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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릉!
D&F 사의 6기통 수소 엔진이 내뿜는 경쾌한 소음이 황무지 곳곳으로 퍼져나갔다.
그리고 소음의 근원인 오토바이 위에서, 누군가 엔진 못지않은 기세로 씩씩거리며 열변을 토해내고 있었다.
"그랬더니, 자긴 이 금액에는 절대 못산다는거야! 장난해? 이게 얼마짜린줄 알고!"
동행조차 없는 1인승 오토바이 위에서 들을 사람도 없다는 듯, 거리낌 없이 내뱉는 그 말에 누군가 대답했다.
"그러는 미라도 그게 정확히 얼마짜린지 모르잖아."
한참 열을 내던 와중에 정곡을 찌르는 말을 듣자, 미라라고 불린 여성은 '아.' 하는 소리와 함께 잠시 침묵했다가 소리쳤다.
"야야, 잠깐만! 넌 내 편 들어줘야지! 내가 네 주인인데! 그러는 넌 그게 얼마짜린지 알아?!"
"구 시대 기준 3천9백 워드."
"아."
오토바이에서 당연하다는 듯 퉁명스러운 대답이 돌아오자, 미라는 다시 한번 침묵할 수 밖에 없었다.
"너, 너 그거 어떻게 알았냐...? 가게 아저씨도 그렇게 말하던데..."
"물건 밑 스티커에 그렇게 써붙여져 있던걸."
"아. 그랬...구나..."
"바보. 원래 가격정도는 확인 하라고."
"시끄러, 제이."
부릉!
미라가 책망하듯 손잡이를 돌리자, 수소엔진이 다시금 경쾌한 소음을 내며 출력을 높였다.
속력이 붙자 오토바이 뒤로 흙먼지가 일어나기 시작했고, 미라의 남색 코드와 팬던트가 바람에 나부꼈다.
그렇게 한참을 달려 오토바이를 적당히 혹사시켰다 싶을때쯤, 미라가 고글을 내려쓰며 또다시 기어를 높였다.
"그래도 가는 길은 알았잖아!"
부르릉!
전보다 훨씬 커져 더 이상 경쾌하기 들리지 않는 소음이 황무지 곳곳으로 퍼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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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엔진의 소음이 잦아든 것은 네 시간이 지난 뒤였다. 미라와 제이는 커다란 돌 산 앞에 멈춰섰다. 무너진 건물 잔해가 쌓여 이루어진 산 이었다.
"이 근처야. 그 아저씨가 얘기한 곳. 여기부턴 걸어가야겠어."
미라는 그렇게 말하며 커다란 베낭과 함께 필요한 장비들을 확인했다. 좌석 위에 배낭을 올려놓고 이것저것 꺼냈다 넣었다를 반복하는 미라를 향해 제이가 물었다.
"그런데, 여기가 어디야? 내 GPS에는 기록되어있지 않은 곳인데."
"청연 미래기술 연구소. GPS에는 없을꺼야. 구 시대때 지어진게 아니니까."
그런 뒤 미라는 목에 걸린 펜던트를 꼭 쥐며 작은 소리로 말했다.
"드디어... 찾은거야."
몇 분 뒤, 짐을 다 싼 미라가 오토바이의 버튼을 누르자, 오토바이의 헤드에서 검은색 구형의 부품이 솟아나왔다.
부품에는 작은 고리가 달려 있었고, 미라는 그 부품을 꺼내 D형 고리에 걸어 배낭 옆에 매달았다.
"자, 그럼. 가자. 제이."
"응. 이번엔 뭘 찾을 수 있으려나."
그러자 배낭에 걸린 제이가 대답했고, 걸음을 뗀 미라의 목소리엔 들뜬 흥분감과 엄습하는 불안함이 섞여있었다.
"과거가 남긴... 미래를 가르키는 유물."
