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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애민과 애국의 기치로 단합해야 하는가?
애민과 애국의 기치는 한국 사회의 실상을 명확히 드러내는 기치일 뿐만이 아니라 광범위한 세력들이 함께할 수 있는 일치의 지점이 되고, 동시에 광범위한 세력들이 요구하고 주장하는 미래 사회의 전망성을 담보해줄 수 있는 기치가 되기에 단합의 기초로 된다.
세상을 실질적으로 바꾸자면 그럴 수 있는 준비 역량을 갖춰야 합니다.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면 결코 사회를 바꾸어 원하는 세상을 만들 수 없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하여 모든 것이 준비되고 계획한 대로만 세상이 움직인다는 뜻은 아닙니다. 세상에서는 인간이 예측하지 못한 여러 변수가 발생합니다. 하지만 위기를 기회로 삼고, 호조건을 유리하게 이용하느냐 하는 것은 그 주체 세력이 얼마나 준비되어 있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한국 사회에서 여러 번의 정권교체가 있었지만 본질적으로 세상을 바꾸지 못했던 원인을 살펴보면 사실 그 준비가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한국 사회를 실질적으로 개혁시켜 민이 주인의 권리를 누리는 세상을 만들자면 그 준비 역량을 갖춰가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 준비 역량을 갖추는 데에 있어서 가장 일차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것은 어떻게 하면 세상을 바꾸어 민이 주인의 권리를 누리고 살 수 있는가에 대한 가능성을 보여주면서 광범위한 사람들을 단합시켜 내는 것입니다. 그래야 그 단합된 힘으로 세상을 바꾸어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가능성을 보여주면서 광범위한 사람을 단합시켜가자면 우선 현 사회의 본질적인 특성과 실태를 명확히 드러낼 수 있어야 합니다. 현 사회의 실태에 대한 파악이 잘못되어 있다면 그에 대한 대책은 당연히 어긋나게 되기 때문입니다. 실태와 원인에 대한 파악이 잘못되어 있는데, 그에 따라 마련된 대책이 잘못될 수밖에 없다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이치이기 때문입니다. 그 때문에 한국 사회를 제대로 고쳐가자면 본질적 실태가 무엇인지를 명확히 드러낼 수 있는 기치를 내걸어야 합니다.
한국 사회의 실태를 살펴볼 때 여러 각도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 다양한 실태가 하나로 압축되는 형태를 보면 여러 거짓되고 위선적인 모습이 난무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사회의 실태가 옳게 파악되자면 그 명칭에 걸맞게 바른 이름(정명正名)을 사용해서 설명되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고 왜곡, 전도되는 형식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에서 드러납니다.
단적으로 5.16쿠데타를 5.16혁명이라고 주장하고, 광주시민을 무고하게 학살하여 권력을 잡은 행위가 정의사회구현이라고 말합니다. 또 윤석열 정권은 입만 열면 민생을 거론하는데, 그가 실제로 취한 정책은 민생을 위한 복지예산을 대폭 삭감하면서 부자 감세를 실시하는 것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서민의 주택문제를 해결하겠다고 한다면 집 없는 사람들의 주거권을 어떻게 보장할 것인가의 차원으로 접근해서 풀어가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부동산 경기 활성화를 초점으로 해서 추진하고 있는데 이것이 어떻게 서민을 위한 주택 정책일 수가 있겠습니까? 부동산 경기 활성화는 주되게 집이 있거나 돈이 있는 사람들, 내지는 부동산 투기를 하는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정책인데 말입니다.
