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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의제국 3.32 - 제1차 동해 해전(2)
1938년 4월 7일 오후1시 42분 동해
사할린급 전함과 치열한 포격전 끝에 사할린급 전함을 격파한 융희급 전함이 만주급 순양전함의 우람한 12인치 함포의 맹공을 받고 끝내 유폭을 일으켰다. 고막을 찢을듯한 날카로운 음파가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이로 인하여 연방 해군의 사기가 배로 올라갔다.
"목표를 4번으로 바꾼다. 목표 4번을 공격한다!"
사힐린급 전함 한척을 강제 퇴장시킨 융희급 전함 15번 함의 함장인 김진택 대령이 두 눈에서 살기를 내뿜으며 명령을 내렸다. 그들은 사할린급 전함과의 포격전으로 우측 부포가 모조리 박살나버렸고, 대공포병도 상당수를 잃었으나 주포탑만은 건제했다.
-목표 4번함! 거리 20,000!
포술장들은 서둘러 포각을 조절했다. 반면 목표 4번함인 만주급 순양 전함도 자신이 목표로 지정되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그들과 같이 포각을 계산하고 있었다. 그는 손가락을 꼼지락 꼼지락거리며 적을 주시했다.
-1번 포탑 사격 준비 완료!
아직 2,3,4번 포탑은 준비가 끝나지 않았으나 1번 포탑의 준비가 완료되었다면 나머지 포탑들도 2초나 3초 내외로 준비를 마칠 것으로 예상하고 사격을 명령했다.
"1번 포탑부터 4번 포탑까지 순차적으로 사격한다! 그리고 다음 명령이 있을 때까지 사격하지 말도록!"
준비가 끝난 1번 포탑의 굵고 아름다운 14.5인치 주포가 불을 뿜으며 격하게 뒤로 후퇴했다가 스멀스멀 전진하여 제자리로 돌아왔다. 뒤이어 2번 포탑, 3번, 4번 포탑까지 순차적으로 사격이 진행되었으나 모두 순양 전함의 전방에 낙하했다. 그리고 2초 후, 순양 전함의 순차 사격이 이어졌으나 역시 모두 빗나갔다. 하지만 예리한 그는 순양 전함의 조준 속도와 명중률이 걱정했던 것보다 낮다는 것을 발견하고 사격 통제 레이더 고장에 대한 의심을 가졌다.
제2사가 진행되었다. 이번 역시 1번 포탑부터 순차적으로 사격했다. 이번 포탄들 중 몇발이 군함의 바로 옆에 낙하하면서 순양 전함을 크게 한번 뒤흔들었다. 이제 포탄을 날렸으니 포탄이 올 차례였다. 그는 이번에야말로 그가 지금 하고 있는 의심이 과연 사실인지 밝히리라고 각오했다. 전함의 제2사기 있고 3초 후에 순양 전함이 두번째 사격을 했다. 순양 전함에서 날아온 포탄들은 전보다 조금 가까운 곳에 낙하했지만 여전히 명중률이 형편 없었다. 이에 그가 마이크를 잡고 말했다.
"놈들의 사격 통제 레이더가 박살났다! 겁 먹지 말고 쏴갈겨라!"
이에 용기를 얻은 포술장들이 더욱더 열심히 일하기 시작했다. 포탄은 기계 덕분에 금세 장전되었고, 바로 제3사가 이루어졌다. 1번 포탑에서 발포한 포탄 1발이 순양 전함의 함미 쪽으로 날아가는듯 싶더니 순양 전함의 2번 포탑의 경사 장갑에 도탄되었다. 반면 4번 포탑에서 발사한 포탄 한 발이 함미 4번 갑판에 명중하면서 폭발했다. 또한 포탄들 중 세 발이 군함을 뛰어넘음으로써 협차탄도 생겼다.
"그렇지! 바로 이거야! 전 포술장들은 일제사를 준비하라!"
기세등등해진 그는 순양 전함을 흡씬 두들겨패서 두동강시키리라 굳게 마음 먹었다. 이윽고 4번 포탑까지 조준이 끝나자 그는 일제사를 명령했다. 14.5인치 포탄 8발이 포물선을 그리며 허공을 갈랐다. 순양 전함의 수병들은 이번에도 명중탄이 생길 것을 예상하고 벌써 갑판에서 도망다니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들이 도망가는 속도보다 포탄이 날아오는 속도가 더 빨랐다. 포탄 한 발이 1번 포탑 상부 장갑의 특히 얇은 부위를 정확히 관통하면서 포탑 자체를 침묵시켜버렸다. 그리고 폭발로 인하여 생긴 화염이 주포를 통하여 뿜어져나왔다. 다른 포탄은 순양 전함의 5인
치 부포 하나를 완전히 뭉게버렸다. 그로 인하여 생긴 화염은 멀리에서도 관측될 정도로 밝았다. 그는 한번에 두 개의 포탑을 박살낸 것을 보고 희열을 느꼈다. 만주함은 이에 대응하여 8발의 포탄을 순차적으로 날렸다. 그는 이번에도 빗나가거나 잘해도 협차탄 정도로 예상했다. 그리고 포탄들이 앞뒤에 낙하하는 것을 보고 안도했다. 만약 만주함이 이번 사격으로 명중탄을 만들어 냈다면 비긴거나 다름 없었지만 이번 사격에서도 명중탄이 단 한발도 나오지 않았으니 이번 싸움은 이겼다고 보아도 무방했다.
"이번 사격으로 놈을 뭉게버려라. 어서 침묵시키고 다른 애들 도우러 가자고."
두번째 일제사가 개시되었다. 포탄들은 대부분 서로 비슷한 고도와 각도를 유지하며 만주함을 향하여 돌진했다. 대공포병들은 왠지 포탄이 자기들에게 날아오는 것처럼 느껴져 무기를 버리고 사방으로 도망가기 시작했다.
-꽈앙!