미라는 흩날리는 먼지와 무너진 건물들 사이로 걸음을 옮겼다. 그 긴장된 발걸음 사이에서, 제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흔들려 천천히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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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후 미라의 발걸음이 멈춘 곳은 한 지하도 입구였다. 입구의 이름도, 번호도 다 떨어져나가 알아볼 수도 없이 외형만 간신히 유지하고 있는 곳이었다.
"정말 여기가 확실한 거야? 금방이라도 무너질 꺼 같은데."
입구를 본 제이가 불안감을 토로하자, 미라 역시 불안한 기색을 드러냈다.
"그, 그렇기는 한데... 우린 지하로 들어가야 돼. 그리고 이 근처에서 지하로 들어갈 수 있는 곳은 여기밖에 없어..."
"하지만, 금방이라도 무너질 꺼 같은걸. 우리가 들어갔는데 갑자기 무너지면 어떡해? 막 그 안에 괴물 같은 게 있으면? 엄청 어두울 꺼 같아. 난 어두운거 무섭단 말이야!"
미라는 징징대는 제이를 부적처럼 꼭 붙잡고 주문처럼 되뇌었다.
"언제는 그런 곳 안 가봤어? 괜찮아... 괜찮을 거야... 여기가 확실해."
그렇게 손안에서 발버둥 치듯 웅얼거리는 제이를 꼭 쥔채, 미라는 천천히 계단을 내려갔다.
딸칵. 하는 소리와 함께 손전등이 켜지자, 생각보다 멀쩡한 내부의 모습이 드러났다.
빛이 거의 안 나오기는 해도 여전히 작동하고 있는 초록색 비상등이나, 누군가 덧댄 흔적이 있는 벽 타일 등이 구 시대 이후에도 누군가 이곳을 관리했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자, 이제 어떡할 꺼야?"
예상외로 멀쩡한 내부에 안심한 듯, 제이의 목소리는 안정되어 있었다.
"늘 하던 데로."
"돈 될만한 걸 찾으면 되?"
제이의 말에 당황한 미라는 황급히 제이를 감싸 쥐며 말했다.
"아냐 멍청아! 오늘은 다른 걸 찾을 거야! 그리고 내가 무슨 도굴꾼인줄 알아!"
제이는 또다시 미라의 손 안에서 웅얼거렸고, 미라의 손이 풀어지자 숨을 몰아쉬었다.
"푸하-! 알았어. 그렇게 꽉 쥐지 마! 숨 막힌 단 말이야!"
"숨도 안 쉬는 놈이 무슨... 잠깐!"
제이와 다투던 미라는 순간적으로 몸을 경직시키며 소음을 최대한 억제했다.
딸칵.
조심스럽게 손전등까지 꺼지자, 소리도, 빛도 없는 조용한 지하에서 아주 작은 소리가 들려왔다.
"키르륵. 히히! 키륵!"
'고블린이다...'
아주 천천히, 벽에 몸을 기댄 미라는 벽을 짚고서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벽의 끝 코너에서, 희미하게 번지는 비상등 불빛에 비친 고블린을 발견할 수 있었다.
작은 키와 구부정한 등에 뾰족한 코와 귀, 회색빛 눈에 넝마 조각을 걸친 모습을 확인한 미라는 속으로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재수도 없지... 하필이면 고블린이 들어와 살다니...'
상대적으로 빛과 소리에 민감하고, 어둠속에서도 비교적 잘 볼 수 있는 고블린 이었지만, 다행히 아직까지 미라를 발견하지는 못한 듯 싶었다.
상대를 확인한 미라는 다시금 조용히 걸음을 옮겨 멀직이 떨어진 화장실로 숨어들었다.
"이, 이제 어쩌지...?"
긴장한 듯 속삭이는 제이의 목소리에, 미라는 낭패감 가득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하... 어쩌긴, 계속 수색해야지."
"하, 하지만 어떻게..? 고블린들한테 잡히면 뼈도 못 남기고 잡아먹힌다잖아!"
겁을 잔뜩 집어먹은 제이의 말은 무시한 채, 미라는 배낭 속을 뒤적 거렸다.
