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사동 선사유적지를 돌아보다가
강동구 암사동엔 선사유적지가 있다. 기원전 4천 년 경에 신석기인들이 살았던 곳이라 한다. 1925년 한강 대홍수 때 깊게 파여 그 흔적들이 드러났다는데, 움집의 흔적이며, 움집 안의 토기 파편이며, 불을 피운 화덕 흔적들을 발굴하여 전시하고 있다. 그들은 죄 없는 자연과 싸우며 삶을 이어나갔을 텐데 얼마나 고달팠으랴..., 한 시간가량 둘러보다가 쉬려니 마치 원형경기장 같은 마당이 있어서 양띠방 허주(虛舟) 님과 함께 씨름하는 시늉을 내봤다.
겨룬다 함은 서로 버티고 힘을 견주는 걸 말한다. 우리나라가 종주국인 태권도에서는 기본 기술과 품세를 조화 있게 활용하여 실전에 응용할 수 있도록 두 사람이 맞서 겨루는 것을 국제경기용어로 <겨루기>라 이름 짓기도 했다.
겨루기와 유사한 용어로 시합이나 경기나 싸움이라는 것들도 있지만, 어느 것이나 서로 힘과 기량을 겨뤄 자웅을 가리는 것을 말한다. 겨루기의 양상은 힘에서 기량으로 무게 중심이 이동해가고 있다. 먼 수렵시대, 자연을 정복해야 생명과 안전을 유지할 수 있던 때는 힘을 키우는 게 제일가는 덕목이었겠지만 생활에 여유가 생기면서부터는 힘보다 세밀한 기예를 겨루는 데서 더 많은 즐거움을 누리게 되지 않았나 싶다. 그래서 올림픽 구호인 더 빨리 더 높이 더 멀리에서 벗어나 더 다양한 경기들이 선뵈어지고 있고 인기를 끄는 것일 게다.
단순히 빨리 달리기를 겨루는 마라톤보다 현란한 발놀림을 구사하는 월드컵축구에 더 열광하는 것도 그런 예의 하나가 아니던가. 겨룸에 있어서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한쪽이 이겨야 하고, 다른 쪽은 져야 끝장이 난다. 그래서 겨룸에서는 적든 많든 치열성을 내보일 수밖에 없다.
로마시대 겨루기의 하나인 판크레이션은 두 선수 중 하나가 죽어야 끝을 냈다고 한다. 생명과 재산을 놓고 겨루는 전쟁에서는 그래서 치열성이 극에 달할 수밖에 없다. 겨루기의 결과 힘이 앞선 쪽이 이기기 마련이지만,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다. 동방까지 세를 확대했던 로마나 서방까지 말발굽으로 짓밟아대던 몽골제국이 멸망한 것도 그렇거니와 최근세사에서 소련연방이 해체된 것은 모두 지나친 힘을 관리하다 피로한 때문이란 해석도 있다.
겨루기의 결과 기량이나 기예가 앞선 쪽이 반드시 이기는 것만도 아닌 것 같다. 시쳇말로 운이 따르지 않아 졌다고 자위하는 건 이를 두고 하는 말이요, 惡貨가 良貨를 몰아낸다는 <그레셤의 법칙>도 유사한 예의 하나일 것이다. 지금 북한에선 핵무장을 놓고 세계의 여러 나라와 힘겨운 겨루기를 하고 있다. 핵무장은 힘과 기술이 뒷받침되어야 가능한 것인데, 사회주의낙원을 건설한다면서 민초들의 복지는 외면한 채 그렇게 극한으로 치달을 게 무언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지나친 힘을 관리하다 피로해 망한 역사가 있는가하면 운에 따라 이기거나 지는 경우도 있는데, 힘겨워하는 한민족의 반쪽이 어떤 결말을 맞을지 애만 태우며 바라볼 수밖에 없는 현실이 아프기만 하다.
나와 허주 님은 계미생 양띠인데, 양은 송곳니가 없고 발톱이 예리하지 않아 동물의 전쟁에서 제일 뒤처지는 초식동물일 뿐이다. 서양의 구약시대에는 하느님께 아침저녁 또는 안식일에 제사 올리는 번제(燔祭)에서 통째로 구워져 받쳐지는 희생물일 뿐이기도 했다. 여기서 유래되어 남의 죄를 뒤집어쓰는 속죄양의 그 양(羊) 일뿐인데 둘이 스스로 서로 겨루다니? 봄판에 소가 웃을 일이었다.
그제는 제22대 총선거가 있었다. 각 정당으로 갈리어 한판 겨뤘지만 이기고 진 게 무슨 대수랴. 그저 한 마음으로 나라를 잘 이끌어주기만 바랄 뿐이다. / 2024. 4. 12
위 글은 지난 4월 12일에 쓴 글이다. 그 전날 걷기방 모임이 있어서 참여해봤는데, 양띠로선 허주님과 내가 참여했다. 그래서 손잡고 걷다가 씨름하는 시늉도 해봤다. 갑장이란 묘한 동질감에 그리 해봤는데 같이 자도 되겠더라. 그렇다고 애기까지야 낳겠느냐. 소문이나 나겠지.ㅎ
지난해엔 석촌호반에서 양띠모임이 있었고, 내가 번개를 쳤다. 12시 반에 잠실역 1번출구에 모이자고 했다. 나는 그곳에서 집이 가까운지라 시간 맞춰서 12시 29분에 나갔더니 참여한다는 사람들이 이미 다 와있더라. 하나하나 손잡고 인사를 나누려니 허주님이 나에게 옆차기 시늉을 하면서 "번짱이 왜 이제 나와?" 하더라. 그것 참! 하지만 나는 그게 매우 가까운 친밀감으로 느껴졌다. 그렇기도 하지만 나도 왕년에 당수도 도장에 다니면서 4급까지는 딴 당수 실력자인데 나에게 옆차기를 해? 물론 웃자고 해본 소리지만 당수도를 이야기하자면 짝은거인 님이 생각난다. 그는 태권도 4단으로서 체육관도 운영했다고 한다. 그러니 허주님이나 나나 짝은거인 님 앞에서는 옆차기시늉 낼 것도 없이 부르면 그저 머뭇거릴 것도 없이 달려나가리란 생각이나 해야겠다.
첫댓글 선배님~12년후에 저도 선배님들 처럼
그렇게 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을 늘 해보고는 합니다~
늘 건강 하시고요~
무슨 그런 말을...?
충분히, 아니지요, 더 할 수 있겠지요.
을미생 아우님들 화이팅입니다.^^
선배님의 좋은글에 머물다
갑니다 감사합니다
네에 고마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