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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 1부. 새해 첫 날, 눈물 젖은 자장면 드셔보셨나요?
2NE1 리더 씨엘의 첫 번째 솔로곡 ‘나쁜 기집애(THE BADDEST FEMALE)’ 열기가 뜨겁습니다. 음원 발표와 함께 차트 올킬을 달성하는 등 국내외에서 좋은 반응을 얻는 중인데요. 늘 카리스마 넘치는 공연으로 사랑 받는 그가 데뷔 전 어느 해 1월 1일, 눈물 젖은 자장면에 얽힌 추억을 이야기 합니다. 물론 네이버 스타칼럼 독자 여러분께만 처음 밝히는 깜짝 고백입니다. 또 어려서부터 해외 각국을 돌며 4개국어에 능통한 씨엘의 출중한 경력 이면에는 자신의 정체성을 두고 고민했던 사춘기 시절 아픔도 함께 존재합니다. 그래서 씨엘이 적는 스타칼럼 1회 속에는 짧은 세월 속 긴 사연이 담겨 있군요. 이어질 2회에는 할리우드의 어느 톱스타 부럽지 않은 씨엘의 막강한 해외 인맥을 소개합니다.가 독자 여러분의 많은 성원 바랍니다. / 편집자 주.
# 어린 시절, 못골마을 외할머니 집
학창시절에는 항상 전교생이 100명이 넘는 학교를 다닌 적이 없어요. 그 때는 나이, 남녀 상관없이 다 친구였죠. 남자 아이 같은 성향은 있었던 거 같아요. 다 같이 놀러 다니고, 바보 같이 긍정적이고 그런 부분들이 있었던 거 같네요.
어려서 아빠를 따라 일본에 가서 살았어요. 방학 때마다 한국에 왔었는데, 할머니 집에 가족들 다 같이 한 두 달 정도 보내다 갔죠. 그 때 기억들은 이상할 정도로 확실하게 자리를 잡고 있어요. 그 때가 한 4, 5살 쯤이었던 거 같아요. 일본에 있다가 유치원 여름 코스를 잠깐 한국에서 다니고 그랬어요. 아직도 외할머니가 그 때 이야기를 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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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유치원을 다니고, 동네 언니들을 다 끌고 다니면서 스티커 나눠 가지고. 여자들 모으는 스티커 뭔지 아시죠?) 놀이터에서 놀고, 남자애들이랑 뛰어다니고. 동네 사람들이랑 다 친하게 지냈어요. 생일이면 ‘내 생일’ 써서 대문 앞에 붙여놓고, 사람들을 너무 많이 초대해 외할머니가 곤란해 하셨다는 이야기도 들었죠. 아이들 모아서 쓰레기 주우러 다니고 그랬어요. 아직도 그 모습이 기억나네요.
그 곳은 자곡동인데, 지금은 사실 너무 많이 변했어요. 못골마을이라고 하는 데였는데 유치원이랑 수퍼 하나 있고, 주택 있고, 산 있고 그런 곳이었죠. 산도 저 혼자 다니고 그랬다고 하더라고요. 지금은 다 개발돼서 길을 헷갈릴 정도예요. 너무 아쉽죠.
# 어린시절, 일본 쓰쿠바의 유치원
12살까지 일본에 있었어요. 아버님이 쓰쿠바 대학에서 공부하실 때도 있었고, 이후 교환교수가 되셨을 때도 있었죠.