그리고 배낭 속에서 빠져나온 미라의 손에는 야간 투시경과 권총이 쥐어져 있었다.
"뭐, 어떻게든 해 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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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라는 그렇게 한참동안 지하를 탐색할 수 있었다. 중간중간 마주치는 고블린들은 투시경을 쓴 미라보다는 시야가 어두웠고, 미라 또한 이들을 한두 번 상대해본 게 아닌 듯, 고블린들의 행동반경을 훤히 꿰뚫으며 안전한 길을 골라 지나다닐 수 있었다. 덕분에 권총을 사용할 일은 아직까지 없었다.
그렇게 식당이나 옷가게가 줄지어선 상가를 지나고, 수색 지역도 지하도 가장 끝에 있는 관리자 사무실만 남겨두게 되었다. 하지만 외길인 지하도 끝 사무실 앞에 두 마리의 고블린이 알짱거리는 탓에, 미라는 한 가게의 카운터 뒤에 숨어서 동태를 살피고 있었다.
"하, 어쩌지. 저 앞에서만 계속 돌아다니는데..."
벌써 20분째 저곳을 관찰하고 있었지만, 바로 근처에 놈들의 서식지가 있는 듯, 최소 한 마리 이상의 고블린이 사무실 앞을 지나다녔다.
"그, 그냥 가면 안 돼? 여기 곳곳을 돌아다녀도 아무것도 없었잖아. 여기가 아닌 거 아냐?"
"안 돼. 만약 전기가 들어온다면, 저 사무실만큼 이 지하도를 잘 살펴볼 수 있는 곳은 없어. 가장 깊은 곳에 있고, 가장 안전하지. 분명, 연구할 장소를 골랐다면 저 사무실을 골랐을 거야."
"하지만, 고블린이 돌아다니는데 누가 이런 곳에서 연구를 해?"
"들어온 지 오래된 놈들이 아냐. 생각보다 수가 적어. 이렇게나마 수색을 해볼 수 있었던 것도 그것 때문이고."
그렇게 말한 미라는 권총을 들여다보며 한숨 쉬듯 중얼거렸다.
"후... 정말 이것밖에 방법이 없나..."
그 모습을 본 제이가 깜짝 놀라며 말했다.
"설마 총으로 쏠려고? 하, 하지 마! 그래도 생명인데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잖아!"
조금 더 고민하던 미라는 배낭에 걸어두었던 제이를 내려놓고는 진지한 눈빛으로 제이를 바라보며 말했다.
"제이. 미끼로 한번만 쓰자. 응?"
그러자 있던 검은 구체 위에 표정이 떠오르더니 다급하게 말했다.
"그냥 다 쏴버리고 들어가면 안될까? 얼마 안 된다며! 우리가 이길 수 있을 꺼야!"
하지만 미라는 대답도 없이 제이를 지그시 바라볼 뿐이었다.
"시, 싫어! 막 날 먹으려고 더러운 입으로 핧고, 깨문단 말이야! 만지는 것도 싫어! 난 안 할 꺼야!"
단호한 목소리와 함께 툭, 꺼지듯 구체위에 얼굴이 사라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라는 뚫어져라 제이를 바라볼 뿐이었고, 오래 지나지 않아 표정이 다시 떠오르며 제이가 말했다.
"...말해두겠는데, 이번이 마지막이야."
그러자 미라가 굳은 표정을 풀고 싱긋 웃으며 말했다.
"아니, 필요할 땐 또 써먹을 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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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찍찍. 아이고 맛 나는 쥐가 여깄네. 찍찍."
내장형 팔다리를 꺼낸 제이는 미라가 손수 만들어 붙여준 쥐의 귀 모양 색종이를 붙이고 지하도 저만치에서 돌아다녔다. 불만 가득한 목소리로 팔짱을 낀채 미라가 있는 가게를 노려보며 쥐 행새를 하고 있던 것이다.
카운터 뒤에서 그 모습을 지켜본 미라는 배를 움켜쥐고 숨죽여 키득거렸다.