명칭에 걸맞게 바른 이름(정명)이 사용되어야 사회의 실태와 실상을 정확히 파악할 수 있고, 그래야 그 잘못된 실상을 극복해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정명에 맞지 않게 왜곡, 전도되어 사용되고 있으니 어떻게 그 사회적 실태가 명확히 드러날 수 있겠으며, 한국 사회의 실태가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상태에서 어떻게 고칠 수 있는 길이 열리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바로 여기서 잘못된 세상을 바꾸자면 이렇게 이름에 걸맞지 않게 사용되는 그 근원을 명확히 파악해야 할 필요성이 요구됩니다. 한마디로 한국 사회를 설명하는 데 있어서 정명에 맞지 않게 왜곡, 전도될 수밖에 없는 근원을 명확히 드러내야만 한국 사회의 실상과 실태를 정확히 이해시킬 수 있고, 그래야 그 잘못된 사회를 바꿀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바로 여기서 한국 사회의 실태에 대해 명확히 파악되지 못하도록 하는 근원이 무엇이냐는 것과 한국 사회에 대한 명확한 실태 파악은 동일한 내용을 갖게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한국 사회의 실태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게 하는 근원과 한국 사회에 대한 정확한 실태 파악은 동전의 앞뒷면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한국 사회의 실태를 정명에 맞게 파악하지 못하게 하는 근원이 도대체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한국 사회에서 외세와 매국노가 주인 행세하고 있는데 바로 이 현실을 부정하면서 잘못된 실태를 정당화하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 때문에 정명에 맞게 사용되지 못하고 왜곡, 전도되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미국의 식민지이면서도 식민지가 아닌 양 여기고, 미국의 앞잡이 노릇을 하여 매국 행위를 행하면서도 애국적 행위인 양 주장하는 현상이 벌어지니 이로부터 사회의 실상에 대한 왜곡되고 전도된 현상이 한국 사회의 전 부분으로 퍼져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외세와 매국노가 주인 행세하는 세상에서는 이들이 사회의 모든 부분을 그들의 입맛에 맞게 세워가기 때문입니다.
단적으로 한국은 미국과 불평등한 한미상호방위조약과 한미행정협정을 맺고 있음으로 하여 군사적 주권조차 제대로 행사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한다면 주권을 찾으려고 하는 것이 애국 행위이지 어떻게 미국의 지배를 계속 받으려고 하는 모습이 애국적 행위가 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미국과 동맹을 맺어야 하가에 어쩔 수 없다고요? 이것이야말로 참으로 희한한 사고방식이 아닐 수 없습니다. 동맹관계를 맺는 것은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인데, 동맹관계를 맺기 위해 나라의 주권을 포기하다니 도대체 이런 사고방식이 어떻게 나올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상식적인 이치로 보건대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서 수단을 강구하는 것인데, 그 수단을 위해서 목적을 포기하다니? 이것이 바로 왜곡되고 전도된 사고방식이 아니고 뭐겠습니까?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 동맹이 필요하다고 한다면 동맹관계를 맺을 수 있겠지만, 그렇더라도 주권을 양도하고서 동맹관계를 맺을 수는 없습니다. 주권을 고수해야만 동맹을 맺어도 그 목적에 맞게 나라를 지켜내어 민의 생명과 재산, 권리를 수호해 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미국과의 동맹을 수호한다는 명목으로 미국으로부터 군사적 주권을 찾으려고 하지도 않고, 계속 미국의 지배를 받아야 한다고 강변한다면 이게 미국의 앞잡이 역할을 하는 매국노이지 어떻게 애국적 행위라고 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조국통일의 문제도 마찬가집니다. 민족이 분단되어 있다면 서로 어떻게든지 합의하여 통일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애국 행위이지 계속 적대해서 싸우려고 하는 것이 어떻게 애국적 행위가 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물론 한 형제가 서로 생각이 달라 다툴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같은 민족이 하나로 통일하는 것은 지극히 정당하니만큼 통일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조국통일에 반하는 반민족적인 행위는 하지 않아야 하고, 최소한 남보다도 못한 짓거리는 하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물론 상대방이 반민족적인 행위를 행한다면 그에 대해서는 단호히 반대하고 싸워가야 합니다. 조국통일은 같은 민족이 하나로 단결하자는 것이니만큼 반민족적인 행위는 조국통일의 목적에 어긋나고, 이를 용인하게 되면 조국통일이 불가능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상대방이 반민족적인 행위를 저지른 것이 아닌데도, 미국의 동북아 정책에 편승하여 남북 간의 대립, 대결정책을 추구하고, 심지어 군사적 주권도 없으면서 외세까지 끌어들여 전쟁 분위기까지 조성해간다면 이것이 매국노 짓거리이지 어떻게 애국적 행위가 될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이처럼 미국의 식민지배를 용인하고 매국 행위를 정당화하려고 하다 보니 한국 사회는 매국 행위가 애국 행위로 둔갑되고, 매국노가 애국자를 단죄하는 기가 막힌 요지경의 세상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이렇게 한국 사회의 큰 틀에서의 왜곡과 전도 현상이 한번 자리 잡게 되니 사회 곳곳이 왜곡되고 전도된 현상이 퍼져가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 왜곡되고 전도된 형태를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모습이 민생이라는 단어입니다. 민생이니 민생안정이니 하는 말은 지금 정치권에서 제일 많이 사용하는 단어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한국 사회의 실상을 살펴보면 민생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구조입니다. 당연한 게 미국의 식민지배가 용인되는 구조가 성립되면 그로부터 파생되는 것은 민에 이익에 반하는 반민(중)적이고 기형적인 매국성이 사회 곳곳에 형성될 수밖에 없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민생 문제를 진실로 해결하자면 반민(중)적이고 기형적인 매국성의 특성을 고쳐야 하고, 이 매국성을 극복하자면 결국 미국의 식민지배를 받고 있는 처지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그런데 이런 본질적인 문제를 외면하고 있는데 어떻게 민생 문제가 해결될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그 때문에 민생문제를 그렇게 소리쳐 외치면서 해결하겠다고 하고서 내놓은 대책이라는 것이 항상 부분적이고 일면적인 형태의 시혜를 베푸는 방식에 지나지 않았고, 그 민생의 이름으로 실시한 대부분의 정책들은 결국 외세와 재벌, 돈 있는 자들을 위한 방식으로 귀결되었던 것입니다.
