 밫을 발한다.
이 우승이 던컨에게 얼마나 큰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를 이해하기 위해 던컨 인생의 얽히고 설킨 모든 디테일을 알 필요는 없다. 그러나 이 포옹 안에 함축된 사건들은 너무나 풍부해서 (당시 진행 중이었던 지저분한 이혼소송과 딱 일년전 겪었던 가슴아픈 7차전에서의 패배) 할리우드의 영화 대본에서 바로 튀어나온 일인 듯 하다.
하지만 던컨에게 있어서 가족이란 단지 혈연으로만 이어진 관계들 그 이상의 것이다. 그는 올랜도에서 그랜트 힐과 트레이시 맥그레디와 함께 트리오를 이룰 수 있는 매력적인 제안을 포기하고 대신 샌 안토니오에 머물기로 선택했는데, 그 이유는 던컨과 포포비치 사이의 특별한 관계 때문이었다. 뷰포드는 예전에 포포비치가 던컨의 "영혼의 단짝"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그리고 물론 데이비드 로빈슨이 있다 :
또한 스테판 잭슨과 : "팀 던컨이 내 좋은 친구라고 말할 수 있어서 영광이다."
토니 파커도 있다 : "티미는 내게 큰 의미가 있다. 난 그에게서 너무나도 많은 것을 배웠다. 내가 샌 안토니오에 처음 도착했던 바로 그 날부터 그는 언제나 내 뒤를 받쳐주었다. 그는 진정으로 좋은 친구이며 우리는 코트 안과 코트 밖에서 항상 가까운 사이였다."
그리고 마누 지노빌리 :
그리고 여기 빅 펀더멘탈 본인이 자신의 NBA 동료들에 관해 한 말이 있다 :
데이비드 로빈슨, 에이버리 존슨, 션 엘리엇 그리고 포포비치와 기타 여러 사람들에게 스퍼스의 탄탄한 기초를 쌓은 공을 돌려야 마땅하다. 그러나 던컨이 그것을 더욱 길게 지탱해왔다. 지난 16년이란 기간을 통틀어 스퍼스가 이론의 여지 없는 가장 위대한 스포츠 프랜차이즈였던 이유는 던컨이 이 농구 가족 전체에게 최선이 되는 길을 찾기 위해 기꺼이 스스로를 희생해왔기 때문이다.
2014년 NBA 타이틀을 차지한 후 던컨은 우승으로 다가가는 여정을 이렇게 요약했다. "정말 특별했다. 승리 그 자체만으로도 이미 특별한 날이지만, 홈에서 해냈다는 것, 내 아이들과 가족들 그리고 친구들이 있는 앞에서 해냈다는 것이 이걸 훨씬 더 특별하게 만들었다. 내게 너무나도 멋진 경험이었고, 그들에게도 너무나 멋진 경험이었다."
나는 티미가 이제는 돈이나 명예를 위해 플레이하는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아마도 포포비치가 옳아서, 던컨이 RPM을 멈추지 않고 올리는 이유는 그의 경기에 대한 사랑 때문일 수도 있다. 그것이 분명히 이유의 일부분이겠지만, 던컨이 두 가족의 구성원으로서 자신이 받은 것에 보답하고자 하는 마음 또한 중요한 이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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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은 http://www.poundingtherock.com/2015/8/5/8828345/what-motivates-tim-duncan
첫댓글 NBA 선수로써 본 받을만한 위치에 있다고 생각 합니다. Timmy the Best ever !!!!
선수로서 이룬 것도 대단하지만, 제가 팀던컨을 단지 대단하다고만 여기지 않고 좋아하는 이유는,
저런 프로페셔널한 자세와 단순히 결과물이 아닌 그 결과물을 성취하기까지 그가 걸어온 여정이 존경스럽기 때문입니다.
뭉클합니다....... 받아들여야 하겠지만 그가 은퇴하는 날은 상상하기 싫습니다... 마누형도..
걍 농구가 아직 잼있는거 아닐까요 ㅎ
더운날 땀나게 띠고 패스하고 블락하고
그런 짜릿한 기분 다블 아시면서 ㅎ
실력이 늘지 않아서 재밌는걸까요?
감동적인 좋은 글입니다. 잘 봤습니다.
올랜도에 갈뻔한 적이 있었군요. 몰랐네요.
경기 내적으로나 외적으로나 본 받을 점이 정말 많은 것 같습니다.
조용하고 우직한 성격임에도 불구하고, 팀원들이 따르는 이유는 사람이 좋아서겠죠?
