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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7월 31일 월요일 성 이냐시오 데 로욜라 사제 기념일
<겨자씨는 나무가 되고 하늘의 새들이 그 가지에 깃들인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3,31-35
그때에 예수님께서 비유를 들어 군중에게 31 말씀하셨다. “하늘 나라는 겨자씨와 같다.
어떤 사람이 그것을 가져다가 자기 밭에 뿌렸다.
32 겨자씨는 어떤 씨앗보다도 작지만, 자라면 어떤 풀보다도 커져 나무가 되고
하늘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인다.”
33 예수님께서 또 다른 비유를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하늘 나라는 누룩과 같다.
어떤 여자가 그것을 가져다가 밀가루 서 말 속에 집어넣었더니, 마침내 온통 부풀어 올랐다.”
34 예수님께서는 군중에게 이 모든 것을 비유로 말씀하시고,
비유를 들지 않고는 그들에게 아무것도 말씀하지 않으셨다.
35 예언자를 통하여 “나는 입을 열어 비유로 말하리라.
세상 창조 때부터 숨겨진 것을 드러내리라.”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려고 그리된 것이다.
먼지는 모시듯 쓸어야 합니다.
모처럼 빗자루를 들고 구석구석 씩씩하게 쓸면서 청소를 하고 있는데 먼지가 풀풀 날아갑니다. “먼지는 모시듯 쓸어야 한답니다.” 라는 말이 생각나서 실없이 웃고 말았습니다. 우리가 너무 힘껏 방을 쓸면 먼지는 전부 날아버리지요. 아주 가볍고 작은 먼지는 모시듯이 쓸어야 쓸린다는 것을 전혀 생각지 못하고 삽니다. 그러면서 문득 겨자씨 생각을 하였는데 이 겨자씨가 꼭 먼지처럼 생겼답니다. 충청도에서는 먼지보다 조금 큰 것을 ‘탑새기’라고 한답니다. 세상에서 정말 보잘 것 없는 가난한 사람, 힘없는 사람, 약한 사람들은 먼지와 같습니다. 그러니 그런 사람들은 도와주고 부축해주고, 힘을 실어주며 모시듯 하는 것이 하느님의 원리랍니다.
작은 겨자씨가 자라서 아주 큰 나무가 된다는 것처럼 하느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겨자씨처럼 아주 작게 심어졌지만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에 임하시어 큰 나무가 되듯 우리의 믿음이 커져가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교회로 제자들을 부르셨고, 박해와 순교를 거치면서 2천년이 넘도록 거대한 공동체로 확대되었습니다. 하늘나라는 바로 우리들의 아주 작은 가정에서 시작합니다. 하지만 겨자나무가 저절로 커지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농부는 먼지와 같은 겨자씨를 심고, 거름을 주고, 순을 집어주고, 가지를 쳐주고, 많은 정성을 기울여 새가 깃들이는 큰 나무로 자라게 되는 것처럼 하느님 나라도 주님께서 가꾸셔야 하고 또 그 사명을 받은 우리도 정성으로 가꾸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주님은 누룩을 비유로 하늘나라를 설명하십니다. 어려서 누룩을 집에서 만들 때 많이 밟기도 하고, 띄우기도 해서 그 원리를 잘 관찰하기도 하였습니다. 밀기울로 만드는 누룩도 있고, 밀을 그대로 막 찧어서 만든 누룩도 있고 쌀을 조금 넣어서 만든 누룩도 있고, 식혜를 만들 때 쓰는 엿기름도 있습니다. 누룩은 몸에 좋은 곰팡이와 엿기름과 같은 맥아가 효소로 작용해서 누룩이 됩니다. 누룩은 크게 떡누룩(餠麴)과 흩임누룩(籸麴)으로 나눌 수 있으며, 병국은 다시 곡물을 가루 내어 덩어리로 만든 분국과 곡물을 거칠게 갈아 만든 조국, 그리고 약초를 넣어 만든 초국으로 나눈다고 합니다. 특히 곡물의 낱알이 흩어져 있는 누룩을 '흩임누룩'이라 하는데 이 누룩으로 술을 만들기도 하고 오늘 복음처럼 빵을 만들기도 합니다.