그 곳 유치원은 예전에 '2NE1 TV' 찍으며 다시 가 봤는데 생소했어요. 딱 교실 하나, 창문 하나만 ‘여기에 앉아서 놀았는데’ 그런 기억이 났어요. 유치원 안 보다 오히려 무당벌레, 개구리랑 놀았던 추억이 떠올라요. 자연환경이 좋았던 쓰쿠바에는 유난히 무당벌레가 많았는데, 아버지가 저한테 무당벌레를 보고 무서워하지 말라고 ‘무당벌레는 너의 친구다. 땡땡이 옷을 입은 아줌마 벌레다’라고 항상 알려주셨어요. 툭 치면 콩처럼 되는 콩벌레도 있었네요. 그 때 많이 뛰어 놀고 그랬던 기억이 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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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항상 바쁘셔서 언제나 같이 있었던 건 아니에요. 하지만 같이 있는 시간만큼은 소중하게 보낼 수 있게 해주셨어요. 정말 자유롭게 자랐어요. 아버지는 교수님인데도 항상 청바지와 티셔츠 차림을 고집하시고, 집에 TV와 소파가 없었어요. 다른 친구 집엘 가서야 내가 아주 다르게 살고 있구나 하는 걸 알았죠. 아버지는 세상을 이렇게 봤으면 좋겠다는 걸 말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주신 분이에요.
# 아버지 보다 어머니가 더 대단하다?
제 어머니는 진짜 대단한 분이세요. 아버지처럼 자유롭고 아티스트적 마인드를 가진 분을 모두 안고 지금까지 사신 분이잖아요. 그게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커서 깨달았어요.
옛날 사진을 보면 어머니는 젊었을 때 정말 독특한 패션을 즐기셨던 분이세요. 그런데 아버지를 만나고부터는 청바지에 흰 티를 입고 운동화를 신고 다니게 됐죠. 그 정도로 아버지를 받아들이셨어요.
젊으실 때 아버지를 만나 저를 가지셨는데, 그래서인지 엄마랑 친구처럼 지내요. 매일 연락하죠. 여동생이랑 저, 엄마는 여자 친구들처럼 지내요. 그래서 어릴 때 따로 친구가 필요하거나 그러지 않았던 거 같아요.
# 검정고시 3개 연속 도전기
외국 생활이 길다보니 한국어 공부를 정식으로 받은 적이 없었어요. YG 들어오고 나서 ‘우리 말을 제대로 배워야겠구나’ 싶었어요. 그래서 데뷔 전에 검정고시 3개를 다 땄어요.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6개월에 하나씩요. 그 땐 다들 저를 보면서 ‘저걸 왜 하지? 대학에 갈 건가? 굳이 필요하지 않은데’했었죠. 저는 그냥 제가 떳떳하기 위해서, 제가 하고 싶어서 그걸 땄었던 것 같아요.
부모님은 우리 말을 아주 자연스럽게 가르치셨어요. 집에서는 우리 말만 쓰고 가끔 그림을 그리면서 책에 써 주시고 그랬어요.
일본에서 유치원을 나왔고, 초등학교 때부터는 일본에서 미국 학교를 다녔어요. 중학교 땐 잠시 프랑스 학교를 다니고, 고등학교는 다시 미국 학교를 다녔죠.
일본에는 정말 큰 외국인 학교도 있지만, 제가 다닌 초등학교는 20명도의 학생들이 다니는 곳이었어요, 그 때 정말 감사하게 생각하는 게, 정말 다양한 인종이 사람을 다 만나본 것 같아요. 인디아, 아프리칸, 라티노까지 정말 다 있었어요. 덕분에 다양한 인종을 만나볼 수 있었고 인종에 대한 편견을 갖지 않게 됐어요. 어릴 때는 생일파티하거나 친구 집에 놀러 가면 각자 다른 전통을 접해볼 수도 있었죠,
왕따나 이지메 같은 건 찾아볼 수 없는 학교였어요. 그 곳에선 장애를 가진 친구도 전혀 왕따가 아니었어요. 그러기엔 사람도 너무 적고, 다들 생각이 그런 느낌은 아니었죠.
# 프랑스에서 홈 스테이로 유학하기
한국에 잠깐 와서 미국 학교를 1,2 년 정도 다니다가, 한국에 있는 프랑스 학교를 다니다 프랑스 파리에 있는 학교를 다니게 됐어요. 많이 왔다갔다했죠. 어머니께서 영어는 할 줄 알고, 일본도 문화를 잘 아니까 다른 시도를 해 보면 어떻겠냐 하셔서 프랑스로 가게 됐어요.