포탄들이 명중하기 시작했다. 첫 명중탄은 함미 상부 갑판을 뚫고 지나가 2층에 있는 식당을 완전히 날려버렸다. 두번째 포탄은 관측 레이더를 부러뜨린 다음 만주함 뒤쪽에 낙하했고, 세번째 탄이 함수의 닻에 명중하면서 닻을 완전히 끊어버렸다. 여섯번째 포탄은 또다시 부포탑 하나를 날려버렸다.
"함장님! 미사일이 5시 방향에서 접근 중입니다! 총 두 발 입니다! 거리 10,000!"
레이더에 미사일 두 발이 엉뚱한 곳에서 날아오는 것을 본 그는 의아할 수 밖에 없었다.
"5시 방향에 무엇이 있지?"
"어… 적 구축함으로 예상되는 목표 6개와 아군 구축함 4척이 교전 중입니다. 원래 6척이었는데 방금 신호 2개가 사라졌습니다."
그는 어이가 없었다. 구축함끼리 싸워서 진다는 것은 이해가 되긴 하는데, 왜 그들이 전함의 5시 방향에서 싸우는가이다. 5시 방향이면 거의 뒤통수 쪽과 가깝기 때문에 지금 구축함 전대를 돕지 않는다면 무조건 포위가 된다.
"적 구축함과의 거리가?"
"거리 20,000입니다."
그는 4번 포탑과 연결되는 무전 채널에 연결하여 명령을 내렸다.
"4번 포탑은 세번째 일제사 후에 5시 방향에 있는 적 구축함을 요격한다."
-알겠습니다!
포술장은 각도 제고 포탑 돌리는 등의 귀찮은 일을 또 해야 한다는 생각에 신경질이 났지만 그것을 겉으로 표시하지는 않았다.
"미사일 요격 성공!"
두 발 뿐인 미사일은 가볍게 요격되었고, 동시에 세번째 일제사가 개시되었다. 이번에도 포탄들은 서로 같은 경로를 유지하며 만주함을 향해 돌진했고, 2번 포탑에서 발사된 포탄 두 발이 만주함 지휘부 아래의 구조물에 격돌하면서 그 부분을 찢어버렸고, 동시에 대형 화재를 일으켜 함교를 고립시켰다. 4번 포탑에서 발사된 포탄들은 함미 측면 장갑을 관통하면서 병사들의 숙소와 더 나아가 함미 구역 스프링쿨러에 사용되는 물을 저장한 물탱크를 박살내버렸다.
"4번 포탑 회전 중. 적함에서 발포염!"
계속 두들겨 맞기만 한 만주함은 울분을 토하며 포탄을 쏘았고, 그 중에서 12인치 포탄 세 발이 각각 함미 측면, 4번 포탑 정면 장갑과 함수의 닻에 명중했다. 하지만 닻에 명중한 포탄을 제외하고는 모조리 도탄되어버렸다. 그는 이번의 일제사는 정말 아슬아슬 했다고 생각했다. 이에 대응하여 네번째 일제사가 개시되었다. 4번 포탑은 구축함 요격에 집중하느라 일제사에서 제외 되었으나 충분한 위력을 발휘할 수는 있다. 포탄들은 서로 비슷한 포물선을 그리며 만주함을 향해 날아가다 내리 꽂혔다. 2번 포탑에서 발포된 포탄 한 발이 만주함의 2번 포탑 상부 장갑을 꿰뚫었다. 포탑이 한번 들썩였고, 화염이 구멍을 통하여 솟구쳐 올라왔다. 다만 유폭은 잃어나지 않아 내부가 타오르는 정도로 그쳤다. 하지만 이것은 맛보기에 불과했다. 다른 포탄이 다시 한번 지휘부 아래를 가격하면서 화재 진압 중이면 수병 겸 수리병들을 날려버렸고, 그 부분이 심각하게 손상되면서 위의 구조물이 살짝 기울어졌다. 이로 인하여 지휘부에 있던 사람들이 기울어 진 곳으로 데굴데굴 구르다가 단단한 철에 이마를 찧었다. 동시에 마지막 명중탄 한발이 함미 갑판을 관통하여 2층에서 폭발했고, 화재가 발생했다. 하지만 이전 일제사에서 물탱크가 박살났었기에 스프링쿨러는 물을 조금 뿌리다 말았다. 결국 소화기로 진화 작업을 해야했다.
"반은 명중했군. 다음에는 전탄 명중이라는 결과가 있었으면 한다. 더 이상 저 목표에게 발목이 잡혀있을 수는 없다."
그는 세 발이나 명중했음에도 불구하고 만족하지 못하는지 여전히 미소를 짓지 않고 있었다. 그때, 방금 전부터 조금씩 인상이 구겨지고 있던 관측병과 소나병이 서로 말을 주거니 받거니 하다가 고개를 뒤로 돌려 보고했다.
"사령관님, 방위각 0-3-2 에서 적 잠수함으로 추정되는 물체 둘이 포착되었습니다. 현재 거리는 17km 정도 입니다. 조금만 더 가까워진다면 놈들의 어뢰 사거리 내에 들어오게 됩니다."
"우선 통신병은 혹시 모르니 우리 근방에 있는 군함들에게 이 소식을 알리도록. 그리고 놈들의 사거리 안으로 들어오면 놈들도 사거리 안에 들어오게 된다. 그러니 일단 놈들을 주시만 하고, 사거리 내로 들어온다면 즉시 보고하도록."
그의 명령이 끝나자마자 바로 다섯번째 사격이 개시되었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2번 포탑은 1번과 3번 포탑과 같이 쏘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그는 혹시 기계에 고장이라도 생겼는지 걱정했으나 주포가 조금씩 움직이고 있는 것을 보고나서 그들이 무언가를 준비하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이윽고 만주함에서 폭발이 생겨났다. 이미 한번 박살난 2번 포탑에 또다시 포탄이 명중하면서 그것을 완벽하게 뭉게버렸다. 다른 포탄 두 발은 함미의 측면 장갑을 관통하여 3층에서 크게 폭발했는데, 포탄이 포탄인지라 폭발은 단지 3층에서만 일어나지 않고, 2층까지 전해졌다. 또한 3층이 해수면에 위치해 있었기에 구멍을 통하여 다량의 해수가 침투 했다. 수병들은 서둘러 구역을 폐쇄 했다.