99-00시즌이 끝나고 던컨은 fa가 됐습니다. 스퍼스는 98-99시즌 우승했지만 문제는 이 99 스퍼스의 주축선수들이 던컨 한명 빼고 다들 노장이었단 점이죠. 99-00시즌 이들의 노쇠화와 부상으로 팀의 전력은 하강했고 던컨조차 시즌 말미 부상으로 플옵에 결장하게 되면서 스퍼스는 1라운드에서 우승권과는 좀 거리가 있는 팀이었던 선즈에게 맥없이 탈락했죠. 그 후 던컨의 행보는 태풍의 눈이었는데 당시 리그 최고의 3번이자 fa였던 그랜트 힐이 던컨의 선택을 본 후 자신의 거취를 정하겠단 말을 할 정도였습니다. 그 때 떠오르는 영스타 티맥을 보유한 올랜도가 던컨과 힐을 동시에 영입해 단숨에 강력한 컨텐더가 되겠다는 전략을 세웠죠.
많은 사람들이 던컨이 하루하루 늙어가는 스퍼스를 떠나 젊고 재능넘치는 올랜도로 갈거라 생각했습니다. 실제로 던컨은 올랜도를 방문해 코칭스탭들과 진지한 대화를 나눴고, 힐이 올랜도와 계약을 맺고 나자 언론과 전문가들은 던컨의 올랜도행을 거의 확정하다시피 했죠. 그런데 이 때 하와이에서 휴가를 즐기고 있던 제독이 부랴부랴 미국으로 돌아와서 포포비치와 함께 던컨을 열렬히 설득했고 결국 던컨은 스퍼스에 머물기로 했습니다. 스퍼스에서 던컨이 이룬 업적은 뭐 여러말할 필요가 없는 것이지만, 던컨 팬으로서 이때 던컨이 올랜도에 갔더라면 어떤 일이 일어났을지 궁금하기도 합니다. 티맥-힐-던컨 라인업은 과연 어땠을까요...
@Timmy the Best 와 자세한 설명 감사합니다. 던컨이 고민 많이 했을텐데 대단하네요. 그 이후로 우승을 여러 번하면서 던컨의 프랜차이즈는 더욱 가치를 갖는 것 같습니다.
근데 그때 힐의 부상에 대한 문제는 전혀 없었나요?
@위긴스 제 기억으로는 당시 힐은 한창 전성기였고 부상은 올랜도에 와서 입었던 걸로 압니다. 만약 던컨과 함께 뛰었다면 부상을 입지 않았을 수도 있었지 않을까 하네요.
@Timmy the Best 감사합니다. 앞으로 2년이 기대되네요. 알드리지와 함께 새로운 역사를 써내려갈지ㅋㅋ
@위긴스 제가 기억하기론, 이미 피스톤스에서의 마지막 시즌 중에 부상을 당했습니다. 하지만 힐의 비중이 워낙 컸기에 부상을 안고서도 히트와의 플레이오프 1라운드를 뛰었죠. 팀은 패배하고 발목 상태도.. 그로 인해 매직에서 제대로 꽃피우지 못한.. ㅠㅠ
@이한량 아 그렇군요. 감사합니다. 여러모로 안타까운 선수네요.
@Timmy the Best 좋은 번역글 감사합니다.
한 가지... 티맥-힐-덩컨 라인업은 사실상 불가능했습니다. 당시의 올랜도는 이 셋 모두를 동시에 영입할수 있는 형편이 아니었거든요. 덩컨의 영입이 물건너 간 상황에서 생각해낸 옵션이 티맥이었습니다. '힐과 덩컨' 아니면 '힐과 티맥', 이 두 옵션 중에 하나를 택해야 했죠.
@Doctor J 저는 당시 올랜도 측에서 진지하게 셋을 다 영입할려고 시도했던 걸로 기억하는데, 제 기억이 잘못된건가 보네요...
@Timmy the Best 티미 더 베스트 님의 기억이 잘못된 게 아니고요... 당시 올랜도에서 하려고 했던 건, 덩컨과 힐을 맥시멈으로 잡고, 남은 돈으로 티맥까지 잡으려 했던 것인데, 사실 당시에 스타급으로 떠오르던 티맥이 받아들일 수 있었던 계약금과는 너무 동떨어져 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래서 셋 모두를 잡으려던 꿈은 그냥 꿈으로 끝나버렸던 것이죠. 그래서 실질적으론, 힐을 먼저 잡은 후에, 덩컨이나 티맥, 둘 중 하나를 더 잡는 쪽으로 가닥을 잡아야만 했던 것입니다.
감동적인 글 잘봤습니다. 아이들이랑 같이 우는 모습에 괜히 저도 울컥하네요. 그나저나, 흰티와 반바지의 단순한 조합을 자신만의 패션으로 만드는 컨형의 센스또한 놀랍습니다.
저런 멋진남자를...트레이너랑 눈이 맞아서 버린 그여자는...정말 멍청한 사람이네요...암튼 정말 멋집니다....ㅜ.ㅜ
던컨과 스퍼스는 역사에 남을 아름다운 만남입니다.
잘 읽었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ㅠㅠ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