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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 3시 42분
트럭 한 대가 검은 도로 위를 달리고 있다. 트럭은 어둠 속에서 가로등의 불빛을 받아 묘하게 반짝거렸다. 트럭을 비추는 가로등의 불빛은 썩은 오렌지를 닮아 있었고 그 밑의 아스팔트는 밑도 끝도 없이 어두웠다. 점선으로 이루어진 차선이 진로 방향을 인도하지 않았더라면 이 칙칙하고 탁한 어둠속에서 누구라도 길을 잃었을 것이다. 아무튼 기분 나쁜 밤이었다. 하지만 그러한 기분 따위 전혀 안중에도 없다는 듯이 트럭의 엔진은 굉음을 뿜어내며 조용한 밤공기를 거칠게 찢어 놓았다.
트럭의 두 눈이 사납게 번뜩거렸다. 물론 기계 장치와 전기의 힘에 의한 불빛이었지만 트럭의 두 눈은 사나운 맹수의 그것보다 위협적이었다. 애처롭게도 이 난폭한 두 눈에 압도당한 동물들이 하룻밤에도 수십 마리씩 이 어둡고 차가운 도로 위에서 살해당하곤 한다. 물론 이 트럭이 그 끔찍한 일을 벌인 것은 아니지만, 트럭의 모습과 그 움직임은 보는 이로 하여금 두려움을 느끼게 하기에 충분했다.
트럭의 운전석에는 그 남자가 앉아 있었다. 싸구려 검은 모자를 아무렇게나 눌러 쓴 남자는 그곳에 앉아 이 괴물과도 같은 트럭의 핸들을 잡고 있었다. 남자의 두 눈이 빠르게 움직였다. 그의 시선이 앞을 향하다가 계기판으로 움직이더니 왼쪽 사이드 미러를 쳐다보고는 다시 앞을 향했다. 그리곤 이내 오른쪽 사이드 미러를 흘끗거리고선 룸미러로 뒤의 화물칸을 잠시 보았다가 다시 앞을 보았다. 남자의 눈동자는 쉬지 않고 움직이고 있었다. 다른 차량의 통행도 없고, 그냥 직진만 할 뿐 별다른 조작이 필요 없는 이런 구간에서 이렇게 바쁘게 움직이는 그의 눈동자는 마치 엄마 잃은 어린아이처럼 불안에 가득 차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의 초조함은 그의 손과 발에서도 나타났다. 클러치와 브레이크, 엑셀을 오가는 그의 두 발은 필요 이상으로 바쁘게 움직였다. 핸들조작과 기어 변속을 맡고 있는 그의 두 손에는 식은땀이 맺혀 있었다. 이러한 그의 초조함이 그의 자동차를 더욱더 위협적으로 움직이게 만들고 있는 것이 분명하였다.
남자의 눈에 저 멀리 있는 교차로의 신호등이 보였다. 어둠속에서 교차로의 신호등은 파란색으로 선명하게 반짝거렸다. 남자는 저 파란 신호가 유지되는 동안 교차로를 건너갈 생각으로 자동차의 속도를 올리기 위해 오른발에 조금 더 강하게 힘을 주었다. 오른쪽 발밑에 깔려 있던 액셀러레이터가 부드럽게 밀려들어갔지만 엔진 회전마저 부드럽게 올라간 것은 아니었다. 엔진에서 섬뜩한 굉음이 터져 나왔다.
ㆍ3시 43분.
남자의 트럭이 교차로를 약 오백 미터 정도 남겨 놓았을 즈음 교차로의 신호등이 파란불에서 노란불로 바뀌었다. 순간적으로 남자는 자기도 모르게 기어를 한 단계 내렸다. 엔진이 크게 울부짖는 것과 동시에 트럭이 심하게 꿈틀거리더니 이내 엔진 브레이크가 걸리기 시작했다. 트럭의 속도가 줄어들기는 하였지만 트럭이 멈출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트럭은 남자가 브레이크를 밟기 전까지는 절대로 멈추지 않을 것임에 분명했다.