1) 누룩은 부풀어 많게 하는 특성이 있습니다.
적은 것을 많게 하는 것은 큰 의미가 있습니다. 하느님 백성을 많게 하는 것도 우리의 사명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듣고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신앙을 키우는 것도 우리가 해야 할 일입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서로 사랑을 키워 돈독(敦篤)해 지는 것도 누룩과 같은 것입니다. 정직하게 돈을 많이 벌어 부자가 돼서 많은 사람들을 도우며, 돈 걱정 없이 잘 사는 것도 우리의 책임입니다. 가난하고 못사는 것이 우리의 자랑이 될 수 없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부자 되기를 바라십니다.
2) 누룩은 변화를 상징합니다.
누룩을 넣어 부풀리어 빵을 만들고, 술을 만들 때 본래의 모습을 더욱 좋게 변화시키는 역할을 누룩이 합니다. 세상을 변화시키는 일을 교회와 우리가 해야 합니다. 하느님 나라는 우리의 삶의 변혁을 통하여 완성됩니다.
3) 누룩은 맛을 좋게 합니다.
누룩을 넣어 맛을 내듯 우리도 세상을 맛있게 살아야 합니다. 그 맛으로 서로 재미있고, 기쁘고, 즐겁고, 행복하게 살아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맛으로 멋진 사람이 되기를 바라십니다.
4) 누룩은 효소(酵素)나 곰팡이로 더 좋게 변화시키면서 자신을 희생하는 살아있는 생명입니다.
자신을 남김없이 희생하는 삶을 상징합니다. 우리도 누룩과 같이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하며 희생하고 헌신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5) 누룩이 발효할 때에는 열을 내서 뜨거워집니다.
미적지근한 신앙생활이 아니라 뜨거워진 신앙생활로 모든 사람에게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우리가 그 믿음으로 뜨겁게 달궈진다면 모든 사람들이 우리를 닮아서 그렇게 살 것입니다.
6) 누룩으로 만든 음식으로 활력을 얻듯, 우리도 역동적이고 용감하게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술에 취해서 고주망태(高酒忘態)가 되는 것이 아니라 깨끗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주님과 같이 용감하고 씩씩하게 살아야 하겠습니다.
<이 백성이 큰 죄를 지었습니다. 자신들을 위하여 금으로 신을 만들었습니다.>
▥ 탈출기의 말씀입니다. 32,15-24.30-34
그 무렵 15 모세는 두 증언판을 손에 들고 돌아서서 산을 내려왔다.
그 판들은 양면에, 곧 앞뒤로 글이 쓰여 있었다.
16 그 판은 하느님께서 손수 만드신 것이며, 그 글씨는 하느님께서 손수 그 판에 새기신 것이었다.
17 여호수아가 백성이 떠드는 소리를 듣고, “진영에서 전투 소리가 들립니다.” 하고 모세에게 말하였다.
18 그러자 모세가 말하였다. “승리의 노랫소리도 아니고 패전의 노랫소리도 아니다.
내가 듣기에는 그냥 노랫소리일 뿐이다.”
19 모세는 진영에 가까이 와 사람들이 춤추는 모습과 수송아지를 보자 화가 나서,
손에 들었던 돌판들을 산 밑에 내던져 깨 버렸다.
20 그는 그들이 만든 수송아지를 가져다 불에 태우고,
가루가 될 때까지 빻아 물에 뿌리고서는,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마시게 하였다.
21 모세가 아론에게 말하였다. “이 백성이 형님에게 어떻게 하였기에,
그들에게 이렇게 큰 죄악을 끌어들였습니까?”
22 아론이 대답하였다. “나리, 화내지 마십시오. 이 백성이 악으로 기울어져 있음을 아시지 않습니까?
23 그들이 나에게 ‘앞장서서 우리를 이끄실 신을 만들어 주십시오. 우리를 이집트에서 데리고 올라온
저 모세라는 사람은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하기에,
24 내가 그들에게 ‘금붙이를 가진 사람은 그것을 빼서 내시오.’ 하였더니, 그들이 그것을 나에게 주었습니다.
그래서 내가 그것을 불에 던졌더니 이 수송아지가 나온 것입니다.”
30 이튿날 모세가 백성에게 말하였다. “너희는 큰 죄를 지었다.
