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우리 집은 이사가 잦았다.
계산해보니 8살부터 시작된 이사는 17살까지 8번, 평균 1년에 한번 꼴로 이사를 다닌 셈이었다.
대봉동, 대명동, 봉덕동, 중동...그때 이사 다니며 살았던 대구 동들의 이름.
새로운 동네로 이사를 가면, 내가 제일 먼저 하는 일은 새 동네 주변 골목들을 샅샅이 살펴두는 것이었다. 이 길은 저 길과 이어지고, 그 길은 막다른 길이고, 이 길은 지름길, 저 길은 돌아가는 길 등등.
골목길들이 눈에 익을 즈음이면 낯선 새 동네는 어느새 내가 오래 살아온 동네처럼 친숙하게 느껴지고 골목에 나와 노는 친구들과도 친해지기가 쉬웠다.
"어? 어떻게 이 길로 나왔지?"
지금의 아내인 그녀는 신기한 듯 눈을 동그랗게 뜨면서 즐거워했다.
그녀와의 데이트는 늘 헤어짐이 아쉬워 5분만 더~를 몇 번이나 되풀이하고서 자리를 털고 일어설 수 있었는데, 그것이 곧 그날의 작별을 의미하진 않았다.
대구 중심지 동성로에서 주로 만났는데, 특별히 일찍 귀가해야하는 날이 아닌 날에는 만남의 여운을 즐기며 집까지 걸어서 바래다주는 것이 남아있었다.
그녀는 태어나서 어른이 되기까지 한 집에서만 줄곧 살았고, 도덕책에서 추천하는 바로 그 '바른 생활 어린이'로 살아온 사람이라, 집과 학교 오가는 길 외에는 아는 길이 별로 없었다.
'한번도 같은 길로 집에 데려다 주진 않을 것이다.'
나는 그때 엉뚱하게 그런 결심을 했었다.
재미가 있을 것 같았고, 그녀가 보지 못했던 세상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과, 그녀가 알아주기만 한다면 자랑하고 싶은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 중 하나였기 때문이었다.
이천교 근처에 있던 그녀의 집에 이르는 길은 수도 없이 많았다.
경북여고 담벼락을 끼고 들어 제일여상을 지나가던 길,
대한극장을 끼고 돌아 향교 옆을 지나 흔들바위로 빠지던 길,
대구초등학교를 지나 봉산 시장을 지나가는 길......길 길들
큰 길 안에는 또 수많은 작은 골목길들이 거미줄처럼 촘촘히 얽혀있었고, 한번도 같은 길로 바래다주지 않겠다는 나의 결심은 결혼 직전까지 성공적으로 잘 지켜졌다.
"오늘은 어떤 길로 갈 건데요?"
골목길에 맛을 들인 그녀는 기대를 품은 눈으로 나에게 먼저 묻기도 했었고, 그런 날은 아껴둔 새로운 골목길로 그녀를 이끌었다.
"오늘은 담에 돌부처가 새겨져 있는 길로 가보자."
팔짱을 끼고 다정히 붙어 밤 골목길을 걷다가,
"이게 바로 그 돌부처야. 내가 국민학교 1학년 때 지나다니면서 신기해하곤 했었어."
"와~! 정말 돌부처가 있네. 누가 담에다가 새겨두었을까?"
그녀가 감탄하고 신기해하면 할수록 내 어깨엔 힘이 들어가 우쭐해지곤 했었다.
어릴 적 낯선 환경에 빨리 적응하기 위해 탐색을 했던 그 골목길들은, 그녀와의 만남을 통해 둘의 인연을 더 촘촘한 그물로 엮어주는 길들로 바뀌어졌고, 1시간 여 걸리던 그 골목길 귀가를 아내는 아직도 우리 젊은 날의 소중한 기억들 중 하나로 간직하고 있다.
지금은 도시 개발로 많이 사라져 버렸을 그 골목길들.