"또 날아온다!"
방금 전부터 계속 조준만 하고 있던 2번 포탑의 두 주포가 뒤로 격하게 후퇴하면서 포탄 두 발을 쏘아올렸다. 지휘부 쪽에서 일하던 수병들은 포탄이 자신들에게 날아오는 것을 보자 절망에 휩싸였다. 그러나 그 절망도 얼마가지 않았다. 이윽고 그들의 눈앞이 밝아지면서 모든 감정이 지워졌다. 그리고 그 감정이 날아간 것처럼 지휘부 또한 종이 분쇄기에 종이가 갈리듯이 갈가리 찢어졌다. 파편들은 소나기처럼 쏟아져내렸고, 미처 피하지 못한 수병들은 펴편에 깔려 죽거나 맞아 죽었다.
"이번에야말로 끝내버려야할 것이야!"
이미 장전이 된 1번과 3번 포탑은 2번 포탑이 장전과 조준이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 그 사이 기간동안 살아있는 만주함의 포탑이 포탄을 날렸지만 모조리 빗나갔다. 포탄이 모두 빗나가자 만주함의 수병들이 구명 보트를 찾아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때 마지막 일제사가 개시되었다. 이에 수병들은 비명을 지르며 더더욱 빨리 빨리 움직이거나 누구는 그냥 바다에 몸을 던졌다. 이윽고 포탄들이 포탑이나 갑판에 명중했고, 4번 포탑이 폭발에 견디지 못하고 유폭을 일으켰다. 포탑이 반으로 쪼개지면서 화염이 솟구쳐 올라왔고, 그 유폭의 영향으로 반죽음 상태였던 3번 포탑의 숨통이 끊어졌다. 3번 포탑의 내부는 화염으로 뒤덮였고 그 화재는 점점 순양전함 곳곳으로 확산되어갔다. 수병들은 서둘러 구명보트에 탑승하고 만주함으로부터 최대한 멀어지기 위해 열심히 노를 저었다.
"화재가 번지고 있는듯 하다. 이제 조만간 저것이 폭발하는 것을 볼 수 있겠어."
"사령관님! 연해주급 중순양함으로 추정되는 목표5번과 목표8번이 방위각 0-3-2, 16,000 에서 저희를 향하여 접근 중입니다!"
불타오르고 있는 만주함을 지긋이 바라보고 있던 그는 미간을 찌푸렸다.
"0-3-2면 잠수함도 같이 있지 않은가?"
"방금 전 신호가 사라졌습니다. 아무래도 다른 곳으로 떠난 듯 합니다."
그는 잠수함이 없다는 사실에 안심했다. 전함을 가지고 중순양함 2척 상대하는 것 정도는 어렵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즉시 4번 포탑 포술장에게 연락하여 적 구축함 전대에 대한 포격 중단 명령을 내리고 1번과 2번 포탑이 목표 5번을, 3,4번 포탑이 목표 8번을 요격하기를 명령했다. 자유 사격이었기 때문에 굳이 누군가가 장전하기를 기다릴 필요가 없다. 4번 포탑이 돌아가는 동안 세 포탑이 중순양함들을 향하여 사격을 했다. 그러나 중순양함들이 좌현이나 우현 전타를 하지 않고 정면으로 달려오고 있었기에 표적 면적이 작아 명중할 수 없었다. 이에 중순양함들이 전방에 있는 2기의 8인치 3연장 포탑들이 전함을 향하여 방포했다.
-쿠웅!
"이크! 아슬아슬 했어!"
전함은 표적 면적이 넓으면서도 둘 사이와의 거리가 가깝기 때문에 지근탄이 생겼다. 그로 인하여 생긴 충격은 순양 전함의 12인치 포탄보다 약했지만 결코 약하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더군다나 한번에 지근탄이 발생하니 그의 얼굴이 순간 화끈거리면서 붉어졌다. 더군다나 중순양함의 장전 속도가 전함보다 더 빠를 것이라는 생각에 마음이 불편해졌다.
"헉! 두번째 사격입니다!"
12발의 8인치 포탄들이 전함의 앞과 뒤에 차례대로 낙하했다. 한 단어로 말하자면 협차 당한 것이다. 곧 그의 차례가 오자 포탑에서 포탄을 차례대로 쏘았다. 이번에는 조금 더 조밀하게 조준하여 쏘았기에 중순양함 지근에 착탄했다.
"놈들이 더 빠르게 다가옵니다! 마치 충돌할 듯 합니다! 거리 15,000!"
"자살하겠다는건가? 그렇다면 환영해주어야겠지! 장갑을 믿고 싸워라!"
보통 전함은 그들이 가진 구경보다 0.5인치 더 큰 구경의 포탄까지 견딜 수 있도록 장갑 설계가 되어있다. 즉, 융희급 전함은 최대 15인치의 포탄까지 방어해낼 수 있다는 말이다. 최대 방어 가능한 포탄의 구경과 중순양함의 포탄 구경 차이는 2배 가까이 되니 근거리에서 얻어맞아도 어느정도는 버틸 수 있다. 그리고 그 증거로 중순양함들이 14,800m에서 제3사를 쏘았을 때 총 3발의 포탄이 전함의 측면에 명중했다. 그러나 모조리 도탄되어버렸다. 그리고 2초 후, 전함의 제3사가 개시되었다. 그 중 한 발이 왼쪽에 있던 중순양함의 함미의 1번 포탑 정면 장갑에 명중했다. 관통되지는 않았으나 단 한번의 공격으로 가장 오른쪽 포신을 일격에 부러뜨릴 수 있었다.
"14,500!"
거리가 더더욱 좁혀져갔다. 뒤이어 적들의 제4사가 이어졌고, 포탄 한 발이 전함의 상부 갑판을 관통하고 들어가 취사실과 식당 대부분을 날려버렸다. 이어서 반격에 들어갔고, 순양함들의 1번 포탑의 포신을 또다시 하나씩 박살내버렸다. 명중되자마자 그들이 다시 한번 더 포탄을 날렸고, 두 발이 측면의 발칸포병들과 고사포병들을 날려버렸다.