왜 이렇게 민생이라는 단어가 정명에 맞게 사용되지 못했는가를 살펴볼 때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여러 요인이 발견됩니다. 민생이 글자 그대로 민생 문제를 해결하자고 하자면 경제 정책 자체가 민생을 해결하는 차원에서 접근되고 추진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갑자기 민생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해놓고선 경제가 살아야 해결된다는 식으로의 전도된 입장이 전개됩니다. 상식적인 시각으로 놓고 볼 때 어떤 목적을 실현하려고 하느냐에 따라 경제 정책이 달라질 수 있고, 또 그런 이치로 인해 경제를 살리는 방향도 그 목적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는 것은 매우 당연한 이치일 것입니다. 그런데 민생은 어디로 갔는지 사라져버리고 경제 살리는 것 자체가 목적이 되어버리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경제를 살리는 것 자체가 목적이 될 때 어떤 때에는 민생에 도움이 될 수도 있지만 경제가 살아나도 민생 해결에 도움이 안 될 수도 있습니다. 여기서 도움이 되는 것이야 운이 좋은 경우라고 할 수 있겠지만, 한국 사회의 실상을 보면 그렇게 운이 좋은 경우는 거의 나타나기가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미 한국의 경제 구조는 식민성과 매국성의 형태로 형성되어 있는데, 경제 살리는 것 자체만을 목적으로 놓고 진행한다면 결국 식민성과 매국성을 더욱 심화시키는 차원에서 전개될 것이 뻔하기 때문입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식민성과 매국성을 극복하자면 한국의 정치와 경제, 사회 구조 등을 본질적으로 청산해야 하기에 그것은 매우 어렵고 고통스러운 과정을 수반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경제를 살리는 것 자체를 목적으로 삼게 되면 기존의 제도를 이용하는 것이 손쉬운 방식이 되는지라 그런 방식으로 경제를 살리게 되면 그것은 필연코 이미 기득권을 가진 세력에게 이익이 되고 민생 문제 해결에는 별반 도움이 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지금껏 한국 경제가 엄청나게 성장했는데도 빈부격차가 심화되는 모습이 발생하면서 더욱 많은 사람들이 고달픈 삶을 살아가게 되는 현상이 나타나는 것도 다 여기에 원인이 있습니다. 이것은 결국 민생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하지만 실질적으로 취해지고 있는 모습은 민생이라는 정명의 이름에 반하게 반민생적인 형태로 전개되고 있다는 것을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처럼 한국 사회의 실태가 잘못 파악하게 된 그 근원을 살펴보면 결국 외세와 매국노가 주인 행세하는 식민지매국사회인데, 이를 부정하려고 하기에 발생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매국적 행위를 하면서도 애국이라고 강변하고, 반민생적인 정책을 추진하면서도 민생문제를 해결하는 듯한 의지를 갖고 있는 양 주장하는 현상이 버젓이 벌어지다 보니, 한국 사회에 대한 실상과 실태가 명확하게 파악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한국 사회의 실태에 대해 잘못 왜곡되고 전도되고 있는 현상을 극복하면서 그 실상을 명확히 파악할 수 있게 하자면 이를 명확히 드러낼 수 있는 바른 이름, 즉 정명(正名) 기치를 내걸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외세와 매국노가 주인 행세하는 사회의 부당성을 가장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정명의 기치는 애민과 애국의 기치로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민이 나라와 민족 단위로 살아가고 있는 조건에서 애민과 애국의 기치를 내걸어야 왜 외세의 부당한 지배로부터 벗어나야 하는지가 명확해질 뿐만 아니라 나라와 민족에 반하는 매국적인 행위가 왜 단죄되어야 하는지가 가장 분명하게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애민과 애국의 기치를 견지해야 하는 이유는 한국 사회의 실상에 대해 왜곡되고 전도된 실태를 명확히 파악하게 함으로써 어떻게 해야 한국 사회를 개혁해 나갈 수 있는가에 대한 대책을 세울 수도 있고, 또 한편으로 광범위한 세력이 단합할 수 있는 명확한 기초가 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세상을 실질적으로 바꾸어가자면 대책을 마련하는 것만으로 해결되지 않습니다. 광범위한 세력을 하나로 모아내야 합니다. 어차피 세상을 바꾸어가는 실질적인 행위는 사람이 하지 그 누가 대신해줄 수는 없습니다. 그 때문에 세상을 바꾸어가는 가는 준비를 실질적으로 갖춰가느냐는 결국 얼마나 광범위한 사람들을 단합시켜 나가느냐에 달려 있게 됩니다. 바로 여기서 애민과 애국의 기치는 한국 사회를 어떻게 고쳐가야 하는지 그 대책을 마련하게 할 뿐만이 아니라 광범위한 세력이 단합할 수 있는 기초가 됩니다.
