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통보전(圓通寶殿)에 올라
봄을 맞아 낙산사의 의상대에서 절벽에 세워진 홍련암을 내려다보다가 원통보전에 올랐다. 원통문으로 들어섰다가 원통문으로 나오려니 일단의 참배객들이 나를 따라오는지 원통문으로 뒤따라 나오고 있었다. 나도 그렇지만, 그들은 무엇을 보고 나왔을까?
절집의 본전(本殿)애 관음(觀音)을 모시면 원통보전(圓通寶殿)이라 한다. 관음은 세상의 모든 소리를 다 듣고 살핀다는데, 화엄경에 의하면 관음은 인도의 남부 보타락산에 머문다고 한다. 그래서 양양의 낙산사(落山寺)는 보타락산에서 그 이름을 따고, 여기에 관음을 모셨다 한다.
어느 노스님이 절 마당에 커다란 원(圓)을 그려놓고 동자승에게 이르기를 “이 원 안에 들어가면 밥을 주지 않을 것이요, 원 밖에 머물면 밖으로 내쫓을 것이다.”라고 했다던가. 그렇다면 동자승은 어찌해야 한단 말일까?
아직 분별력도 없는 동자승은 스님이 그려놓은 원을 발로 싹싹 지워버리고 자유자재 했다던데, 그러면 원 없는 삶을 살 수 있지 않겠는가?
어떤 사람은 원 없이 재산을 모으고 싶다 하고, 어떤 사람은 원 없이 쓰고 싶다 하고, 또 어떤 사람은 무엇이든 원 없이 하고 싶다 하는데, 그게 가능하기나 한 걸까? 허나 마음으로 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한데, 그게 답인지도 모르겠다.
어느 중심으로부터 같은 거리로 둥그렇게 점을 이어나가면 원이 되는데, 우리는 자유자재 한다 하더라도 어떤 중심은 잃지 말아야 한다. 그 중심이 무언지는 단박에 깨우치기도 어려운 것이니 절집이든 在家든 교회당이든 찾아들어 머리를 조아리는 게 아닐까? 중심은 무엇이며 원 안은 무엇이고 원 밖은 무엇인지, 그걸 말이다. 몇 해 전 동그라미에 대한 상념을 써봤는데, 그 글을 다시 꺼내본다.
동그라미의 추억
어느 비개인 날
앞집에서 하나 뒷집에서 하나
들마당으로 뛰어들었지
소년이 짓궂게 따라붙자
어린 소녀는 동그란 금을 그어놓고
팔짝 들어앉아
“ 이 안에는 못 들어와! ”
소년은 그러냐며 배시시 웃고는
금 밖을 맴돌 뿐이었으니
모든 것을 포함하며
어디에도 존재한다는 절대존자
그것은 한없이 커야 하므로
그보다 더 큰 것은 없고
그것은 한없이 작아야 하므로
그보다 더 작은 것은 없을 터
동그라미를 그어놓고
그 안으로 안으로 안으로 들여다보거나
그 밖으로 밖으로 밖으로 내다보노라면
무변(無邊) 광대(廣大)의 절대존자가 거기 있느니
.
내 어린 시절
하나는 안에서 밖을 내다볼 줄 모르고
하나는 밖에서 안을 들여다볼 줄 몰랐으니
그래서 우리는
철 모르는 순수였을 게다. / 졸 시 ‘동그라미의 추억’ 전문
첫댓글 아직도 동창녀분들과 여행중이신가요?
저는 서울이라 그런가 초등 중학 동창회는 안가게되고 여고 동문회는 요석 선배님이
회장님이신데
제가 바빠서 전혀 못도와드리고 있고,
저희 대학 동창들은 다들 젊은 시절
이리 저리 사귀던 사이들이다보니
만나면
아직도 불꽃들이 튄답니다.
ㅋㅋ.
그래서 거그도 요즘엔
아예
안가고 있어요.
칠십이나 넘어야 갈라나요.
ㅎㅎ
그렇군요.
각자 어울리는 모습이 다르겠지요.
책임자는 언짢아도 회원들의 뜻도 받들어야 하고요.
일견
동자승이
노스님 경지를 가볍게 뛰어 넘은 것으로 보입니다..ㅎ
복잡한 세상에서
복잡하게 사고하는 것이
우리네 삶을 힘들게 할 수 있다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그렇기도 하지요.
원효도 깨우친 뒤엔 無碍行을 했다니까요.
원은 둥글지요.
저는 제 졸시 '내 마음의 나이테' 첫 연에
'자신을 희생한다는 것은
둥글어지는 일이다.'라고 표현했습니다.
모나지 않고 원처럼 둥글둥글 살아가고픈 마음입니다.
그게 그래야하는데
아직도 불끈거리니 한참 더 수양해야겠습니다.
누구요? 저요.
삶이 파란만장 이니 어쩌니 해도 모두 원 안에서 지지고 볶고 살다 가는거 동그랗게 그려 놓고 안을 오색으로 색칠하는 치매노인 교육부터가 원이지요 우주의 원리
여행으로 동해안으로 오셨군요
치매노인 교육에 그런것도 있군요.
여하튼 몸으로도 마음으로도
어떤 금도를 지켜야겠지요.
여행요?
운선님에게 점심이나 대접할까 했는데
금요일이라서.
@석촌 먹은 걸로 하겠습니다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