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의 월요시편지_904호
내가 고향이다
전윤호
추석에 집에 있기로 했다
친정이 없어진 아내와
서울에서 태어난 아이들에게
올 명절은
집에서 쉴 거라 했다
시장에서 송편을 사고
보름달 뜨면
옥상에서 구경하자고 했다
용돈을 받은 아이들은
신이 나서 컴퓨터 게임을 사고
인터넷으로 떠난다
괜히 적적한 척
서울에 있을 선배에게 전화해
그날 저녁 만나기로 했다
문을 닫고 돌아누운 어두운 거리에도
작은 수족관에 불을 켜고
물방울 같은 사람들을 기다리며
문 여는 술집이 있을 거라고
텅 빈 시내버스처럼
반겨줄 사람이 없는
성묘객이 끊어진 무덤처럼
내가 고향이다
- 『늦은 인사』(백조, 2021)
***
추석을 앞두고 어떤 시를 띄울까 고민하다가 전윤호 시인의 「내가 고향이다」라는 시를 떠올리고는 옛 자료를 뒤졌습니다. 아뿔싸 2017년 추석을 앞둔 월요일 시편지(572호)로 이미 한 차례 띄웠더군요. 잠시 고민하다 그냥 한 번 더 띄우기로 했습니다. 2021년 12월 6일에 남긴 이런 메모를 찾았기 때문입니다.
"실천문학에서 나왔다가 절판된 전윤호 시집 『늦은 인사』가 다행스럽게도 백조 출판사에서 복간되어 다시 세상에 나왔다. 정선이 고향인 전윤호 형은 언제부턴가 스스로가 고향이 되었다. 그리하여 처처곳곳 그가 머무는 곳이 그의 고향이다. '여울에 앉아/ 낚싯대를 잡고 있다/ 물살에 떠다닌 내 생애가/ 찌에 얹혀 있다/ 우수수 옥수수 머리를 밟으며/ 푸른 바람이 자꾸 지나간다/ 손으로 전해오는/ 나를 끌고 가는 시간의 묵직함/ 좀 더 기다려야 하리라/ 나는 이 밤을 바쳤지만/ 메기는 일생을 걸고 있다'(「메기 낚시」 전문) 그가 한때 낚으려 했던 메기처럼 그는 매 時, 매 詩마다 일생을 건다. 전윤호 형의 『늦은 인사』가 더 늦지 않게 한 십만 권쯤 팔렸으면 좋겠다."
전윤호 형의 『늦은 인사』가 10만 권쯤 팔리길 소망했지만, 아직까지 그런 소식이 들려오진 않고 있으니, 이렇게라도 다시 한 번 선전선동을 해보려 합니다. 『늦은 인사』 십만 권 가자! 가즈아!!
전윤호 형은 이제 고향 정선에 내려갔습니다. 장열이라는 마을에 정착(?)한 형은 "이제 장렬하게" "오직 장렬하게" "여전히 시를" "오로지 시만" 씁니다. "언제나 시도 쓰는" 저로서는 불가능한 일이지요.
아무튼 추석이 낼모레입니다.
전윤호 시인의 시는 조금 슬프지만, 시 바깥의 당신들은 조금만 슬프고 많이 행복한 추석을 보냈으면 좋겠습니다.
2023. 9. 25.
달아실 문장수선소
문장수선공 박제영 올림