"14,000!"
"방위각 0-3-3 20,000에서 적 항공기 출현! 최소 20기! 본 함을 향하여 접근 중!"
그는 갑작스러운 항공기 출현에 당황하며 관측병에게 되물어보았으나 그는 똑같은 대답을 했다.
"현재 우측과 좌측 대공포병들이 대부분 전사하였습니다. 발칸포는 모두 박살났으며 나머지는 20mm 기관포 열 문 정도 입니다."
가면 갈수록 상황이 안좋았다. 고작 20mm 기관포 6문 가지고 전투기 20기를 상대로 어떻게든 방어하라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부포들도 사격에 합세합니다!"
그동안 포격전에서 별다른 빛을 보이지 못했던 5인치 부포들이 중순양함들을 향하여 사격하기 시작했다. 이로써 주포탑의 장전 시간의 공백을 채우고, 화력을 증가시킬 수 있게 되었다. 중순양함에도 3인치 부포가 있기는 했지만 지금 그들은 정면으로 달려오고 있는지라 포각 안에 전함이 들어오는 부포는 단 하나도 없었다. 이런 압도적인 화력 차이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도망 갈 기세조차 보이지 않았다. 이에 부포의 포술장들은 좋아라하며 포탄을 말그대로 쏟아부었다. 명중률은 조금 떨어졌지만 한 발 두 발씩 중순양함에 명중탄을 만들었다.
"13,500!"
"젠장! 그 놈의 망할 숫자 좀 말하지 말게!"
이유 없이 화가 난 그는 관측병을 획 돌아보며 언성을 높였다. 500m 단위로 보고하던 관측병이 깜짝 놀라며 입을 굳게 다물었다. 그는 다시 전방을 바라보았다. 멀리에서 20기의 전투기들이 보였다. 그는 중순양함을 모조리 요격시킨다 해도 전투기들의 폭격을 피할 수 없을 듯 했다. 그때, 관측병과 소나병이 화들짝 놀라하며 크게 외쳤다.
"사령관님! 적 중순양함으로부터 잠수함이 분리되어나왔습니다!"
"방위각 0-3-2 13,000에서 어뢰 8발이 접근 중!"
"적함 우현 전타! 적 부포가 사격을 개시했습니다!"
한번에 세 개의 보고가 들어왔고, 그 중에서 잠수함 소식이 영 좋지 않았다. 그는 설마하며 레이더로 달려가보았으나 어뢰들이 넓은 간격을 유지한 채 달려왔다. 무유도 거리는 3km 정도였지만 고작 3km 가지고 육중한 전함이 30노트의 어뢰들을 모조리 피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더군다나 적의 3인치 부포가 사격에 합세하면서 전함에 연신 3인치 포탄이 명중했다. 이에 얼마 없는 대공포가 하나씩 박살나기 시작했다.
"선체 피해가 누적되고 있습니다! 4구역에서 화재 발생!"
함수에 위치한 4구역이 갑판을 관통한 8인치 포탄에 의해 박살나버렸고, 화재가 발생했다. 몸에 불이 붙은 수병들은 비명을 지르며 바닥을 나뒹굴었다. 그러자 근처에 있던 장군이 그 수병들의 머리에 총알을 박아주었다.
10km를 순식간에 달린 귀상어 어뢰들이 본 함으로부터의 유도에서 벗어나 무유도 상태로 들어갔다. 어뢰들이 직선으로 달리기 시작했고, 그는 즉시 좌현 전타를 명령했다. 하지만 30노트로 달려오는 어뢰 8발을 모두 피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었다. 그는 왼손으로 얼굴을 한번 쓸어내리고 레이더를 살짝 내려보더니 옆에 있는 손잡이를 잡으며 외쳤다.
"전원 충격에 대비하라!"
좌현 전타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느려 터진 전함이 3km의 여유를 통해 어뢰로부터 벗어나기란 불가능했다. 그는 심호흡을 크게 한번 했고, 순간 함 전체에 지진 같은 충격이 전해졌다. 미처 구조물을 잡지 못한 장교들은 데구르르 굴렀고, 수병들도 충격으로 벽에 부딫히거나 굴렀다. 첫 충격이 있은 후, 두번째 충격이 찾아왔고, 뒤이어 세번째 충격에서 네번째 충격까지 이어졌다. 그리고 네번째 충격 때에 전함 크게 한번 붕 뜨는 듯한 느낌이 모두에게 전해지더니 후미에서 귀를 찢는 굉음이 울려퍼졌다. 손잡이를 꽉 잡고 버티고 있던 그는 강력한 충격으로 인하여 그만 손잡이를 놓쳤고, 앞으로 날아가 쇠모서리에 머리가 부딫혔다. 머리뼈가 박살나면서 뇌의 일부를 찢어버렸고, 순간 그는 엄청난 고통을 느끼다가 사망했다.
"퇴..퇴함! 모두 퇴함!"
수병들은 점점 기울어가는 배에서 탈출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지만 박살난 곳에서 해수가 대량으로 침투했다. 그리고 바다에 몸을 던졌던 수병들은 반으로 쪼개진 전함으로 인하여 생긴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들어가기 시작했다. 침몰하는 속도는 총알처럼 빨랐다. 다량의 해수들이 침투해왔고 갇혀 있는 수병들을 차례차례 익사시켰다.
같은 시각 대한 사회주의 연방 제1함대 잠수함 전대
융희급 전함을 격침시킨 잠수함들의 뒤로 제3함대와 제1함대 잠수함 전대 소속 잠수함들이 파고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들은 신속히 둥근 원형진을 만들면서 사정거리 안에 있는 군함들을 향하여 어뢰 공격을 가했다. 보통 구축함들은 어뢰 한발 혹은 두발을 맞고 반으로 쪼개지면서 격파되었다. 덩치가 큰 전함들은 백상아리 대잠 어뢰를 쏘는 것으로 반격했다.
"2번함에서 폭발음! 선체가 붕괴됩니다! 해수 침투음! 2번함 격침!"
