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의 글이 관리자에 의해 경제현안 방으로 넘어갔네요
일단 경제현안 방에서 쓰도록 하겠습니다.
지난 글에서 왜 일본경제의 혁신력이 저하되고 있는에 대해 시평에서 언급된 과잉규제, 갈라파고스화된 폐쇄적 시장구조, 지지부진한 구조개혁 등 그리고 부동산 거품 붕괴와 생산활동인구의 감소로만 일본의 혁신력 하락을 설명하기에 충분할까요? 라고 질문해보았습니다. 그리고 딱 한가지로 원인을 말하자면 정치라고 하였습니다.
그럼 이제 왜 정치 인지 한번 풀어보겠습니다.
먼저 일본의 역사에 대해 간략히 언급을 해볼까합니다.
고대까지 갈 필요는 없구요 임진왜란 이후부터 시작하겠습니다.
임진왜란 이후 히데요시 추종세력(서군)과 도쿠가와 이에야스 세력(동군)이 패권을 두고 한판 전쟁을 벌인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이에야스의 승리로 끝난 후 일본의 권력 중심은 에도(현 도쿄)에 자리잡은 도쿠가와 이에야스 즉 에도(도쿠가와)막부가 200년 이상 메이지 유신(1868)까지 이어집니다.
당시 서양은 대항해 시대가 이미 접어들은 상태로서 이미 포르투갈 상인들에 의해 전파된 조총을 들고 일본은 임진왜란에 들고왔을 정도로 일본은 서구와의 교류가 빨랐습니다.
그럼 왜 조선은 19세기 후반에 되어서야 병인양요 신미양요처럼 서양세력일 들어 왔을 까요?
그건 서양인들의 시각에 조선은 중국의 일부 또는 변방, 즉 중국땅 인줄 알았고 일본은 태평양 항로에 위치하고 조선보다 남쪽에 위치함으로써 서양인들에 의해 섬나라이니 중국과는 다른 나라로 인식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서양인들은 Korea를 모르고 일본을 먼저 알게 되니 일본열도와 아시아 대륙사이의 동해 바다를 일본해로 알게 됩니다.
나가사키등 일부 제한된 구역에서만 서양세력(네덜란드)과 교류하던 일본은 한 사건으로 인해 나라전체가 큰 충격에 빠지게 됩니다 그건 흑선(쿠로후네) 미 함대 페리제독의 도쿄만 진입이었습니다(1854)
여기서 에도막부는 도저히 배의 크기나 증기선의 빠른 속도 그리고 무었보다도 도저히 상대가 안되는 함포의 크기와 사거리에 대해 상대가 안됨을 절감하고 미국에 문호를 개방하고 이후 각 유럽나라 영국, 프랑스, 독일과도 교류를 합니다.
처음에 서양제국들은 일본을 그냥 이때까지 식민지로 만들와 왔던 다른 아시아국가들과 비슷하게 보았는데 막상 일본을
식민지로 만들려고 한번에 다 잡아먹으려니 좀 힘든 부분이 있었습니다.
나라를 실질적으로 지배하고 있던 도쿄의 에도막부하고만 협상을 하면 다 되는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일본은 지금으로 말하면 지방자치제가 확실한 나라였습니다.
즉 무역을 하려면 에도 막부하고만 협상을 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각 지방 현과도 따로 따로 또 상대를 해야하는 번거로움이 있었던 겁니다.
즉 나라를 대표하는 정치세력으로 에도 막부가 있었지만 조선처럼 중앙에서 지방으로 지방관을 파견하는 것이 아니라 에도막부에서 각 지방의 가장 큰 토호 세력을 영주(다이묘)로 임명하고 그 지방을 다스리게 하는 봉건제도였기 때문입니다.
봉건제도 에서 중앙집권과의 큰 차이점은 그 지방의 군사들은 중앙의 소속이 아니라 지방영주의 소속입니다.
우리로 말하면 귀족의 사병이고 가병인셈이죠. 즉 언제든지 수틀리면 중앙을 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이래서 서양각국들은 각 지방 현(우리 같으면 도)과 별도로 거래하면서 이익을 취하고
일본 각 지방현들도 중앙의 에도막부의 눈치를 보면서도 어느정도 자율적으로 자신들의 현의 이익을 위해 서양세력과 별도로 교류를 합니다.
그러던 중 일본내부에서 서양세력과의 무역으로 재미를 보면서 점점 경제력과 군사력이 커진 일부 지방의 현들과 중앙의 에도막부간에 점점 갈등이 깊어갑니다.
그 중 쵸슈번(현 야마구치 현)과의 전쟁에 에도 막부는 당시 가장 서양세력과의 무역으로 경제력과 군사력이 강하던 사츠마번(현 가고시마 현)에게 전쟁에 참가하기를 강제합니다.
