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와니]] 결혼한 남자에게

내가 너를 너무 늦게 좋아해 버린 거야.   너의 맘도 모르고 계속 한눈 팔다가 이제야 정신 차려 버린거야.   돌이킬수 없을때 알아 버린 거야.   이젠 정말 어떻게 할 수 없으니까..     같은 동네에서 산다는 게 이제는 너무 힘들다.   툭하면 마주치는 너가 보기 힘들어..     "어? 밤에 갑자기 웬 편의점이야?"     문을 열고 들어섰는데 너가 있는 거야. 드라마가 끝나고 괜히 출출해져서 컵라면이나 먹을까 하고 왔는데 하필이면 널 만난 거야.   반갑다는 듯이 날 보며 웃는 너를 보며 나는 심장이 가라앉는 줄 알았어. 널 그토록 피하려고 노력했는데... 내 맘대로 되지 않아서.     "너야 말로. 뭐 사러 왔어?"   "아. 은서가 갑자기 스파게티가 먹고 싶대. 나가서 사 먹일 수도 없고 재료 사다 만들어 주려고."   "아..."     차라리 날 모른 척 하지. 그랬다면 난 그냥 자연스럽게 널 스쳐 갈수 있었잖아.   결혼했다는 거 팍팍 티내며 싱글벙글 웃으며 내 옆에서 고르고 있는 너는   어떻게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행복해 보여서..   그토록 미울 수가 없다.   넌 말이야.. 사람 나쁘고 이기적이게 만들어 버리는 거 순식간이야.   왜 착한 너와 너의 그녀에게 이런 이상한 생각이나 하게 하고 그러니.     "면은 두꺼운 거 살까. 얇은 거 살까."   "난 얇은 게 맛있더라."   "그래?"   "응. 두꺼운 건 포크로 잘 안 집히더라구."     옆에서 보니 피곤한지 웬지 홀쭉해졌다는 느낌이 드네. 턱선도 더 날렵해지고. 볼살도 많이 없어진 것 같아.     결국엔 아이스크림 하나 들고 나왔어. 배고픈게 싹 사라지더라.. 나도 참 주책이지?     그런데 너도 이런 느낌이었니?   사라지는 너의 뒷모습을 보는데.. 누가 내 어깨를 툭 치기라도 하면.. 금방 울어버릴 것만 같아서.   내가 옆에 없는데도 여전히 멋진 너를 보면서, 나 없이도 잘 살아가는 너를 보면서..   참 세상이 원망스러워 지더라고.     이제야 알아 버렸는데.. 너가 이제까지 해줬던 작은 배려들. 힘들어 하는 내게 용기를 북돋아준 말들. 알게 모르게 남들 앞에서 나를 치켜세워준 말들. 농담 하듯 던지던 관심의 표현들을.               "야. 재민이가 생일 축하한대."   장난기 많은 너의 친구들이 킬킬거리며 날 감싸고 돈다.   난 부끄러워서 미치겠는데.. 쪽팔려서 미치겠는데!!   "너네 진짜 자꾸 이럴래?"   "우리가 왜?"   제발 이런 것 갖고 장난치지 좀 말았으면 좋겠다고 몇 번이나 말해도 한사코 듣기를 거부하는 너의 친구들.   만약 진짜 너가 나를 좋아한다면 와서 고백이라도 하던가.   이런 어정쩡한 관심 스포트라이트 웬지 부담스러워.   나도 좋아하는 사람 있는데.   나와 한참 떨어진 교실 뒷편에서 민망한듯 머리를 긁적이며 날 보고 있는 너.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나는 교과서에 얼굴을 파묻는다.   "뭐라고 전해줄까?"   얼굴을 들이밀며 내 앞으로 다가오는 민우.   귀가 빨개질 것 같다. 그래 난 민우를 통해 너의 관심을 받고 싶진 않아.   보이니? 너는 지금 이게 다 재밌다고 생각할지 몰라도.. 나는 심각하단 말이야.   난 정말 좋아하는 사람이 있단 말이야.   "됐거든?"   "됐긴 뭐가 됐어? 재민이가 너 생일 선물로 뭐 받고 싶냐고 묻는데?"   "안 받아도 된다 그래!"   내 책상 앞에서 몸을 쭈그린 채 팔을 걸쳐 날 빤히 쳐다보는 니 친구의 시선이 낯 간지러워서 미치겠어.   난 말이야 사람을 좋아하면 이렇게 똑바로 쳐다보지 못한다고. 