전함에서 발사한 대잠 어뢰에 1함대 잠수함 전대 소속 2번 잠수함이 격침되었다. 그 소리를 듣고 있는 소나병은 아군이 바다 속으로 가라앉는 소리를 들으며 괴로워했지만 절대로 헤드셋을 벗어던지지 않았다.
"목표 5번함! 1번과 2번 어뢰관 개방! 어뢰 발사 후, 우현 4도!"
마침 그 전함을 노리고 있던 6번 잠수함 함장이 공격 명령을 내렸다. 곧 두 발의 어뢰가 긴 어뢰관을 빠져나와 목표를 향해 나아갔고, 조타수가 우현으로 4도 돌렸다. 동시에 3함대 소속 잠수함들이 그 전함에게 어뢰를 발사했다. 그 전함을 향하여 발사된 어뢰 수만 해도 무려 10발이었다. 사실상 피하기는 불가능했다.
"아군 항공대가 적 전함과의 교전에 들어갔습니다!"
제3함대 사령관은 전투를 관전하고 있다가 전함들의 대공포병들이 얻어터지는 것을 보고 공격대를 차례차례 이륙시켰다. 처음에 융희급 전함이 발견했을 때에 항공기 수는 고작 20대에 불과했지만 짧은 시간 안에 40기로 불어났다. 그리고 항공모함에서 전투기들이 계속 이륙하고 있었다. 먼저 이륙한 항공대들은 먼저 로켓을 발사한 다음 교전에 들어갔는데, 로켓 덕분에 전함 대공포병들의 저항을 보다 적게 받았다.
"목표 5번함이 폭탄에 명중된 듯 합니다!"
소나병이 전투기가 떨어뜨린 폭탄에 명중된 전함으로부터 나오는 폭발음을 듣고 외쳤다. 그러자 함장이 손을 저으며 말했다.
"워.워. 그런 것까지 말하지 말라고. 소나병도 숨은 쉬면서 살아야할거 아니야. 항공대 애들 이야기까지 알릴 필요는 없다고."
"알겠습니다."
소나병은 다시 헤드셋을 쓰고 일을 시작했다.
이윽고 어뢰들이 한발 한발씩 전함에 명중하기 시작했다. 어뢰를 무려 여섯발이나 얻어맞은 전함은 엉덩이가 몸에서 분리되어버렸다. 방금 전에 격침된 전함과는 다르게 세 발이나 불발탄이었기에 엔진 폭발에 이어 유폭까지 가지 않아 수병들이 탈출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목표 4번함도 격침되었습니다! 이로써 이쪽 진형의 전함은 모조리 소멸되었습니다. 항공모함 한 척과 구축함 20척과 호위함 7척, 그리고 잠수함 네 척이 남았습니다."
아직도 남은 목표가 30개가 넘자 그는 눈쌀을 찌푸렸다. 전함 네 척 잡는 것도 힘들었는데 말이다. 더군다나 첩보에 의하면 호위함에는 모두 백상아리 대잠 어뢰가 배치되어 있다. 또한 아직 대한제국 잠수함이 네 척 남아있었기에 잠수함들이 쉽게 접근할 수는 없었다.
"우선 구축함부터 사냥한다. 어떻게 해서라도 수부터 줄여놓고 본다. 나머지는 우리 1함대가 처리해줄 것이다."
1938년 4월 7일 오후 2시 대한제국 해군 제2함대 기함 동해함
2함대는 연방 해군의 속임수에 걸려든 이후로 순식간에 전함 세 척을 잃어버렸다. 또한 아직 최후의 방어진으로 돌아오지 못한 구축함들은 잠수함의 먹잇감이 되어 격침되었다. 2함대 사령관인 이준호는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왼손으로 얼굴을 한번 쓸어내렸다. 지휘부의 모든 장교들은 사령관의 침묵에 같이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침묵했다. 그는 레이더를 내려보고 있다가 뒤를 돌아 장교들에게 전력을 물어보았다.
"남은 미사일의 수는 얼마나 되는가."
"스무 발에서 서른 발 정도 입니다."
"그럼 그 미사일로 적 전함과 순양 전함을 집중 공격하도록 하라. 그리고 지금 방어진으로 들어온 함들의 대공포 상태가 어떤가."
"피격된 구축함들의 대부분은 발칸포를 모두 잃었습니다. 정리하자면 지금 발칸포는 열다섯문 정도 남았을 것입니다. 대잠 어뢰 같은 경우에는 전부 40여발 정도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일단 미사일로 전함 클래스 애들은 전부다 박살내버리도록 해라. 그 놈들을 집중적으로 노린다면 적어도 한 척에서 두 척은 전투 불가능 상태에 빠지겠지. 그리고 항공 참모, 지금 아군 항공대 이륙 상태는 어느정도인가?"
그는 전함이 전멸하기 직전에 레이더에 표시되는 많은 적기를 보고 항모에 있는 모든 조종사에 대한 이륙 명령을 내렸었다.
"제1공격대는 모두 이륙 했습니다. 지금은 제2 공격대가 이륙 중입니다. 연료는 모두 충분하기 때문에 싸울 수 있습니다."
항공 참모는 그에게 항공대의 자세한 상태까지 알려주었다. 그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더니 비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는 여기에서 죽을 것이다. 절대로 도망가지말아라. 한 놈이라도 더 잡고 간다. 알겠나!"
"예!"
장교들이 모두 한 목소리로 쩌렁쩌렁하게 대답했다. 그는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부하들의 사기를 올려주었다. 항공 참모는 그의 넓은 등판을 보며 피식 웃고 항공대 채널을 열었다. 조종사들은 채널이 열린 것도 모르고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잡담을 나누는 것이 지휘부에 있는 인원 모두가 들었다. 누군가는 정겨운 사투리를 사용하며 고향, 가족 이야기를 했고 누군가는 여자 이야기를 했다. 누군가는 서로를 놀리고 있었고, 다른 누군가는 작은 목소리로 군가를 부르고 있었다.