행여 너희의 죄를 갚을 수 있는지, 이제 내가 주님께 올라가 보겠다.”
31 모세가 주님께 돌아가서 아뢰었다.
“아, 이 백성이 큰 죄를 지었습니다. 자신들을 위하여 금으로 신을 만들었습니다.
32 그러나 이제 그들의 죄를 부디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하시지 않으려거든,
당신께서 기록하신 책에서 제발 저를 지워 주십시오.”
33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나에게 죄지은 자만 내 책에서 지운다.
34 이제 너는 가서 내가 너에게 일러 준 곳으로 백성을 이끌어라. 보아라, 내 천사가 네 앞에 서서 나아갈 것이다.
그러나 내 징벌의 날에 나는 그들의 죄를 징벌하겠다.”
축일7월 31일 성 이냐시오 (Ignatius)
신분 : 신부, 설립자
활동 지역 : 로욜라(Loyola)
활동 연도 : 1491-1556년
같은 이름 ; 이그나티오, 이그나티우스, 이냐시우스, 이니고
성 이냐시오는 1491년에 에스파냐 기푸스코아(Guipuzcoa) 지방의 아스페이티아(Azpeitia) 읍 위쪽의 로욜라 성에서 아버지 벨트랑 아녜스 데 오네스 이 로욜라와 어머니 마리아 사엔스 데 리코나 이 발다의 막내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세례명은 이니고이다. 그는 1506년에 당시 귀족 집안의 관습대로 에스파냐의 왕실 재무상인 후안 벨라스케스 데 쿠에야르의 집에서 위탁 교육을 받았다. 그는 후에 이때부터 자신이 방탕하고 무절제한 생활을 했다고 고백하였다. 그는 명예를 얻으려는 열망에 사로잡혀, 머리와 옷 등 외모에 관심을 기울이며 허영과 사치를 일삼았다. 벨라스케스가 사망한 후인 1517년에 성 이냐시오는 군에 입대하였다.
1521년 나바라(Navarra)의 팜플로나(Pamplona)에서 프랑스군과의 교전 중에 다리 부상을 입고 그의 생애에 있어서 중대한 전환점을 맞이하게 되었다. 성채를 점령한 프랑스군은 그를 치료해 주었고, 로욜라의 가족들에게 후송해 주었다. 부상으로 인한 치료를 마치고 회복기에 접어들자 무료한 시간을 달래기 위해, 그는 평소 즐기던 낭만적인 기사 이야기를 실은 책을 읽고 싶어 하였다. 하지만 성 안에 그러한 책은 없었고, 대신 가족들은 예수 그리스도와 성인들의 삶에 관한 책을 가져다주었다. 그는 책을 읽어 가면서 기사로서의 공상들이 자신을 황폐하게 만들고 아무런 만족도 주지 못하는 반면, 성인들의 모범을 따르는 삶 속에 참된 기쁨과 평화가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이런 내면적인 체험을 할 즈음에 그는 아기 예수를 안고 계신 성모 마리아의 환시를 체험하였다. 이 환시에서 그는 크나큰 위안을 받았고 지난날의 생활 전체, 특히 육을 따르던 행실에 대해 심한 혐오감을 느꼈다. 이후 그는 회심의 길로 들어섰다. 회심 후 로욜라를 떠난 성 이냐시오는 1522년 3월 25일 몬세라트(Monserrat) 산에서 약 15km 떨어진 만레사(Manresa) 마을 근처의 동굴로 거처를 옮겼다. 그곳에서 기도와 극기와 명상에 몰입하였으며, 구걸로 생계를 꾸려갔다. 평화를 얻으려던 그는 오히려 자신의 지난 죄들에 대한 양심의 가책에 시달리면서 고행을 하였다. 그의 저서로 유명한 “영성수련”(Exercitia Spiritualis)은 바로 이 시기에 기본 골격이 형성되었다. 이 당시 성 이냐시오는 예루살렘으로 가서 기도와 보속을 생활을 하겠다는 결심을 하였다.
