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 7월 14일 새벽에 아내로부터 전화를 받았습니다.
"자기야 나 양수가 터졌나봐 , 나 지금 연도할머니랑
삼척시장의 입구에 있는 경산부인과에 가니 어서 와줘"
"응 그래 내 당장 달려갈께"
나는 순간 당황하여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몰라 우왕좌왕하다가
밖으로 나와 6km의 덕풍계곡을 어떻게 뛰어나왔는지 모릅니다.
풍곡에서 기다리는데 이놈아 버스가 왜 이리 늦는겨 라는 생각이 나는데
버스는 제 시간에 온 것입니다.
나는 버스를 타고 가는데 아 이놈아 버스가 작은 동네마다 서는게 아닌가?
그뿐만 아니라 지나가는 사람이 손을 들어더도서는통에
성질 급한 나는 환장할 지경입니다.
호산에 이르러 삼척으로 가는 버스를 갈아타는데 아까 보다는 좀 빠르지만
이것도 이날따라 느린 것 같습니다
버스가 삼척에서 서자 나는 바로 택시를 탔습니다.
"어서 오세요 어디로 모실까요?"
"어? 어리라고 했지? 무슨 산부인과라고 했는데"
그러자 운전사가
" 혹시 시장 입구의 경산부인과 아닙니까?"
"예 맞아요 아이구 감사합니다. 너무 서두르느라고 잊어버렸었어요"
내가 시장입구에서 내리고 나는듯이 이층으로 올라갔습니다.
그러자 연도할머니가 반가워 하시며
"미옥이는 조금 전에 분만실로 들어갔어"
라고 합니다.
얼마있으니까 아내의 산고의 고통소리가 흘러나오기 시작합니다.
"으악 !"
할머니는
"하느님 아버지, 미옥이가 순산학 하여 주소서"
라고 계속 기도드리는데
나는 이미 올때 부터 나도 계속
"하느님 아내가 순산하게 하여 주소서"
라고 기도하였습니다.
아내의 고통 소리가 시간이 지날수록에 점점 더 강해집니다.
"으악 아이고......"
아내의 비명 소리가 점점 커지는데 나는 애가 탑니다.
"하느님 하실 수만 있다면 제가 대신 저 고통을 받게 해 주소서"
라고 기도하며 안절부절합니다.
아내가 이제는 더 참을수 없다는 듯이 마구 비명을 지르는데 그 소리가
아주 크고 나중에는 저 꼭대기 까지 올라갔다가 소리가 뚝 그쳐 버립니다.
그리고 조용합니다.
나는 잠시후
`으앙`
하는 아기의 소리가 터져 나올 것을 기다립니다.
".................."
그러나 시간이 지나도 분만실은 조용하기만 합니다
나는 혹시 아내의 고함 소리가 정상에서 멈추어 버린 것이 생각이 나면서
혹시 숨이 멎은게 아닌가? 하는 방정맞은 생각이듭니다.
그리고 그생각이 정말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내가 이럴께 아니라 분만실로 쳐들어가 봐야겠다고 생각하며 막 일어섭니다.
(계속)
첫댓글 형광등등님
남편으로서 아이의 아빠로서
초조한 마음이 너무 잘 표현 되었습니다
그 마음 오죽할까요
다음 이야기를 기대합니다
어서오세요 윤주님 감사합니다.
아유 괜히 부\끄럽네요 하하하
남자가 이러면 안되지요
연도 할머니와 산부인과
갔다고 하니 어느 정도
마음이 놓입니다
길벗님 어서오세요 감사합니다.
연도 할머니를 아시네요 그분은 천주교신자뿐만이 아니고
누가 죽으면 달려가 장례준비를 해 주시어
삼척에서는 명사가 되어 길에나가면 인사받기 바쁘답니다. 하하하
저도 같이 다니며 인사를 받았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