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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뭇잎이 포스스 떨어졌다. 소년은 제 무릎에 무엇이 떨어진지도 몰랐다. 그저 웃음을 띠고 소녀를 바라보기에 열중이었다. 소녀는 잘도 잤다. 먹구름을 지나 모습을 비춘 석양이 저를 물들인지도 모르고. 소녀의 눈두덩이로 작은 그림자가 졌다. 소년이 달달 떨리는 손으로 소녀의 머리칼을 넘겨주었다. 소녀가 잠깐 뒤척이자 순식간에 뒤로 나가떨어진다. 두 손을 꼭 모은 것이 간절하기 그지없었다.
“깨지 말어라….깨지 말어라….”
정말 깰까봐서 크게 말하진 못하고 조용히 주문처럼 외었다. 석양이 조금 더 연해지면, 그때가 되면 깨울 생각이었다. 소녀가 너무 예뻤기 때문에. 물론 사랑에 빠진 소년에게는 무엇인들 못나뵐까 싶지만, 긴 속눈썹하며 앙 다문 입술이 여간 사랑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이따금씩 입꼬리를 씩 올리는 것이, 좋은 꿈을 꾸는 것 같아 도리어 기분이 좋아졌다. 소년은 드러누워 턱을 괴었다. 둘 사이로 따뜻한 바람이 불었다.
턱을 괴던 소년의 표정이 우스꽝스럽게 변했다. 소녀가 깨어난 것이다. 깊은 눈동자를 짧게 떴다가, 감았다가. 갓 태어난 어린 양 같은 모습이었다. 소년은 서둘러 몸을 일으키고 신발을 찾았다. 자신이 저를 보고 있었다는 것을 들키면 안되었다. 겨우 신발을 찾아 끈을 매는데,
“어머나!!”
해가 져버렸네! 소녀의 다급한 목소리가 저의 귀를 울렸다. 소년은 뒤늦게 밀려오는 죄책감에 눈을 꼭 감아버렸다. 재빠르게 신발을 신는 소리에 콱 죽어버리고 싶었다. 미안해, 안 깨워서. 사실은. 저가 주저리주저리 말을 풀기도 전에 소녀는 언덕 위로 달려갔다. 조용해진 정자에 소년이 한숨을 쉬었다. 날이 어두워지고 있었다.
“저기!!”
맑은 목소리에 소년이 파득, 하고 몸을 돌렸다. 석양이 지는 곳에서 소녀가 손을 흔들고 있었다. 눈이 부셔 제대로 보지는 못했지만, 저를 향해 흔들고 있는 손을 포착했다. 소년이 함지박만한 웃음을 달고 손을 흔들었다. 팔이 빠질세라 흔들어주니 소녀가 다시 언덕 위로 뜀박질을 시작했다. 금세 좋아진 기분에 소년이 콧노래를 불렀다. 신발을 대충 구겨 신은 소년이 힘차게 내달렸다. 내일도 소녀를 볼 수 있을까 하는 일말의 설렘을 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