알겠지?   "정말?"   "어!"   "야!! 재민아!! 그냥 사랑한단 말이면 충분하대!!"   뭐가 저렇게 좋은지 깔깔거리며 벌떡 일어서는 민우의 모습을 곁눈질로 흘겨보고   내 뒷통수에 닿는 너의 시선에 나는 뒤돌아보지 못하고 종이 쳐서 들어오신 선생님만 바라본다.   "반장?"   "네?"   나도 모르게 멍때리고 있었는지 선생님이 나를 부른줄도 모르고 있었다.   벌떡 일어서서 차렷 경례를 외치고 고개를 숙였다.   그런데 수업 중간에 갑자기 선생님이 내 번호를 외치는데 뭔가 섬짓한 느낌이 든다 했더니 결국엔..   "오늘 12일이지. 자 그럼 12번이 읽어볼까?"   "선생님! 오늘 반장 생일이래요!"   또다시 너의 친구들이 난리였다.   얼떨결에 다같이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르게 되었는데 다들 중간중간에 너의 이름을 넣어서 부르는데..   민망해서 죽.을.것. 같았다 그래도 과장되진 않았다.               "언니. 재민오빠 고등학교 때 얘기좀 해주세요."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날 보는 너의 아내의 재촉에 할수 없이 입을 열었어. 너가 피식 웃으며 은서를 보는데 그런 너를 못 본 은서의 모습에 예전 내 모습이 겹쳐져서 쓴웃음이 나와. 너가 예전에 날 그런 시선으로 봤었다면..     "체육을 참 잘 했지. 계주 대회 나가면 항상 반 대표로 나가고, 항상 1등 따오고. 축구 경기가 있으면 항상 골도 넣고."   "와. 그럼 오빠 여자애들한테 인기 많았겠네요?"   "글쎄.... 그건 모르겠다?"     나와 은서가 큭큭거리며 좋아하니까 너가 어이없어 하는 거야. 그리고 난 그 모습을 보며 남몰래 또 가슴 아파 하는 거야.     "사귀었던 여자는 몇명이었어요?"   "중학교때? 고등학교때?"   "다 합쳐서."     널 보니까 약간 당황한 눈치였어.. 당황할게 뭐가 있다고 그러나 싶었지.. 아 그리고 깨달았어. 바로 니 옆에 내 옆에 니 아내가 앉아 있다는 사실을. 난 왜 아직도 자꾸만 친한 여자 후배라고 생각해 버리는 걸까.     "얘 인기 없었어. 그때는 키도 이렇게 안 컸었거든."   "아 진짜요?"     궁금해서 물어봐 놓고선 긴장한 것 같아 보이는 너 아내의 표정을 보고서는 하마터먼 잘못할 뻔 했다라는 생각이 들었어.     "그러면 오빠 대학교 가서 키 큰거에요?"     부른 배를 살포시 두손으로 감싼 채 너의 옆에 붙어 물어보는데.. 잘 어울리는 것 같아서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지..     "글쎄. 고딩 졸업한 이후에는 연락이 잘 안 돼서. 얼굴도 많이 못 봤어. 게다가 별로 안 있어 녀석 군대 갔고."   "아...."     그리고 또다시 물어보기에 바쁘네. 추억 되짚는 건 좋은데 나는 왜 이렇게 아프니..               "옛다. 전해 주란다."   졸업 꽃다발에 장미꽃이 있어서 깜짝 놀랬다.   혹여나 장미꽃 개수에 특별한 의미가 있을까봐 세보지도 못했다.   "이제 스물이니까 스무개란다. 이 기막힌 정성에 놀랍지도 않냐?"   역시나 너의 각별한 친구 민우는 내게 설명해 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난 가슴 끝까지 차오른 그 말을 못해 속이 타는 것 같은데 니 친구는 이 상황을 즐기는 것 같았다.   그래 너를 통해서 이렇게밖에 연결되지 않는대도 좋아 라고 생각하고 싶었는데   졸업식이니까 어쩌면 다신 보지 못하니까 말하고 싶었다.   오랫동안 숨겨온 내 마음을 꺼내고 싶었다.   "신민우."   "왜?"   