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모사 [이소호]
상처는 사랑하는 사람이 준다
손을 대는 게 처음은 아니잖아
나는 알고 있다
참지 말고 말해봐
멍청하게 그렇게
구석에 처박혀 있지 말고
애인은 식물을 키우는 것을 좋아한다
입도 귀도 눈도 없이
물만 주면 알아서 잘하니까
돈도 별로 안 들어
이렇게 가끔 흙을 다 뒤집어놔야 해
그래야 안 죽지
숨 쉴 틈은 줘야지
나는 정말 좋은 사람이야
좋은 사람의 잎자루 위에 핀
열 개의 손가락
쌍떡잎에 한해살이
이렇게 맞다가는, 오빠
나는 올해를 넘기지도 못할 것 같아
온몸이 움츠러든다
고작 손가락 하나 때문에 나는
밤이면 시들고 낮이면 핀다
은밀하게 틔운 꽃은
붉고 받침도
없다
미모사는 신경증을 평생 앓다 죽는다
가만히 둬도 알아서 접었다 펼 수 있는데
입이 없는 식물의 몸부림은
아무도 모른다
잎사귀의 끝부터 말라비틀어져
죽기 전까지
미모사도 모른다
자기가 잘 살아 있는지
엄마 그거 알아요?
오빠는 다른 사람이랑은 달라요
가끔 손을 대는 것만
그것 하나만 빼면 정말
좋아요
저는 참 운이 좋아요
- 홈 스위트 홈, 문학과지성사,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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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모사 [이소호]
joo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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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9.04 2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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