프랑스는 혼자 갔어요. 파리에서 2년 정도 있으면서 홈스테이를 했죠. 그래서 더 빨리 프랑스가 어떤 곳인지 알 수 있었어요. 유학생 친구들을 보면 영어를 배우지 않은 친구들도 많더라고요. 큰 학교를 가게 되면 아시안끼리 뭉쳐 다니고 거기서 영어 한 마디 안 써는 그런 친구들을 많이 봤어요. 저는 홈스테이라서 그럴 순 없잖아요. 가서 음식이나 생활방식도 보고 느낄 수 있어 좋았죠.
저는 정말 복 받았어요. 가장 평범한 가정으로 홈스테이를 갔던 거 같아요. 친구를 보면 옮겨야 되는 경우도 있었는데, 저는 정말 좋은 분들 만나서 재미있게 지냈어요.
제 동생도 일어 대신 중국어를 하는데, 사실 사춘기 때는 되게 헷갈리는 고민이 있었어요, 한국에 와서도 그 문화를 가지고 있지 않고, 외국에 나와도 그냥 아시안이고. 저희끼리는 외계인이라고 불렀어요. 부러워하는 분들도 많지만, 직접 경험한 입장에서는 그게 고민인 적도 많았죠. 단지 언어를 많이 한다는 겉 표면만 보면 좋지만, 사실 불안정한 느낌도 있었어요.
# YG 연습생 무작정 도전기
저 혼자 동네 유치원을 다녔듯이 , 초등학생 시절부터 용돈 받아서 춤을 배우러 다녔어요. 당시 학원에는 외국에서 유명 댄서들을 초대하곤 했는데, 그냥 순수하게 좋아하는 마음으로 통역을 맡았죠. 이런 생각, 이런 시선을 갖고 춤을 보는 구나, 음악을 듣는구나 하는 게 너무 좋아서 따라다니며 통역을 했어요. 그렇게 춤을 배우다가 노래하는 것도 좋아해서 연습하곤 했어요.
또, 어릴 때 유일하게 좋아했던 연예인이 원타임 테디 오빠였어요. 평생 영화배우나 가수를 좋아해본 적이 없는데, 유일하게 테디 오빠를 좋아했죠. 그래서 YG를 알게 됐고, TV에서 YG패밀리를 봤어요. 무작정 저기 가서 춤과 노래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수소문해서 초등학교 때부터 데모 테이프를 보내고 그랬는데 답은 매번 없었어요.
그러다 17살 때 마지막으로 하고 아니면 땡이다 싶은 생각을 갖고 실행에 옮겼죠. 이상하게 당시에 제게 막연한 자신감이 있었던 거 같아요. 못 받으셔서 연락이 없었나 보다 해서 직접 전해드려야 맘이 편했던 거죠.
그 때는 YG 건물이 두 군데로 나누어져 있을 시절이에요. 주소를 찾아보고 거기 나와 있는 곳으로 찾아갔더니, 거기 계시던 팬들이 ‘팬은 아닌 거 같고, 왜 오셨냐.’고 해서 ‘사장님 만나러 왔다.’ 했더니 ‘사장님은 다른 건물에 계신다’면서 그 추운 겨울에 직접 안내해 주셨어요.
처음엔 친구와 둘이 기다리다가 시간이 너무 많이 지나서 친구는 먼저 갔어요. 전 이상하게 조금만 더 기다리면 뵐 수 있을 거 같았어요. 엉덩이가 너무 시려서 혼자 ‘어떡하지?’그러고 있었는데 사장님이 나오시더라고요. 그래서 데모 테이프를 드렸더니 되게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놀라셨어요. 그리고 한 시간 뒤에 연락이 와서 ‘금요일에 보자’고 하시더라고요. 갔더니 사장님이 한 30명을 데리고 오셨어요. 카메라 영상팀에 작곡가에. 그 앞에서 노래를 했어요.