"본함 미사일 발사관 개방. 순차적으로 발사합니다."
마지막 미사일들이 하얀 꼬리를 물고 발사관에서 하나 둘씩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그는 함대에서 발사되는 미사일의 갯수를 세어보았다. 한 발, 두 발... 점점 수는 늘어났지만 처음에 있었던 미사일 발사 당시에 느낀 감흥은 없었다. 그는 '그저 명중만 해라'라며 간절히 빌었다. 그의 절실한 기도가 담긴 미사일은 2척의 전함과 1척의 순양 전함을 향하여 각각 10발씩 나뉘어져 점점 가까워져갔다. 3함대는 급히 대공포를 가지고 미사일 요격에 들어갔다. 미사일들은 발칸포나 기관포에 의해 한 발, 두 발씩 격추되어갔다. 하지만 그들 모두 전투로 인하여 대공 방어 전력이 상당히 깍여 있었기에 처음처럼 강력한 화력이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그로 인하여 첫 미사일이 순양 전함의 지휘부에 직격하면서 두뇌를 단 한번에 날려버렸다. 뒤이어 다른 미사일들이 전함과 순양 전함에 두세발씩 추가로 명중되었고, 그때마다 거대한 폭발과 함께 무언가가 떨어져나갔다.
"순양 전함이 대열에서 이탈합니다! 곧 있으면 아군 항공대와 적 항공대와 격돌!"
"적함이 우현 전타 중! 거리 20,000! 적 잠수함 12척 거리 21,000!"
20km면 140mm 함포의 유효 사거리 안이다. 분명 적들도 그것을 알고도 여기까지 들어왔다는 것은 더 가까이에서 완벽히 끝장을 보겠다는 생각이다. 그는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다. 곧 장전이 끝난 구축함과 항공모함, 그리고 호위함들의 함포 사격이 진행되었다. 서울급 구축함의 76mm 함포는 사용할 수 없었으나 그 빈 자리를 백두산급 구축함의 127mm 함포가 메꾸어주었다. 가벼운 포탄들은 육중한 전함의 포탄들보다 더 빠르게 비행하다가 적함 근처에 착탄을 시작하더니 곧이어 명중탄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번 명중탄이 생기자 비슷한 곳에 포탄이 쉴세 없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적 구축함 한 척이 진열을 이탈합니다! 앗! 적 전함 사격!"
전함들은 구축함의 포탄에 얻어맞아가면서도 호위함을 조준한 채로 함포를 쏘았다. 호위함은 전함보다 몸집이 작아 일격에 명중탄이 생기는 것은 불가능했지만 근처에 착탄하면서 모두에게 긴장감을 불어넣어주었다.
바다에서 치열한 포격전이 벌어지고 있는 동안 하늘에서도 제공권을 차지하려는 연방 해군 항공대와 지키려는 제국 해군 항공대가 격돌하면서 하나 둘씩 격추되어 바다로 추락했다. 그리고 그 대부분은 제국 해군 항공대 소속 전투기였다. 수적 우위를 점하지 못했기에 2인 1조로 된 적에게 따라잡혀 쉽게 격추되는 일이 다반사였다. 더군다나 그들은 실전 경험이 없었기에 실전 경험이 있는 연방 해군 항공대 병사들보다 많이 뒤쳐졌다.
"아싸! 한 놈 잡았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일방적으로 제국 해군 항공대가 격추되는 것은 아니었다. 그들 중에서도 실력이 있는 조종사들은 운 좋게 기총탄도 다 피해가면서 적기를 하나씩 격추해나갔다. 그러나 그 행동은 곧 독이 되었다. 연방 항공대 조종사들이 실력자들을 잡기 위해 떼거리로 몰려들어왔다. 집단 공격 앞에서 장사 없듯이 제아무리 실력자라도 대여섯대가 몰려들어와 사방에서 총알을 쏘아대니 힘도 못쓰고 격추되어갔다. 그렇게 실력자들이 하나 둘씩 제거되기 시작하자 그들은 다시 떨거지들을 사냥하기 시작했고, 전투를 압도적으로 이끌어갔다.
"어! 전함이!"
구축함에게 집중 공격을 받던 전함들은 꺼도 꺼도 다시 발생하는 화재에 버티지 못하고 전선에서 이탈하기 시작했다. 이에 중순양함들이 서둘러 그 빈 자리를 메꾸었고, 잠수함들이 과감하게 전진하여 어뢰의 최대 사거리보다 더 가까운 15km까지 접근하여 구축함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호위함은 전함의 집중 포격에 견디지 못하고 대부분이 격침되었고, 살아남은 호위함 2척은 대잠 레이더에 탐지되는 특정 잠수함을 지목하여 그 잠수함에게만 어뢰를 쏘았다. 한발 한발씩 쏘다가 전과 없이 격침되는 것보다 몰아주는게 더 나을 것이라는 호위함 함장들의 생각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생각대로 잠수함 두 척이 어뢰들을 다 피하지 못하고 격침되었다. 반면 구축함 여섯척이 연속으로 격침되었다. 호위함들도 얼마가지 못하고 중순양함들에게 집중적으로 얻어맞아 모조리 격침되었다. 그러자 잠수함들이 좋아라하며 달려가며 구축함들을 차례차례 격파해나갔다.
"적 항공대 접근 중!"
항공대는 끈질기게 강력한 화력으로 저항 중인 항공모함을 잡기 위해 달려왔다. 그는 저 항공대에게 분명 항공모함이 갈가리 찢겨나갈 것이라 생각했다. 그가 눈을 지긋이 감았을 때, 대공포병들이 저항하기 시작했다. 이에 전투기들이 하나 둘씩 격추되어 추락하기 시작했으나 그들은 저공으로 비행하며 끝까지 다가왔다. 별 할 일 없는 수병들도 밖으로 나와 소총을 쏴갈겼다. 별 도움은 안되었지만 그들은 아무 것도 하지 않다가 죽는 것이 싫었다.
"온다!"