줄이 박박 그어진 만화가 그려진 더이상 하얀색이 아닌 실내화로 모래 운동장을 박박 긁는 민우를 보며   나는 말했다. 더이상 너로 인해서 연결되지 않게 내 마음을 통해서 연결되게 그렇게 말했다.   "있잖아.. 나 사실 너 오랫동안 좋아했어."   깜짝 놀라 굳어버린 니 친구를 보며 쓴 웃음을 삼키고 또 삼켰다.   "재민이는?"   어떻게 민우의 입에서 니 이름이 먼저 나오더라.   "나 걔 안 좋아해. 맨날 말했잖아!"   어떻게 하다 보니 민우 어깨 건너로 말없이 뒤에 서 있던 너와 눈이 마주치게 되었는데 그때만큼   미안해진 적이 없었다. 혹여나 내 말을 들었을까 조바심이 났다.   너가 나를 정말 좋아했던 건지 아니면 항상 친구들의 시덥잖은 장난에 말려 들어갔던 건지는   알수 없었지만 그래도 너에게 작은 상처라도 남기고 헤어지고 싶진 않았다.   하지만 결국 상처를 받은 건 나였다.   "고맙지만 그 고백 못 받아들이겠다."   난 너가 찬 축구 공이 골대로 들어가는 순간에도 너에게로 달려와 머리를 박박 쓰다듬는 민우를 봤어.   너가 계주에서 1등으로 들어와도 그순간 내 옆에서 아싸를 외치며 방방 뛰는 민우를 봤어.   너가 준 생일선물보다 그때 내게 전해주며 민우가 해준 말이 더 기억에 남았어.   너가 나랑 짝이 되었을때의 너의 표정이 아닌 반에서 가장 예쁜 여자애와 짝을 한 민우의 표정을 보았고 아파했어.    "응.. 괜찮아. 그럼 나중에 보자."   뒤돌아서며 운동장을 가로질러 부모님의 차로 향하는데 나를 계속 보고 있는 너를 보지 못했다.   차 유리창에 비친 너에게로 다가가는 민우의 모습을 잠시 보고는 문을 열어 차 안으로 들어갔다.               "애기 참 이쁘다. 이름은 뭘로 했어?"   "세은이."   "이름도 이쁘네. 쭈쭈쭈 세은아 이모야 이모."     이제 확실히 유부남 낙인 찍혔구나!   차라리 잘 됐어. 이젠 제대로 잊을 방법이 생겼어.   하하하!!!               영장 날라왔다는 너의 말에 친구들이 모이게 되었다.   민우와는 어색해서 눈도 못 마주치고 괜히 멀리 떨어져 테이블 한 구석에 자리를 잡았다.   니가 나한테 뭐라고 말한 것 같은데 주위가 시끄러워서 잘 들리지 않았다.   뭐 먹겠냐고 물어본 것 같아 대충 닭볶음탕이 먹고 싶다고 하고는 재빨리 내게 닿아있는 민우의 시선으로부터   피했다. 일년하고도 몇개월이 지났는데도 아직도 그날 생각에 얼굴이 화끈거렸으니까. 너는 나와 민우를 몇번   번갈아 보더니 알겠다는 눈치로 크게 웃으며 분위기를 띄웠다. 고맙다고 말하고 싶었는데 말할 방법이 없었다.   "오랜만에 왕게임이나 할까!"   "오 그래!"  그렇게 해서 꼬깃꼬깃 접은 종이 열장을 넣고 종이컵에 빙빙 돌리다 이번에 왕이 된 보라가 하나 꺼냈다.   게임이 한창 절정으로 치닫고 있을 무렵이었다.   "이번에 뽑힌 사람 둘은 찐하게 뽀뽀 한 번 하는거야?"   "1번 누구야 1번?"   "아씨 나네."   민우가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니 친구는 어떻게 당황하면 머리를 매만지는 버릇까지도 여전한지   모르겠다. 아니 그 버릇을 갖고 있었던 건 너였었나.   "5번?"   재수도 지지리도 없었다.   내가 손을 들자 너의 표정이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것이 보였다. 나와 민우 사이에 있었던 일을 아는 건 너   밖에 없었으니까. 만약 너가 나를 계속 좋아하고 있었다면 그때 어떻게든 우리가 그런 거에 걸려드는 것을   막았었겠지. 그런데 너는 나를 그런 이상야릇한 표정으로 보면서도 아무말 안하고 한사코 지켜보기만 했다.   "오오 맨날 괴롭히던 사람과 괴롭힘 당하던 사람이군!"   너의 친구는 나를 쑥스러운 듯이 보고 나도 쑥스러워 미칠 것 같아 있는데 그제야 너가 말을 꺼냈다. 