고향 떠나 멀리 미국까지와 살고있지만, 언젠가 기회가 되면 아내와 함께 남아있는 고향의 골목길들을 찾아 걸으며 추억 산책을 해보고 싶다.
첫댓글 마음자리님은 대구분 이시군요.
저도 어릴때 대구에 가본적 있었어요.
삶의 방에서
이런 글을 읽을 수 있어서 정말 좋습니다.
고모가 군인인 고모부를 따라가서 대구에서 살고 계셨거든요.
아기가 없어서
적적해 하는 막내 고모 하고 함께 지내라면서
초등학교 입학 전이던
막내인 저를 아버지가 대구 막내고모 집에 데려다주셨는데요,
아기를 안낳아 본 막내 고모는
내가 느끼기에 참 깍쟁이 였어요.
언제 집에 갈수 있을까?
문만 쳐다보고 아버지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막상 데리러 오신 아버지를 기차 플랫 포옴에서 보고는 너무 서운해서 고개를 돌렸다는 ㅎㅎ
스물 여덟에 떠날 때까지 고향 대구에 살았었지요. 이젠 멀리까지 떠나오고도 한참의 세월이 흘렀으니 기억으로 품은 고향은 더이상 그 옛날의 모습은 아니겠지만 하나하나 옛흔적 찾는 재미로 걸어보고 싶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동생 적적해한다고 어린 딸을 낯선 도시에 데려다 주시다니, 그 당시면 대구역밖에 없을 땐데 그 플랫폼에서 서운해 고개를 돌리시고도 남겠어요. 저라면 눈물까지 핑 돌거나 엉엉 울기까지도 했을 것 같은데... 그 시절 즈음에 엄마와 어디간다고 대구역에 나갔다가 엄마 핸드백을 소매치기가 칼로 긋고 돈을 훔쳐 가버려 속상해하던 엄마 모습과 다시 집으로 돌아와야 했던 날의 대구역 스산했던 풍경이 기억납니다. ㅎ
참 재미 있네요...ㅎ
대구 서문시장
납작만두, 칼재비도
맛있구요.
대명동 안지랭이시장
앞산 정보부.
그리고
전에 글에 신혼이셨던
부천역 소사 🍑복숭아
밭도 알고요 ㅎㅎ
지금 사시는 미국도
제가 살고 있고요.ㅎㅎ
참 재미 있네요...
철판납작만두는 아직도 그 입맛이 남아있는데 떠나온 후로 어디서도 맛볼 수가 없네요. 안지랭이, 까많게 잊고있던 정감가는 지명입니다. 정보부는 제가 알 리 없는 곳이고, 부천역... 여러 공간이 서로 공감을 자아내네요. 저도 며칠 전 수샨님의 그랜드캐년 사진들을 보며 그런 공감을 느꼈거든요. ㅎㅎ 전 지금 달라스에 살고 있습니다.
재미있는 인연이라 더 반갑습니다.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22.08.07 14:36
@수샨 수샨님은 마음자리님보단 대구에 더 살으신것 같네요..ㅎ
미리내.대덕.효성타운..
앞산 중앙정보부자리..
모두 아시는것보니 너무 반갑고 반갑습니다..
지방살아서 서울이 모토카페라 모임도 참석어렵고 그져
좋은글 읽으며 눈팅만..ㅎ
멀리 미루사시는분들이 대구를 더 아시니
이랗게 좋을수가 없지요..
저도 앞산 밑에 오래살다가 아젠 새로운곳으로~~
대구는 연일 찜통더위로 몸살을 앓고있답니다..
건강하세요.
지하철은 생긴지 20년이 넘었답니다...ㅋ
스샨님.
지금도 서문시장 납작만두는 체인점이 생길 정도로 유명하죠..
아마..
예전 동아백화점앞
미성당도 아시는지요..ㅎ
언젠가 한국오셔서
만나게된다면
서문시장 납작만두
안지랑 곱창.