공중전에 참여하지 않았던 전투기들이 가까이 다가오더니 8인치 로켓을 쏘아대기 시작했다. 이 로켓은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간혹 가다가 운 좋게 하나씩 격추되기도 했지만 그게 끝이다. 로켓들은 갑판이나 함교 구조물에 명중하기 시작했다. 로켓의 공격은 계속 되었고, 대공포병들도 서서히 떨어져나가기 시작했다. 한참을 로켓으로 항공모함을 갈구던 전투기들은 발칸포에게 전멸 당하기 전에 재빨리 도망쳤다. 그 와중에 구축함은 고작 세 척만 남아 중순양함에게 집중 사격 하고 있었다. 집중 사격 다하는 중순양함은 얼마 못가 대형 화재가 발생했고, 엔진이 정지해버렸다.
"잠수함이 어뢰 발사. 총 40발. 본 함과 구축함을 향하여 접근 중."
그 보고를 한 관측병도 보고를 받은 사령관도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어 서로의 눈을 쳐다보았다. 장교들도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하는 생각을 하며 천천히 허리를 폈다. 그는 양 입고리를 쭈욱 올리며 그 어느때보다 환하게 웃었다. 그러자 다른 이들도 그처럼 환하게 웃었다. 마음이 여린 장교들은 벌써부터 눈물을 흘렸다. 옆에 있는 동료들은 그들을 꼬옥 안아주며 토닥여주었다. 그는 그들을 향하여 천천히 거수 경례를 했다. 그들도 그를 따라 거수 경례를 했다.
"영광이었습니다."
"다음 생애에는 더 좋은 세상에서 만나자."
그의 말을 마지막으로 그들의 몸이 붕 떠올랐다. 그리고 그들은 다시 바닥에 떨어져 사방으로 나뒹굴었다. 누군가는 뇌진탕으로 즉사해버렸다. 곧 항공모함의 140mm 함포와 76mm 함포의 탄약을 보관하는 탄약고에서 유폭이 연속적으로 일어나면서 항공모함의 왼쪽이 찢겨져나갔고, 그곳으로 대량의 해수가 침투했다. 그때, 그들의 몸이 다시 한번 더 붕 떠올랐다. 후미에서 엄청난 폭발이 일어나면서 항공모함의 선체 곳곳이 찢어져나갔고, 화염이 갑판을 뚫고 올라왔다. 다음으로는 전투기용 탄약을 모아둔 탄약고들이 유폭되면서 함수에서도 폭발이 발생했다. 항공모함의 닻 두 개가 촤르륵 풀리며 바다 속에 던져졌다. 수병들은 급하게 기울어진 경사 때문에 이리저리 굴러다니다 바다 속에 떨어져 익사했다.
1938년 4월 7일 오후 3시 38분 대한제국 제3함대
마재학 사령관은 2함대의 진형이 깨지면서 순식간에 전멸하는 모습을 보고 할 말을 잃었다. 현재 3함대는 연방의 3함대를 상대하면서 매우 힘들어하고 있다. 전함 4척이 사할린 전함 3척, 만주 순양전함 2척, 연해주 중순양함 3척을 상대해야만 했었다. 수적으로 밀렸기 때문에 지금은 전함 1척이 격침되었고, 다른 한 척은 중파의 피해를 입었다. 미사일 교전 때에 전함 한 척이 피격만 당하지 않았더라면 상황은 지금보다는 나았을 것이다.
"2함대가 전멸했습니다! 우리 또한 전멸하고 말 것입니다!"
"적 잠수함 전대가 2함대 잠수함 전대를 섬멸시키고 아군 구축함 전대를 향하여 접근 중!"
이윽고 연방 잠수함 전대가 어뢰로 전함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어뢰로 집중 공격을 받는 전함들은 적 전함들의 포격과 잠수함의 어뢰에 견디지 못하고 침몰하기 시작했다. 전함들이 침몰하기 시작하자 적 잠수함들은 구축함 사냥에 나섰다. 상황이 1함대의 전멸 상황과 똑같았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구축함들의 피해는 나날이 증가해갔고, 장교들의 목소리가 점점 올라갔다.
"사령관님!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습니다! 함대를 돌려 훗날을 도모해야 합니다!"
"이대로 무작정 버틴다면 수천명의 병사들이 허무하게 죽어버립니다!"
그들의 커져가는 목소리를 가만히 듣고만 있던 마재학 사령관이 버럭 화를 냈다.
"그렇게 살고 싶으면 당장 퇴함하라! 그렇게 살고 싶으면 부하들을 데리고 퇴함하라! 통신병! 전 함대에 전하라! 살고 싶은 자는 모두 도망가서 훗날을 도모하라고!"
그러자 지휘부가 잠잠해졌다. 명령을 받은 통신병도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 난감해하는 눈치를 보였다. 잠시동안의 침묵이 흘렀다. 곧이어 장교 서너명이 그에게 경례를 하고 지휘부를 나갔다. 그가 통신병에게 한번 더 눈치를 주자 통신병이 주변 장교들의 눈치를 보더니 소심하게 무전기를 잡고 그의 말을 함대에 전했다. 그러자 시끌벅절하던 무전기에서 아무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서로 눈치 보기에 바빴다. 그때, 침묵을 깨고 지휘부를 나갔었던 장교들이 다시 돌아오며 정중하게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저희 생각이 너무 짧았습니다! 저희는 이 배에 탄 이상 이 배와 한 몸이 되기를 약속한바 있습니다. 그리고 이 함대에 들어온 이상 이 함대와 저는 한 몸입니다. 이곳에서 싸우다 죽겠습니다!"
그들의 비장한 각오에 다른 장교들도 부동 자세를 취하고 외쳤다.
"저는 사령관님을 따르겠습니다! 절대 물러서지 않겠습니다!"
마재학 사령관은 그들의 각오에 진심이 담긴 것을 느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곧 항공모함에 저장되어 있던 미사일들이 뿌연 연기를 뿜으며 1함대 전함들에게 날아갔다. 이미 한번 미사일을 얻어맞았었던 1함대 전함 수병들은 이번거에는 버티지 못할 것이라는 공포심에 미리 갑판 끝에서 뛰어내릴 준비를 했다. 이윽고 미사일들이 연신 명중하면서 사할린급 전함의 측면 장갑과 함교를 처참하게 박살내버렸다. 다량의 해수가 전함으로 침투해 들어왔고, 서서히 침몰하기 시작했다. 또한 미사일에 얻어맞은 구축함들도 일격에 격침되었다.