고민하던 사츠마번은 사카모토 료마라는 인물의 설득으로, 즉 막부가 막부에 반기를 드는 쵸슈번을 치고 나면 다음으로 막부에 위협이 되는 강성한 사츠마번을 칠텐데 과연 쵸슈번을 치는 전쟁에 앞장설텐가? 하면서 사츠마번을 설득해
삿쵸동맹(사츠마+쵸슈)를 이루고 그 연합된 힘이 에도막부를 능가함에 따라 결국엔 막부가 굴복하고 권력을 천황에게 돌려주는 대정봉환을 이루어 내게 됩니다.
그 이후 이 두 번이 중심이 되어 에도(도쿠가와)막부시대를 허물고
천왕 중심의 새 정권이 수립이 되니 이것이 메이지유신(1868)입니다.
현 아베총리도 쵸슈(현 야마구치 현) 출신입니다. 부산과 부관페리가 다니는 시모노세키시가 있는 지방입니다.
이 지방 출신으로 정한론으로 유명한 요시다 쇼인 그리고 우리가 그 이름을 익히 아는 안중근의사가 처단한 그 이름 쇼인의 제자 조선통감부 초대총감인 이토 히로부미도 이 지역 출신입니다.
이후 일본은 러일전쟁에 승리후 한국을 병합하고 중국을 넘보고 태평양 전쟁을 일으키고
미국에게 핵폭탄을 얻어맞고 패전을 합니다.
이후 잿더미 속에서 일본은 패전은 했지만 전쟁전 근대화를 이룬 경험이 있기에 특유의 근면성으로 80년대 경제대국 2위까지 오르게 됩니다.
임진왜란 이후 일본의 역사를 무리하게도 빈약한 실력으로 요약 기술해보았는데요.
이 역사에서 느끼는 점은 일본은 민, 즉 그러니까 서양에서 처럼 하층에서의 혁명. 세상이 뒤집어지는 경험을 한번도 하지 못했다라는 것을 느낌니다.
막부에서 천황으로 권력이 넘어가는 것을 경험을 했다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대의명분으로 천황을 내세운 것이지 실제 권력은 아래 사츠마와 쵸수번 출신들의 사무라이들이죠
즉 그러니까 우리나라 같으면 양반인 도쿠가와 세도가문에서 사츠마/쵸슈 세도가문으로 변경되어 계속 양반들이 정권을 잡고 있었다는 말이 됩니다. 즉 귀족들이 계속적으로 정권을 잡고 있었다는 말이 됩니다.
2차대전 패전이후 미국에 의해 민주주의가 본격적으로 실시가 되어도
일본의 특성, 단일된 나라보다 자기가 사는 지방 현을 중심으로 생각하는 사고 그리고
농민이 따로 있고 그 위에 사무라이(양반)이 존재한다는 계급사회의 뿌리가 지금도 완전히 소멸 되었다고 보기는 힘들다고 판단 됩니다.
그 예로 일본에서는 의원 세습이 있지요 고이즈미 전총리도 자신의 아들에게 지역구를 물려주었다고 하고요 아베 현총리도 비슷합니다. 지금이 무슨 음서제도가 있는 우리나라 고려시대도 아니고 국회의원직을 물려 받는다? 이게 현대 민주주의체제에서 말이 된다고 생각하시는지요?
이렇게 세습정치인이 많다보니 정치개혁이 그만큼 힘들겠지요 그리고 일본사회는 우리보다 더 혈연/지연/학연이 심한 것을 영화나 드라마에서 심심치 않게 볼수 있습니다.
저는 바로 이 경직된 사회체제가 일본이 2차세계대전 패전 이후 한국과 중국등 기타 다른 나라들이 따라오기 전까지 산업경제하에서는 품질좋고 낮은 가격의 가성비로써 일본이 압도적 아시아 1위로써 한때 세계경제대국에 올랐을지는 모르나 자율성과 도전적인 모험정신을 기반으로 지식과 창의력으로 이끌어가는 지식경제 산업으로 변화되는 90년대부터는 일본이 더 이상 치고 앞서나가지 못한 원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야기가 길어지내요 다음편에서 마무리 하도록 하겠습니다.
첫댓글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다음 마지막편도 기대하겠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다음편 기다리겠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좋은정보 감사합니다... 다음편도 기대합니다..... 땡큐요~
귀한 글 감사합니다~~(__) 한국에서도 민에 의한 21세기판 혁명이 일어나는 것, 가능한지? 이 질문은 먼저 나 자신에게 질문해야겠다라는 생각이 듭니다~
미산님 댓글 감사합니다
우리나라에서 민에 의한 혁명이 21세기에 일어날런지에
대한 것은 다음 글에 쓰도록 하겠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세습으로 인한 기득권들의 눈높이로 정치(정책)을 펼쳐서 잘된 나라가 없다는 내용이네요.적극 공감합니다^^
너무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일본에 대해서 참 재미나게 써주셨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어떤 조직 혹은 상황이 변화에 대응하는 반응은 그것의 견고함과 반비례합니다. 그 견고함은 다른 말로 안전성, 보수성이라고 할수 있지요. 따라서, 일본 사회는 그만큼 안정화된 사회이고, 보수적이라는 것이지요.