남자의 머리가 바쁘게 돌아가기 시작하였다. 저 신호등이 빨간불이 될 때, 파란불이 되는 신호등은 어느 쪽이었지? 어느 쪽에서 차가 나오는 거였지? 매일같이 다니는 길인지라 이제 신호 체계 정도는 익숙해질 때도 되었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것이 기억나질 않았다.
다행히 교차로에 대기하고 있는 차는 보이지 않았다. 남자는 이 교차로에 감시 카메라가 없다는 것을 이미 확인하였기 때문에 사각지대에서 달려오는 차만 없다면 그대로 통과해도 전혀 문제 될 것이 없었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파란불로 바뀐 신호등을 보고 속도를 올리며 달려오는 차가 전혀 없다고 확신할 수 있을까? 속도를 줄이는 것이 더 현명한 것일까?
이제 교차로는 100여 미터밖에 남지 않았다. 남자는 멈출 것인지 아니면 교차로를 그냥 통과할 것인지 아직 결정하지 못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오른발에 힘을 주고 있었다. 트럭의 속도는 팔십 킬로미터를 넘어섰다. 엔진이 미친 듯이 소리를 질러 대고 있었다. 분명 지금 보이지 않는 어둠 너머의 들짐승들이 이 굉음을 들었다면 그들은 마치 사냥감에게 공포심을 심어주기 위해 내지르는 맹수의 포효를 들은 것 마냥 그 자리에서 얼어버렸을 것이다. 그 살기등등한 굉음이 남자의 트럭을 괴물로 보이게 만들었다.
남자의 트럭이 교차로에 진입하기 약 십여 미터 정도 남았을 때, 신호등이 빨간 불로 바뀌었다. 남자는 마른 침을 삼키며 재빠르게 좌우를 훑어보았다. 오른쪽 신호등이 파란불로 바뀌었다. 하지만 아직 어느 쪽에서도 달려오는 차량의 불빛이 보이지 않았다. 의아하게 생각할지는 모르겠지만 밤에 하는 운전은 빛에 의한 운전이다. 어둠속에 가려 형태가 안 보이는 밤에는 낮처럼 형태를 온전히 확인하면서 운전을 할 수가 없기에 운전자들은 작은 불빛의 변화에도 민감하게 반응해야 한다. 예를 들어 어느 쪽에서인가 헤드라이트 불빛이 나타난다던지, 어느 곳의 가로등 불빛이 갑자기 일렁인다던지, 뭔지 모를 빛의 변화가 있다면 그것을 재빨리 감지하고 대응해야만 순간적인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것이다. 그걸 모르는 초보들은 사고를 내지만 남자는 베테랑이었다. 아무튼 지금 이 순간까지는 어느 쪽에서도 달려오는 차의 불빛은 없었다. 남자가 교차로를 지금 그대로 통과한다고 해도 문제될 것은 아무것도 없는 셈이었다.
그의 트럭은 빠른 속도로 교차로에 진입하였다. 그의 차가 교차로의 절반을 통과하며 신호등 밑을 스쳐지나 갈 때쯤에야 남자는 트럭의 기어를 올렸다. 자동차의 rpm은 삼천 오백을 넘어서 사천에 육박하였다가 순식간에 이천 오백으로 떨어졌다. 미친 듯이 울부짖던 괴물의 소리가 조금은 작아졌다.
ㆍ3시 44분
[따르릉 뚱뚱 뚜루루루룽~]
남자의 핸드폰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울리기 시작했다.
“아~ 젠장.”
핸드폰의 소리는 무시한 채 번뜩거리는 계기판 사이로 스멀거리며 빛을 내는 시계를 확인한 남자가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젠장, 늦었어.”
남자는 마음이 급해졌다.
[따르릉 뚱뚱 뚜루루루룽~]
“젠장. 젠장. 젠장.”
남자는 터져 나오는 욕지기를 눌러 참으며 룸미러를 통해 트럭의 적재함을 쳐다보았다. 트럭의 적재함에는 남자의 몸뚱이만한 기계 덩어리가 나무 상자에 담겨져 실려 있었다.