하지만 생각보다 소리가 작았던지, 제이는 고블린들의 주의를 끌지 못했고, 미라는 손짓으로 더 주의를 끌라는 지시를 내렸다. 지시를 내린 미라는 한참이나 노려보던 제이는, 결심한 듯 크게 외쳤다.
"찍찍! 너네 좋아하는 쥐 여깄다!! 찍찍찍!!!"
제이의 목소리가 마이크처럼 쩌렁쩌렁 울리면서 몸 여기저기에서 현란한 빛이 뿜어져 나왔고, 제이는 순식간에 디스코볼처럼 번쩍거리는 시끄러운 쥐가 되었다.
그 효과는 대단해서, 사무실 앞에서 알짱거리던 고블린들은 물론이고 주변에 있던 모든 고블린들이 우르르 몰려 나오며 형형색색 빛을 내뿜는 맛있는 쥐를 쫓아 달려갔다.
"키르륵!"
"쥐! 쥐다!"
"번쩍번쩍! 쥐다!"
그렇게 제이가 고블린들의 손에서 손으로 이리저리 굴러다니는 동안, 미라는 사무실로 달려갔다.
그리고 미라가 사무실로 들어가 문을 닫기 직전, 문틈 사이로 제이의 외침이 들려왔다.
"으아아!! 언젠가 꼭 복수 하겠다-!!!"
제이의 비명을 뒤로하고 재빨리 사무실 문을 잠근 미라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생각보다 제이가 시선을 잘 끌어준 덕분에 문 너머에서 들려오는 소란은 점점 더 커졌고, 간간히 비명소리나 주먹질 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으로 보아 꽤나 큰 싸움으로까지 번진 듯 싶었다.
“휴... 제법 오래가겠네. 고마워 제이, 널 잊지 않으마.”
제이에게 애도를 표한 미라는 손전등을 켜고 천천히 주변을 살폈다.
사무실 안에는 감시카메라를 확인할 수 있는 기기들과 여러 용도를 알기 힘든 장비들이 어지러이 널려있었다. 하지만 장비들 위엔 먼지들이 켜켜이 쌓여 있어서 미라는 방 전체가 회색빛으로 물들어 시간이 멈춘 것 같다고 생각했다.
달칵.
혹시나 하는 마음에 카메라 장비의 전원을 눌러봐도 버튼소리만 날뿐, 전력이 전혀 들어오고 있지 않았다.
“...아무것도 없나...? 그럴 리가 없는데...”
그렇게 말한 미라는 벽면 여기저기를 더듬거리기 시작했다.
달그락.
“음? 뭐야?”
벽을 짚어가던 미라의 발에 뭔가 채여 굴러가면서 반짝거렸고, 미라는 그걸 바로 알아볼 수 있었다.
“...탄피다.”
먼지가 쌓여 반은 새카맿지만, 반은 반짝거리는 탄피들이 온 사방에 깔려 있었다.
“여기에서, 누군가 총을 쏜거야. 그것도 아주 많이. 그리고 그 방향은...”
미라의 시선이 한쪽 벽으로 옮겨졌다. 다른 벽과 다를바 없는 평범한 벽이었다. 다만, 거기에 셀 수 없을 정도로 수많은 탄들이 박혀있다는 게 다를 뿐이었다.
“여긴가...”
미라가 무수히 상처가 가득한 벽에 손을 짚자, 미약한 진동이 느껴졌다.
이 안에서 기계가 돌아가고 있다는 뜻이었다.
이곳에서 총을 난사한 무리들은, 이곳에 뭔가 숨겨져 있다는 건 알았지만, 그것을 찾아내지는 못한 듯 싶었다. 아직도 작동하는 듯한 벽 너머의 기계와, 벽을 짚었던 손에 남아있는 메마른 핏자국이 그것을 증명했다. 누구의 피인지는 알 수 없었으나, 그는 마지막에 이 벽 앞에서 숨을 거두었다.