"구축함 4척과 전함 3척이 명중되었습니다. 아마 전함 두 척 정도는 침몰될 것입니다."
"사령관님! 미사일 입니다! 적 항공모함에서 발사되었습니다! 방위각 0-9-2 24,000! 총 30여발!"
30여발 중에서 절반은 분명 항공모함을 목표로 했을 것이고, 나머지는 대잠 어뢰를 장착하고 있는 호위함을 노릴 것이 분명했다. 호위함과 항공모함의 대공 방어 전력은 전투 전과 똑같았으나 시속 900km로 날아오는 미사일 30여발을 현재 전력을 가지고 모두 막기란 불가능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누구도 체념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대공포병들은 점점 근접해오는 미사일들을 보고 즉시 소유하고 있는 무기로 사격을 실시했다. 아직 발칸포가 많이 남아있었기에 꽤나 강력한 대공 방어력을 보일 수 있었다. 발칸포에서 뿜어져나온 수많은 탄환들이 미사일을 향해 날아갔고, 탄막에 걸려든 미사일들은 균형을 잃고 빙글빙글 돌며 추락하는듯 싶더니 공중에서 폭발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그들의 단점으로 인한 실수가 점점 많아져가기 시작했다. 호위함을 지켜야했기 때문에 화력은 자연스럽게 분산되었고, 그로 인하여 탄막을 통과한 미사일이 여럿 있었다.
"온다!"
미사일들이 코 앞까지 다가오자 병사들이 무기를 버리고 도망가려 했다. 미사일은 앞에 있는 호위함부터 명중했는데, 호위함은 맷집이 서울급 구축함보다 모잘랐기 때문에 단 한번의 피해로 격침 판정을 받게 되었다. 호위함들이 명중되고, 그다음으로는 당연히 항공모함과 구축함에 명중했다. 항공모함 갑판, 측면 장갑, 140mm 함포 등에 명중하면서 그 주변 시설을 완벽하게 박살내버렸다. 구축함들은 미사일에 명중되어 대파 이상의 피해를 받아 침몰하거나 침몰 위기에 도달했다.
"항공기 엘리베이터 1번과 3번 파괴!"
"16번 구역 침수! 3번과 6번 구역에서 화재 발생!"
속속히 피해 보고가 올라왔다. 그는 방금 전과 변함 없는 표정으로 앞을 훑어보았다. 성한 구축함들은 단 한 척도 없었고, 물에 떠 있는 구축함들마저도 전함과 순양함의 공격을 받기 시작했다. 적 전함들은 자신만만했는지 근거리까지 접근하여 구축함들을 공격했다. 대구경탄에 대한 방어 능력이 없는 구축함들은 육중한 15인치 포탄이나 8인치 포탄을 몇대 얻어맞더니 완전 만신창이가 되었다.
"적 전함과 순양함이 본 함으로 접근 중! 아군 잔여 구축함 전력은 적 구축함 전력을 상대합니다."
그들은 만신창이가 된 구축함들을 멀쩡한 아군 구축함 전대에게 맡겨두고 항공모함을 향해 포를 쏘며 접근해왔다. 근거리에서 항공모함을 완벽히 찢어버리겠다는 의도가 담겨 있었다. 포탄들이 항공모함을 지나쳐가다가 어느덧 협차되었고, 이후 명중탄이 발생했다. 갑판에 있는 항공기들이 명중탄에 의해 갑판 조각과 함께 날아가버렸다. 그때마다 크나큰 충격이 진원지로부터 함 전체까지 퍼져나갔다. 항공모함의 파편 덩어리들이 여기저기 튀었고, 크고 작은 화염이 발생했다. 그러던 중, 항공모함 엔진실에서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다. 이유는 집중 사격 때문이었다. 거대한 폭발로 4만톤이나 되는 거대한 항공모함의 선체가 크게 흔들렸다. 그러더니 항공모함이 빠르게 기울기 시작하면서 갑판에 놓여진 모든 것들이 바다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함과 순양함들의 함포 사격은 멈추지 않았고, 지휘부가 15인치 포탄에 의해 일격에 날아가버렸다. 사령관과 다수의 장교들이 '악'소리도 내보지 못하고 날아가버렸다.
함교 상부층이 완전히 박살나버리자 전함과 순양함들은 잔여 구축함 수 척을 제거하고 포격을 그쳤다. 그리고 동해 바다에 연방 해군의 함성 소리가 널리 울려퍼졌다. 사실 이번 해전에서 연방 해군도 만만치 않은 피해를 입었다. 전함 2척이 대파 2척 격침. 순양 전함 3척 격침, 중순양함 2척 중파, 2척 대파, 2척 격침, 구축함 34척 격침, 13척 중파, 잠수함 4척 격침, 항공기 45기 격추다. 특히 그들에게 가장 뼈 아픈 피해는 순양 전함과 전함 전력에서 너무 큰 손실을 했다는 것이다. 구축함 같은 경우에는 그냥 찍어내서 메꾸거나 평양급 미사일 고속함으로 교체해버리면 그만이었으나 전함과 순양 전함은 마구마구 찍어낼 수 있는 것들이 아니다. 더군다나 이번 해전에서 이겼다고 해서 제국의 해군이 모두 날아간 것이 아니다. 아직 서해 함대와 태평양 함대가 있었으며 말레이 연합 함대 또한 남아 있었다. 그 때문에 사령관들은 수병들처럼 이번 단 한번의 승리로 좋아할 수 없었다.
"정말 답이 안나오는 전쟁이군."
상길원은 침몰해가는 배들과 남아있는 배들을 번갈아보며 근심 가득한 긴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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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송합니다ㅠㅠ 오늘 바쁘게 써내려갔네요. 그리고 두 편을 해전으로 메꾼적은 처음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