멍청한 창고관리인이 수화물 목록만 제대로 살펴봤다면 지금쯤 이 덩어리는 일본의 어느 공장에서 대형 발전기의 부품으로 조립되고 있었을 것이다. 그 빌어먹을 창고관리인이 반나절만 일찍 이 부품이 빠졌다는 것을 눈치 챘더라면 남자는 이걸 배달하기 위해 이 새벽에 움직이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그 개 같은 창고관리인이 2시간만 일찍 이 쇳덩어리가 새벽 3시 반까지 배달되어야 된다고 연락 줬더라면 사장한테서 이렇게 5분마다 전화 오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돼지처럼 처먹기만 하지 제대로 하는 일이 없어.”
남자는 육중한 몸으로 어슬렁거리기 좋아하는 창고관리인에게 한바탕 욕을 퍼부으며, 시끄럽게 울리는 핸드폰을 구석으로 집어 던졌다. 핸드폰은 조수석 어딘가에 떨어지면서 어둠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동시에 시끄럽게 울리던 전화도 끊어져 버렸다.
남자는 적재함에 실려 있는 나무 상자를 다시 확인했다. 그리곤 늦어도 4시까진 물건이 공항에 도착해야 첫 비행기로 보낼 수 있다고 한 창고관리인의 말을 떠올렸다.
“쌍놈. 지가 가는 거 아니라고 말은 쉽게 하지.”
지금 시간 새벽 3시 44분. 아무리 생각해봐도 15분 만에 공항까지 가는 건 무리인 것 같았다. 남자는 엑셀을 밟고 있는 발에 더 힘을 주었다. 그리고 괴물이 다시 울부짖기 시작했다.
ㆍ3시 45분
남자가 이런 저런 생각들을 하고 있는 사이 그가 탄 트럭은 또 하나의 교차로를 지나쳤다. 이번에도 교차로의 신호등은 빨간색이었다. 교차로를 지나침과 동시에 남자의 눈에 횡단보도의 파란 신호등이 스쳐 지나갔다. 순간 남자는 저 횡단보도에 사람이 있었는지 없었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남자는 자신의 몸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밤에 다니는 사람들은 그림자 속에 숨어 있다. 빛의 흐름을 읽으면서 운전하는 운전자에게 있어 그림자 속에 숨어 있는 사람들은 가장 큰 위험 요소 중에 하나이다. 이 이기적인 사람들은 언제나 자기중심적이다. 밤에 다니는 운전자들이 얼마나 빨리 달리는지, 그리고 그 속도를 못 이겨 자신을 발견할 때엔 이미 늦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은 자신과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게다가 자신들이 그림자 속에 가려져 밤에 얼마나 눈에 잘 띄지 않는지 따위는 전혀 개의치 않고 그저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움직인다. 신호에 상관없이 도로에 뛰어들어도, 술에 취해 길바닥 위에 잠이 들어도 자신은 안전할 것이라고 믿는다. 자신들은 보호받을 것이라고 믿는다.
근거 없는 자신감에 가득 찬 자기중심적인 행인이 방금 전 그 횡단보도에 있었는지 없었는지 남자는 확인하지 못했다. 남자는 불현듯 자기도 모르게 불길한 상상을 하고 말았다. 사람을 치고는 그 사실을 몰라 계속 달리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그런 생각 말이다. 물론 남자는 사람을 치지 않았을 것이다. 하다못해 조그만 생쥐를 밟고 지나가도 액셀러레이터나 브레이크를 통해 그 느낌이 올라오는데, 사람 같은 큰 물체를 치고도 아무런 느낌이 없었을 리가 없었다. 가슴한구석에서 불안한 느낌이 꿈틀거리며 올라왔지만 남자는 애써 그 느낌을 지웠다.
ㆍ3시 46분
남자가 달리는 도로의 차선은 늘어나 있었다. 이것은 남자의 트럭이 이제 남부 간선로에 진입하였다는 것을 의미하는 동시에 목적지까지 절반 정도 왔다는 것을 의미했다. 하지만 앞으로 30분 이상은 더 달려야 목적지에 도착할 것이었다. 무슨 수를 써도 4시까지 도착하는 것은 무리였다. 남자의 마음이 급해졌다. 남부 간선로만이라도 빨리 통과한다면 4시까지는 아니더라도 4시 10분 안에는 도착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남자의 뇌리에 스쳤다. 주저할 시간은 없지 않은가.