배가 터지도록 대접해 드리고 싶네요.ㅎㅎㅎ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22.08.07 14:34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22.08.07 1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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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대구 골목 길 지도 상세하게 그리며
멋진 데이또 즐거운 추억이 자리하군요
아마도 많이 변하고 발전 했을지언정 그시절 아련한 추억에 젖다보면
고국에 대한 향수병이 도질 만 합니다
수고 많으세요
미지의 세계에서 뿌리를 내린다는게....
저도 미국 여행 가고 싶어서 말했더니
미국에 왜 가냐구 ? 하와이나 산타리나에 가면 되지!
미쿡 본토에 가고 싶어요^^
어디나 정들면 고향이지만 외국 생활은 젊을 때 아니면 관광으로 다니시는게 더 낫겠습니다. ㅎ
이렇게 대구가 고향이고 대구를 잘알고 계시는 분들에 글을보니 대구사는 사람 너무 기분이 좋아집니다..
옛모습은 찾을순 없어도 어릴때 추억은 조금이라도 남아 있어요..
경북여고도 그렇고
흔들바위란 지명도..ㅎ
어젠가 고향방문에 부인과에 추억을
다시 담아 보시길 강추합니다..
변해버린곳도 많지만 동성로 근대골목길은 아주 예쁘게 단장하여 투어객들이 많답니다..
님에글로 많이 많이 행복했습니다..
고향 대구에 대한 추억이 많으니 앞으로도 생각나면 계속 올리겠습니다. 행복하시다는데 뭘 주저하겠습니까 ㅎㅎ
대구는 제가 군에 입대했다가
지병으로 국군대구통합병원으로 후송가서
8개월여 생활하다 의병전역한 곳입니다.
물론 군수송열차에서 수송버스로 입원하고
전역할 때만 내 발로 병원을 나와
대역에서 열차 타고 집에 왔기에
대구 시내를 한 번 눈여겨 걸어보지도
못했습니다.
말다농무원인 형이 첫 근무지를 충남 보령시 대천읍으로 전보 받고
어머니와 셋이서 충청도 산골을 떠나(내 나이 12살)
보령시 대천에서 천안시 목천읍, 경기 수원시 등등
군 입대 전까지 곡 11번을 이사 다닌 것 같습니다.
이사 다닐 때마다 골목 익히느라 힘들었지요. 저두.
동부 정류장 가까이 대구통합병원은 제가 신체검사를 받은 곳이기도 합니다. 이사를 자주 다니다보면 친구도 잃고 정 붙이기도 힘들게 되더라구요. 그래도 골목골목 다니다보면 다시 또 정이 붙고 ㅎㅎ
삭제된 댓글 입니다.
우리 모두의 그리움이란 말에 울컥합니다. 화이팅~!
그시절을 떠올리신 행복한 마음이 느껴 집니다~~
좋은글 고맙습니다
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글이 정겹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글에서 정겨움이 느껴지신다니 감사합니다.
대구 동인동 살았고 역전 근처에서 놀았고 동부시장 동부극장 대명동에서 잠깐 살았고 대구 고생했던 기억만 10살까지 자라면서 그렇네요
동인동에 살아보진 못했지만 잘 아는 곳입니다. 동부극장도 기억 나고 대명동은 제가 살던 곳이기도 했고...고생했던 기억도 때론 소중하게 떠오를 때도 있더라구요.
지금은 도시계획이 진행되면서 그 많던 골목길들이 많이 사라졌겠지만, 옛날엔 도시마다 거미줄처럼 엮어진 골목길들이 많았지요.
특히나, 그중에서도 대구시의 골목길은 유난히도 복잡하고 촘촘한 것으로 유명했었지요.
그 골목길에서 있었던 수많은 추억들을 마음속에 지니고 살아가는 506070인들이 많을 것 같습니다.
그림이 그려지는 추억의 골목길 이야기 잘 읽고 갑니다.
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