단합의 기초를 세우는 문제가 중요한 것은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느냐에 따라 단합을 공고히 하느냐, 그렇지 못하고 또다시 분열의 길로 나가느냐를 가름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흔히 단결은 서로가 합의한 사항을 지키기만 하면 이뤄질 것이라고 손쉽게 여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한마디로 합의 사항을 지키지 않으니까 단결이 되지 않는다고 바라본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매우 낭만적인 생각일 뿐입니다. 왜냐하면 현실을 보면 합의한 사항을 안 지켰기에 협력관계가 깨지는 것이 아니라 합의되지 않은 사항에 대한 입장 차이가 크기 때문에 서로 갈라진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것일까요? 그럴 수밖에 없는 게 현실에서는 인간이 예측하지 못하는 많은 변수가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그 때문에 합의할 당시에는 서로 공통점이라고 하여 합의했지만 앞으로의 미래에 일어날 사건에 대해서는 다 합의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새로운 변수가 나타날 때마다 그에 대한 판단이 나오게 됩니다. 여기서 끝내 공통된 입장을 끌어내지 못하면 협력관계가 깨지게 됩니다. 이런 현상들은 한국의 정치 세력들의 모습을 보면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어떤 때는 하나로 모이는 듯했다가 언제 그랬냐는 듯 이합집산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 때문에 단합의 모습을 보이다가 다시 분열로 치닫는 상황으로 되돌아가지 않으려면 단합의 기초를 확고히 마련해야 합니다. 단합의 기초를 확고히 하지 않는다면 언제든지 입장 차이로 인해 분열로 치닫는 모습을 피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일제 식민시기와 해방 후에 좌익과 우익 세력이 민족을 공통점으로 하여 좌우합작을 시도하면서 단합하려고 노력했으나 끝내 분열을 면치 못했던 것이라든가, 한국 사회에서 진보세력이 서로 협력하자면서 민주노동당, 국민참여당, 진보신당 탈당파의 통합으로 통합진보당이 창당되었지만 이 또한 끝내 분열의 길로 나아가게 된 것은 결국 단합의 기초를 명확히 확립하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것은 서로 간의 협력관계가 깨지지 않게 하자면 절충의 형태 차원으로 전개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물론 절충하지 말라는 것은 자기의 사상과 이념, 주장을 견지하지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자기 입장을 견지한다고 하더라도 미래의 예측할 수 없는 변수가 생길 때 하나의 통일된 입장을 내올 수 있는 부분만큼은 명확하게 단합의 기초로 확립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결국 서로의 협력관계가 깨지지 않고 분열되지 않은 손쉬운 길은 하나의 사상과 이념에 기초해서 단결하는 방식이라고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하나의 사상에 기초하면 분열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방식으로 추진하면 광범위한 사람들을 모아낼 수 없는 문제가 발생합니다. 왜냐하면 어떤 사상도 처음부터 광범위한 사람들을 포괄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단합하자고 하는 것은 하나의 사상만이 아니라 여러 다양한 입장이 제기되고 있다는 것을 전제합니다. 그래서 이 다양한 세력에게 언젠가는 자기주장을 실현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는 기초가 되어야만 합니다. 그래야 광범위한 세력들이 서로 협력하는 방향으로 나올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 세력들이 다양한 입장을 견지하고 있는 조건에서 이 모든 광범위한 세력을 하나로 단합시키기 위한 방도는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바로 한국 사회를 질적으로 바꾸어낼 수 있는 일치된 지점을 명확히 드러내 주면서도 동시에 광범위한 세력들의 다양한 입장과 요구를 실현해줄 수 있는, 즉 그 실현 전망성을 보여줄 수 있는 기치를 확고한 단합의 기초로 삼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한국 사회를 질적으로 바꾸어낼 수 있는 일치된 지점을 명확히 드러내 주어야 하는 이유는 그 기준선을 해결하지 않으면 한국 사회를 개혁해낼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지금껏 한국 사회에서는 6월항쟁과 촛불 항쟁에서 보듯 광범위한 세력을 모아냈습니다. 