남자는 액셀을 강하게 내리누르며 트럭의 속도를 더 올리기 시작했다. 남자의 트럭이 다시 굉음을 내며 괴물의 형태를 나타내려 할 때쯤이었다. 갑자기 남자의 트럭의 앞에 주황색 택시 한 대가 끼어들었다.
“윽!”
남자의 입에서 외마디 비명이 튀어 나왔다. 남자의 몸에 아드레날린이 분비되면서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하였고, 식은땀이 땀구멍을 비집고 흘러나왔다. 불과 1초도 안 되는 사이였다.
“시발.”
남자의 입에서 반사적으로 욕지기가 튀어나왔다. 트럭이 갑자기 감속을 하는 바람에 뒷바퀴가 아스팔트 위에서 살짝 미끄러졌고, 예상치 못한 소음이 터져 나오는 바람에 남자는 살짝 당황했다.
“저 개새끼.”
남자의 클랙슨을 강하게 누르며 라이트를 번쩍거렸다. 하지만 택시는 이를 비웃기라도 하는 듯이 멀어지고 있었다.
“저 새끼가 뒤질라고. 운전을 개같이 하고 지랄이야.”
많은 사람들이 운전대를 잡으면 공격적으로 변하고는 한다. 그만큼 자동차의 운전석에는 사람이 돌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항상 벌어진다. 사람이 철로 만든 괴물 덩어리가 이제는 사람을 괴물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는 괴물이 된 사람이 다시 자동차를 괴물로 만든다. 지금 이 순간처럼 말이다. 남자는 트럭을 거칠게 몰면서 멀어져가는 택시를 따라잡으려고 애를 썼다. 흉측한 트럭이 여전히 어둠속의 짐승들에게 공포심을 심어주었지만 트럭이 중형 세단 급의 택시를 따라 잡을 리 없었다. 택시는 유유히 사라져 버렸다.
ㆍ3시 47분
[따르릉 뚱뚱 뚜루루루룽~]
어둠속에서 핸드폰이 다시 울리기 시작했다. 벌써 열 대번 이상의 전화를 무시했으니 사장이 안달이 난 게 분명했다. 남자는 한쪽 손을 어둠속에 찔러 넣어 핸드폰을 찾으면서 시간을 확인하며 도착 시간을 다시 계산해 보았다. 차량 통행이 거의 없는 이 시간대에 이 속도라면 분명 4시 10분 정도면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적어도 15분까지는 도착하지 않을까?
아무튼 지금처럼 전화를 계속 무시하는 것보단 사장에게 도착 예정 시간을 알려주는 게 나을 것 같았다. 남자가 늦는 게 남자 잘못도 아니지 않은가. 사장의 전화를 계속 무시한다면 그 멍청한 창고관리인이 저지른 잘못을 자신의 잘못으로 인정하는 꼴이 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남자는 오른손은 여전히 어둠속을 더듬거리고 있었다. 그러면서 계속 전화를 받지 않은 이유를 추궁할 사장에게 그 돼지새끼의 만행을 어떻게 이야기 하는 것이 효과적인지 생각했다.
[따르릉 뚱뚱 뚜루루루룽~]
핸드폰은 여전히 어둠속에서 요란하게 울리고 있었다. 그리고 남자의 손에도 여전히 아무것도 잡히지 않았다. 아무래도 아까 집어 던질 때 트럭의 바닥으로 떨어진 것 같았다.
“아 씨. 골치 아프네.”
이제 남자는 몸을 굽혀 바닥을 더듬거리기 시작했다. 불안정한 남자의 자세 때문에 트럭이 조금 휘청거렸지만 남자는 개의치 않았다. 고작 조그마한 핸드폰 하나를 찾겠다고 이 와중에 멈춰 설 수도 없는 노릇이지 않은가. 핸드폰은 금방 찾을 수 있을 것이고, 그러면 금방 다시 일어날 수도 있을 것이다. 게다가 지금 이 시간에 이 도로엔 위험한 것이라고는 단지 트럭이 조금 휘청거리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없음이 분명했다.