“그 사람은 분명... 할아버지의 동료였겠지.”
미라는 목에 걸려있던 할아버지의 펜던트를 꺼내들었다. 그리고 버튼을 누르자, 펜던트가 벽 너머 무언가의 신호를 감지하고 작동하기 시작했다.
[암호를 말씀하세요.]
‘찾았다!’
난생처음으로, 펜던트가 작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미라가 평생을 찾아다닌 할아버지의 유산이, 바로 이 벽 너머에 있었다. 그런 생각이 들자, 암호를 말하는 미라의 목소리는 눈에 띄게 떨리고 있었다.
“데우스... 엑스 마키나...”
‘기계를 타고 내려오는 신.’
미라는 이 문장의 뜻은 알고 있었지만, 그것이 왜 이 문을 여는 열쇠가 되는지, 할아버지의 연구와는 무슨 연관이 있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침착하자... 그걸 찾으려고 여기까지 왔잖아. 이제, 알 수 있을 거야.’
‘푸쉬익-’ 하는 소리와 함께 비밀 문이 열리자, 내부가 한눈에 들어오는 작은 방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 안에서도 미라의 눈에 가장 먼저 띈 건, 작은 상자를 안고 있는 메마른 미이라였다.
방 한구석에서 쪼그려 앉아 죽어있는 시체는 연구복으로 보이는 하얀 가운을 입고 있었고, 가슴께에는 ‘리지 낸사’라는 명찰이 붙어있었다.
“후... 이런 건 언제 봐도 견디기 힘들어...”
차라리 해골이라면 상관없지만, 미라는 이런 식으로 사람 형태가 남아있는 시체는 온몸에 소름이 돋아나 가까이 하기 싫어했다. 때문에 미라는 시체는 나중으로 미루고, 시체 옆에 있는 사람모양의 기계를 먼저 살펴보기로 했다. 벽 건너에 있을 때부터 느껴지던 진동의 정체인 기계는 마치 중세 고문도구인 ‘아이언 메이든’이나 파라오의 석관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대체 이게 뭐지...?”
미라는 한참이나 그 기계를 조사했지만, 카드키가 들어갈만한 구멍을 제외하면 아무런 작동법도 알아낼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근처에 이 카드키에 맞는 물건이 있는지 생각하던 미라의 시선은, 시체의 가슴에 붙은 명찰에 머물렀다.
“어...”
멍청한 표정으로 한참동안이나 고민하듯 명찰을 바라보던 미라는 한순간 시체의 얼굴을 확인하고는 결심하듯 말했다.
“아...아닐꺼야! 부, 분명 다른 게 있을꺼야! 분명히!”
그렇게 닭살이 돋는 손으로 방안 여기저기를 뒤지던 미라는, 끝끝내 아무것도 찾아낼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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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딱 감고... 집어들면 되지 않을까...?’
미라는 눈을 감고 시체를 향해 천천히 손을 뻗었다.
하지만 문득 기괴한 상상력이 미라의 뇌리를 스쳤다.
‘마, 막... 눈 뜨니까 일어나서 다가오고 있는건 아니겠지...?’
당연히 그럴 리가 없었지만, 한번 들기 시작한 무서운 상상은 미라의 공포심을 자극했다.
“어우, 안되겠다! 못해, 못해!”
하지만 그렇다고 평생을 찾아온 일을 이깟 시체 때문에 그만둘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평소 같았으면 별 신경도 안 쓰고 지나쳤을 시체 하나 때문에 벌써 30분 가까이 시간이 지체되고 있다는 사실에, 미라는 왠지 모를 분함과 억울함으로 눈물이 나올 지경이었다.
“으으... 그, 그럼 명찰에만 집중해서... 최대한... 얼굴은 안보고...”
깨알같이 실눈을 뜨고서, 권총 끝으로 명찰 끈을 걸어 가져오려는 심산이었다.
“조심... 조심...”