오그   라들었던 내 심장이 다시 팽팽하게 펴지는 느낌이었다.   "잠깐만! 우리 재민군이 무슨 말을 하고 싶어하는데?"   선미가 흥미진진한 눈빛으로 너를 쳐다보았다.   "흑기사 되지?"   그때 터져나오는 친구들의 환호에 마치 고등학교 시절로 돌아간 느낌이었다.               "충!성!"   "푸하하. 너 군기 제대로 잡혔다."   머리에 손을 올리고 우리를 보고 있었다.   군기가 잡힌 만큼 팔에는 각이 제대로 잡혀 있었다.   남자다워져 돌아온 너를 보니 미친듯이 신기했다 그리고 처음으로 설렜다.   "머리 짧은 것도 괜찮다."   내 말에 머리를 매만지는 너였다.   "빨리 다시 기르고 싶은데."   "웬지 길면 더 어색해질 것 같아."   "그래?"   이렇게 친구들이 모인 자리에서 대화하는데 마치 우리 둘만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술자리에서 너의 모습을 지켜보는데 너가 뭔가 달라진 것 같았다.   내게 예전에 쏟던 관심의 반의 반의 반으로 줄은 것 같았다.   여전히 나를 배려해 주며 행동했지만 다른 여자애들한테 하는것과 마찬가지였다.   "여자친구 생겼대?"   호기심 반 긴장 반으로 선미에게 물어봤다.   "아니. 어떻게 벌써 생기겠어 제대한지 얼마나 됐다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을때 너가 뒤에서 다가와 내 어깨를 툭 쳤다.   한껏 무거워진 손힘에 나도 모르게 움찔했다.   "하나도 안 변했네."   2년동안 남자친구도 2명이나 진하게 사겼고 눈물도 흘릴만큼 흘려봤다.   머리도 덕분에 짧게 자르고 더이상 애같이 보일 핑크색 계열의 옷은 입지 않았다.   그런데 변하지 않았다고 말한다면 너는 역시 둔한 거였다.   "아니 더 이뻐졌다고 말해야 하는 건가?"   "아부는 사절이야."   내 말에 픽 웃는데 정말 많이 어른스러워졌구나 하는 느낌과 동시에 순간 옛 추억이 내게로 밀려와   마치 파도처럼 나를 휩쓸고 지나갔다. 마이는 답답하다고 항상 와이셔츠만 입고 다니고 팔목은 걷   은채 바지는 헐렁하게 실내화는 친구들과 같이 매직으로 낙서해 놓은 너의 모습이 유난히도 생각이   났다. 시험이 끝난 날 친구들에게 끌려 피시방으로 끌려가는 어정쩡한 모습도 생각이 났고 마찬가지로   친구들 사이에 엉켜있는 내게 조심스레 다가와 몇점 받았냐며 물어왔던 모습도 생각이 났다. 그래서   나한테 등을 얻어맞은 니가 아프다며 손을 등 뒤로 돌려 매만지던 모습도 일부러 아픈척 울상짓는   너의 웃긴 모습도. 생각해보니 너와 나 사이에 있었던 일들이 참 많았던 것 같았다.   그런데 나는 항상 너의 옆에 있었던 니 친구의 모습만 기억했었다는게..   "아니. 정말 이뻐졌다. 너."   ..미안해졌다.               "그럼 잘 있어. 나중에 또 연락해?"   "네 언니. 조심히 들어가세요."     행복하지!!     "잘 가."   "응."     그래!! 그거면 됐어..!!   이제 정말 끝이네.   이제 정말 쓸 말도 없다.   그만 일기장을 덮어야 겠어.   나중에 다시 너가 그리워 지면 적을게.   그동안 만큼은 내가 너를 잊고 살아도 괜찮겠지?   정말 정말 정말 정말 정말 안녕이다!!   이제 더 말한다면 결혼한 남자에게는 실례가 되니깐.     오늘의 일기 끝.           ------------------------------------------------------------------------------------------ 이번편엔 번외 없습니다   써질래야 써지지가 않을 것 같군요..   ㅠㅠ 다음 소설로 찾아뵙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