남자는 핸드폰이 세 번 정도 더 울리고 나서야 찾을 수 있었다. 손바닥에 알 수 없는 얼룩이 묻었는지 거뭇거뭇 했지만 일단 전화를 먼저 받는 게 우선이었다. 남자는 몸을 일으키면서 동시에 통화 버튼을 누르고, 재빨리 핸드폰을 귀로 가져간 다음에 말했다.
“여보세요.”
그 순간 남자의 눈에 검은 그림자가 트럭 밑으로 빨려 들어가는 게 보였다. 그리고 그 그림자는 순식간에 위로 튕겨 올라갔다. 기분 나쁜 충격음을 남기고는 말이다.
ㆍ3시 48분
[투웅]
공허한 충격음이 어둠속에 울려 퍼졌다. 충격에 의한 진동과 함께 뭔가 불길한 느낌이 엑셀을 밟고 있던 발을 타고 올라와 순식간에 남자의 정수리에까지 이르렀다. 아주 약간의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남자는 그 불길한 느낌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 어렴풋이 깨달았다. 남자는 온몸의 털들이 곤두서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본능적으로 브레이크를 강하게 짓밟았다.
달리기를 원하는 타이어가 멈추기를 원하는 브레이크와 충돌을 일으켰고 남자가 타고 있는 괴물은 지금까지 한 번도 들려준 적이 없는 괴상한 비명을 지르며 아스팔트 위를 미끄러지기 시작했다. 한참을 미끄러지던 트럭의 뒷바퀴가 아스팔트 사이에서 느껴지는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하고 튀어 올랐다 떨어졌다. 이 때문에 트럭의 뒤꽁무니가 출렁거렸고 중심을 잃은 트럭이 좌우 심하게 흔들거리다가 트럭의 뒷부분부터 돌기 시작했다. 긴박한 이 상황에서 할 소리는 아니지만 트럭이 도는 모습은 마치 발레리노의 그것처럼 우아해 보였다. 트럭의 운전석에서 반쯤 넋이 나간 표정으로 한손에는 핸드폰을, 다른 손으로는 핸들을 꼭 잡은 채로 꼼짝도 하지 못하는 남자의 모습만 보이지 않았다면 지금 트럭의 모습은 최고의 연기라고 찬사를 받았을 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트럭의 우아한 회전은 완성되지 못했다. 트럭은 고작 반 바퀴만 회전하고는 중앙 분리대에 처박혀 버렸다. 커다란 소음과 함께 엄청난 충격이 차체에 가해졌고 남자의 몸이 공중으로 떠올랐다. 앞 유리창에 수많은 금이 가면서 깨져 나갔는데, 그것이 남자의 눈에는 슬로우 모션처럼 보였다. 그 모양이 전신분열증을 일으킨 거미가 만들어낸 거미줄 같았다.
충격은 차안에 있던 모든 물건들이 공중에 튀어 오르게 만들었다. 그것들은 이내 다시 바닥으로 떨어졌는데, 떨어질 때는 커다란 소금결정 모양으로 산산 조각난 조수석의 유리파편들과 함께였다. 그것들은 본래의 자기 자리를 찾지 못하고 사방으로 흩어져 어둠속에 파묻혀 버렸다.
남자는 몸이 떨리는 걸 느꼈다. 그는 무의식중에 차문을 열고 트럭에서 내려 검은 아스팔트 위에 내려섰다.
고무가 타는 특유의 매캐한 냄새가 남자의 코를 찔렀다. 달려오던 방향과는 반대 방향을 향하고 있는 트럭의 한쪽 라이트가 트럭이 남긴 길고도 강렬한 타이어 자국이 남아 있는 길을 비추고 있었는데, 그것 때문에 이 냄새가 나는 게 분명했다.
반대편 라이트는 원래 있던 자리에서 뽑혀서 허공에 매달려 대롱거리고 있었다. 중앙 분리대가 충격으로 밀려나가 있었고, 그곳에 맞닿은 부분들은 처음의 모습이 어떠했는지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로 심하게 구겨져 있었다.