# 씨엘의 꿈을 담은 데모 데모 테이프
춤이랑 노래 10분 좀 넘는 분량이 담겨 있었어요. 힙합을 좋아해서 힙합 계열의 춤이었죠. 랩은 테디 오빠의 유일한 솔로곡 이었고, 노래는 알리샤 의 곡이었어요. 제가 직접 비디오카메라를 고정시켜 놓고 찍었어요.
양 사장님이 오디션 당시엔 아무 말도 안 하시고 가셨어요. 제 기억으론 보시고 다들 웃으시
면서 나가셨죠. 그리고 다른 매니저 분이 월요일부터 연습을 하라고 하시더라고요.
그 땐 겨울방학이었으니까 YG에서 생활을 좀 더 하다가 2월에 뭔가 변화가 필요한 것 같아 미국 학교로 옮겼어요. 처음엔 공부 욕심도 있었죠. 학교가 끝나면 세시 정도인데, 그리고 새벽 3,4시까지 연습을 하고 다시 아침에 학교를 가는 생활을 몇 달 동안 했어요. 근데 체력이 안 되더라고요. 그러다 ‘나는 하나만 해야겠다.’해서 그 이후부터는 학교는 잘 안 나가고 회사만 다녔어요. 그렇게 고등학교 2학년까지 다녔죠.
부모님은 외국에 나가 계셔서 저는 혼자 지냈어요. 부모님은 어떤 일에든 의견이 없으세요. 저를 믿어주시고 저의 생각이 옳다고 생각하시죠. 너 하고 싶은 대로 하라는 말씀도 없으시고 그냥 바로 행동으로 옮길 수 있게 해주시죠. 회사 일에도 전혀 관여 안 하시는데 딱 한번 계약할 때 회사에 오신 적은 있어요. 제가 미성년자니까 부모님 도장 찍어주신 거 딱 한 번. 그 때도 되게 귀찮아 하셨어요.
부모님의 이런 면이 섭섭할 수도 있지만, 학생일 때 성적이 안 좋아도 부모님은 ‘이건 너의 기록이다. 나중에 무슨 일을 하건 너에게 필요한 기록이다’고 말씀하셨어요. 그래서 이건 내 책임이구나, 부모님과는 상관이 없는 거구나 했죠. 그래서 더 욕심을 냈어요. 내 거니까. 내 발자국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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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해 첫 날, 양 사장님이 시켜준 눈물의 자장면
사장님한테 정말 감사 드렸던 게 저는 항상 혼자 있었거든요. 정말 솔직하게 말씀드릴 수 있는 게 옛날 YG에서는 제가 가장 연습기간이 짧았던 연습생이었어요. 2년 반이 좀 안되게 했었는데, 그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나왔죠. 명절 때도 나오고. 왜냐하면 저는 있어야 할 곳이 없었거든요. 가족들은 외국에 있고, 가끔 한국에 들어와도 제가 여기에 너무 빠져 있어서 만나지 않았어요. 새로운 음악을 접하고 배우는 것 뿐이었는데 그게 너무 즐거워서요. 연습실에 있다가 집에 가서 잠만 자고 그랬죠.
사장님은 항상 회사에 계셨어요. 가장 기억에 남는 건 1월 1일에 할 게 없어서 나왔더니 전화를 하시더라고요. 전화하셔서 뭐 하냐고 물어보시기에 그냥 음악 듣고 있다고 했죠. 사장님이 내려오라고 하셔서 스튜디오로 갔더니 자장면을 시켜주셨어요(웃음). 항상 사장님은 새해를 클럽에서 보내시는데 가시기 전에 시켜주시고 가신 거죠. 자장면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도 모르게 그렇게 1월 1일을 맞았네요.
ㅎㅎ CL은 이렇게 자라고 성장해서 YG 패밀리가 됐답니다. 그럼 2부에서 또 만나요 ^^.
글 : CL
편집 : OSEN 손남원 국장(mcgwire@osen.co.kr)
사진 : 씨엘, YG 제공
출처 - 네이버 연예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420&aid=0000000361
씨엘 어린시절 이야기는 자세히 처음듣는데.. 인터뷰 좋네예!!!
문제있으면 말씀해주시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