이 사회의 고도의 안정성이 변화에 대응하는 혁신력 부족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단지, 봉건체제, 민중혁명 경험의 부족, 세습문화 등만이 혁신력 부족을 이끄는 것은 아닙니다.
좀 건너뛰어....아베가 추진하는 정책은 일본의 부족한 혁신력을 외부로부터 얻고자하는 것입니다. 아베가 꿈꾸는 내부의 힘을 결집하여 외부와 충돌하고자하는 정책은 , 어떤 결과가 나와도 일본을 혁신으로 이끌 것입니다. 이것은 민주주의, 민중혁명보다 더 강력한 혁신력을 만들것입니다.
이러한 것이 역사입니다. 한 사람의 생이 모두 다르듯, 한 나라의 역사도 모두 제각각의 색깔을 갖는 것입니다.
일본은 언제나 세력간의 충돌에서 에너지를 얻으면서, 변화하여 온 나라입니다.
대표적 민중혁명인 프랑스혁명이 역사적의미를 갖는 것은 맞지만, 그것이 모든 것의 정답은 아닐 것입니다.
세상을그리다님 읽어주시고 댓글 달아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사회의 고도의 안정성이 변화에 대응하는 혁신력 부족으로 나타나신다고 하셨는데요, 미국에서 애플, 테슬라 같이 혁신적인 기업이 나오는 것은 미국이 불안정해서 그런것은 아니겠지요.
그리고 혁신이란 변화에 대응하는 것도 있지만 근본적인 가치 창출로서 변화를 주도하고 새로운 수요을 창출하는 것에 가깝지 않겠는지요.
봉건체제, 혁명경험 부족, 세습문화만이 일본의 혁신력부족을 설명해주는 것은 아니다라는 세상을 그리다님 말씀 동의 합니다. 다음 글에서 계속 풀어보겠습니다.
한마디로 요약하면.....일본은 전쟁을 못해서 망가지고 있는 겁니다.
@세상을그리다 아베노믹스에 대한 소장님의 강연을 한번 보시기 바랍니다.
엔화약세를 주도하여 수출을 늘려 수출기업의 이익을 늘린다 한들 그것이 혁신을 일으킨다는 보장 없습니다.
오히려 국민들의 수입물가가 상승해 내수경제가 더 힘들어질 수도 잇지요
우리나라도 기업유보금은 그렇게 많은데 왜 투자가 일어나지 않고 혁신을 하지 못할까요.
@세상을그리다 세상을그리다님 전쟁 말씀하시면 안되시죠.
동양사상에서 특히 중국,일본,한국 등은 혁명이 쉽게 일러 날 수가 없는 구조라고 합니다.혁명을 이상하게
못되게 받아들이는 경향이 아주 크게 느껴지기도 하지요.기존의 기득권 위주의 환경을 다수의 국민들이 함께 공정 기회와 평안하게 미래 걱정없이 살아 갈 수 있도록 환경을 바꾸는 것이 혁명이라고 합니다.서양의 혁명들이 그랬듯이 말입니다.
일본의 근면성도 없지 않았겠지만 근본적으로 미국의 일본 중시 정책과 한국전쟁으로 말미암은 경제대국으로의 성장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양 이데올로기 하에서 일본은 극동에서 자본주의 미국의 전략적 동반자며 중국과 러시아를 막아내는 소모성 국가입니다.
또한 이미 일본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핵투하전 남하하는 러시아에게 항복의사를 밝혔습니다. 원자폭탄 때문에 항복한 것이 아니죠.
다소님 댓글 감사드립니다. 미국의 중시정책과 한국전쟁이 경제대국의 성장이라는 말씀 동의합니다.
미쳐 제가 말씀 못드린 것을 잘 지적해주셨습니다.
남하하는 러시아에게 항복의사를 밝힌 것은 만주 관동군으로 알고 있어요 일본 본영에서는 러시아에게 항복
안한 것으로 알아요. 미국도 러시아가 늦게 참전하는 것를 꺼림직 하게 생각했지만 만주에서 일본군과 전쟁을 치루면서 러시아도 상당한 피해를 입을 줄 알았는데 그렇게 만주 관동군이 빠릴 무너질 줄 을 몰랐죠.
그래서 이 러시아의 빠른 남하가 결국엔 한국분단의 원인이 되기도 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