하지만 지금 남자에게는 매캐한 냄새도, 뜨거운 열기도 구겨지고 부서진 트럭도 중요하지 않았다.
남자는 온몸에 벌레가 기어가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는 온통 불길한 느낌에 휩싸여 방금 전에 트럭에 부딪친 것이 무엇이었는지에 대해서만 생각하고 있었다. 남자는 뒤쪽으로 천천히 걸어가면서 방금 전의 그 느낌은 자신이 잘못 느낀 것이라고, 그것은 아닐 거라고 마치 자기최면이라도 걸듯이 중얼거리고 있었다.
남자의 이마 위로 뭔가 질척하면서 뜨끈한 액체가 흘러 내렸다. 그리고 한 쪽 머리가 욱신거렸다. 아마도 방금 전의 사고로 머리가 어딘가에 부딪친 모양이지만 그것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지금 남자에게 중요한 것은 방금 전 트럭이 부딪친 것이 무엇인지 확인하는 것이었다. 남자는 트럭이 남긴 타이어 자국을 따라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 자국은 수십 미터에 불과하였지만 남자는 그 자국이 수백 미터는 되는 것처럼 느껴졌다.
ㆍ3시 49분
[톡]
빗방울 하나가 남자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빗방울의 크기가 제법 컸다. 한차례 소나기라도 쏟아질 기세였다.
지금 자신의 머리에서 흘러내리는 피에는 신경도 쓰지 못하는 남자는 신기하게도 이 빗방울이 신경이 쓰였다. 남자는 머리를 들어 하늘을 쳐다봤다. 하지만 하늘에 비구름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평상시엔 거의 보이지도 않던 별들이 보일 정도로 하늘은 맑았다.
[후드득]
곧이어 몇 개의 빗방울이 다시 남자의 머리위로 떨어졌다. 하늘이 맑은데 빗방울이 떨어지는 이유를 궁금해 하며 남자는 자신의 머리위로 떨어지는 빗방울을 손으로 훔쳐냈다. 손에 느껴지는 빗방울이 조금 질척한 것 같았다. 그리고 검붉었다. 순간적으로 남자는 방금 자신이 훔쳐낸 것이 떨어진 빗방울이 아니라 자신의 머리에서 흘러내는 피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제야 남자는 머리 한쪽이 심하게 욱신거린다는 것을 깨달았다.
[쿠웅]
남자가 자신의 머리에 난 상처를 만져보려 손을 올리려는 순간 무언가 커다란 것이 남자의 바로 앞에 내 던져졌다. 그것이 땅바닥을 강타하면서 생겨난 진동은 차가운 아스팔트를 타고 남자의 발밑으로 그대로 전해졌으며 다시 남자의 발을 타고 올라와 머리 꼭대기에 이르렀다. 아까 느낀 불길한 느낌이 순식간에 남자의 몸을 휘감았고 남자는 온몸에 소름이 돋는 것을 또 다시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그것과 눈이 마주쳤다. 땅바닥에 내던져진 그것의 한쪽 눈은 남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의 반대쪽 눈은 남자의 트럭처럼 허공에 매달려 대롱거리고 있었다.
아닐 것이라고 생각했다. 자신이 부딪친 크고 물컹한 물체가 그것만은 아닐 것이라고 믿고 싶었다. 그 믿음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그것이, 아니 그가 남자의 앞에 떨어졌다. 남자는 심한 현기증과 올라오는 것을 느꼈고 이내 다리에 힘이 풀려 그 자리에 주저앉아 버렸다. 비명을 지르고 싶었지만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그저 입만 뻐금거리고 있을 뿐이었다.
그런 남자의 모습을 검은 아스팔트 위에 몸이 반 쯤 파묻힌 그가 한쪽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아니, 어쩌면 남자를 보고 있는 것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다만 초점을 잃은 공허한 눈이 남자 쪽을 향하고 있을 뿐인지도 모르겠다.
첫댓글 급박스런 전개에 생동감이 느껴집니다 ^^~
감사합니다.
상황이 급전개하는 면이 있어 어찌 전달될지 걱정스럽네요
잘보고갑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