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 부흥의 효시일효( 嚆矢一孝) 는 아마도 "성령운동"
이라 보아도 무방 하리라 본다.
성령의 불길은 유럽 전역으로 부터 미국을 건너 다시 한국에
불을 당겼다 할 정도의 열화와 같은 강력 선풍을 이르켰다.
한때는 만산에 기도의 불길이 달아 올랐고 밤낯 주야로 모든
성도가 먹을 끼니가 없으면 물만 먹고도 금식을 하며 무형의
성령님을 유형의 형체로 받아 들일만큼 금지옥엽 처럼 귀히
가슴에 담고 이나라 이 민족을 제발 살려 달라고 몸부림치며
생명걸고 기도하던때가 이제 먼 발치에 있었던것만 같다.
그 때는 그럴 수 밖엔 없었던 것이 그 참혹한 전쟁의 재화를
겪고 오직 도와 주실 분은 하나님 한분 밖에는없다는 신념에
모든 성도들은 니교회 내교회를 넘어 일체 혼연으로 모두가
하나 되어 성령의 도우심을 바랬던 때이다.
다행히 옥수수 죽에 구호물품을 교회를 통해 외국의 원조를
받아 겨우 연명을 하더라도 밤 철야기도와 낯 기도회를 통한
성령운동은 그칠줄 몰랐고 이에 하나님의 은혜로 온 교회가
성령체험을 통해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고백하게 됐고 이는
전 국민의 회개운동의 불시가 되었다.
믿는자의 일체된 여리고의 함성처럼 그후 부터로는 서서히
새마을 운동이 아침부터 시작되었고 전 국민의 일체 운동인
"새벽종이 울렸네 새아침이 밝았네 너도 나도 일어나 새나라
를 만드세" 라는 노래와 함께 국민 선양운동까지 합세한결과
오늘의 이 나라를 이루어 냈다고 본다.
그러나 문제는 나라가 점차 부강해지고 국민소득이 높아지며
모든 기준이 물질 중심이 되다보니 신앙에도 역시 물질 중심
주의로 흐르면서 점차 변질되기 시작 했다고 본다.
성령집회, 은사집회, 시마다 헌금이 없으면 기도를 받지 못한
형편으로 기우러 졌고 이에 성도 취급을 받지 못하는 보이지
않는 재력적 싸움이 시작 되면서 갖가지 훙훙한 소문이 만발
하기 시작했다.
이에 중산층이 무너지고 서민경제 상황은 '부익부' '빈익빈'
이라는 교회부터 양대세력으로 대치 하면서 이에 성도들조차
이런 대세에 농락 되면서 부터 점차 그 '성령운동'의 뿌리조차
크게 요동치기 시작한 결과를 낳았다.
이는 성령의 역사나 운동 조차도 물질의 차등에 따라 교차적
으로 대응 한다는 오류적 판단하에 점점 성령의 운동 역시도
고급화 길을 걷는듯 빈,부,의 차등을 가늠하는 키 포인트로써
끼리 끼리 성령문화에 한발씩 달리하게 되었고 이는 교회의
상급화와 하급화인 목회자들 간의 상충적 내적 갈등으로 각
파벌적 교단의 교세확장 운동의 볼모가 되고 만 셈이 되었다.
같은 성령을 말하면서도 실제는 또 다른성령의 운동이 번짐
으로써 모든 유형적 교회가 그 패권을 달리하는 '호불호' 의
집단체제의 성령운동화의 변곡을 불러 오고야 만 셈이 됐고
이는 여지 없는 '사탄'의 밑밥처럼 반란의 빌미를 제공 하므
로써 종 잡을 수 없는 이단 사조를 부르는 계기로 삼게 했다.
주도 하나이요 하나님도 한분이요 성령님도 하나라 하지만
제 각기 믿는 성령님도 사분오열화한 성령운동의 '호불호'
는 급기야 만인의 웃음꺼리가 되었고 이는 호시 탐탐 노리는
사탄의 빌미로 정치와 야합한 별개의 기독교의 또다른 무리
들에게 호기를 부르게 한 원흉이 된 셈이 되고 말았다.
이것이 과연 성경이 말하는 오순절 성령운동의 본류란 말인가?
한국 성령운동의 이러한 '호불호' 는 이방 선교에 까지 상당
영향을 불러 온다면 이는 진정 하나님의 나라에 성령운동을
빙자한 크나큰 적대적 오차적 행위라 본다.
한국교회 부흥의 효시일효( 嚆矢一孝)가 "성령운동"으로 시작
되었다면 처음과 나중이 똑 같은 '알파'와 '오메가' 하나님께서
늘 함께 하시도록 일관된 성령운동이 지속되기를 염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