최대한 얼굴은 안 보려고 의식한 탓인지, 오히려 보이지 않는 시체의 시선에 목덜미가 찌릿한 느낌이 들었지만, 그래도 미라는 권총 끝에 명찰 끈을 거는데 성공했다.
“되, 됬다!”
기쁜 마음에 재빨리 명찰을 낚아챈 미라는 순간, 자신이 한 가지 간과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명찰 끈이 잡아당겨지면서, 끈이 걸려있던 시체가 반동으로 튕겨 올라와 미라의 위로 엎어진 것이다.
“끼야아아아아아아악!!!!!”
자신의 허리를 붙잡고 늘어지는 말라비틀어진 시체와 정면으로 마주본 미라는 정신없이 비명을 지르며 시체를 발로 걷어찼다.
“저리가! 꺼져! 꺼져! 꺼져!!!”
그 와중에 시체는 산산히 부서져 내렸고, 미라는 바닥에 주저앉아 온몸에 식은땀을 흘리며 숨을 몰아쉬었다.
“헥...헥...시, 심장마비 걸리는 줄 알았네...헥...”
그러다 문득, 바닥에 떨어진 상자가 눈에 띄었다. 시체 위에 얹어져 있던 상자가 난리 중에 바닥에 떨어진 것이었다.
미라가 상자를 주워들자, 종이 하나가 팔랑거리면서 바닥에 떨어졌다.
“뭐지?”
종이에는 빼곡하게 글씨가 쓰여 있었지만, 잉크가 거의 다 날아가 알아볼 수 있는 부분이 얼마 없었다. 다만 꼭꼭 눌러쓴 첫 문장만이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남아있을 뿐이었다.
“내... 아들... 에게...? 이게 무슨 소리지?”
미라가 상자를 열자, 그 안에는 고이 접어진 청바지와 남성용 속옷, 셔츠 한 벌이 들어있었다.
미라는 당최 의미를 알 수 없는 성인 남성용 속옷을 보며 말했다.
“이게 뭐야...? 아들이 이렇게 커...?”
의아한 기분에 미라는 명찰을 들여다보았고, 명찰에는 리지의 사진만이 살아생전 찍힌 것 처럼 활짝 핀 웃음으로 대답할 뿐이었다. 미라는 그 사진을 보며, 새삼 리지가 굉장한 미인이었다는 점을 알 수 있었다.
“이거... 시체를 저렇게 만든 게 미안해질 정도인데...”
뜨끔한 표정으로 산산히 부서진 리지의 시체를 본 미라는, 또다시 돋는 닭살에 부르르 몸을 떨며 명찰을 기계에 꽂아 넣었다.
그러자 석관처럼 보이는 기계의 뚜껑이 반으로 나뉘는가 싶더니, 안에서 하얀 김이 피어올랐다.
“콜록! 콜록! 아욱, 이게 뭐야!”
입안이 텁텁해지는 이상한 하얀 김을 손으로 휘휘 저으며 흩트리자, 미라는 비로소 안에 내용물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제서야 리지의 아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있었다.
“사람... 이다... ‘진짜’... 사람...”
미라가 놀라서 아무말도 못하고 있는 그때, 기계안에 누워있던 남자가 눈을 번쩍 뜨며 일어났다.
“흐아아아악!! 뭐, 뭐야!”
퍽!
순간적으로 깜짝 놀란 미라는 자기도 모르게 주먹을 날렸고, 남자는 영문도 모른 채 ‘엌.’ 하는 단말마와 함께 또다시 쓰러졌다.
“아... 쓰러졌네...죽었나...?”
그렇게 미라가 남자의 상태를 확인하려던 그때...
덜컹! 덜컹! 덜컹!
사무실 문이 흔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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헠헠... 가입한지 거진 10년이 다 되어가는데 처음으로 연재를 해보는군요...!
SF+판타지+설화 컨셉의 퓨전 소설입니다.
당분간은 타 사이트와의 분량을 맞추기 위해 한번에 2편씩 연재를 할 예정이에요.
잘 부탁드립니다.; 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