1523년 2월에 시작된 예루살렘으로의 여정은 그가 각오했던 것 이상으로 고통스러운 것이었다. 예루살렘 순례 후 1524년 3월에 바르셀로나(Barcelona)로 되돌아왔다. 회심 이후 약 11년 간 그는 학문에 정진하였다. 그는 바르셀로나에서 라틴어 공부를 시작하였으며, 1526년에는 알칼라 대학, 1527년 살라망카(Salamanca) 대학에서 공부를 하다가 1528년 여름에 파리(Paris)로 학교를 옮겼다. 그곳에서 1535년 3월 14일 석사학위를 받았다. 하지만 건강의 악화로 1535년 봄 에스파냐로 돌아가 요양하였다.
성 이냐시오의 연학 시기는 수많은 시련도 있었지만 동시에 동료들을 규합한 시기이기도 했다. 그는 자신의 뜻을 따르는 동료들을 파리에서 만났다. 즉 사부아 출신인 성 베드로 파브르(Petrus Faber, 8월 2일), 나바라(Navarra) 출신인 성 프란치스코 사베리우스(Franciscus Xaverius, 12월 3일), 에스파냐 사람인 라이네스(J. Laynez)와 살메론(A. Salmeron)과 보바디야(N. Bobadilla), 포르투갈인 로드리게스(S. Rodriguez) 등이다. 이들은 성 이냐시오처럼 외적 고행, 구걸, 단식, 맨발로 다니기 등으로 단련하였다. 1534년 8월 15일 그들은 몽마르트르(Montmartre) 수도원의 순교자 성당에서 가난과 정결 그리고 공부가 끝나는 대로 예루살렘으로 가겠다는 세 가지 서약을 하였다. 하지만 건강의 악화로 고향으로 돌아온 성 이냐시오는 예루살렘으로 가기 위해 1537년 1월 베네치아(Venezia)에서 9명의 동료들과 모였으나, 당시 터키와의 전쟁으로 가지 못하고 1537년 6월 24일 동료들과 함께 그곳에서 사제 서품을 받았다.
1537년 겨울 성 이냐시오는 동료 성 베드로 파브르와 라이네스와 함께 교황을 만나기 위해 로마(Roma)로 갔다. 로마 근교의 라스토르타(La Storta)라는 마을의 경당에서 성 이냐시오는 환시를 체험하였다고 한다. 그는 성부께서 그를 예수 그리스도와 한 자리에 있게 해주시는 환시를 보았는데, “내가 로마에서 너희에게 호의를 보여주리라”는 말씀을 들었다고 한다. 성 이냐시오와 동료들은 자신들을 ‘예수회’(예수의 동반자라는 뜻)라 불렀으며, 교황 바오로 3세(Paulus III)는 이들을 호의적으로 받아들여 주었다. 사실 그때까지 장상, 규칙, 전통 없이 열심히 생활하던 성 이냐시오와 그의 동료들은 1540년 9월 27일 예수회 창립을 확인하는 교황의 교서를 통해 정식 인가를 받았다. 이듬해 4월 성 이냐시오는 초대 총장으로 선출되었다. 4월 22일에 그와 동료들은 로마의 바오로 대성전에서 장엄서원을 하였다.
예수회는 즉시 선교 지역으로 나갔고, 수도원과 학교, 대학교, 신학교 등을 전 유럽에 세웠으며, 교육과 지적인 분야에서 그들의 탁월한 능력을 드러내기 시작하였다. 그 당시에 성 이냐시오와 동료들이 세운 세 가지 목표는 교육과 자주 성사를 받음으로써 교회를 개혁하고, 선교지에서 폭넓은 활동을 전개하며 이단과 싸운다는 것이었다. 이것이 예수회 활동의 뿌리가 되었다. 성 이냐시오는 1555년 여름 로마에서 열병에 걸려 7월 31일 세상을 떠났다. 이냐시오는 1609년 12월 3일 교황 바오로 5세(Paulus V)에 의하여 시복되었고, 1622년 3월 12일에 프란치스코 사베리오와 함께 교황 그레고리우스 15세(Gregorius XV)에 의하여 시성되었다. 그의 시신은 로마에 있는 예수 성당에 안치되었다. 그는 피정과 영성수련의 수호성인으로 선언되었다.
오늘 축일을 맞은 이냐시오 형제들과 예수회에 주님의 은총이 가득하시길 기도합니다.
야고보 아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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