하지만 한국 사회는 본질적으로 변화되지 못했습니다. 그 이유는 이때의 단결 계선이 질적인 변화를 담보하는 일치된 지점을 명확히 견지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한국 사회는 외세와 매국노가 주인 행세하는 사회입니다. 그 때문에 한국 사회를 질적으로 바꾸어 개혁하자면 외세와 매국노를 응징하는 기준선을 명확히 드러낼 수 있어야 합니다. 이 기준선이 확립되지 않으면 외세와 매국노가 주인 행세하는 사회는 바뀌지 않습니다. 그러면 실질적인 개혁이 이루어지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바로 여기서 외세와 매국노를 응징하는 그 기준선을 명확히 드러낼 수 있는 것은 애민과 애국의 기치가 됩니다. 애민과 애국의 기치를 내걸게 되면 주권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 명확히 되기에 외세를 배격할 수 있고, 또 나라와 민족의 이익에 반하는 매국노를 응징하는 것이 명확하게 확립되기 때문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애민과 애국의 기치는 민이 나라와 민족 단위로 살아가고 있는 조건에서 주인의 권리를 누리고 살자면 현실 상황에 안주하지 않고 계속 그 권리를 확대 강화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다양한 입장을 가진 광범위한 세력들의 요구 또한 실현할 수 있는 전망성을 보여줄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 때문에 애민과 애국의 기치를 내걸고 단합하여 나간다면 광범위한 세력을 포괄할 수 있고, 또다시 분열의 길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더욱 공고화되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애민과 애국의 기치로 단합하여 나가야 할 것인데, 일부에서는 이런 기준선을 제시하면 사상과 양심의 자유를 제약하는 형태가 되지 않을까 우려하는 현상이 나타나기도 합니다. 한마디로 사상과 이념의 노예가 되는 사회로 혹시 전락되지 않을까 하는 근심인 거죠. 하지만 이것은 잘못된 이해입니다. 사상과 이념의 노예가 되는 사회로 전락되는 이유는 사상과 이념이 원래 사람을 위해 필요한 것인데, 사상과 이념을 위해 사람을 거기에 꿰맞추려고 하기 때문에 발생합니다.
그런데 애민과 애국의 기치는 나라의 주인인 민을 위해 등장한 기치입니다. 다시 말해 나라의 주인이 민인데, 외세와 매국노가 주인 행세하니까 이런 잘못된 세상을 고치자는 것이고, 또 광범위한 사람들의 다양한 주장이 있으니까 그것을 받아들여 실현할 수 있는 전망성을 보여주자는 각도에서 제시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상과 이념에 맞추자는 것이 아니라 철두철미 사람의 요구를 기초로 하여 전개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애민과 애국의 기치 또한 어떤 고정된 이념의 푯대로 보려고 하지 않고 구체적인 현실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의 요구에 맞게 계속 확대 심화해 갈 필요성은 있다 하겠습니다.
결론적으로 애민과 애국의 기치는 한국 사회의 실태를 분명하게 파악하게 함으로써 한국 사회를 어떻게 고쳐갈 수 있는가를 명확히 보여줌과 동시에 이를 실질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주체, 즉 광범위한 세력들을 하나로 모아낼 수 있는 기초가 되기에 이를 중심으로 단합하여 나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한국 사회의 개혁을 진실로 바라는 사람들은 한국애국전선체를 형성하기 위해 적극 노력해야 합니다. 한국애국전선체를 마련한다면 그 힘으로 외세와 매국노를 응징할 수 있는 애국법과 조국통일법을 제정할 수 있을 뿐만이 아니라 한국의 애국정권도 수립할 수 있을 것이고, 그러면 그것을 기초로 한반도 통일은 물론이고 개인과 집단, 나라와 민족 단위의 모든 부분에서 주인의 권리를 누리고 사는 세상을 끝내 이루어 낼 수 있을 것입니다.
2024. 7. 1
우리겨레연구소(준) 소장 정호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